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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다음 날 ㉠무녀는 목욕과 세수를 한 후 화장을 짙게 하고 이러저러한 패물로 화려하게 몸치장을 했습니다. 방에는 꽃을 가득히 수놓은 담요와 구슬 방석을 펼쳐 놓고, 어린 종에게 문밖에 나 가서 진사를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진사가 또 와서, 무녀의 얼굴과 꾸밈새가 화려하고 펼쳐 놓은 것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무녀가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이 어떠한 저녁이기에 당신처럼 훌륭하신 분을 만나 뵙게 되었는지요?”
진사는 마음이 무녀에게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근심스러운 기색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무녀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나이 어린 남자가 과부의 집에 왕래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습니까?”
진사가 말했습니다.
“그대가 만약 신통하다면 어찌해서 내가 온 뜻을 모르리오?”
무녀는 즉시 신을 모신 자리로 나아가 신령(神靈)에게 절을 한 뒤, 방울을 흔들고 거문고를 어루만지면서 온몸을 덜덜 떨었습니다. 잠시 후에 무녀는 몸을 돌이키며 말했습니다.
“낭군은 참으로 불쌍하도다! 이치에 맞지 않는 꾀로써 이루기 어려운 계획을 이루려고 하니, 그 뜻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채 3년이 못 되어 저 세상 사람이 되리이다!”
진사가 울면서 사례(謝禮)하여 말했습니다.
“자네가 비록 말하지 않더라도 나 역시 알고 있네. 그러나 가슴 속에 원한이 맺혀 온갖 약으로도 풀지 못하고 있네. 만약 신통한 그대 덕분에 다행히 편지를 전달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영광스러울 것일세.”
무녀가 말했습니다.
“비천한 무녀인 제가 비록 신께 올리는 제사 때문에 간혹 수성궁을 출입하기는 하나, 들어오라는 명령이 없으면 감히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낭군을 위하여 시험 삼아 한 번 가 보겠습니다.”
진사는 품속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삼가 잘못 전달하여 화근(禍根)이 되도록 하지 마시게.”
무녀가 편지를 가지고 궁문으로 들어가자, 궁중 사람들이 모두 그녀가 온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무녀는 변명을 하고 틈을 엿보다가, 사람이 없는 후원으로 저를 이끌고 가서 봉한 편지 한 통을 주었습니다. 제가 방으로 돌아와 편지를 뜯어보니, 그 편지에 일렀습니다.
“그대를 한 번 본 이후로 날아갈 듯 기뻐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번 궁성(宮城)의 서쪽을 바라볼 때마다 애가 끊는 듯했습니다. 지난번 벽 틈으로 전해 준 편지로 잊을 수 없는 그대의 고운 글을 경건하게 받들긴 했으나, 다 펼치기도 전에 숨이 막히고 절반도 채 못 읽어 눈물이 글자를 적시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잠자리에 들어도 잠을 이룰 수가 없고, 밥을 먹어도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병이 고황*에 들어 온갖 약이 무효한지라, 다만 저승에서나마 뜻밖에 만나 서로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푸른 하늘은 굽어 불쌍하게 여기시고 귀신은 묵묵히 도와주소서. 만약 생전에 이 한을 한 번 풀어 주신다면, 마땅히 몸을 빻고 뼈를 갈아서 천지의 모든 신령께 제사를 올리겠나이다. 종이를 대하니 목이 멥니다. 다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예의를 갖추지 못한 채 삼가 올립니다.”
이 글 아래에 다시 칠운시(七韻詩) 한 수를 써서 일렀습니다.
[A] <깊고 깊은 누각에 저녁 사립문은 닫혔고,
나무 그늘과 구름 그림자는 온통 흐릿하기만 하네.
흐르는 물에 떨어진 꽃은 도랑 따라 흘러나오고,
어린 제비는 흙을 물고 난간으로 돌아가네.
베갯머리에 누워도 호접몽 이루지 못하고,
공연히 눈을 돌려 오지 않을 소식 기다리네.
구슬 같은 얼굴 눈앞에 있는데 어찌 말이 없는가?
푸른 숲에서 우는 꾀꼬리 소리에 눈물로 옷깃 적시네.>
저는 이 글을 다 읽고 난 뒤에 소리가 끊기고 기가 막혀서, 입으로는 말을 할 수가 없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다하여 피가 흘렀습니다. 그러나 몸을 병풍 뒤에 숨기고 오로지 남이 알까 두려워했을 뿐입니다.
이때부터 저는 단 한 순간도 낭군을 잊지 못하여 바보나 미치광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제 마음이 말과 얼굴에 나타나니, 주군(主君)이 의심하고 남들이 이상하게 여겼던 것은 실로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란 역시 원한이 맺힌 여자인지라, 이 말을 듣고 눈물을 머금으며 말 했습니다.
“시는 성정(性情)에서 나오는 것이니 속일 수가 없구나.”
하루는 대군이 비취를 불러 말했습니다.
