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경 본문: 열왕기상 17:8–24 (참조: 누가복음 4:25–26, 히브리서 11:35, 요한복음 6:35, 로마서 4:17)
핵심 명제: 하나님의 공급과 부활의 생명은 풍요로운 중심부가 아니라 가장 극한의 결핍과 용광로(차르파트) 같은 한계 상황에서 말씀에 대한 선제적 순종(아시 리 미-샴 케탄나 바-리쇼나)을 통해 격발되며, 죽음의 절망 앞에 선 자를 살려내는 능력은 십자가의 자기 비움과 중보적 연합(와이트모데드)을 통해 성취된다.
1. 서론: 말라버린 시냇가를 떠나 적진의 심장부로
열왕기상 17장 7절에서 엘리야가 목을 축이던 그릿 시냇물이 마침내 바닥을 드러내며 쩍쩍 갈라졌습니다(1강).
하나님은 당신의 종이 피조물의 시냇물에 안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17장 8–9절은 인간의 상식과 논리를 완전히 뒤엎는 하나님의 새로운 이동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쿰 레크 차르파타 아쉐르 레-치돈 웨-야샤브타 샴)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치위티 샴 이샤 알마나 레-칼켈레카)" (왕상 17:8–9)
하나님이 지정하신 다음 훈련장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곳은 이스라엘의 비옥한 영토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도륙하고 바알 숭배를 수입해 온 악녀 이세벨의 고향,
곧 바알과 아세라 숭배의 본산지이자 적진의 심장부였던 ‘시돈에 속한 사르밧(Zarephath)’이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엘리야의 공궤자로 지목하신 사람은 거부나 유력자가 아니었습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계층인 ‘과부(알마나)’였습니다.
가뭄의 열기가 지중해 해변까지 집어삼킨 그날,
엘리야가 사르밧 성문에 이르렀을 때 마주한 과부의 모습은 처절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는 성문 곁에서 나뭇가지 둘을 줍고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물과 함께 떡 한 조각을 청했을 때,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대답은 인류 문학사에서 가장 비통한 마지막 식사의 예고였습니다: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왕상 17:12)
그녀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줌으로 빵을 구워 어린 아들과 나누어 먹고,
굶어 죽기만을 기다리려던 '절대 절망의 자살 대기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문턱에서,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 떨어진 불가능한 요구: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라!"
제2강은 사르밧이라는 용광로(차르파트)가 지닌 영적 제련의 의미, 결핍 속에서 드려진 기적의 첫 열매 순종, 3년 반 동안 바닥을 드러내지 않은 통의 가루(카드 하-케마흐)와 병의 기름(차파하트 하-셰멘), 숨이 끊어져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이의 시신 위에 세 번 몸을 펴서 엎드린 선지자의 산고(와이트모데드), 그리고 이방 땅에서 입증된 부활 생명의 구속사적 신비를 심층 해부합니다.
2. 본문 주해: 용광로 사르밧과 결핍의 극치(1) 차르파트(צָרְפַת): 불순물을 태우는 제련소 (왕상 17:9)
차르파트 (צָרְפַת, Zarephath):
'차라프(צָרַף)'라는 동사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단어는 금이나 은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뜨거운 풀무불에 집어넣어 '녹이다, 제련하다, 연단하다(Smelting/Refining place)'는 뜻입니다(시 12:6, 66:10).
하나님은 그릿 시냇가에서 세상과의 단절을 훈련하셨다면,
이제 사르밧에서는 선지자와 이방 과부의 자아 속에 남아 있는 모든 인간적 가능성의 찌꺼기를 불태우는 '가장 뜨거운 영적 용광로'로 그들을 몰아넣으신 것입니다.
(2) 왜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사르밧인가? (눅 4:25–26)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설교하실 때, 바로 이 사르밧 과부의 사건을 정면으로 들어 유대인들의 종교적 특권 의식을 질타하셨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르밧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눅 4:25–26)
언약 백성의 영적 파선:
풍요의 땅 이스라엘의 수많은 과부와 부자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의 제단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알의 고향 시돈 땅 사르밧으로 선지자를 보내심으로써,
바알은 자기 본거지의 과부 하나도 먹여 살리지 못하는 헛된 우상임을 폭로하셨고,
혈통적 이스라엘의 완고함을 부끄럽게 하시며 이방을 향해 활짝 열릴 복음의 보편적 은혜를 미리 선포하신 것입니다.
