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야 할 열두 가지 신성과 12 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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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야 할 신성, 열두 가지 신성, 열두 가지의 생명의 종류, 이것을 열두 아들이라고 한다.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 단, 납달리 / 갓, 아셀 / 잇사갈, 스불론, 요셉-므낫세, 에브라임, 베냐민
이 순서로 열두 아들, 열두 생명이 태어난다. 그런데, 창세기에 오면 조금 이 순서가 바뀐다. 레아가 유다까지 낳고, 단과 납달리를 라헬의 여종이 낳고, 갓과 아쉘을 실바가 낳고, 잇사갈, 스불론을 레아가 낳는다. 생명이 생겨날 때는 이 순서가 조금 바뀐다. 그래서 창49장에 오면 단과 납달리부터 순서가 바뀐다. 생명이 Operation되는데는 축복을 받는 순서가 바뀐다. 먼저 와야하는 이유가 다 있다.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 스불론, 잇사갈 / 단, 갓 / 아쉘, 납달리 / 요셉, 베냐민
각 구획별로 축복을 받기 위한 생명이 생겨날 때의 파트너이다. 시작할 때는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가 주관한다. 유다와 요셉이 리더이다. 열둘을 둘로 남겨보라고하면 유다와 요셉이 남는다. 창세기는 다 이 생명을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조금 더 고급반으로 나가보도록 하겠다. 창세기에는 또 열두 토라포션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 토라포션은 베레쉬트이다.
르우벤 = 베레쉬트
시므온 = 노아흐
레위 = 레크 레카
유다 = 바예라
즈불론 = 하예이 사라
잇사갈 = 톨도트
단 = 바예쩨
갓 = 바이슐라흐
아셀 = 바예쉐브
납달리 = 미케쯔
요셉 = 바이가쉬
베냐민 = 바예히
다른 책의 열두 토라포션은 못 외워도 창세기의 열두 토라포션은 외워야 한다. 이것은 다 열두 아들과 대칭을 이룬다. 인간의 생명의 가장 핵심적인 것들을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다. 이것은 사실 다 암호로 되어있다.
1) 르우벤 : 베레쉬트
בְּרֵאשִׁית 베레쉬트, 태초에 / 창 1:1-6:8ְּ
ב 베이트 + "רֵאשִׁ" 로쉬, 창조의 첫 활동은 "베이트" 빈 공간 안에 주님이 "로쉬" 머리, 씨앗을 두심으로 시작된다.
이 씨앗은 곧 말씀이다. 베레쉬트는 하다바르, 말씀이다.
다바르, 아들에게 접속하는 문이고, 이 아들의 씨앗 속에서 온 우주의 창조, 영혼의 창조가 시작된다.
- 어떻게 베레쉬트가 르우벤을 말하는가?
창1, 베레쉬트의 내용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아들을 보는 일들을 이루어냈다.
베레쉬트에서 여러분은 아들을 볼 수 밖에 없다.
2) 시므온 : 노아흐
"נֹחַ" 노아흐: 수동적인 생명, 뒤집으면 헨: 은혜
노아흐는 창세 전에 정해진 삶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자,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였다.
תָם 탐, 완전하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를 짐으로 정해진 삶으로 들어갈 때, 의의 길을 걸을 수 있다.
- 어떻게 노아흐가 시므온이냐면, 노아흐를 통해 순종을 배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이해되는 것을 하면 순종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기가 이해 안되는 것에는 절대 네 알겠습니다 못한다. 그런데 노아흐는 도저히 하나님이 이해가 안되는 일을 시켰다. 120년 동안 배를 만들어라. 우리 가운데 이것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120년 동안 하나님께서 내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일을 시켰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그게 노아흐이다.
결국은 시므온을 다루는 것, 노아흐의 생명을 얻게하는 것이다. 시므온이 시므온의 데스티니를 갖게 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시므온을 다루는데 제일 심혈을 기울이신다. 요셉 때도 시므온을 결박하고, 광야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을 다 죽일 뻔 했던 것이 시므온 지파이다. 시므온 지파의 족장이 지므리이다. 지므리는 자기 찬양이라는 말이다. 인생을 사는 이유가 자기 찬양을 위해서 산다. 시므온 얘는 대단하다. 노아흐에서 이것을 다뤄준다. 굉장한 것이다.
נֹחַ 노아흐 : 수동적(נ)인 생명(ח)
- 순종이라는 것은 수동적인 생명이다. 그것을 완전한 자 תָם 탐이라고 한다. 그것이 의로운 자이다.
