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회 忠南 唐津郡을 찾아 (2009년 6월 14일)
地理的으로 忠南의 최북단에 있는 郡으로 동쪽으로는 아산시, 서쪽으로 서산시, 남쪽으로 예산군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남양만· 아산만을 사이에 두고, 그 옛날 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대면 唐津浦가 唐 나라와 교통로
역할을 하면서 唐津으로 붙어진 唐津郡을 찿아 6월의 싱그러운 햇살을 받으며 아침 8시에 出發 했다.
새로 개통한 대전~당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달리는 車窓 밖의 신록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예산 휴게소에서 잠깐 쉬고 11시경 당진 면천(眄川)나들목을 나와 당진의 最高峰이며 미인의 눈섭 같다 하여
蛾眉山이라 불리는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眄川面 죽동 교동인씨(喬桐印氏) 묘소를 찾았다.
<첨의평리사사석성부원군인당장군추모비>
면천 나들목에서 당진읍으로 가는 도로 오른편에 인당 장군을 모신 忠貞祠와 추모비가 있다. 인당 장군은
고려 공민왕 때 僉議評理司事를 거쳐 서북면 병마사로서 참지정사에 올랐으며 석성부원군(碩城府院君)에
봉해졌다.
<承仕郞喬桐印公 宜人新平李氏之墓 >
길옆 위쪽으로 실제 산소는 없고 뒤에 후손들이 지어 놓은 사당과 제단이 있는 것으로 산소는 개성에 있고,
蛾眉山을 主山으로 사당 뒤편 산에는 白石이 줄을 지어있는 힘찬 龍脈으로 寅入首龍에 艮坐坤向의 催官
定坐立向法으로 좌향을 놓았고, 承仕郞喬桐印公 宜人新平李氏之墓의 유택이 쌍분으로 조성되어 案山과
朝山의 巨門星이 이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름다운 여식들이 집안을 돕겠구나. 그러나 美中不足이라 항상
조심해야 한다.
<멀리 조산의 巨門星>
다음은 朝鮮 중기의 무신으로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헌을 했고, 인조 때 1627년 후금(청)이 일으킨 정묘
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에서 독전 분투하시다 1627년 정묘 1월 21일 52세에 장렬한 최후를 마치신 충장공
남이흥장군 묘(南以興將軍墓)를 향해 당진군의 서쪽 대호지면 挑李 1리로 달렸다.
<釜覆山에 忠壯祠 全景>
당진읍에서 지름이 산이 솟아있는 서북쪽으로 30분 달리니 신동 저수지를 좌로 충신의 마을 이름이 위치를
가리킨다. 입구엔 웅장한 신도비가 위용을 과시하고 투구봉 아래 충장공(忠壯公) 남이흥(南以興) 장군(將軍)
과 장군의 부인(夫人) 하동정씨(河東鄭氏), 부친 의천부원군(宜川府院君) 남유(南瑜) 장군의 묘소가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으며, 淨陰淨陽法으로 壬入首龍에 子坐午向 으로 포태법에 長生龍이니 얼마나 좋은가.
<龍트림하는 웅장한 비석>
忠壯公은 朝鮮 中宗 35년(1540) 서울에서 출생하여 仁祖 5년(1627)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청병(淸兵)의
침입을 平安道 安州에서 막다가 패하자 자결한 충절의 인물로 死後에 領議政에 추증(追贈)되고, 의춘부원군
(宜春府院君)으로 봉(封)하여졌다.
남유 장군은 낭이홍 장군의 아버지로 임진왜란 당시 羅州牧使로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도와 노량해전
(露梁海戰)에서 싸우다 전사한 분으로 사후에 선무원종공신1등(宣武原從功臣一等)으로 左議政에 추증되었다.