3. 핵심 원어 강해: 멜로 카프(מְלֹא־כַף) — 한 줌의 가루와 죽음의 준비
사르밧 성문에서 나뭇가지를 줍던 여인에게 엘리야가 외쳤습니다: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0절).
여인이 물을 가지러 갈 때 엘리야는 더 큰 요구를 덧붙입니다: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1절).
이 말에 여인은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바닥난 현실을 울부짖듯 토해냅니다: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하이-야훼 엘로헤이카)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키 임-멜로 카프-케마흐 바-카드 우-메아트 쉐멘 바-차파하트)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우-마트누)" (왕상 17:12)
{אִם־יֶשׁ־לִ֤י\ מָעוֹג֙\ כִּ֣י\ אִם־מְלֹא־כַף־קֶ֙מַח֙\ בַּכַּ֔ד\ וּמְעַט־שֶׁ֖מֶן\ בַּצַּפָּ֑חַת}
{וַאֲכַלְנֻ֖הוּ\ וָמָֽתְנוּ׃}
{"키 임-멜로 카프-케마흐 바-카드, 우-메아트 쉐멘 바-차파하트... 와아할누후 와-마트누"}
(1) 멜로 카프 (מְלֹא־כַף): 손바닥 가득한 한 움큼
카프 (כַּף): 손바닥.
항아리 바닥에 달라붙어 손가락으로 긁어모아야 겨우 나오는 '단 한 움큼의 밀가루(A handful of flour)'.
병 바닥에 간신히 고여 있는 몇 방울의 기름(메아트 쉐멘).
이것은 끼니를 잇기 위한 양식이 아니라, 모자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마감하기 위해 준비한 '마지막 유언의 빵'이었습니다.
(2) 우-마트누 (וָמָתְנוּ): 그리고 우리는 죽으리라
무트 (מוּת, 죽다)의 완료형:
"먹고 나서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여인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의 내일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오직 아들과 함께 서서히 굶어 죽어가는 끔찍한 죽음의 공포뿐이었습니다.
4. 핵심 원어 강해: 바-리쇼나(בָּרִאשֹׁנָה) — 먼저 나를 위하여 만들라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여인을 향해, 선지자 엘리야의 입에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매정하고 파격적인 요구가 떨어집니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알-티리이 보이 아시 케-드바레키)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아시-리 미-샴 우가 케탄나 바-리쇼나)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왕상 17:13)
{אַךְ֩\ עֲשִׂי־לִ֨י\ מִשָּׁ֜ם\ עֻגָ֤ה\ קְטַנָּה֙\ בָּרִ֣אשֹׁנָ֔ה\quad וְהוֹצֵ֣את\ לִ֑י}
{"아크 아시-리 미-샴 우가 케탄나 바-리쇼나, 웨-호체트 리"}
{"그러나 오직! 먼저(바-리쇼나)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케이크(우가) 하나를 구워 내게로 가져오라!"}
(1) 알-티리이 (אַל־תִּירְאִי): 두려워하지 말라
엘리야는 여인의 공포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언제나 두려움을 몰아내는 말씀의 위로로부터 시작됩니다.
(2) 바-리쇼나 (בָּרִאשֹׁנָה): 첫 번째의 원리, 우선순위의 시험
인간의 윤리와 도덕의 눈으로 보면 엘리야는 파렴치한 종교 사기꾼처럼 보입니다.
굶어 죽어가는 모자의 마지막 빵 한 조각을 빼앗아 먹겠다는 요구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잔인한 갈취가 아니었습니다.
여인의 시선을 '눈앞의 바닥난 밀가루 통'에서 '하늘의 영원한 공급자이신 하나님'께로 돌려놓기 위한 '거룩한 믿음의 도약대'였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의 구약적 실천:
"너희는 먼저(프로톤, πρῶτον)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은 여인에게 남는 여유분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줄과도 같은 마지막 전부를 하나님께 먼저 내어맡길 수 있는가 하는 '우선순위의 절대 시험'이었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 엘리야는 여호와의 언약적 약속을 보증으로 제시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하-카드 하-케마흐 로 티클라 웨-차파하트 하-셰멘 로 테흐사르) 하셨느니라" (왕상 17:14)
5. 끝없는 공급: 마르지 않는 항아리의 기적
여인은 갈등했을 것입니다.
이 낯선 이스라엘의 나그네를 믿고 마지막 빵을 줄 것인가, 아니면 아들과 함께 먹고 죽을 것인가?