“너희들 열 사람이 한 곳에 같이 있어서 학업에 전일(專一)*하지 못하니, 마땅히 다섯 사람을 나누어 서궁(西宮)에 거처케 하라.”
이에 첩과 자란·은섬·옥녀·비취가 그날 곧바로 서궁으로 옮겨 가게 되었습니다. 서궁에 이르러서 옥녀가 말했습니다.
“그윽한 꽃과 고운 풀, 흐르는 물과 향기로운 숲이 바로 산속에 있는 집이나 들판의 농막과 흡사하니, 진실로 독서당(讀書堂)이라 할 만하구나.”
이에 제가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도(道)를 닦는 사람도 아니고 또 비구니도 아닌데 이처럼 깊은 궁중에 갇혀 있으니, 이곳은 참으로 장신궁*이라 할 만하다.”
제 말을 듣고 모두들 탄식하며 슬퍼했습니다. 그 후에 저는 편지를 한 통 써서 제 마음을 진사에게 전하기 위해 무녀를 지성으로 섬기면서 제 편지를 전해 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무녀는 끝내 오지 않았는데, 이는 진사가 자기에게 마음이 없는 것에 유감을 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황: 심장과 횡격막 사이의 부분. 곧 침이나 약으로도 고치지 못하는 곳.
*전일: 마음과 힘을 모아 오직 한 곳에만 씀.
*장신궁: 한나라 성제(成帝)의 후궁 반씨(班氏)가 태후를 모시고 살던 궁. 오래도록 믿음받기 위해 장신(長信)이라 이름 지었으나 바람과 달리 왕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이곳에서 쓸쓸히 늙어 감.
01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사건 밖의 서술자가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보여 주고 있다.
② 사건 속 등장인물이 사건의 전말을 전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③ 사건 속 등장인물들이 교대로 서술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④ 사건 속 등장인물이 자신이 경험한 것에 국한하여 서술하고 있다.
⑤ 사건 밖의 서술자가 등장인물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02 ㉠의 서사적 역할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운영과 김 진사의 만남을 주선한다.
② 운영과 김 진사의 갈등을 조장한다.
③ 운영에게 김 진사의 마음을 전달한다.
④ 김 진사에게 운영의 근황을 전달한다.
⑤ 대군에게 운영과 김 진사의 관계를 폭로한다.
03 [보기]를 바탕으로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운영전」에는 인간 본연의 욕망에 충실하고자 하는 인간과 그것을 억압하는 사회적 제도 사이의 갈등이 잘 드러나 있다.
① 무녀가 김 진사를 만날 때 ‘몸치장’에 공을 들인 것은 인간 본연의 욕망 때문이다.
② 김 진사가 무녀의 말에 ‘근심스러운 기색’을 보이는 건 자신의 욕망을 들켰기 때문이다.
③ 무녀가 ‘방울’을 흔들어 얻은 점괘는 김 진사의 욕망이 좌절될 것임을 암시한다.
④ ‘편지’는 사회적 억압을 뛰어넘어 사랑을 쟁취하려는 김 진사의 욕망을 상징한다.
⑤ ‘수성궁’은 인간의 본연적 욕망을 억압하는 사회 제도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04 [A]의 내용을 윗글과 관련하여 해석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깊고 깊은 누각’은 운영이 거처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② ‘나무 그늘과 구름 그림자’는 김 진사의 암울한 심리를 나타낸다.
③ ‘호접몽’은 사랑하는 운영을 만나고자 하는 김 진사의 바람을 상징한다.
④ ‘오지 않을 소식’은 운영과 만나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낸다.
⑤ ‘꾀꼬리 소리’는 운영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뜻한다.
도움자료
[2014 EBS 인터넷 수능]
(문학A)
작자 미상,「운영전」
01 ② 02 ③ 03 ② 04 ⑤
해제 ㅣ 이 작품은 신분을 초월한 남녀 간의 사랑을 그린 조선 시대 애정 소설로「수성궁몽유록」또는「유영전」으로도 불린다. 이 소설은 몽유록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액자의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유영이 운영과 김 진사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 외부 이야기와 운영과 김 진사의 비극적 사랑을 다룬 내부 이야기로 구분된다. 이 작품은 고전 소설에서는 보기 드물게 비극적 결말을 지니고 있는데,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는 이유가 신분적 제약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 문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본연적 욕망을 억압하는 당대의 신분 제도 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 매우 세련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액자를 통한 입체적인 구성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 상황에 따른 서술자의 교체가 나타난다는 점, 그리고 한시를 통해 등장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 비극적 결말 구조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 등에서 소설사적으로 큰 성취를 보여 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주제 ㅣ 신분을 초월한 남녀 간의 비극적 사랑
전체 줄거리 ㅣ 선비 유영은 안평 대군의 옛집인 수성궁에 놀러가서 홀로 술을 마시다 잠이 들고, 취몽 간에 김 진사와 운영을 만나 그 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운영은 본래 안평 대군의 궁녀였는데, 어느 해 가을 수성궁에 대군을 찾아온 김 진사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운영은 궁녀이기 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하지만 둘은 죽음을 무릅쓰고 편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담을 넘어 만나기도 하며 은밀히 사랑을 나눈다. 결국 김 진사는 운영과 둘이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 안평 대군은 궁녀가 외부인과 내통한다는 소문을 듣고 대로하여 궁녀들을 문책하니, 운영은 자책감 때문에 자결한다. 이에 슬픔을 이기지 못한 김 진사 또한 세상 을 떠나게 된다. 염라대왕은 이들을 불쌍히 여겨 다시 하늘나라로 올려 보내 주었다. 이들은 하늘나라로 올라가기 전, 수성궁에 들러 유영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인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유영이 깨어 보니, 김 진사와 운영의 일을 기록한 책이 놓여 있었다. 유영은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장 속에 감추어 두고 때때로 꺼내 보고 망연자실하고, 후에 명산을 두루 찾아다니다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쳤다.