<멀리 보이는 안산과 조산, 남유와 남이홍 父子 묘>
忠壯祠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목조지붕으로 남이흥 장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며, 인조 14년(1636)에
세운 남유, 남이홍 부자(父子) 정려인 '南氏兩世忠臣旌閭' 가 있으며, 후손의 배려로 영정과 남이흥 장군이
사용하던 유물들이 진열 보관된 유물전시관 모충관을 나오면서 남이홍, 남유, 남지(진천), 남재(남양주)의
家門에 깊은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더운 날씨에 벌써 정오가 지나 회원들의 얼굴에 시장기가 도는 듯, 唐津邑에서 식사하기로 정하고 출발했다.
<양평 해장국집 陰氣가 强하니 벌면 얼씨구 하겟구나>
唐津邑에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드디어 "맛 자랑 기사식당"을 발견 우렁 된장으로 결정하고 시원한 술
한잔에 갈증을 없애고 식당 아줌마의 후덕한 밥 인심에 빈속을 채우니 세상에 무엇이 부려운가?.
다음 장소로 出發이요.
한두 번 유턴하여 원당 국민은행 좌측으로 달리니 당진읍 원당 2리에 있는 龜峯 宋翼弼 선생 묘소 간판이
보인다. 논길을 따라 당진 농촌연구소 옆길을 따라가노 라니 좌측으로 멀리 소나무숲 아래 묘소가 보인다.
1596년 63세가 된 구봉 宋翼弼은 마지막 은거지인 송산면 매곡리 숨은 골에 자리를 잡고 생황하던 중 부인
창녕 성씨와 오랜 지기 우계 성혼이 세상을 떠난 다음해인 1599년 8월 66세의 나이로 고난에 찬 생을
마감하였으나 조선 500년 文學史에 가장 빛나는 人物 中 한 사람이 아닐까.
묘소는 숨은 골 뒤편의 산중으로 위패를 모신 입한재(立限齋) 왼편 울창한 소나무숲을 등지고 양지바른
남향자락 子坐午向, 丁未破, 自旺向으로 조성되었고, 寅方에 驛馬砂가 있어 속발하나 靑龍과 白虎의
合水行路는 마치 龜峯 자신의 인생행로 처럼 案山이 화살촉으로 형성되었으니 어찌 생의 순탄함을 구하리오.
<有明朝鮮龜峯宋先生翼弼雲長之墓>
구봉 송익필(宋翼弼,1534-1599)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여산, 호는 구봉, 현승, 신분이 미천하였기에
관계(官界)에 나가지 못했으나 당대 학자, 정치인들과 교유하여 그 폭이 매우 넓었고 시와 문장에 능하여 당시
8대 문장가의 일인이었다. 특히 예학(禮學)의 대가, 性理學 태두로서 명성이 대단했고 그의 문인들이 김장생,
김집 부자를 비롯하여 많이 배출되었다. 고향은 경기도 고양 심학산아래로 여러 곳을 전전하다 송산 매곡에
사는 친구 김진려에게 의지하다 운명하니 조정에서 사헌부 지평(持平)의 증직과 文敬의 시호가 내려졌다.
<청룡 백호사이로 보이는 산태극 수태극의 太極圖. 墓 앞을 당당히 걸어가는 회원은 누굴까?>
합덕읍 가는 방향 순성중학 사거리 좌측으로 가교 저수지를 지나 송악면 가교 1리에 있는 능성구씨 4대조
구예(具藝) 묘소를 찾았다. 국도에서 다리 및 마을을 지나 매봉산 끝자락에 신암사라는 절 옆으로 묘소가 꽤
넓은 면적에 단정하게 조성되어 있었는데, 이곳 묘비에는 高麗重大匡判典儀事 眄城府院君 具公之墓 夫人
申氏 부(後)로 부인 묘가 위에 있다.
<정성으로 조상 墓를 돌본 孝心의 한 장면, 한폭의 동양화 로다.>
主山에서 내려온 龍脈에 내운(內暈)의 흔적이 강하며, 癸丑入首에 子坐午向으로 보이는데,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만약, 癸坐丁向이면 右水到左하여 天干 字 巽破口로 正養向의 좋은 向法이 된다.
