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제 지심도의 역사 현장
일본이 대륙 침략을 위한 한반도의 병참기지화를 삼으려 했던 지심도 거제 지심도는 봄철에는 붉은 동백꽃이 지천으로 휘날리는 동백섬으로, 낚시꾼들에는 묵직한 손맛을 맛보게 하는 낚시터로, 또한 넉넉한 발걸음으로 섬을 일주하는 산책 코스 알려진 보석 같은 작은 섬이다. 낚시터의 이름도 샛끝벌여, 높은여, 노랑바위, 마끝 등 하나같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지심도에는 찻길이 따로 없어 자동차가 없는 청정섬임에도 속을 들여다보면 역사의 아픈 기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아름다운 섬 지심도의 아이러니이다. 이곳은 2차 대전을 앞두고 우리나라 전체를 병참기지로 만들겠다는 일제의 전초기지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지심도의 짙푸른 숲에는 일본군이 건설한 포진지 · 탄약고 · 서치라이트 보관소 · 욱일기 게양대 · 방향 지시석 · 일본군 전등소장 사택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심도 구 일본군 포대 지심도 포대는 일본의 중국 침략을 2년 앞두고 계획되었으며, 1941년 태평양전쟁 당시 양지암 기지와 함께 진해해면방비부대에 소속되어 미연합국과 일전을 준비하던 곳이다. 지심도 포대 설치는 1935년 11월 30일 구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포대건설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시작됐다. 1936년 4월 23일 일본육군축성본부는 지심도에 거주하고 있는 10여 가구를 강제 이주시키고, 같은 해 7월 10일 포대를 착공하기에 이른다. 일본군은 지심도 내에 4곳의 포대를 설치하는데, 45식 15밀리 캐논 포 4문, 33식 기관총, 96식 측원기 등을 각각 배치했다. 또한 지심도 포대를 보호하기 위해 1936년 7월 8일 지심도 헌병분주소를 설치하고 총 4명의 인원을 배치하였다. 지심도 포대에는 일본군 1개 중대 약 10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포진지 4곳은 모두 원형으로 동일한 형태인데 직경 18m의 방호벽을 만들고 그 안에 직경 4m의 포대를 만들었다. 방호벽의 높이는 1.5m 정도이고 남쪽과 북쪽에는 계단을 만들었다. 지심도 포대 4곳은 견고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서 현재도 원형 그대로 잘 남아 있다. 지심도 포대는 한반도 전역을 일제의 병참기지화로 만들겠다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지심도 구 일본군 탄약고 탄약고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11월 30일부터 1938년 1월 27일 사이 지심도 포대를 건설할 때 함께 건설되었다. 내부는 전등을 설치하였고, 탄약이나 포탄을 저장하던 곳이라 콘크리트로 되어 있으며 지하 벙커식으로 4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탄약고 안에는 45식 15밀리 캐논 포 탄환, 38식 기관총 탄환 등 각종 화약을 보관하고 있었다. 1935년 5월 7일 현재 38식(式) 기관총 고사용구(高射用具) 38개, 캐논 포 탄환 10개를 보유하고 있었다. 탄약고의 외부 좌우에 환기구 역할을 하는 구멍이 2곳이 있으며, 내부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항아리 모양의 수로를 설치했다. 이러한 방식은 4곳의 탄약고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당초 탄약고는 포대와 가까운 거리에 설치되어 포탄이나 탄약을 운반하는데 편리하도록 건설되었고, 4곳 모두 정문은 부산 쪽 방향이며, 후문은 쓰시마(對馬島) 방향이다. 또한 모든 탄약고는 비탈진 곳에 은폐되어 있어 눈에 쉽게 발견할 수는 없다. 지심도 구 일본군 방향지시석 이 시설물은 망루나 발전소와 가까이 있는 곳으로 지심도의 주변 지역을 표시한 방향지시석이며, 서치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설치되었다. 이곳에는 총 6개의 지시석이 있었으나, 현재 제일 왼쪽으로 장승포 방향, 가덕도등대, 절영도(현재 부산 영도), 쓰시마 남단 등 총 5가 남아있다. 방향지시석의 총 길이는 5m이며, 석축 높이 5cm, 넓이 20*30, 기둥은 높이 30cm, 넓이 10*10이다. 또한 서치라이트 자리에서 방향지시석(우측)으로 35cm이며, 석축과의 거리는 12cm이다. 현 위치와 전등소, 서치라이트 보관소와 가까운 거리에 설치되었으며, 주변을 관찰하거나 작전 지구 내에 들어오는 선박을 감시하는데 이용되었다. 지심도 국기 게양대 1938년 1월 27일 지심도의 포대가 준공되자 구 일본군의 포대진지임을 알리기 위해 교쿠지쯔키(旭日旗)를 게양했던 곳이다. 교쿠지쯔키는 일본의 국기인 히노마루(日章旗)의 태양 문양 주위에 퍼져나가는 햇살을 붉은색으로 도안한 깃발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1870년 구 일본육군국기로써, 1889년 해군 군함기로 사용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과 함께, 육해군이 함께 해체되면서 사라졌다가, 1954년 이후부터 일본 자위대의 군대 깃발로 사용하고 있다. 이 깃발은 일본의 대륙 침략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게양대 위치는 당시 양지암 통신대, 부산 영도 포대, 쓰시마 등지를 볼 수 있는 곳에 설치했다. 현 위치에서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에 망루를 따로 설치하여 주변 경계를 서기도 했다. 현재 게양대는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전등소 소장 사택 이 전등소 소장의 사택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지심도 전등소는 지심도 포대의 완공과 함께 1938년 1월 27일 준공됐다. 전등소에는 발전소와 소장 사택, 막사 등의 부속건물로 구성되었다. 현재 발전소는 피싱하우스에서 사용하는 민박 건물이나 일부 개조하여 내부 구조를 알 수 없다. 전등소는 탐조등 등을 갖추고 있었는데, 지심도의 기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현재 전등소와 가까운 거리에 서치라이트 보관소와 방향지시석이 설치되었다. 탐조등은 야간에 적 함선을 탐지하기 위하여 설치했다. 당시 탐조등은 직경 2m 정도였으며 조명의 도달 거리는 약 7~9km 정도였다. 일제강점기 2차대전을 앞두고 일본군이 만든 포진지 지심도에는 4곳의 포대를 설치하여 100여 명의 일본군이 주둔하였다. 지심도 구 일본군 탄약고 이곳은 탄약과 포탄을 저장하던 곳으로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으며 총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심도 구 일본군 방향지시석 안내도 욱일기 게양대 일제 강점기에 욱일기를 게양하던 곳으로 방향은 부산 영도, 쓰시마 섬을 향해 설치해 놓았다. 현재는 태극기 게양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기분이 씁쓸하다. 일본군 전등소장 사택 전형적인 일본 가옥의 형태로 잘 보존되고 있으나, 현재는 민박 및 커피숍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지심도 정상은 해발 97m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푸른 한려해상국립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지심도를 한 바퀴 돌고 나오면서 지심도 선착장 근처에서 짬낚으로 낚은 학꽁치. 잠깐 동안에 꽤 많은 마릿수를 올렸다. 배 시간이 정해져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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