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장 모세의 마지막 설교1 (찬 383)
1. 이제 모세의 삶은 마지막으로 접어들었다. 모세에게 남겨진 일은 4가지다. 1) 마지막 설교를 하고, 2) 후계자를 임명하며, 3) 백성들에게 한 노래를 가르치고, 4) 목회자로서 작별 인사를 전하는 것이다. 29~30장에 기록된 모세의 마지막 설교는 4가지 내용을 가진다. 1) 과거의 축복(29:2~9), 2) 현재의 자원(29:10~15), 3) 미래의 위험(29:16~28), 4) 하나님의 언약은 시간을 초월한다는 사실(30:1~20)이다. 먼저 1절에 마지막 설교의 서론이 나온다(1). 그것은 모세가 지금 요약하여 전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호렙 산에서 맺으신 언약과 모압 광야에서 맺으신 언약을 총괄하는 내용이다.
2. 모세는 과거의 은혜로 설교를 시작한다(2~9). 물론 백성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애굽에서의 이적을 체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세는 애굽에서의 이적부터 시작해서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에서 그들이 경험한 이적과 기사들을 언급한다. 모두가 과거의 은혜요 축복들이다. 40년 동안 광야를 통과했고 옷이 낡지 않았으며 신이 해어지지 않았고 하늘의 만나를 먹었으며 포도원을 심어 가꿀 수 없었으므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못한 대신 반석을 쳐서 나오는 샘물을 마셨다.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서 멸함으로써 르우벤과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살 땅을 덤으로 얻었다. 모세가 여기서 과거의 은혜를 언급하는 이유는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모든 일이 이와 같이 형통할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9). 하지만 이스라엘의 문제는 그들이 분명히 그들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였고(3)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없어서 그 이적과 기사들의 진정하고도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4).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셨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변명거리를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완고한 마음(롬 11:7~8, 25), 곧 할례 받지 못한 마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완고한 완악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이적과 기사를 체험하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이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의 기적들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미래의 은혜도 확신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 테지만 그들은 실패하였다! 이것을 고치는 유일한 해결책은 겸손하게 주님 앞에 구하는 길 밖에 없다.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렘 31:18).”
3. 모세는 이어서 현재 누릴 수 있는 영적 자산에 대해서 말한다(10~15). 이 언약은 열조와 맺으신 것일 뿐 아니라 ‘오늘날 너희’와 맺는 것이다(10,13). 언약은 먼 과거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하나님의 백성들과 직접 맺어진 것이다. 언약에 참여하는 자들은 현재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남녀노소다(10~12). 수령, 장로, 지도자 들로부터(10) 객과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에 이르기까지(11)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남녀노소가 다 이 언약에 참여함으로 모두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의무가 있다. 또 언약은 영원하다(14~15). 지금 하나님 앞에 선 자들 뿐만 아니라 15절에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까지’라고 하신 말씀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들까지도 다 이 언약의 효력을 얻을 것이라는 의미다. 후손들까지도 이 지속되는 언약을 통해 약속된 자원과 보장된 안전을 기뻐할 수 있다. 이 언약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자 함이다(13b). 이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현재와 장래에 가지고 누릴 영적 자산이다.
4. 이어서 모세는 미래의 위험을 언급한다(16~28). 먼저 어느 개인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는 은밀한 범죄의 위험이다(16~21). 신앙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자기 기만이다. 사람은 언약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거짓으로 스스로 위로하고 자기 자신에게 거짓 평안을 주면서 마음을 강퍅하게 할 수 있다. 온 세상에 재앙이 임해도 자기는 살아날 것이라고 믿고 싶어할 것이다(19). 자기 기만 이야말로 죄의 가장 무서운 속성이다. 이것은 우리의 인식과 판단을 왜곡시킨다. 아무리 민감한 양심이라도 죄의 파괴력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둘째로 죄는 전염된다. ‘독초와 쑥의 뿌리’(18)처럼 퍼져나간다. 죄는 고립되고 분리되고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고도로 파괴적이며 전염성이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구절을 70인역에서 인용하여 ‘쓴 뿌리’라고 썼다(히 12:15). 끝으로 은밀한 죄는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다(20~21). 죄는 하나님을 언제나 역겹게 한다. 이런 경고가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을 섬겨야 할 자가 우상을 섬김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간은 재물을 경배했고 기드온과 삼손은 자아를 숭배했으며, 다윗은 육욕을 우상화했다. 모두 은밀한 범죄의 대가로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하나님은 이것을 우려하시면서 모세를 통해서 경고하신다. 모든 비극의 원인은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25~26). 이것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을 아셨다(28). 슬픈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님에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5. 29장은 하나님의 지혜를 말함으로써 마무리된다(29). 감추어진 일과 나타난 일은 히브리어로 ‘덮여진 것’과 ‘덮여지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덮여진 것은 우리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덮여지지 않은 것은 우리가 이해하도록 주어진 것들이다. 아무리 영적으로 성숙해도 알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합당한 이유로 지금 우리에게 알리기를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알려질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그러나 인생에 알려지지 않은 것보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 나타난 일이 참으로 많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는 마음, 보는 눈, 듣는 귀를 주셨기에 가능한 것이므로 감사하게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순종해야 할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타난 일은 단지 지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종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6. 많은 신앙의 경험 속에서도 깨닫지 못하는 마음, 보지 못하는 눈, 듣지 못하는 귀를 가지고 그 영적 무지 가운데 있지는 않은가? 또한 성도는 과거에 베푸신 은혜를 토대로 미래에 베푸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믿음의 삶이다. 그리고 자기 기만을 조심하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를 속이고 은밀한 죄악 가운데로 나아가는 것을 조심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
7. “하나님 아버지, 오직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하고 구속해 주신 은혜를 더 알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영적으로 깨닫는 마음과 눈과 귀를 주셔서 은혜 받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