멀리 먹굴산이 朝山으로 이곳을 향해 朝拜하고 白虎 案山이 厚德하고, 그 뒤를 서해 고속도로가 휘감아 주어
후손이 多福하고 積財하니 더 무엇을 願 하리오. 명당은 也字形局으로 오랜 세월 富를 유지하겠다.
<白虎 案山과 멀리 보이는 먹굴산의 朝山>
본관은 능성로 始祖는 고려조에 벽상삼한 삼중대광 검교장군(壁上三韓三重大匡檢校將軍)을지낸 구존유
(具存裕)이며, 구예는 능성구씨 4세 祖로 부친(3세) 구연은 登科하여 안동면 도감판관(都監判官), 조부(2세)
구민첨(具民瞻)은 전주목사록참군겸장서 기(全州牧使錄參軍兼掌書記)를 지냈다.
7형제 중 막내인 예는 과거에 급제 중대광판전의 사(重大匡判典儀事)에 이르러 면성부원군(眄城府院君)에
봉군 되었다. 능성구씨 중 예의 후손이 제일번창 하였다고 하니 고창에 있는 부친 구연 墓와 이곳 구예 墓의
결과인가?. 그저 부러울 뿐이로다.
끝으로 순성면 양유리에 있는 아미산을 主山으로 음택을 잡은 眄川卜氏의 始祖 고려 개국 일등공신 太師
武恭公卜智謙묘소를 찾았다. 근간에 聖域사업으로 武恭祠와 墓의 중심이 靑龍 白虎와 잘 조화되어 있어
마음이 후련하다.
<高麗開國一等功臣 복智謙의 事績碑>
卜智謙이 처음엔 태봉(후고구려)의 마군장군으로 있다가 궁예가 민심을 잃게 되자 태조 1년(918) 신숭겸,
배현경, 홍유등과 함께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세우고 개국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황선길의 반란을 태조에게 알려 진압하도록 했고, 임춘길의 모반을 평정하는 등 공으로 그 후 태사(太師 )에
추증되고 태조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무공의 시호가 내려졌다.
<武恭祠의 지붕 中心을 맞추기위해 새로 조성한 묘역 - 느낌은 ! ->
富順山下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평탄 원만한 명당에 청룡 백호가 相交하고 안산과 조산이 正坐하여 군영을
형성한 장군대좌형으로
壬子入首, 乾坐巽向로 左旋龍에 右旋水가 합당한 水局의 自生向으로 庚酉帝旺水가 坤申臨官水와 더불어
到左하여 巽字上으로 破口하되 百步轉欄하여 破口가 곧게 나가는 모양을 볼수 없어야 한다.
그래야 大富大貴하고 人丁興旺하여 남여가 장수한다는 88向吉法이다.
남쪽을 바라보니 작은 군영이 총 집결해 있는 듯 전쟁에서 승리한 군진으로 보이는 듯 평화롭고 태평성대를
예견하는 羅城이 겹으로 싸였도다.
<멀리보이는 形形의 朝山과 羅城***열심히 기맥을 탐지하시는 회원님은 누구시더라!>
오늘의 唐津 踏山도 끝나는 순간이다. 회원님들의 표정이 한잔했으면 하는데 그냥 갈 수는 없고 드디어
소나무 아래서 시원하게 한잔 풀고 일어서니 일상의 무게를 확 벗어던지고 충남 당진에서 유구한 문화유산을
돌아보고 가는 발길이 가볍다.
더운 날씨에 온종일 수고하신 회원님들, 특히 답산을 주관하신 사무장 고마워요.
회원님들 항상 健康하세요.
<卜智謙 장군 묘소 옆 소나무 아래서 시원한 음료수로 오늘의 답산을 결산하시는 회원님들, 잡수시는 모습도
가지가지 홍일점에 분위기는 고조되고, 술 단지에 앉은 회원님 한결 술맛 나실 뜻, 적당히 드시고 다음 기회를
약속 합시다. >
2009.6.22 사진:중환. 글:淸虛堂
첫댓글 회장님 글을 읽고 보니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 납니다..충청도 인심이 당진이 최고라는데..식당 주인아주머니의 사근사근한 모습이 더욱 떠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