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치 소 잔등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제주의 용눈이오름이 떠오른다. 부드럽고 완만한 초록색 곡선. 여기가 백 패커의 천국이라는 굴업도 개머리언덕이다. 초원이 2㎞ 가까이 이어지고, 양 옆으로 바다가 출렁인다.
↑ 1 개머리언덕의 밤. 하늘엔 달빛이, 바다에서는 어선이 불을 밝혔다. 2 긴 세월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코끼리바위. 3 굴업도는 국내 최대의 송골매 서식지다. 4 개머리언덕에서 만난 꽃사슴 무리.
↑ 연평산 중턱에 서서 굴업도를 내려다보고 있는 백 패킹 동호회 ‘웨더마스터연구소’ 회원들. 해안절벽과 코끼리 바위, 목기미사구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 배낭에 매단 쓰레기 봉투. 백 패커의 필수품이다.
↑ 물 빠진 큰마을해변. 소라게, 고동, 굴이 숱하게 있다.
↑ 굴업도행 배 갑판에 줄지어 선 백 패커의 배낭.
우리에게 굴업도는 몇 개의 단어와 함께 기억된다. 이를테면 20년 전의 굴업도는 방사성핵폐기물처리장이라는 섬뜩한 낱말을 동반했다. 2006년부터는 CJ라는 대기업과 골프장이 연관 검색어처럼 붙어다녔다. 생물학자에게 굴업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로 여겨지고, 지리학자에게는 살아있는 지리학 교과서로 불린다. 새를 좇는 사진작가에게 굴업도는 국내 최대의 송골매 서식지이고, 서해바다의 어부에게는 민어 파시의 추억이 어린 어장이다. 최근 들어 캠핑 매니어 사이에선 백 패커(Back Packer)의 성지로 통한다. 그 풍문의 섬을, week&이 지난 9∼10일 들어갔다 왔다.
어쩌면 무모한 여행이었다. 엄격히 말해 굴업도는 사유지이어서다. 섬 면적의 98.5%가 CJ그룹 땅이다. 말하자면 사유지를 함부로 돌아다닌 셈인데, 그래도 여행을 감행한 이유가 있다. 굴업도만큼 여행자가 꿈꾸는 섬도 없기 때문이다. 사유지가 된 섬에는 현재 9가구가 살고 있고, 그 섬에 주말마다 100명이 넘는 여행자가 들어간다. 굴업도를 대기업에 판 인천시가 지금은 굴업도에서 캠핑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어정쩡한 사정이 굴업도의 오늘이다.
굴업도에서 보낸 하룻밤은 강렬했다. 연평산(128m)에서 섬을 내려다봤을 때, 오랜 세월 쌓인 모래가 단단히 다져진 목기미사구를 걸었을 때, 개머리언덕에서 아침을 맞았을 때 CJ가 왜 이 외진 섬에 4000억원을 투자하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논쟁적일 수 있겠으나, 솔직한 인상이다.
백 패킹의 성지 굴업도
굴업도는 아름답다. 이 가난한 인상밖에 전하지 못해 죄송하다. 하나 요란한 미사여구를 동원하는 건 되레 부질없는 짓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섬은 다 가본 것 같은데, 굴업도만큼 마음을 흔든 섬도 없었다. 유난히 사나운 팔자를 알고 있어서인지, 굴업도는 아름다워서 슬펐다.
인천서 뱃길로 3시간
굴업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군도를 이루는 41개 섬 중의 하나다. 인천항에서 남서쪽으로 85㎞,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13㎞ 떨어져 있다. 덕적도에서 배를 갈아타야 하는 바람에 인천에서 굴업도까지 3시간 가까이 걸린다. 배편이 안 좋은 짝수날에는 5시간 가까이 걸린다. 경북 포항에서 217㎞ 거리인 울릉도도 3시간 뱃길이니, 굴업도는 참 먼 섬이다.
굴업도는 작은 섬이다. 섬 면적 1.7㎢, 길이 3.8㎞, 해안선 길이 13㎞가 전부다. 가장 높은 덕물산(138m)을 비롯해, 연평산(128m)·개머리언덕(117m) 등 해발 100m 언저리의 산과 구릉이 남북으로 길죽한 섬에 올라타 있다. 해안은 깎아지르는 해안절벽이고, 섬 중앙에 바닥이 단단한 백사장 두 곳이 수줍은 듯 감춰져 있다.
섬 이름의 기원은 의견이 분분하다. 섬이 물 위에 구부리고 있는 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굴압도(屈鴨島)로 불렸다는 얘기와, 괭이나 삽으로 땅을 파야 하는 척박한 땅이라고 해서 굴업도(掘業島)라 불렸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1923년 조선일보 기사에는 '구로읍도(鷗鷺泣島)'라는 표기가 등장한다. 갈매기와 백로가 우는 섬이라는 뜻으로, 조선 초기 고려 유신이 숨어들면서 생긴 이름이란다.
