[강병로의 산야초 이야기] 청미래덩굴
구름에 가린 햇살이 두어 시간째 갈지(之) 자 걸음을 걷던
11월 어느 날의 송지호(고성) 풍경은 흘림체였습니다.
대숲을 깨우는 바람은 방향이 없었고,물결에 몸을 맡긴 철새는 점으로 흘렀지요.
이방인의 눈에 비친 호수의 풍경은 ‘자유’ 그 자체였습니다.
보기보다는 느낄 것,가까이 더 가까이….
눈 앞의 상징과 실체들이 웅변하듯 건넨 이 말의 의미는 몰입과 일체,동화였습니다.
보는 순간 느껴라.
존재 그 자체가 ‘자유’라는 걸!
그 시간,송지호의 풍경엔 거짓이 없었습니다.그게 무엇이었든....
호수를 둘러싼 풍경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지요.
송지호 제1경,송호정 가는 길에 뿌리를 내린 청미래 군락.
처음엔 보이지 않다 차츰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주변을 온통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갈대와 주변 나무들이 자연으로 회귀할 무렵,빨간 물감을 들인 듯 저 홀로 붉어진 청미래 열매.
‘가을은 저렇게 익어가는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지요.
어린순은 나물로,뿌리는 약재로,잎은 떡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는 청미래는
명감,망개,매발톱가시,종가시덩굴로 불리며 그 존재감을 뽐냅니다.
여름 해변에서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망개 떡∼’.
이 떡이 다름 아닌 청미래 잎을 싸서 찐 떡입니다.
망개 잎 향이 찹쌀가루에 배어들어 상큼한 맛이 나고,방부역할 때문에 잘 상하지 않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청미래 뿌리에는 녹말 성분이 많아 흉년이 들 때 구황식물로 손색이 없습니다.
음식재료로 쓸 땐 ‘신선이 남긴 음식’이라는 뜻의 ‘선유랑(仙遺糧)’으로 불렸지요.
약재로 사용할 땐 ‘토복령’이라 칭했는데 중금속 중독을 해독하거나 항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청미래 뿌리는 억세고 단단해서 다루기 쉽지 않습니다.
작두를 사용해야 자를 수 있고,잔뿌리 제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요.
그럼에도 이 약재에 열광하는 건 효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본초강목’과 ‘동의학사전’에서는 “각종 성병과 뼈마디가 아프고 쑤신데,피부병,수은 중독에 쓴다”고 했습니다.
술을 담그거나 물에 달여 마시는데 늦가을의 붉은 열매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됩니다.
호숫가 풍경과 어우러지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