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하늘이 준 의무
잠 23:22-25 /이정익목사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 네 부모를 즐겁게 하
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오늘은 어버이주일이고 경로주일입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한 번씩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건강한 가정을 만들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가정은 이 세상의 모든 조직의 최소단위입니다. 이 작은 모임, 공동체들이 모여서 세상을 이룹니다. 그래서 가정이 건강해야 결국 이 세상이 건강해 집니다. 그렇게 건강하게 가정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어 살아가는 삶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신성한 삶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이고 그것이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의무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리고 경로주일입니다. 어버이를 공경하라는 말은 노년의 인생을 경대하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부모를 공경하고 경대하는 생활 세 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 가정을 건실하게 그리고 이 세상을 건실하게 지탱하게 해 주는 근간이고 뼈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모 공경
부모를 경대해야 합니다. 부모는 경대의 대상입니다. 이것은 강조해도 끝이 없는 교훈입니다. 이 공경의 대상이 둘이 있습니다. 하늘로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땅으로는 부모를 공경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하게 여기지 말지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아무리 부족하고 못났어도 부모입니다. 또 부모가 못나고 부족하면 얼마나 부족하겠습니까. 간혹 나쁜 부모도 있기는 합니다. 그 경우는 이 세상에서 아주 작은 부분일 것입니다. 부모는 역시 부모입니다. 부모는 공경의 대상이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하늘이 맺어준 특수한 관계이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어렸을 때 해외에 입양 갔다가 성장한 후에 생모를 찾아나서는 젊은이들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버린 부모를 생각하기조차 싫을 수 있을 것인데 성장하게 되면 반드시 부모를 찾아나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보면 참 이 관계가 그렇게 질길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관계는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우리 곁에 부모가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늙은 부모를 경하게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 여인이 어린 아기를 안고 추운 눈 오는 겨울 언덕길을 가다가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눈 속에서 추위에 떨며 헤매다가 그만 아기를 안은 체 외딴곳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죽은 시체가 눈보라가 그친 후에 동네 주민들에게 발견되었습니다. 눈을 헤치고 보니까 그 어머니는 속옷만 입은 채 죽어 있었습니다. 이 아기엄마가 자신의 옷을 벗어서 아기 몸을 감싸느라고 자신은 속옷만 입은 채 얼어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품에 안겨있던 아이는 무사하게 구조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라는 사람인데 그가 커서 1916년 영국 수상이 됩니다. 이것이 부모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이 깊은 부모의 마음을 모릅니다.
농부에게 가장 큰 적은 해충일 것입니다. 그래서 농부들이 봄이 되면 논두렁에 불을 놓습니다. 어느 농부가 해충을 죽이려고 논두렁에 불을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불이 마침내 산으로 번졌습니다. 산속에서 암꿩이 알을 품고 있다가 둥지가까이 불이 붙어오자 놀라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 둥지 위를 맴돌다가 마침내 둥지에 불이 붙자 내려와 알을 품은 채 불타 죽더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성이라는 것이고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 놓고 부모를 공경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늙은 부모들이 거리로 내 몰리고 있습니다. 거리를 헤매다가 마침내 자살하는 다 늙은 힘없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61세 이상 된 노인이 자살한 숫자가 지난해 무려 4,220명이나 되었습니다. 아들 며느리 손자들에게 학대당하고 구타당해서 죽은 부모들도 1,437명이나 되었고 가출한 노인이 지난해 6,149명이나 되었습니다. 자식들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이렇게 해도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살아가도 그 자손들이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살겠습니까.
