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11〉흘러가는 물처럼 살고, 물처럼 인연 맺자
부와 명예는 인연따라 흐르는 것
웅덩이도 들어가고 오물도 씻어내며
산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물처럼
모든 만물은 고정불변 없이 변화
한 승려가 산에 들었다가 길을 잃었는데, 헝클어진 긴 머리에 풀 옷을 입은 은자를 만났다. 바로 이 은자는 당나라 때 선사 대매법상(大梅法常)이다. 법상은 스승 마조(709~788)에게 법을 받은 뒤 천태산 남쪽 70리쯤에 위치한 대매산에 들어가 입적할 때까지 은둔하며 살았다. 승려가 법상에게 물었다.
“은자께서는 언제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습니까?”
“사방의 산이 푸르렀다가 다시 노랗게 물드는 것을 바라볼 뿐,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산을 벗어나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저 물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 가십시오.”
‘추지처낭중(錐之處囊中) 기말입현(其末立見)’이라고 송곳이 주머니 안에 있으면 그 끝이 밖으로 뚫고 나오듯이 법상이 은둔해 살아도 스님의 법력이 점차 세상에 알려져 그에게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라 승려 가지(迦智)와 충언(忠彦)도 법상의 제자이다. 법상이 입적하기 직전 제자들에게 말했다.
“오는 자를 막지 말고, 가는 자를 말리지 말라(來莫可抑 往莫可追).”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승려에게 물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 가라고 하는 것이나 오는 자를 막지 않고 가는 자를 잡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처럼 좋은 것이든 나쁜 일이든 거부하지 않는 수용자세가 아닐까 싶다.
달마선사의 가르침 가운데 수연행(隨緣行)이 있다. 즉 “중생이 살아가는데 모든 것을 인연의 업(業)에 따르는데, 고통스런 일이든 즐거운 일이든 다 인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니, 그것이 인연이 다하면 당연히 사라지는 법이다. 이런 이치를 알고, 좋은 일이 생기든 나쁜 일이 생기든 인연에 의해 오고가는 것으로 받아들여 어떤 경계든 흔들리지 말고 수행에 힘쓰라”는 뜻이다.
물이 인연 닿는대로 흘러가듯, 그리고 세월이 무심히 흘러가듯 이 세상 모든 만물은 고정 불변함이 없이 변화되어 흘러간다. 곧 현상적으로 보이는 물건이든 마음에서 일어난 망상이든 모두 인(因)과 연(緣)에 의해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법이다.
물은 산꼭대기에서 바다로 흘러갈 때까지 돌부리도 만나고, 파인 웅덩이에도 들어가며, 사람이 발을 담그기도 하고, 동물들의 변이 섞이기도 할 것이다. 바로 이와 같다. 사람도 살면서 명예와 부를 얻을 때도 있고, 명예와 부가 추락할 때도 있다.
명예와 경제적 부가 생겼을 때 거부할 필요도 없지만, 명예와 부가 자신을 떠날 때도 잡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람과의 인연도 그러하다. 인연이 맺어질 때도 있지만 이별할 때도 있는 법이다. 앞에서 표현했듯이 인과 연에 의해 모였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명예든 경제적 부든 인연관계이든 그저 인연의 흐름에 맡기고 그 흐름을 수용할 줄 아는 것, 바로 이것이 수행을 통해 얻는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이형기의 시 ‘낙화(落花)’에서 이렇게 읊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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