3) 레위 : 레크 레카
레크 레카는 노아흐를 통해 은혜로 주어진 생명이, 이제 실제로 살아지는 것을 말한다. 생명이 태어났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네가 되어야 할 너의 모습을 향해서 가라고 말씀하신다.
מֵאוּר כַּשְׂדִּים 우르 카쓰딤 : 갈대아인의 우르 = 귀신의 빛으로 사는 삶을 떠나 내가 아직 형상을 이루지 않았다고 하는 작은 회개를 통해, 진짜 내가 되어야 할 형상에까지 갈 수 있다.
לְוִי 레위는 레크 레카이다. 이름도 비슷하다. 훈련(ל)에 대한 계시(ו)이다. 레위는 다 제사장, 성직자가 되는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있다. 레크 레카이다. 그것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레크 레카는 훈련의 삶이다.
4) 유다 : 바예라
하나님은 계속해서 나타나신다.
하지만 육신의 눈, 안목의 정욕으로는 주님의 나타나심을 볼 수 없다.
יִּשָּׂא 이싸 = 나싸: 들다. 다른 차원을 인식하는 것.
아브라함이 했던 것처럼 눈을 들어 다른 차원을 인식함으로,
내면세계에 씨앗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유다는 바예라, 하나님이 나타나신다. 유다는 다 하나님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유다는 달렛, 문이다. 예후다, 야훼를 나타나게 하는 문이다. 바예라에서는 어떻게해야 하나님이 나타나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5) 즈불론 : 하예이 사라
아브라함의 씨는 엄마의 생명이 있을 때 자라고 성장할 수 있다.
אֵם 엠, 엄마는 내 안에 있는 씨가 전체의 생명으로, 아버지의 생명으로 자랄 것에 대해서 믿고 확신한다.
אֶמֻנָה 에무나: 믿음, 아멘, 엄마의 영역이 회복되고 믿음으로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가 되었을 때,
내가 전체의 생명임을,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임을 알고 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즈불론이라는 것은 다 흐르는 것이고, זוּב 쥬브, 생명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즈불론은 다 비지니스 맨들이다.
창49: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즈불론은 해변에 거한다고 한다. 즈불론은 이웃 사랑을 위해서 빛을 비추는 것이다. 즈불론은 빛을 비추는 시스템이다. 이웃에게 어떤 것이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특별히 자연적인 영역이 흘러가게 한다. 겉사람의 영역이다. 자연적인 영역으로 영적인 것을 섬기는 것이다. 어떤 재정으로 영적인 것을 섬기는 것이다. 겉사람이 속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에 들어오면 안되고 항상 해변가에 있다고 한다. 자연적인 영역, 비지니스 맨들이 중앙이 되면 안된다.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하예이 사라에서는 막벨라가 등장한다. 크풀, 두 구조를 이야기한다. 세상은 자연적인 영역과 영적인 영역, 겉사람과 속사람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겉사람이 속사람을 섬겨야 한다. 겉사람이 없어져야 하는게 아니다. 즈불론은 다 속사람을 섬겨야한다.
6) 잇사갈 : 톨도트
from יָלַד 알라드: 낳다, 자라다.
낳고 자라게 하는 것이 사람의 계보를 형성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손이 훈련시키는 것에 종속되는 제자의 삶을 이야기 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태 속에서 서로 싸운다. 우리 안에서 에서와 야곱, 받는 의지와 주는 의지가 충돌할 때 반드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겨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receive to give, 주는 의지를 목적으로 하는 훈련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런 즈불론과 짝이 되는 것이 잇사갈이다. 톨도트라고 하는 것은 즈불론이 섬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톨도트에서 야곱이 탄생하는데, 야곱은 속사람, 영적인 사람을 대표한다. 야곱은 천막에서 종용한 사람이다. 이것은 토라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토라공부한다는 것은 다른게 아니라 사실 속사람을 사는 것이다.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잇사갈이라고 하는 자는 토라공부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쉬바 다니는 사람들을 잇사갈 지파들이라고 한다. 잇사갈 지파는 시세를 안다고 한다. 모든 이 땅이 돌아가는 것을 아는 자는 토라공부하는 자들이다. 속사람을 사는 자는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말이다. 저에게 와서 물어보라. 진짜 모든 것을 다 설명한다.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
진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답 중 하나의 비결을 가르쳐주겠다. e.g. 모른다. 모든 대답을 해줄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도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답을 해줄 수 있다 ㅎㅎ
잇사갈은 지혜를 공급한다. 학자로의 부르심이다. 그런데, 잇사갈의 뜻은 שָׂכַר 싸카르, 형상(שׁ)을 적용(כ)하는 머리(ר)가 있는 것이다. 학자는 다 머리가 있어야 하는데, 머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적용하려고 할 때 발전한다. 그런데, 머리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파괴되는 경우도 있다.
