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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turned away his heart)."
나이의 함정: 4절은 아주 뼈아픈 단서를 제공합니다. "솔로몬이 나이가 많을 때에(When Solomon was old)." 젊은 시절, 기브온 산당에서 "듣는 마음"을 구하며 엎드렸던 그 순수함은 온데간데없어졌습니다. 나이가 들고 권력이 안정되자 영적 감각이 무뎌진 것입니다.
Theological Lens: 타락은 폭풍처럼 오지 않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1,000번의 작은 타협들이 모여 결국 그의 심장(Lev)의 방향을 여호와에게서 이방 신들에게로 틀어버렸습니다. '끝까지(Finishing well)'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진짜 지혜입니다.
B. 예루살렘 앞산에 세워진 지옥의 제단 (왕상 11:5-8)
끔찍한 혼합주의: 솔로몬은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 암몬의 가증한 밀곰(몰록),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해 예루살렘 멸망의 산(감람산) 우측에 산당을 지어줍니다.
충격적 대비: 솔로몬은 모리아 산(성전산)에 여호와의 성전을 지은 장본인입니다. 그런데 바로 맞은편 산에, 어린아이를 불태워 바치는 몰록의 제단을 직접 건축했습니다.
의미: 솔로몬은 여호와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도 섬기고, 몰록도 섬기고, 아스다롯도 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가장 경계해야 할 **'혼합주의(Syncretism)'**입니다. 복음의 유일성을 포기하고 다원주의의 넓은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C. 두 번의 경고, 그리고 찢어진 왕국 (왕상 11:9-13)
하나님의 진노: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11:9-10)."
심판의 선언: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은혜의 유보: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과의 언약 때문에 솔로몬의 생전에는 나라를 찢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르호보암) 대에 10개 지파를 찢어 신하(여로보암)에게 주겠다고 하십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타락했지만, 언약의 하나님은 신실하셨습니다.
3. 신학적 렌즈 (Theological Lens): 실용주의(Pragmatism)의 독
솔로몬의 천 명의 아내는 오늘날 교회를 병들게 하는 **'실용주의 목회'**의 예표입니다.
교회의 부흥(국가의 안보)을 위해서라면 세상의 마케팅, 심리학, 기업 경영 논리, 엔터테인먼트 등 천 가지의 세상 방법(처첩)을 강단으로 끌어들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성도만 모이면 된다"는 실용주의는 결국 강단에서 십자가의 피 묻은 복음을 밀어내고, 기복 신앙과 긍정의 심리학이라는 이방 신전을 세우게 만듭니다. '성공'을 위해 '거룩'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솔로몬이 마신 독배였습니다.
4. 목회적 적용 (Pastoral Point)
1. "후배 교역자들에게 '천 개의 무기' 대신 '하나의 물맷돌'을 전수하십시오."
전도사님, 강도사님들을 교육하실 때 가장 강조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목회적 테크닉(천 명의 처첩)을 의지하지 마라. 다윗처럼 여호와의 이름이라는 물맷돌 하나로 승부하라." 세상의 방법론에 기웃거리지 않고 오직 말씀과 기도로 목양하는 '야성'을 가르쳐 주십시오.
2. "영적 노안(老眼)을 경계하십시오."
"솔로몬이 나이가 많을 때에..." 30년 사역을 은혜롭게 마무리해 가시는 목사님께서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실 구절일 것입니다. 사역의 연륜이 쌓일수록 율법주의나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끝까지 맑은 영혼을 유지하며, 십자가 앞에서 날마다 갓난아이처럼 엎드리는 영적 청년의 심장을 구해야 합니다.
3. "내 안의 '산당'을 부수십시오."
하나님도 사랑하지만, 돈(바알)도 좋고 쾌락(아스다롯)도 포기 못 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일에는 성전에서 예배하고, 평일에는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이중적인 기독교인들을 향해, 타협의 산당을 박살 내라고 피를 토하며 선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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