01 서술상 특징 파악 ②
정답이 정답인 이유
이 글에서 서술자는 사건 속 등장인물인 운영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운영은 전지적 서술자와 같이 자신이 보지 못한 궁궐 밖 무녀의 집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까지를 마치 자신이 본 것처럼 자유자재로 서술하고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이 글의 서술자는 극 중 등장인물인 운영으로, 사건 밖 서술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③ 작품 전체로 봤을 때는 서술자의 교체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 글에서 서술자는 극 중 등장인물인 운영뿐이다.
④ 사건 속 등장인물인 운영이 서술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경험과 시선에 갇혀 있지 않고 전지적 서술자로서 기능 하고 있다.
⑤ 이 글의 서술자는 사건 속 등장인물인 운영이며, 서술에 있어서도 자신의 주관을 반영하고 있다.
02 인물의 성격, 태도 파악 ③
정답이 정답인 이유
이 글에서 ‘무녀’는 김 진사에게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김 진사가 운영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편지를 전해 줌으로써 운영으로 하여금 운영을 향한 김 진사의 마음을 알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무녀는 운영에게 김 진사의 편지를 전달해 줄 뿐, 운영과 김 진사의 직접적인 만남을 주선하고 있지는 않다.
② 무녀가 김 진사에게 마음을 품고 있기는 하지만 운영과 김 진사 사이에서 갈등을 조장하고 있지는 않다.
④ 무녀가 운영에게 김 진사의 편지를 전달했지만 운영의 편지를 김 진사에게 전달하거나 구두로 김 진사에게 운영의 소식을 전하고 있지는 않다.
⑤ 이 글에서 무녀는 대군과 만나거나 대군에게 어떤 소식을 전하는 행동은 보여 주고 있지 않다.
03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②
공동체적 관점에서 문학이 지닌 다양한 가치를 주어진 외적 준거를 바탕으로 탐구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문제이다.
정답이 정답인 이유
김 진사가 근심스러운 기색을 보이는 것은 무녀가 자신에게 환심을 갖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급급할 뿐 자신이 품고 있는 고민을 알아주지 못하기 때문이지 무녀에게 자신의 욕망을 들켰기 때문은 아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무녀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김 진사를 향해, ‘어찌하여 나이 어린 남자가 과부의 집에 왕래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며 화를 내는 것으로 보아 무녀가 김 진사를 만나기 위해 몸치장에 공을 들인 이유는 김 진사를 향한 관심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③ 무녀가 얻은 점괘는 김 진사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3년이 못 되어 저세상 사람이 되리라는 것이고, 이는 곧 김 진사가 운영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운영과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김 진사의 욕망은 좌절될 것임을 알 수 있다.
④ 신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김 진사가 운영에게 자신의 마음 을 담은 ‘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신분적 제약을 뛰어넘어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⑤ ‘수성궁’이라는 공간은 궁녀로서 운영이 갇혀 지내는 곳이 고, 이런 운영의 신분은 곧 김 진사와의 사랑을 이룰 수 없게 하는 사회적 제약이다. 이렇게 볼 때, 신분이라는 사회 제도는 자유롭게 사랑을 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을 억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04 구절의 의미 파악 ⑤
정답이 정답인 이유
‘꾀꼬리 소리’에 화자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운영을 만나지 못하는 김 진사의 슬픔이 꾀꼬리 소리에 이입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꾀꼬리 소리’를 운영의 목소리로 생각하는 것은 시의 맥락을 고려할 때 적절한 해석으로 보기 어렵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저녁 사립문이 닫힌 ‘깊고 깊은 누각’은 운영이 갇혀 살고 있는 수성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② ‘나무 그늘과 구름 그림자’는 그 자체로 어두운 이미지를 나타내는데, 이조차도 흐릿하기만 한 것으로 보아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운영을 만나지 못해 슬프고 답답한 김 진사의 심정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③이 시의 맥락상 ‘호접몽’은 김 진사가 꿈속에서라도 이루고 자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사랑하는 운영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바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④ ‘소식’은 운영으로부터의 소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소식 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곧 운영과 김 진사가 만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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