cf ) 중학교 때 삼촌 오토바이를 훔쳐서 집을 나간 적이 있다. 1단 기어 놓는 법을 배워서 신나서 달렸다. 그런데 1단까지밖에 무서워서 못 넣었다. 그러니까 그냥 신나서 달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1단이니까 안 나간다. 1단으로 있는 힘껏 땡기니, 푸다다닥 소리가 나니 더 신나는 것이다. 그렇게 온 동네를 다 돌아다녔다. 집에선 난리가 났다. 결국 오토바이는 엔진이 다 주저앉아버렸다. 1단으로 푸다다다 했으니 과열되서 주저앉았다
우리의 머리는 엔진과 비슷하다. 자기가 즐기려고, 어떻게 하려고, 자기를 살아보려고 해보면, 신난다. 처음에는 이게 잘 되는 것 같다. 소리를 내면서 신난다. 그러나 결국은 주저앉아버린다. 결국 머리가 망해버린다. 바이러스가 들어가고, 혼이 파괴가 되어진다. 자기가 잘 살려고 하면 절대 잇사갈이 될 수 없다.
잇사갈이 어떻게해서 태어났는지 아는가? 합환채 때문에 태어났다. 합환채라고 하는 것은 두다임인데, 다비드라는 말과 같다. 다비드는 사랑받는 자라는 것이다. 잇사갈은 사랑받으려고 하는 것 때문에 태어났다. 그런데 진정으로 사랑받는 것이 뭐냐면, 다른 사람으로 인해 사랑받는 것이다. 합환채를 라헬에게 줘버린다. 합환채가 있으면 정말 내가 사랑받고 즐길 수 있고, 기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라헬에게 줘버려서 태어난 것이 잇사갈이다
잇사갈은 토라 공부를 나를 위해서 하는게 아니라, 그를 위해서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토라 공부를 한다. 공부라는 것을 자기를 위해서 하면 망한다. 절대로 자기를 위한 공부를 하면 안된다.
잇사갈 : 몫
- 자기 몫을 위해서 공부하면 망한다
오늘날 전세계적인 위기는 다 잇사갈의 생명에서 온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잇사갈의 생명이 타락한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공부하는 것이 자기를 위해서이다. 그러니 완전히 망해버린다. 완전히 톨도트가 사라져버린다
톨도트가 얼마나 파워풀한지 기억하는가? 우리의 계보는 자기를 위해서 사는 계보가 아니다. 우리 집안은 정말 희한한 집안이다. 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한다고 한다. *늘이가 노예인 것은 늘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다.
잇사갈이 이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즈불론과 잇사갈은 파트너이다. 잇사갈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돈을 즈불론이 댄다. 유대인 사회에 가장 발달한 것이 이 파트너십이다. 히브리대에 가면 사람들이 이름이 한 벽에 가득 들어있다. 히브리대에 100만불 이상 헌금한 고액 기부자의 이름이다. 히브리대 하나에 그렇게 많이 있다. 오늘날에는 더 많을 것이다. 모든 건물마다 가면 그 건물을 지어준 사람의 이름이 써있다. 우리 할아버지를 위해 기념하면서 이 건물을 지었다등이 써 있다.
유대인들은 이 세상에서 600만명 밖에 안되지만, 전세계에서 기부를 제일 많이 하는 민족이다. 참 희한하다. 이게 즈불론이다.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것이 토라공부하는 자들을 위한 기부를 가장 많이 한다. 잇사갈이다
그러나 반드시 즈불론은 해변가에 있어야 한다. 자연적인 영역이 중앙으로 들어오면 안된다. 그리고 잇사갈, 자기를 위해 공부하지 않는 톨도트를 세워나가야 한다.
요즘은 즈불론이 잇사갈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커피 회사가 자기들이 연구소를 세운다. 그래서 학자들에게 돈을 주는데, 이들이 중앙으로 들어와버린다. 잇사갈로 하여금 즈불론을 섬기게 만든다. 그래서 커피 좋다는 연구 결과를 하나 발표하면, 커피 매상이 어마어마하게 오른다. 뭐 좋다는 연구 결과로 한 번 딱 발표하면 말이다. 의학계에서도 한 번 딱 하면 말이다.