그러나 성경 기자는 이방 여인의 눈부신 순종을 단 한 문장으로 기록합니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와텔레크 와타아세 케-데바르 엘리야후)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와토칼 후-와-히 우-베이타흐 야밈)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카드 하-케마흐 로 칼라 웨-차파하트 하-셰멘 로 하세르)" (왕상 17:15–16)
{כַּ֤ד\ הַקֶּ֙מַח֙\ לֹ֣א\ כָלָ֔תָה\ וְצַפַּ֥חַת\ הַשֶּׁ֖מֶן\ לֹ֣א\ חָסֵ֑ר}
{"카드 하-케마흐 로 칼라타, 웨-차파하트 하-셰멘 로 하세르"}
로 칼라 (לֹא כָלָתָה) & 로 하세르 (לֹא חָסֵר):
'칼라(끝나다, 고갈되다)', '하세르(부족하다, 줄어들다)'.
통 안의 밀가루가 결코 바닥나지 않았고, 기름병의 기름이 한 방울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매일의 기적:
항아리에 밀가루가 가마니째 가득 차서 넘쳐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손을 넣어 긁어내면 딱 하루 먹을 한 움큼이 잡혔습니다.
저녁에 병을 기울이면 딱 하루 쓸 기름 몇 방울이 흘러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 매일 아침 하늘의 만나를 거두며 살았듯이(출 16장),
사르밧 과부는 3년 반의 가뭄 동안 '날마다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일용할 양식)'을 손끝으로 만지며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6. 더 깊은 시험: 아들의 죽음과 통곡 (왕상 17:17–18)
밀가루 통의 기적으로 평화가 찾아온 듯했던 오두막에, 밀가루가 떨어지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끔찍한 비극이 덮쳐옵니다: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홀라 벤-하-이샤... 아쉐르 엔-노타르-보 네샤마)" (왕상 17:17)
엔-노타르-보 네샤마 (אֵין־נֽוֹתְרָה־בּוֹ נְשָׁמָה):
'네샤마(생기/호흡)'가 그 속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단순한 기절이 아니라 맥박이 멈추고 뇌사가 일어난 '완전한 육체적 사망'이었습니다.
여인은 억장이 무너져 엘리야의 멱살을 잡듯 절규했습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마-리 와-라크 이쉬 하-엘로힘 바타 엘라이 레-하즈키르 에트-아워니)" (왕상 17:18)
죄의 각성:
여인은 아들의 죽음 앞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선지자의 임재 앞에 감추어져 있던 자신의 과거의 숨은 죄악(아원)을 떠올리며 공포와 죄책감에 휩싸였습니다.
"차라리 굶어 죽을 때가 나았지, 기적을 맛보게 해놓고 왜 이제 와서 내 유일한 소망인 아들을 빼앗아 가십니까!"
삶의 밥상이 해결된 직후 찾아온 이 극한의 죽음의 문제는, 선지자 엘리야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영적 도전이었습니다.
7. 핵심 원어 강해: 와이트모데드(וַיִּתְמֹדֵ֤ד) — 다락방의 세 번의 엎드림
엘리야는 여인과 논쟁하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이의 시신을 품에 안고,
자신이 기도하던 '다락방(알리야)'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카흐 에트-베네크 와이카헤후 미-헤이카)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와이크라 엘-야훼)..." (왕상 17:19–20)
그리고 구약 성경 전체에서 가장 처절하고 신비로운 중보 기도의 행동을 단행합니다: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와이트모데드 알-하-옐레드 샬로쉬 페아밈)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타쇼브-나 네페쉬-하-옐레드 하-제 알-키르보) 하니" (왕상 17:21)
{וַיִּתְמֹדֵ֤ד\ עַל־הַיֶּ֙לֶד֙\ שָׁלֹ֣שׁ\ פְּעָמִ֔ים}
{"와이트모데드 알-하-옐레드 샬로쉬 페아밈"}
{"그리고 그가 그 아이의 몸 위에 자기의 몸을 꼭 맞추어 세 번이나 길게 펴서 엎드렸더라!"}
(1) 마다드 (מָדַד $\longrightarrow$ 와이트모데드): 자기를 측정하듯 포개다
어원적 의미:
'길이를 재다, 측정하다(Measure)'는 동사의 히트파엘(재귀형)입니다.