가정을 건강하게 꾸려나가는데 며느리들의 역할이 참 지대합니다. 이 일은 며느리들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이 땅의 며느리들이 마음에 뜻만 간직한다면 얼마든지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며느리들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길거리의 노인들을 모두 집으로 돌아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들들이 아무리 부모에게 잘 하려 해도 며느리들이 협조를 안하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들들이 아무리 잘 못해도 며느리들이 마음에 중심 있게 뜻을 가지고 이끌고 나가면 가정과 우리사회는 얼마든지 건강해질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며느리들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며느리 10계명이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첫째로 며느리들은 가정에서 자존심을 버려라. 둘째 늦잠은 금물이고 생활은 검소하게 하라. 셋째 대답과 인사는 상냥하게 하라. 넷째 좋든 싫든 즉석에서 화내거나 말대꾸하고 말참견 하지 말라. 다섯째 솔직한 의견을 제시해서 의견 차이를 좁혀라. 여섯째 시부모님 생신과 어버이날을 뜻 깊게 지켜라. 일곱째 외출이나 쇼핑을 할 때는 의식적으로 시부모와 함께 해서 정을 붙여라. 여덟째 시부모 앞에서 남편에게 투정부리지 말고 부부싸움 하지 말라. 아홉째 친정식구에게 시댁 험담하지 말고 시어머니의 장점을 자랑하라. 열 번째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 같이 대하라는 내용들입니다. 이 같은 조건들을 뜻을 가지고 실행하게 되면 가정은 분명 조화를 이룬 환경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 부모이고 나를 낳으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노년 공경
또 내 부모만 공경하는 일은 아닙니다. 노년 인생을 모두 경대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부모를 공경할 줄 알게 되면 노인에 대해서도 존중하고 경대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내 부모를 모르는 사람이 어른 공경하는 것을 알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삶의 기본은 효입니다. 이 효는 가정을 든든하게 이루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이 되는 기초입니다. 어른이 경대 받고 존중받는 사화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노인을 경대하라, 흰머리 앞에서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떻게 된 일인지 노인들이 경시되고 무시되고 나이 좀 들면 모두 쫓겨나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은 노년층이 자꾸만 증가하고 있는데 우리사회는 준비가 잘 되어있지 않아도 속수무책으로 노인들이 경시되고 무시되고 있습니다. 참 불행한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 사회가 이렇게 자꾸만 흔들리는 것입니다. 젊은이에게는 혈기가 있고 용기가 있고 능력이 있고 힘이 있으나 경륜이 없습니다. 역사가 없고 뿌리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거기에 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사회가 뭔가 좀 되는 것 같지만 자꾸만 갈등만 일어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개혁을 한다고 하는데 자꾸만 부작용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혈기는 있는데 지혜가 없고 경륜이 없기 때문입니다.
집안 살림을 하는데 갓 시집온 새댁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해서 다 잘할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집안 살림은 대학이 전부가 아닙니다. 집안 살림하는 데는 지혜와 규모와 안목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아주 작은 집안 살림을 하는 일에도 안목이 필요하고 지혜가 필요하고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더 큰 조직이나 더 큰 살림을 이끌어 가는데 얼마나 더 많은 지혜와 경험과 경륜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노인은 고사하고 나이만 조금 들어도 폐기처분 되는 시대입니다. 사오정 이야기가 나오더니 요즘에는 3,1절 시대라고 합니다. 조금 경험이 생겨서 일할만큼 되면 퇴출당합니다. 세상일에는 경험이 필요하고 연륜이 필요하고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노년이 필요한 것입니다. 노인이 경대 받고 존중받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연장자가 존경받고 받듦을 받고 인정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고 균형을 이루는 사회입니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호주를 방문했을 때 행사시에 장차관 수행원들에게 70세 이상 노인에게 의자를 양보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건강한 생각입니까.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서 그 사회의 정신을 이루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노인을 경대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요 신앙인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이 부분을 아주 강도 있게 강조하고 주문하는 것입니다.