지금은 모든 제약회사들이 잇사갈을 자기 종으로 부린다. 그러나 그러면 안된다. 즈불론이 잇사갈의 종이어야 한다. 자연적인 사람과 겉사람은 항상 내적인 것들을 섬겨야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보면, 탈무드등을 읽어보면 랍비들이 사업가들을 지도하지, 사업가가 랍비를 지도한 적은 없다. 그런데 오늘날은 수많은 연구소들을 즈불론이 거느리고 있다. 여러분들은 공부를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면, 절대로 즈불론의 노예가 되면 안된다. 그러면 지구의 위기가 온다.
7) 단 : 바예쩨
영적 여정, 거듭남의 여정을 가는데 있어서 "나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가기 위해서는 분명한 목적지, 삶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
바예쩨에서는 유일한 삶의 목적, 야곱의 사닥다리 비전, The Man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야곱의 비전을 통해 하나님의 집을 세울 수 있게 되고,
하마콤 "הַמָּקֹום" 이곳이 하나님이 계신 곳임을 알 수 있게 한다.
דָן 단 : 심판과 판단
창49:16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דָּן יָדִין עַמֹּו 단 야딘 아모 : 단은 그의 백성을 심판할 것이다
- 야딘 : 심판하다 = 단, 같은 말이다
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단은 심판하고 판단하는 부르심이기에, 거의 메시아급의 부르심이다. 단은 길 옆의 뱀, 독사가 된다. 단 지파가 한 번 잘못되면 다 죽인다. 북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 단 지파이다.
판단이 잘못되면 정죄가 되어서 다 죽인다. 단 지파가 거의 메시아급이라는 소리가 뭔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어서 그 백성을 심판한다. 단은 메시아와 협력하는 가장 핵심적인 생명이다. 유다도 달렛, 단도 달렛이다. 유다와 단은 굉장히 연결되어있어서 같이 일하게 되어있다. 성막을 건설하는 가장 핵심적인 사람이 베짤엘과 오홀리압이다. 베짤엘은 유다 지파 출신이고, 오홀리압은 단 지파 출신이다. 유다와 단은 성막, 하나님의 몸, 교회를 건설하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아급으로 생명 중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메시아의 생명을 사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 내 안의 단의 생명이 축복을 받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내가 어느 부르심인 것 같아요? 하면 유다, 요셉, 이런 것만 꼽는다. 이것이 다 내 안에 있는데, 특히 내 안에 가장 강력하게 있는 것은 실제로 단이다. 판단하는 것이다. 이게 가장 강력하게 있다. 이게 잘못되면, 내 안에 있는 생명들을 다 죽인다.
북이스라엘, 10지파를 통채로 다 죽인 것이 단이다. 단은 원래 유다 지파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 유다 옆에 블레셋을 막아주는 위치에 단 지파의 땅이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 삼손이 살았던 것이다. 삼손이 맨날 가서 나귀 턱뼈로 블레셋 때려잡은 것이다. 단 지파가 예루살렘, 유다 지파를 지킨다. 굉장히 파워풀한 것이다. 여기서 지키려니까 계속 블레셋이랑 싸워야 한다.
그런데 단 지파가 판단을 자기 중심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유다를 지켜야 해? 하면서, 판단하는 것이 자기 중심적으로 되버리면, 이 단도 정신이 나가서 나를 위한 최고의 장소를 찾아서 헐몬 산 밑까지 올라간다. 맨 꼭대기까지 말이다. 거기 가니까 아무도 괴롭히는 자들이 없다.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장백산 밑으로 간 것이다. 헐몬 산이 가로막고 있으니까 외적들도 안 들어오고, 물이 콸콸 솟아난다. 밑에는 물도 없는데, 여기는 물이 솟아나고, 수풀이 우거지고, 거기서 나 좋다고 하면서, 무슨 짓을 하냐면, 유다야 니들만 하나님 섬기냐, 왜 꼭 성전 있는 너에게 가야 하느냐? 왜 네가 주관해야 하냐고 하면서 단이 머리가 헤까닥한다
오홀리압은 브살렐이 시키는대로 해야한다. 브살렐 밑에 붙어있어야 하는데, 너만 만드냐? 나도 만든다고 하면서 헐몬 산 밑에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모든 북이스라엘을 그리로 오게 만들어서, 북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게 만든다. 단 지파는 무섭다. 여러분 속에 단 지파가 잘못되면, 단 지파가 축복을 못 받으면, 여러분들의 10/12이 다 아작난다. 그러면 단 지파는 뭔가?
항상 판단, 심판이라는 것은 바예쩨이다. 바예쩨에서 야곱이 The Man의 비전을 본다. 사닥다리의 비전을 본다. The Man의 비전이라는 것은 다른게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 대한 비전이다. 하나님의 집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웃이 나다. 모든 진리는 다 이웃이 나다라고 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속에서 나와야지, 진리 자체로 판단하면 안된다.