아이의 차디찬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고,
아이의 멈춘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추며,
아이의 굳어버린 입술과 가슴팍에 자신의 뜨거운 입술과 심장을 완전히 일치시켜 '자신의 온몸을 아이의 죽음과 완벽하게 동일시하며 포갠 행동'입니다.
율법상 시체를 만지는 자는 부정해집니다(민 19:11).
그러나 엘리야는 의식법적 부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의 온기를 죽음의 냉기 속에 쏟아붓는 거룩한 대속적 사랑의 연합을 감행한 것입니다.
(2) 타쇼브 네페쉬 (תָּשָׁב נֶפֶשׁ): 호흡의 귀환 (왕상 17:22–23)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와이쉬마 야훼 베-콜 엘리야후)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와타샤브 네페쉬-하-옐레드 알-키르보 와예히)" (왕상 17:22)
하늘의 보좌가 움직였습니다.
굳어 있던 아이의 가슴이 들썩거리기 시작했고, 핏기가 돌며 숨을 몰아쉬었습니다(와예히, 그가 살아났더라!).
엘리야는 살아난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내려와 어머니의 품에 안겨주었습니다: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레에 하이 베네크)!"
8. 사르밧 과부의 신앙고백: 참된 하나님의 사람 (왕상 17:24)
이 기적을 목도한 이방 여인의 입술에서,
가뭄과 배도의 시대를 찢는 성경에서 가장 순결하고 완전한 신앙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앗타 야다티 키 이쉬 엘로힘 앗타)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우-데바르-야훼 베-피카 에메트) 하니라" (왕상 17:24)
{עַתָּה֙\ זֶ֣ה\ יָדַ֔עְתִּי\ כִּ֛י\ אִ֥ישׁ\ אֱלֹהִ֖ים\ אָ֑תָּה}
{וּדְבַר־יְהוָ֥ה\ בְּפִ֖יךָ\ אֱמֶֽת׃}
{"앗타 제 야다티, 키 이쉬 엘로힘 앗타! 우-데바르-야훼 베-피카 에메트!"}
{"이제야 내가 똑똑히 알았나이다! 당신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술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말씀만이 진리(에메트)이나이다!"}
밀가루의 기적을 넘어선 '말씀의 확증':
여인은 매일 통에서 나오는 밀가루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신기한 마술처럼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생명으로 부활하는 사건'을 경험했을 때,
여인은 떡을 주시는 하나님을 넘어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그 말씀이 영원한 진리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전 영혼을 굴복시켰습니다.
바알의 고향 시돈 한복판에서, 한 이방 여인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에메트)을 온 세상에 증언하는 거룩한 전도자로 거듭난 것입니다.
9. 구속사적 절정: 생명의 떡이요 부활이신 예수 그리스도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 아더 핑크와 마틴 로이드 존스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일어난 이 기적을, 생명의 떡으로 성육신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이방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절대적 모형으로 해설합니다.
| 사르밧 과부의 집 (열왕기상 17장) |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신약성경) |
| 바알의 땅에서 버림받은 이방 과부를 찾아감 | 멸망할 세상의 버림받은 이방 죄인들을 찾아오심 (눅 4:26) |
| 통의 가루로 마르지 않는 생명의 양식을 줌 |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하리라" (요 6:35) |
| 선지자가 자신의 몸을 죽은 아이 위에 포개어 엎드림(와이트모데드) |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입으시고 우리의 죄와 죽음에 자신을 온전히 일치시키심 |
| 아이를 살려 어머니 품에 안겨줌 ("네 아들이 살았다") |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사 어머니에게 넘겨주심 (눅 7:15) |
| 죽은 자가 살아남으로 "말씀이 진실함"이 입증됨 | 부활하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심" (롬 1:4) |
사르밧 과부의 항아리의 가루는 육신의 배고픔을 잠시 면해줄 뿐이었습니다.
그 아들도 결국 훗날 세월이 흘러 육체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렇기에 역사는 영원한 생명의 떡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5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선포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거룩한 살을 찢으시고 피를 쏟으사,
영적으로 굶주려 죽어가던 온 인류를 위한 '결코 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가루 통과 기름병'이 되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엘리야가 죽은 아이 위에 온몸을 세 번 펴서 엎드렸듯이(와이트모데드),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으로 허물과 죄로 죽어 있던 우리를 살려내시기 위해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친히 인간의 비참한 죄악의 육체 속으로 당신의 온 존재를 짓이기듯 포개어 들어오셨습니다(성육신과 십자가 연합).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죽음을 대신 짊어지시고 삼 일 만에 무덤을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써,
죄와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던 우리를 향해 선언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 11:25–26).
