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대구 희망원의 인권침해 실태를 고발했다.ⓒ SBS
방송 내용은 '충격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급식에서는 썩은 사과가 나왔고, 태도 불량을 이유로 원생을 독방에 감금했다. 그뿐 아니다. 원생을 돌봐야 할 간호사들은 '칼퇴근'을 위해 제시간보다 앞서 약을 주는가 하면, 부원장이 여성 원생의 노동을 착취하는 일도 횡행했다. 희망원에는 담당 사제와 수녀가 상주해 있었지만, 인권침해를 막지 못했다. 오히려 사제와 수녀가 방치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지난 2년 8개월 동안 이곳에서 129명의 원생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그 실태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희망원의 운영 주체가 가톨릭, 보다 더 정확히는 대구교구였다는 사실이다. 가톨릭 교단은 그동안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밀양 송전탑, 세월호, 고 백남기 농민 회복기원 미사 등 민감한 쟁점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약자 편에 서서 사회정의를 외쳐왔다. 그런 가톨릭의 그늘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인권침해가 벌어졌으니, 그 위상 실추는 불가피해 보인다. 제작진들도 이 점을 많이 고민했나 보다. 진행자인 김상중의 말에서 제작진의 고민이 엿보인다.
"사실 방송을 고민했습니다. 자칫 이 방송이 그동안 가톨릭이 우리 사회에서 보여준 헌신적인 모습과 사회적인 역할까지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희망원에서 진심으로 봉사하는 복지사, 위험을 감수하고 증언해 준 내부 관계자들이 비난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 우려가 단지 우려로만 끝나기를 바랍니다."
제작진이 들춘 대구교구 흑역사
<그것이 알고싶다-대구 희망원, 129명 사망의 진실>은 비단 희망원 운영 실태뿐만 아니라 대구교구의 흑역사를 들춰낸다. 대구교구는 1980년 희망원 운영권을 대구시로부터 넘겨받는다. 이 시점은 전두환이 대통령 취임 직전 만든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이 교구 소속 전달출, 이종홍 신부가 참여한 시점과 겹친다.
특히 전 신부는 국보위에서 국가보안법, 언론기본법, 노동법 등 각종 악법을 양산하는데 일조한 전력이 있다. 결국, 대구교구는 정권과의 유착 대가로 희망원 운영권을 넘겨받은 셈이었고, 그래서 장애인·노숙자 돌봄이라는 본질보다 잇속 챙기기에 골몰한 것이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대구 희망원의 인권침해 실태와 대구교구의 흑역사를 고발했다.ⓒ SBS
대구교구에 대해 한마디 더 해야겠다. 대구교구는 박정희 시절부터 정권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 관계는 현 박근혜 대통령으로 대물림되기에 이른다. <시사iN> 주진우 기자는 자신의 책 <주진우의 정통 시사활극 주기자>에서 대구교구의 위상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대구교구의 위세는 막강하다. 사학법 개정 반대 분위기를 주도했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대구대교구 이문희 대주교는 선대부터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이 대주교의 부친은 이효상 전 국회의장. 그는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구 집권하도록 길을 닦아준 삼선개헌 날치기 통과 때 의사봉을 두드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효상 전 의장은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딩이가 문딩이를 안 찍으마 누가 찍노', '이번 선거는 전라도캉 갱상도캉 싸우능기 아이가' 등 지역갈등을 노골적으로 선동한 인물이기도 하다. 대구교구는 이효상 전 의장의 차남 이문희 신부를 1972년 10월 보좌주교로 임명했다. 1965년 사제가 된 후 불과 7년 만에 주교가 된 이 대주교는 40년 넘게 주교직을 수행하고 있다." - <주진우, 주진우의 정통 시사활극 주기자>
대구교구의 위세는 이뿐만 아니다. 가톨릭신문사, 대구 평화방송, 대구 가톨릭대학교, 대구 가톨릭대학병원, 일반 신문인 <매일신문>을 소유하고 있다. 희망원 내부에서 문제가 불거지자 <매일신문>은 희망원 관계자의 언급을 인용해 진화에 나섰다. 이 신문의 8일자 보도는 물타기의 전형이다.
"대구시립희망원 임춘석 사무국장은 '희망원 생활인은 입·퇴소는 물론, 외출도 자유롭고, 1500여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꾸려나가고 있다. 시민에게 운동장과 강당도 개방하고 있다'며 '거동이 불편한 1천여 명의 희망원 생활인을 부족한 예산과 인력으로 돌보기는 어려움이 있지만 문제점 개선에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매일신문, 10월 8일자 보도>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것이 알고싶다> 희망원 보도는 이 시설의 운영실태는 물론, 가톨릭 대구교구의 민낯을 만천하에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본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가 어떤 분이셨나? 약 3년 동안의 공적 생활 동안 약한 자, 병든 자를 섬기고 고쳐주신 분 아니던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한 일은 신약성서 사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예수의 기적이다. 그분을 주인으로 모신 가톨릭 교회 소유의 복지시설에서, 가장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끔찍한 인권유린 사태가 벌어진 건 그야말로 배도이고 범죄다. 특히나 대구교구는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정권의 우군을 자처하며 기득권을 누려왔기에 그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작은 사람들, 가장 사람 같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 같은 가르침이 무색하게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그리스도교와 직, 간접으로 관련된 복지시설에서 인권침해 사건이 횡행해 왔다.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은 개신교 장로였고, 지난 5월 '제2의 도가니' 사건으로 불린 중증 장애인 가혹 행위 사건이 벌어진 남원 평화의 집은 개신교 진보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교단 산하 한기장복지재단에서 운영하던 시설이었다.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예수의 가르침을 앞장서 실천해야 하거늘 도리어 거스른 일이 벌어진 데 대해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교회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뵐 면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