지난 6월 현재 굴업도 인구는 9가구 29명이다. 매운 바람 부는 겨울이면 주민 대부분이 뭍으로 터전을 옮긴다. 섬에 살아도 어업을 하지는 않는다. 90년 전에는 아니었다. 1910∼20년대 굴업도 앞바다는 국내 최대 민어 어장이었다. 당시에는 이 작은 섬에 500명이 살았다. 파시가 열리면 일본·중국의 어선까지 들어와 200대가 넘는 배가 선착장에 진을 쳤다. 23년 큰 태풍이 불어 1000명이 죽는 사고가 나면서 굴업도 민어 파시는 파장했다. 섬 북쪽 목기미사구 일대가 옛날 파시가 열렸던 곳으로, 지금도 옛 건물의 잔해가 흉물처럼 남아있다.
"해방되고 30년은 땅콩 농사로 먹고 살았어. 해수욕장 가봤어? 바닥이 단단하지? 섬이 다 고운 모래야. 그래서 다른 농사는 안 돼. 지금은 농사도 다 접었고, 섬 사람 모두가 민박으로 먹고 살아."
굴업도 토박이 이화용(80)옹의 설명이다. 노인의 말마따나, 굴업도 주민은 땅콩 심고 소·염소·사슴 따위를 키우며 살았다. 백 패커(Back Packer)가 텐트를 치는 개머리언덕에 가면 꽃사슴을 볼 수 있다. 옛날 초원에서 방목하던 꽃사슴이 세월이 흘러 야생 꽃사슴이 된 것이다. 텐트를 치고 있으면 가까이 와서 기웃거린다.
CJ그룹의 사유지가 된 이후
평화로웠던 굴업도가 뉴스에 등장한 건 94년의 일이다. 정부가 굴업도를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으로 지정해 발표한 것이다. 이미 경북 울진·영덕, 충남 안면도 등에 방폐장을 설치하려다 주민 반대로 물러섰던 정부는, 주민 반발이 약할 것으로 예상해 굴업도를 선택했다. 그러나 정부는 굴업도에서 이주해야 할 가구가 당시 6가구뿐이라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 가장 기초적인 지질조사는 소홀히 했다. 굴업도 지반이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활성단층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는 이듬해 지정고시를 해제해야 했다.
방폐장 사건으로 굴업도는 단박에 유명해졌다. 아울러 굴업도에 대한 대대적인 학술조사가 진행됐다. 전국의 환경운동단체가 힘을 합쳐 굴업도의 생태적 가치를 알리는 사업을 펼쳤다. 조사 결과 굴업도는 국내 최대의 송골매 서식지이자, 먹구렁이 서식지로 밝혀졌다. 왕은점표범나비·이개뿔소똥구리·
검은머리물떼새 등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과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수십 종이 다수 서식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굴업도의 지리학적 가치도 놀라웠다. 약 9000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긴 섬이 긴긴 세월 거의 고립돼 있으면서 원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관광객이 기념사진 찍느라 줄을 서는 토끼섬 어귀 해안절벽과 목기미사구, 코끼리바위 등은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 지리학적으로 매우 희귀한 지형이었다.
난대성 식생의
북방한계선과 한대성 식생의
남방한계선이 굴업도에서 만난다. 한라산에 고도에 따라 다른 종류의 풀과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굴업도에서도 산과 해안에서 나는 식물이 달랐다. 바다는 서해에서 수심이 가장 깊고, 밀물과 썰물의 수위 차가 가장 큰 지역이란 사실도 알려졌다. 굴업도가 한국의 갈라파고스니, 살아있는 지리학 교과서니 하는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그리고 2006년. CJ그룹 계열사 C&I레저산업이 굴업도에 골프장·호텔 등을 갖춘 관광단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CJ그룹은 옹진군으로부터 섬의 98.5%를 사들이면서 총 개발비 3910억원 중에서 210억원을 토지 구입 및 보상비로 썼다. 방폐장 건설 반대를 외쳤던 환경운동단체가 다시 뭉쳤고, 문화 예술인도 단체를 결성해 반대운동을 벌였다. 동강할미꽃과 백룡동굴의 생태적 가치를 내세워
동강댐 건설을 막았던 것처럼, 굴업도 골프장 반대운동에는 송골매와 먹구렁이가 앞장섰다. 마침내 CJ그룹은 지난달 굴업도 골프장 건설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몇 해 전부터 굴업도를 벼르던 week&이 이번에야 섬에 들어간 까닭이다.