10. 목회적 적용과 묵상(1) 네 인생의 용광로(사르밧)에서 하나님의 정금으로 빚어지라
사업이 망하고, 건강을 잃으며, 사방이 꽉 막힌 극단적인 한계 상황에 처해 계십니까? "하나님, 왜 나를 이토록 뜨거운 불 속에 집어넣으십니까?" 한탄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는 우연한 실패의 웅덩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사명자로 빚으시는 '거룩한 사르밧(용광로)'입니다.
하나님은 그 풀무불 속에서 당신의 자아, 물질에 대한 집착, 세속적인 교만의 불순물을 완벽하게 태워 없애고 계십니다.
불평을 멈추고 하나님의 제련하시는 손길에 당신을 내맡기십시오.
사르밧의 불꽃을 통과한 자만이, 장차 갈멜산의 하늘의 불을 끌어내리는 능력의 사람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2) 결핍의 때일수록 하나님께 '첫 열매(바-리쇼나)'를 드리라
통장에 잔고가 바닥나고, 삶의 여유가 전혀 없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움켜쥐려 합니다. "내가 지금 먹고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헌금을 하고 어떻게 남을 섬기는가? 조금 여유가 생기면 그때 주를 위해 쓰겠다."
속지 마십시오!
기적은 풍요 속의 자투리를 드릴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생명줄과도 같은 마지막 한 움큼의 밀가루를 하나님께 '먼저(바-리쇼나)' 구별하여 내어놓을 때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당신의 삶의 첫 자리에 모시십시오.
시간의 첫 시간을 기도로 드리고, 물질의 첫 열매를 구별하여 드리십시오.
당신이 하나님을 먼저 대우해 드릴 때,
하나님은 당신의 삶의 가루 통과 기름병이 평생토록 마르지 않도록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3) 죽어가는 영혼을 품고 '와이트모데드(대속적 사랑의 연합)'로 엎드리라
교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녀와 지체들을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혀를 차고 있지 않습니까? "저 사람은 왜 저 모양인가, 저러다 지옥 가겠지."
차가운 정죄의 시선을 찢으십시오!
엘리야를 보십시오.
그는 죽은 아이를 안고 다락방으로 올라가 자신의 온몸을 아이의 싸늘한 시신 위에 세 번이나 길게 펴서 엎드렸습니다(와이트모데드).
그의 차디찬 고통을 내 고통으로 품고,
그의 영적 죽음을 내 가슴에 끌어안아 눈물로 체온을 나누어주는 기도의 해산의 고통!
그 십자가적 동일시의 중보 기도가 있을 때,
떠나갔던 영혼의 호흡(네페쉬)이 돌아오고 마른 뼈가 살아나는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11. 결론: 갈멜산의 격돌을 향한 부르심
열왕기상 17장의 막이 내리며,
사르밧 과부의 집은 가뭄의 흑암 속에서도
날마다 솟아나는 생명의 떡과 기름,
그리고 죽음을 이긴 부활의 찬송으로 가득 찼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의 용광로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급과
생명을 살리시는 부활의 권능을 온몸으로 체득했습니다.
그는 이제 단순히 말로만 가뭄을 선포하던 거친 시골 선지자가 아니라,
온 세상을 뒤흔들 하나님의 완전한 영적 병기로 제련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열왕기상 18장 1절의 문이 번개처럼 열립니다.
가뭄이 시작된 지 제삼 년,
침묵을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서슬 퍼런 명령: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3년 동안 엘리야를 잡기 위해 온 나라와 국경을 샅샅이 뒤지며 살기를 번뜩이던 아합 왕!
그리고 그 아합의 왕궁 한복판에서,
여호와를 경외하여 선지자 100명을 동굴에 숨겨 떡과 물로 먹이면서도
아합의 궁내대신으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던 ‘오바댜(Obadiah)’와의 숨 막히는 조우!
궁궐 안에서 체제와 타협하며 숨죽이던 연약한 신앙,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을 쥐고 광야에서 왕을 향해 돌진하는 엘리야의 야성!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이빨을 드러내는 아합의 면전을 향해
선지자 엘리야가 내리꽂은 거룩한 사자후: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바알들을 따랐음이니이다!"
제3강: 오바댜의 타협과 엘리야의 담대함 — 궁중의 신앙과 광야의 야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