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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 사진: 세실)
* 매일 미사 강론을 녹취하야 손수 타이프로 기록하려면 집중하여도 1시간 이상이 걸리고 힘이 쫙 빠진다 합니다. 수고를 아끼지 않는 세실 덕분에 함께 강론을 공유하게 되어 감사해요.
†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매일 11시 강정에서는 생명평화미사를 봉헌 합니다.
많은 분들이 제주에 여행을 오시면 일부러 강정을
방문 하셔서 함께 해주십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수도자들은 자신의 휴가를 강정에 봉헌합니다.
그러고 나서 강정에 마음을 두고 가시고는 강정 앓이를 합니다.
이러한 많은 분들의 방문이 이곳에 있는
주민과 지킴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2월 5일 양윤모 선생님 구속 370일째입니다.
한겨레신문 생활광고란에 양윤모 선생님을 기억하는
릴레이 광고가 진행 중입니다.
각자 마음을 모아서 광고주가 되어 주시고 계십니다.
제주교도소 301 양윤모(니꼴라오).
기도 중에 기억 해 주십시오.
2월 5일 수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순교 기념일
주례 양명현
강론 문창우
찬미 예수님!
문창우 신부입니다.
오늘 노형 본당에서 강정의 생명평화 미사를 봉헌하러 오셨는데
본당신부님께서 제가 보이니까 오늘 강론을 했으면 좋겠다.
제가 사제 서품을 받았을 때 본당에 계셨어요.
어머니의 마음으로 많이 수고하였었기 때문에
제가 신부님이 부탁 하시는 것을 거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곳에 오면서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오면서 때로 어떤 분들은 아직도 안타깝다는
마음이 드시는 분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왜 이렇게 해결이
되지 않고 있을까? 라는 생각들 또 우리사회가
서로 봉사하고 서로 공존하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상황들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러한 상황들을
보게 됩니다. 저는 고향이 제주도이기 때문에 방학이 되어서
가끔 제주도에 내려오게 됩니다. 어제 특별히 입춘이었죠.
봄이 온다는 그러한 뜻을 갖고 있는데요. 계절이 변하면서
봄이 온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나이 들거나
새로운 많은 일들을 경험 하면서 뭔가 깨닫게 되고 배우게 되고
다듬어 가게 됩니다. 저도 방학 때 오면 주교님과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신부님들 후배신부님들 때로는 부모님을
만나면서 부모님께 아니면 신부님께 정말 함께 하면서
제가 놓쳤던 것 하느님께 다가가면서 저희가 바라보지 못 했던
것들을 새롭게 반성하게 되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앞으로는 다르게 바르게 살아야 갰다는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특별히 강론을 시작하면서 제가 어릴 때 재미있게
읽었던 동화 중에 하나는 ‘바람과 해님’이라는 동화입니다.
아시죠? 사나운 바람이 나그네 옷을 벗기지 못 했는데
따뜻한 햇살이 더워서 그 나그네가 옷을 벗는 그런 이야기죠.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가 감동하고 참 좋다! 라고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냈었는데요! 하지만 오늘 우리 사회가 정말 건전하고
제대로 발전해가기 위해서는 어떤 감시 어떤 비판 건전한 감시와
건전한 비판이 있어야 그 사회가 올바로 되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안에서 바라보게 될 때 이런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강정안에서 그런 비판과
그런 감시라고 하는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특별히 정부가 아무리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라도 그것이 잘못되면
비판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라고 우리가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그러한 환경들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게 됩니다.
사실 이런 감시와 비판이 잘 되지 않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한편으로는 병들어가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쓰는 표현 중에 비판과 비난이 있습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정말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판은 아시는 것처럼 근세의 유명한 철학자 중의 한사람인
칸트입니다. 이분이 쓰신 유명한 책이 순수이상 비판입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어떤 철학적인 사고를 해 나갈 때
이런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고 이 비판을 통해서 식별을 통해서
완전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가치들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판과 비난이라고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볼 때 비판은 공정하고 어떤 사심이 없는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비판입니다.
반대로 비난은 어떤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고 뭔가 그러한 것들을
의도를 가지고 하게 되면 그것이 비난이 됩니다.
오늘 복음을 잘 살펴보면 비판과 비난이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다윗 왕이 인구조사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볼 때 인구조사가 무슨 죄를 짓는 것인가?
그리고 왜 하느님이 흑사병을 내려 주실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시 인구조사라고 하는 것은 단순하게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는 수준이 아니라 인구조사는 바로 이웃의 다른 민족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군사력을 조직하고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 필요한
인구조사를 다윗 왕이 하게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에
모든 것을 맡기기보다는 인간의 힘에 인간의 어떤 사람들이
만들어낸 권력과 무기를 가지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을
지키려 하기 때문에 오늘 하느님께서 가드라는 예언자를
통해가지고 전하는 말씀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이게 비판이냐 비난이냐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3가지를 내어놓을 터이니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라!
내가 너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그러면서 가드예언자가 다윗에게 가서
일곱 해 동안 기근이 드는 것이 좋습니까?