지켜야 할 천혜의 비경
2006년부터 굴업도 곳곳에는 안내문과 철조망이 설치됐다. 안내문에는 사유지이니 함부로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다. 한때는 관리자가 개머리언덕으로 가는 길목에 지켜 서 있기도 했다. 그렇다고 CJ그룹이 주민을 내쫓거나 관광객을 돌려보낸 건 아니었다. CJ그룹은 "안전사고에 대비한 최소한의 관리만 할 뿐 출입을 막은 건 아니다"며 "골프장을 대체할 시설에 관한 세부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섬 주인이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이태쯤 전부터 백 패커 사이에 굴업도라는 이름이 소문처럼 돌았다. 서해의 굴업도에 가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초원이 펼쳐져 있고, 주변에 민가는 물론이고 인공시설이 전혀 없어 백 패킹에 최적이라는 소문이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연을 만끽하려는 백 패커에게 굴업도는 천하의 명당이었다. 인천도시공사도 올 초 아일랜드 캠핑 사업을 시작하면서 24개 섬 가운데 굴업도도 포함시켰다. 서인수(58) 전 이장은 "1년에 1만 명 정도 섬에 들어오는데 70∼80%가 백 패커"라고 소개했다.
week&도 굴업도로 백 패킹을 갔다 왔다. 캠핑·백 패킹 동호회 '웨더마스터연구소' 회원 8명과 함께였다. 덕적도에서 배를 갈아탈 때부터 굴업도가 백 패커의 성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짐칸에 100개가 넘는 배낭이 줄을 섰다. 50ℓ가 넘는 대형배낭도 어림잡아 50개가 넘었다.
개머리언덕은 말 그대로 백 패커의 성지였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구릉이 해안을 따라 길게 누워 있었고, 그 구릉을 따라 알록달록한 텐트 수십 대가 자리를 잡았다. 꽃사슴 무리가 텐트 주변을 어슬렁거렸고, 송골매가 창공을 배회했다.
백 패킹 전문가답게 동호회원은 노련했다. 그들은 불을 피우지 않고 각자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었다. 쓰레기는 전혀 남기지 않았다. 양치질한 물도 비닐봉지에 받아서 내려왔다. 김태환(46) 동호회장은 "이번이 두 번째 굴업도 백 패킹"이라며 "전국 어디에도 이런 명당은 없다"고 말했다.
이윽고 밤이 깊었다. 구름 사이로 이따금 보름달이 보였다. 달빛만으로도 초원은 환했다. 텐트에 누워 풀벌레 소리와 바람소리를 듣다 잠에 들었다. 2011년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일원으로 섬에 들어온 적이 있는 문태준 시인의 소감을 옮긴다.
"천혜의 비경이란 말이 있잖아요. 그 천혜(天惠)가 하늘이 내린 은혜란 뜻이잖아요. 그 은혜가 거기 있었어요. 굴업도가 어떻게 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하늘이 내린 이 풍경은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1억 년 전 풍경이라잖아요."
◆여행정보=굴업도에 들어가려면 덕적도에서 배를 갈아타야 한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해 덕적도까지 가는 배가 평일 2회(오전 9시, 오후 2시30분) 주말 4회(오전 8시20분, 9시, 11시30분, 오후 4시) 운항한다. 1시간 남짓 걸린다.
덕적도~굴업도 노선는 홀수일과 짝수일에 따라 운항 노선이 바뀌는데, 홀수일을 권한다. 홀수일에는 덕적도에서 굴업도까지 1시간, 짝수일에는 2시간이 걸린다. 짝수일에는 덕적군도의 여러 섬을 들렀다 굴업도에 들어가기 때문에 운항 시간이 더 걸린다. 덕적도에서 평일 오전 11시20분, 주말 오전 10시30분과 오후 1시50분 굴업도 가는 배가 뜬다.
week&은 지난 9일 토요일 인천항 오전 9시 출발, 덕적도 오전 10시30분 출발 배를 타고 굴업도에 들어갔다가 10일 일요일 낮 굴업도 12시30분 출발, 덕적도 오후 2시30분 출발 배를 타고 나왔다. 뱃삯은 인천~덕적도 어른 왕복 4만6000원, 덕적도~굴업도 어른 왕복 1만5000원. 고려고속훼리(kefship.com) 1577-2891. 굴업도에는 산장민박(032-831-7273)·굴업도민박(032-832-7100) 등 민박집이 5개 있다. 민박집에서 식수와 음식을 구할 수 있다. 1박 2인 5만원, 백반 한 끼 7000원. 인천도시공사 관광진흥팀 032-260-5329.
글=손민호·홍지연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