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화제 (레 1:10-17)
흠없는 제사, 즉 흠없는 예배가 되어야 하며 온전히 드리는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지난 주일에 드렸습니다. 제사가 온전할 때 삶이 복을 받고 온전하여지며, 예배가 온전할 때 우리의 영성이 회복되며, 삶이 부요해지고 형통한 은혜를 입습니다.
오늘은 번제를 드림에 있어서 중요한 몇가지를 더 생각하려고 합니다. 구약의 제사를 바로 알아야 우리의 드리는 바른 예배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소나 양으로 번제물을 드리려면
첫째로, 그 제물된 짐승의 머리 위에 안수해야 합니다.
안수를 하는 것은 피차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됨을 상징하는 행위로써 자신이 가진 그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출 29:1-37) 그러므로 제물에 안수하는 것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안수를 통하여 그 제물과 하나가 되는 동시에, 자신의 죄를 그 동물에게 덮어 씌우는 것입니다. 안수하는 것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자신도 제물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나 양으로 번제를 드릴 때 그 제물의 머리를 목이 부러지라 힘껏 누르며 자기의 죄를 다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이 안수행위는 죄를 고백하는 의식인 것입니다. 이 의식은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먼저 죄에 대한 회개와 자백이 있어야 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자기 죄를 짐승이 덮어 쓰게 했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다 덮어 쓰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구약에는 아사셀의 양이 있는데 이것은 모든 죄를 양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덮어 씌우고 광야로 쫓아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양이 점점 멀리 가게 되면 내 죄가 점점 멀어지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영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그 주님께, 이제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사유의 은총을 입게 됩니다. 요한1서 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병고침 받기 위해 안수받기를 원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안수받기를 원하며,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안수받기를 원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맡겨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짐을 맡아 주시는 신실하신 친구요 구주이십니다. 우리 주님께 모든 죄를 자백하여 죄의 억눌림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제물을 온전히 죽였습니다. 번제물을 칼을 잡고 가죽을 벗기고 목을 자르고 앞다리는 앞다리대로, 뒷다리는 뒷다리대로 각을 떴습니다. 제물은 철저히 죽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는 내가 철저히 죽어야 하나님이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가죽을 벗겨야 합니다. 위선을 벗겨내야 합니다. 가면의 탈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위선으로 가득 차 있으면 안됩니다. 예배드리는 자의 자세가 위선으로 가득차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야 합니다. 가증한 것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님은 원하십니다. 목을 자르라 한 것은 생명을 내놓은 것을 말합니다.우리의 목을 주님께 내놓지 않으면 우리의 목숨을 지켜 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각을 뜨라고 한 것은 죽은척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죽은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엎드리지만 아직도 옛 사람이 살아있고 옛 습관이 살아 있으면 안됩니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형식적인 믿음이 죽어야 합니다. 별 것 아닌 것인데도 우쭐대는 자존심이 죽어야 합니다.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자주 그리고 쉽게 나타나는 혈기가 온전히 죽어야 합니다. 시기와 다툼, 육적인 탐심, 거짓말을 버리지 못하는 못된 습관이 죽어야 합니다. 남을 업수이 여기는 교만, 예배를 소홀히 하는 영적교만, 감격과 기쁨이 없는 습관적 믿음, 이런 것들이 죽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셨습니다. 날마다 내가 죽을 때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더 부서지고 무너지고 깨어지고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을 때 가정이 살고 화목해집니다. 내가 죽을 때 교회가 평안해지고 은혜로운 교회가 됩니다. 내가 죽을 때 직장과 사회가 밝아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죽은 것 같지만 살아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야 합니다. 철저히 죽어야 합니다. 롬 12:1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고 하셨습니다. 영적예배의 산 제물은 죽었을 때 가능합니다.
프린스톤 한인장로교회 - 이집사님 이야기와 이성전 장로님
집회 이틀째 밤예배 후 친교시간에 꼭 할말이 있다고 하셔서 모두가 놀랐습니다. 목사님에 대해서 우습게 생각했었는데 집회가 끝나고보니 존경스럽고 머리가 숙여진다고 했습니다.
셋째로, 피는 제단 사면에 뿌렸습니다.
성경에서 피를 먹지 말라 하신 것은 피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신 12:23)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제단에 바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제단에 걸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어디에 걸고 삽니까? 물질과 명예에 걸어서는 물질이 불탈 때 절망하며 명예가 사라질 때 절망합니다. 우리의 병든 몸도 제단에 걸어야 합니다. 꺼져가는 듯한 생명도 제단에 걸면 주님이 지키십니다.
우리의 생명을 제단에 걸면 상한 갈대 같을지라도 꺽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심지 같을지라도 끄지 아니하십니다. 헛된데 우리의 생명을 소모하지 맙시다. 주님의 제단을 위해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생명을 어디에 걸고 사느냐에 따라서 인생관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신앙관이 달라집니다. 생명을 주님의 제단에 쏟아붓는 성도는 복된 성도입니다.
넷째로, 제물은 온전히 불태우는 것입니다.
번제는 내장까지 모두 불에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느 헌신을 말합니다. 모든 것은 태워 없어집니다. 예배는 드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드렸다는 것은 이제 나에게서 다 떠나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태워서 드림으로 끝나는 것이 번제물입니다. 흔적도 없이 다 태워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아침 저녁 부삽으로 재를 쳤습니다. 재만 남게 다 불태워야 합니다. 무엇을 기대하고 드리는 것은 예배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드리는 것, 그것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우리의 생각 전체가 성령의 불에 온전히 타야 합니다. 불이 지나만 가도 안됩니다. 활활 타서 없어져야 합니다. 재만 남게 타야 합니다.
우리가 찬송부를 때 "나와 세상은 간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고 찬송하지만 정말 나와 세상은 그런 모습입니까? 교회에서 봉사할 때 누가 알아주지 않든지, 혹 섭섭한 이야기를 듣든지 하면 시험에 드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입니다.
주님께 봉사하는 것은 잘했든지 못했든지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것입니다. 결과는 내가 따져야 할 것이 아닙니다. 기대할 것도 없고 후회할 것도 없습니다. 시험에 들어 낙망할 것 없습니다. 바쳐진 것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번제물은 이미 불에 타 죽은 것 아닙니까? 상급과 축복은 하나님이 하시는 주권에 속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제물이 타는 냄새가 결코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향기롭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전적인 헌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부득이 함으로 드려서도 안됩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을 기다리다가 오지 않자 사울왕 자신이 번제를 드리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이 와서는 "왜 왕이 번제를 드렸습니까?" 하고 물을 때에 "부득이 하여 드렸다"고 했습니다. 부득이 하여 드린 제물을 하나님이 거절하셨습니다. 미가서 6:7에 "여호와께서는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전적인 헌신과 희생만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끝으로, 번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기 형편대로 드리는 것입니다. 소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소를, 양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양을, 고아나 과부는 비둘기를 드렸습니다. 소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과 자신을 속여 양을 드리는 일이 없습니다. 고아나 과부가 아닌데도 비둘기를 드리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분량대로, 받은 은혜의 분량대로 드려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 받으실 향기로운 성도, 기뻐 받으시는 믿음과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희성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