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도 고전 한글작품> 2016년 작성
1) 견내가(見乃歌) / 작가미상(구전)
메귓꾼이 부엌에 가서 메귀를 칠 때, 여자가 자기 살(음부)이 나오는 것도 모르고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다 다리가 아프면, 이쪽저쪽 몸을 뒤튼다. 그 때마다 여성의 살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표현한 작품이다. 거제 특유의 방언과 비유법이 해학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조선후기에는 민요와 사설시조의 경계가 없어져, 거제민요에도 똑같은 내용이 나온다.
"♬구시월 돈부꽃이 벌름벌름 피었구나.
김서방네 깟밭인가 거무검실 덮었네
벌렸다 오무라졌다 이래저래 조왕신"
늦가을에 동부꽃(여자의 陰核를 비유)이 여성의 음부처럼 피어있고, 그 주위는 김서방네 깟밭(솔밭, 여자의 陰毛를 비유)처럼 무성한 숲을 이루었구나. 부엌 신 ‘조왕신’이 이것저것 모두 보고 있다네
[주1] 동부꽃(돈부꽃) : 우리나라 전역에서 늦여름 철에 직경 1~1.5cm정도 되며 약간 분홍색이 도는 살색 꽃이 피는 덩굴성 콩으로 울타리 가에 심어 가는 나무 가지를 감고 올라가며 자란다. 경상도에선 '돔비'라고도 하고 또는 '동비'라고도 하며, 꽃말은 ‘반드시 오고야말 행복’이다.
[주2] 깟밭 : 뫼, 산(山)의 경상도 방언.
[주3] 조왕신(竈王神) : 옛날부터 우리나라 가정에서 모셨던 부엌을 수호하는 신(神)으로 부뚜막신, 조군(竈君), 조왕할아버지, 조왕할머니, 조왕각시 등으로 불린다.
[주4] 견내가(見乃歌) : “다 보이네” “다 보이네”를 한자식으로 표현한 말. 거제도 ‘견내량’은 “다 보이는 여울”이란 한자식 표기이다.
2) 처녀의 향수 / 유섬이(柳暹伊 1793~1863). 거제읍내 연좌 유배, 가사문학
“서울이라 유처녀가 거제 음재(음지에) 귀양 와서
대구야 청청 일년이야 봉에 구름아 둥실 높이 떴네
나도 언제 평화로저서 구름같이 떠나갈까”
거제도에서 회자되는 류처자(유섬이)는 순조1년(1801년 신유년) 신유박해(천주교 탄압) 때 순교자, 사학(邪學) 죄인 유항검(柳恒儉 1756~1801)의 딸로써, 1801년 10월 6일 거제도로 보내졌던, 당시 9세인 유섬이(柳暹伊,1793~1863) 연좌죄인이었다. 그녀는 거제부 관비로 배속(巨濟府爲婢)되었고, 71세였던 1863년 계해년(癸亥) 철종14년 7월에, 약 62년간의 기나긴 천애고독(天涯孤獨)한 외로운 신세(身世)로, 평생 동정녀로 살다가 사망한 고고한 영혼이었다. 거제시 거제면 내간리 안골, 송곡마을 뒤편, 내원사 약500m 지점에 묻혀있다. 자연석으로 만든 기단과 ‘칠십일세류처녀지묘(七十一歲柳處女之墓)’ 묘비가 세워져 있다.
3) 한탄가 / 작가미상(구전)
"깊은 산중 고드름은 봄비 잦아 녹아대고
만 중생 묵은 마음 어느 곳에 풀어낼꼬.
엊그지 소연이더니 백발 되기 잠세더라"
봄비에 그 추운 날 생긴 고드름도 녹아 버리는데 백성들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릴 때(소년시절)가 어제 같은데 벌써 백발 되어 세월만 지나갔다 - 자조 섞인 한탄의 심정을 읊은 작품이다.
4) 거제기녀(巨濟妓女) ‘가향(可香)’을 생각하며.. (거제 조선조 시조)
"오니(汚尼)예 천연(天然)한 꼿치 연(蓮)꼿 밧긔 뉘 잇느냐.
하추(遐추)예 네 날 쥴을 나는 일즉 몰낫노라.
지금의 떠나는 정(情)이야 엇지 그지 잇스리."
더러운 흙에 깨끗한 꽃은 연꽃 밖에 뉘 있으랴 거제에서 네가 태어 날 줄은 나는 일찍이 몰랐노라 지금의 떠나는 정이야 어찌 끝이 있으리..
[주1] 오니(汚尼) : 한자어 오니(汚泥)의 잘못된 표기.
[주2] 하추(遐陬) :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여기서는 거제도를 일컬음. 작가는 아마도 거제고을의 관리였거나 유배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소 문맥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또한 오니(汚泥), 하추(遐陬) 등의 한자어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미루어 거제에 잠시 머문 장사치일 가능성이 더 크다.
거제기녀 가향(可香)을 진흙탕에서 핀 연꽃에다 비유하며 영원히 "잊지 않겠다" 다짐하는 글귀이다. 즉석에서 지은 글임에도 가향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우리 거제도 고전 문학에 있어 한글로 지은 멋진 작품임에 틀림없다. 가향은 가무는 못하나 얼굴이 아주 예뻤다 하며 이 때 가향의 나이가 18세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