임금을 뒤쫓는 적들을 피하여 석 달 동안 도망 다니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임금님 나라에 사흘 동안 흑사병이 퍼지는 것이 좋습니까?
그 해답을 해 달라.
하느님이 예언자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반대로 오늘 마르코 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기적이 일어나더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여기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그 분을 못 마땅하게 여겼다. 비난입니다.
또 우리 구약성서에서는 아합왕이 라봇이라는
사람의 포도원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엘리아 예언자가 가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면서
너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자 아합왕은
아 내가 하느님께 죄를 지었구나!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 요한복음 8장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율법학자들이 부정한 여인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와서
돌로 쳐 죽이려고 모함하려고 하자
예수님께서 너희들 중에서 죄 없는 사람이 저 여인을 돌로 쳐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이곳 생명평화미사를 봉헌 하면서
오늘 우리사회는 비판과 감사가 이루어지는
어쩌면 공정한 비판과 감시가 이루어 져야하는 사회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비난하는 사회 비난하는 공동체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우리가 비난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하지 않으려고
절제를 해야 하지만 비판적인 자세 안에서 우리 공동선을 위해서
우리 교회를 위해서 우리 강정을 위해서 충분히 비판 할 수 있는
그런 제세가 필요하다.
오늘 특별히 우리가 아가다 순교자 축일을 맞이하면서
교회에서 순교자라고 하는 것 단지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쳤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성인이라고 우리가 이야기를 쉽게 할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오늘날 과연 성인이 뭔가 그냥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 바치는 그 정도인가? 그 것인가?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
우리가 목숨을 바치는 순교자 필요한 시대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오늘 비난하는 자세가 아니라 비판하는 그런 자세를
매일 매일 우리 삶속에서 배워 가면서 오늘 이곳에 강정생명평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면서 우리가 다시 한 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고 또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래 글, 사진: 성)
오랜만에 만난 지킴이들…
“추위를 피하려고 집에 있어도 춥고, 평화 센터를 가도, 책방을 가도, 다 추워서 밖에 있는 게 낫겠다 싶었죠.”
“발이 몇 달 전에 부러졌어요.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해서 강정 댄스 때 발 깍지 끼고 뛰지 못해요.”
“강정, 항상 매일 이래요.” (미사가 끝날 무렵, 한 남성 경찰이 한 여성 주민의 자전거를 동의도 구하지 않고 치우려 하자 화가 난 여성 주민이 그 해당 경찰에게 따지니 경찰은 사과는 커녕 적반하장으로 대함. 그것을 지켜보며 한 여성 지킴이 조용히 눈물 흘리며 하는 말.”
“제주는 1차 산업과 3 차 산업이 중심이 된 집성촌 이야. 혈연 문화와 지연문화가 일치하는 괸당문화야.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나는 때가 명절과 벌초 때지. 그 괸당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선 4·3 치유의 가능성을 이해하기 힘들지.” (이제 막 꽃봉오리가 트는 하얀 매화를 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야.’하며 사진을 찍던 친구)
설 명절이 끝난 이후의 강정은 2월 4일 가장 추웠던 입춘 다음날을 반영하듯 여전히 추웠어요. 그러나 반쯤은 눈이 녹고 반쯤은 눈이 그대로 남아 대비가 선명한 한라산은 여전히 기억에 남지요. 마지막 친구 덕분에 두 장난꾸러기 신부님들로부터 공짜 점심과 커피 얻어먹고 후에 그 친구와 서귀포 새섬까지 한 바퀴 산책을 했지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친구가 참 기억에 남을 만한 말들을 해주었어요.
“힘들지만 우리가 왜 미사를 매일 그 곳에서 보낼 수 있냐고? 아마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 때문이 아닌가 해. 어느 날 고착되는 신부님, 수녀님들 사진을 찍다 하늘이 눈에 들어왔는데 하늘이 참 아름답더라. 그렇게 같아 보이지만 매일 다른 자연의 풍경들이 마음을 위로한다 할까”
오랜 시간 한 장소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 장소에 대한 비할 수 없는 축적된 시간의 향기가 있다 할까요. 많은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해군 기지 반대 투쟁으로 한 껀도 아니고 때로는 두 개 이상의 전과자 별을 달고 삽니다. 몸이 아픈 이들이 많은데 내색도 없이 이것쯤이야 하고 또 꿋꿋하게 살아가는 군요.
그 친구와 돌아오는 길에 강정 바다가 차창으로 멀리 보였는데 친구가 케이슨이 바다에 들어왔다고 외쳐 보니 과연 케이슨이 들어왔어요.
문득 묏부리에 텐트를 치고 성탄, 새해도 없이 계속 불법 공사를 기록하는 묏부리 박, 미사 때 추운 입춘 다음 날에도 불구, 반팔과 맨발로 정문 앞 기도를 드리던 성심씨. 400일 훨씬 넘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삼보일배를 드리는 오철근 선생님, 그리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분노로 생명 평화 마을을 짓기 위해 의지를 다질 강정 주민분들이 떠올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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