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어느 날에 기어이 짬을 낸 우리 가족도, 수많은 사람의 행렬에 끼어들어
소문 자자한 부곡 하와이를 다녀온 기억이 있답니다.
그 시절에 다녀오신 분들이 다들 그렇게 기억하듯, 호텔 투숙은 언감생심이었고
넓디 넓은 주차장에서 빈자리 찾느라 고생하던 일이 오히려 낭만이었지요.
입이 딱 벌어지도록 커다란 실내 풀장에는 훈훈한 바람이 야자수 잎을 간질이고
넘실대는 사람의 물결은 하와이의 화려한 밤 해변을 꿈꾸게 해 주더군요.
감미로운 남국의 음악과 더불어, 유명 연예인이 출연하는 흥겨운 공연은 낭만의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답니다.
그렇게 기억 저편에 자리잡았던 부곡 하와이를 지난 주말에 다시 찾았습니다.
좋았던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네비의 지시대로만 따라 가는데, 너무도 한산한
도로를 보면서 차츰차츰 “이게 아닌데……”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텅 빈 주차장에 달랑 혼자 차를 세우고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부곡 하와이 호텔 도어를 바라보니 어이가 없더군요.
입장객이라곤 달랑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몇뿐인 실내 풀장에는, 설렁한 기운이
감돌아 도저히 물에 들어설 용기조차 나지 않습니다.
발 디딜 틈 없이 시끌벅적하던 풀장 둘레의 음식점들은, 모조리 문이 잠겨 있고
터무니 없이 넓은 천장의 투명창은 얼룩이 져 거뭇거뭇 하더군요.
목욕탕 안으로 들어서니 물은 여전히 따뜻하나, 벽면의 타일은 곳곳이 벗겨지고
열대어 수조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 새카맣게 때가 끼었습니다.
밖으로 나와 거리를 지나봐도, 그 옛날 그리도 왁자지껄하던 유흥골목의 모습은
흔적뿐이고, 지금은 오히려 퇴락하고 적막한 느낌뿐입니다.
목욕탕에서 만난 동네 노인네 말로는, 가뜩이나 손님이 줄어들어 망해가던 참에
인근 김해에 재벌그룹 워터파크가 생기면서 아예 폐업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쌀쌀한 늦가을의 찬바람을 맞으며 주차장으로 돌아오는데 부곡 하와이의 퇴락한
모습에서 갑자기 우리나라의 국운이 떠 오르더군요.
이웃 일본이 다시 일어서고, 옆집 중국이 대국 굴기를 외치며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끼리 싸우느라 정신 없던 조선 말로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지요.
마침 가을 지나고 초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라, 주차장의 벚나무 조차 무성하던
잎을 모조리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에 찬바람을 맞고 있더군요.
세상 만사가 흥망성쇠 한다지만, 우리나라가 아직은 내리막 길은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