품위 있는 노년
노년을 살아가시는 분들에게도 책임은 있습니다. 노인을 무시한다고 불평만 하면 안 됩니다. 노년이 되면 다 노쇠하고 망가지고 건강도 나빠지고 기억력도 쇠퇴합니다. 오늘은 노년은 몸이 건강해도 뒤로 밀려나는 시대인데 거기다 건강마저 잃어보십시오. 오늘은 노년의 인생에게는 위기의 시대입니다. 노년이 되면 가장 먼저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눈이 어두워지고 다리가 흔들리고 기억력이 감퇴되고 그래서 초라해 지기가 쉽습니다. 거기다 치매라는 것이 참 무섭게 노인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 치매는 아주 무서운 병입니다. 이 병에 걸리게 되면 정말로 고상하게 살아온 인생도 순간적으로 스타일을 망치게 됩니다. 이 문제는 진지하게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또 무서운 병은 무능력 입니다. 경제력으로 무능력해지고 용기가 사라지고 당당하던 삶의 자세까지도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면 인생이 초라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에 실망을 느낀 노인들이 자살하는 경우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참 곤란합니다. 나의 위치, 나의 인생, 나의 존재가치는 자신이 만들고 가꾸어야 합니다. 존중받는 노년 인생을 살려면 몇 가지 먼저 가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노년의 삶 5업(up)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노년이 될 수록 업 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클린 업” (Clean up)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몸에서 냄새가 나게 됩니다. 그리고 얼굴에 주름이 흉하게 패이게 됩니다. 아주 초라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노년이 되면 자주 목욕하고 자신을 가꾸어야 합니다. 거기다 향수를 살짝 뿌려서 언제나 정갈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이 “클린 업”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드레스 업”(Dress up)입니다. 노년이 되면 생김새가 초라해지게 마련인데 거기에 입은 옷까지 초라해지면 얼마나 더 초라하게 보이겠습니까. 그러면 무시당하기가 쉽습니다. 옷이 날개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새 옷만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옷을 언제나 깨끗하게 정갈하게 입어야 노추를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노년은 옷을 깨끗하게 입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기브 업”(Give up)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 늙게 되면 쓸데없는 고집이 강해지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높아지는 것은 고집만 세집니다. 그래서 쓸데없니 고집을 피웁니다. 그러다 고집이 꺾이기라도 하면 자존심이 상해서 원통해 합니다. 그 쓸데없는 고집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들과 의견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함께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기브업 입니다. 넷째는 “샷 업”(Shut up)입니다. 입을 꽉 다물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나이 들면 또 하나 늘어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말이 많아지는 현상입니다. 말이 많아지다 보면 매사를 참견하게 됩니다. 입을 한번 열면 닫혀지지가 않습니다. 오늘 젊은이들이 이것을 질색합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붙잡힐까 봐 근처에 가기를 꺼려합니다. 샷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패숀 업”(Passion up)입니다. 옷을 잘 입으라는 말이 아니고 뜨거운 가슴에 열정을 품고 살라는 말입니다. 늙었다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가슴에 열정을 품고 살라는 말입니다. 노인에게는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고 열정을 품으면 할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뜨거운 기도, 나라를 위한 눈물의 기도, 이웃을 위한 뜨거운 중보의 기도 등 얼마든지 할 일이 있습니다. 그 할 일을 찾아 뜨겁게 활동하는 것이 패숀업 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마음에 뜨거운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 뜨거운 열정이 노년인생을 새롭게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시므온이라는 노인은 연로하신 분이었지만 성전에 나아가 허물어져가는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며 신속한 메시야의 도래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안나라는 노인도 같은 마음으로 성전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기울어가는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면서 눈물로 노년을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눈물의 예언자로 이름이 났습니다. 그것은 그 가슴이 그만큼 뜨거웠고 열정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노년에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할 일입니다.
태국의 푸미폰 국왕은 현재 즉위 60년째로 나이가 78세인데 아직도 백성으로부터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존경받고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열정의 삶 때문입니다. 온 나라가 비가 오지 않아 가물어서 야단일 때 국왕은 농촌으로 내려가 일주일씩 금식하면서 국민들과 같이 고난에 동참하고 비가 올 때 까지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비가 오면 비로소 왕궁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얼마나 열정적입니까. 가슴에 그런 열정만 있으면 노년이라도 얼마든지 할 일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헌신이 없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열정이 없습니다.
노년을 품위 있게 늙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지키고 자신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타민을 열심히 먹는 정성으로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노년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노년인생들은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9988 234” - “아흔 아홉 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 아프고 사흘째 죽는다.” 노년에는 잘 사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소중한 일은 노년을 품위 있게 존중받다가 더 감동적인 모습을 남기고 죽는 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노년을 더욱 세심하게 자신을 가꾸고 남은 인생도 가꾸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으로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인생을 살아가는 삶이 더 아름다운 삶입니다. 우리는 모두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하게 여기지 말지니라 ...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이것이 오늘 이 시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하늘의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