진리는 진리로만 판단을 하면 큰 문제가 발생을 한다. 항상 사랑에서 나온 진리가 중요하다. 진리 자체로만 하면 항상 싸움만이 일어난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가장 극악하고, 가장 잔혹한 싸움은 다 진리로 싸우는 싸움이다. 이게 진리다라고 하면서 싸우는 것이다.
저도 이런 싸움을 많이 해봤다. 이게 진리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이 진리가 중요하다. 내가 살기 위한 진리는 다 다른 사람을 죽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리를 좋아한다. 단 지파 같다. 왜냐면 진리로 내가 구원받기 때문이다.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진리를 찾는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와서 네가 진리냐? 네가 맞냐고 맨날 물어본다. 그러면 주님같이 헷갈리게 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진리라고 해버리고 딱딱 증명해버리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것 같기도 하다가, 사랑한다고 하다가 죽어버린다. 내려와봐라, 그러면 믿겠다고하는데 죽어버린다.
예수님은 사랑에서 나온 진리이시다. 자기를 위한 사랑을 가지고 진리를 이야기하면, 단 지파가 이상하게 된다.
삼손이 다 자기를 즐겁게 하는 들릴라 사랑하다가 다 이상하게 된다. 들릴라 때문에 아주 생 난리가 난다. 자기를 기쁘게하고, 자기를 위한 사랑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판단이 정죄가 되어서 다 망해버린다
단 지파와 가장 비슷한 사람이 디나이다. 디나도 세겜의 추장의 아들이 열렬히 사랑한다. 그게 사랑인 것 같지만, 자기를 위한 사랑은 항상 큰 문제를 일으킨다. 그것을 단 지파라고 한다. 단은 다 심판과 판단을 하는 것이지만, 절대로 사랑에서 나온 진리로 심판한다. 자기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나다라고 하는 그 사랑에서 나온 심판이 있어야한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창49: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이게 단 지파에 있는 엄청난 것이다. 유대인들이 지금도 매일 이 대목을 기도한다. 이게 놀라운 것이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니이다라고 하는데, 예슈아를 기다린다고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매일 기다리는 것이 예슈아를 기다린다. 이게 정말 놀라운 것이다. 당신의 예슈아를 기다립니다.
단 지파가 축복을 받으면, 완전히 예수님만을 기다리는 삶이 된다. 왜냐면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단 지파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다려야 한다. 모든 판단과 정죄, 심판은 사랑을 기다려야 한다. 단 지파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8) 갓 : 바이슐라흐
야곱이 에서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사람은 반드시 자기 영혼이 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영혼이 몸을 다스리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디나 사건에서처럼 몸이 영혼을 이용하는, give to receive, 받기 위해 주는 것을 강간이라고 한다. 시므온과 레워, 순종과 훈련으로 이것을 단칼에 죽여야 한다.
영혼이 몸을 다스리는 삶을 살때 샬라흐, 보냄 받은 자, 사도의 삶을 살게 된다.
단 지파와 짝이 되는 것이 갓 지파이다
גָד 갓 : 군대
사람이 생명을 주려는 사랑에서 나온 판단을 할 수 있게되면, 군대가 생겨난다. 바이슐라흐에서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를 본다. 군대가 출동한다. 천사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갓 지파이다. 그래서 단 지파가 먼저 오는 것이다.
사람이 판단하는 영역에 있어서 바예쩨의 비전 속에서, 생명을 주려고 하는 영역 속에서 판단하지 않으면 갓 지파가 주어지면 안된다. 내 몸 속에서 군대가 일어나지 않는다. 단이 없이 갓 지파가 일어나면 막 우상숭배를 하게된다. 군대를 동원해서 자기가 사랑받으려고 하는 일을 벌이게 된다. 그래서 먼저 단 지파를 축복을 한다. 단 지파는 오직 예슈아만을 기다리게 되어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먼저 추구하게 되어있다. 판단하고 정죄하기 전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먼저 추구하는 것이다
어떡하면 내 생명을 줄까? 자기가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나면 하나님이 당신의 군대, 천사들을 보내신다.
9) 아쉘 : 바예쉐브
10) 납달리 : 미케쯔
11) 요셉 : 바이가쉬
12) 베냐민 : 바예히
이 바예히 주간에 이 아들들의 생명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열두 가지 생명을 살겠다고 하면 이 생명을 주신다. 이 자잘한 축복을 다 몰라도, 달라고 하면 이 축복을 다 순서대로 주시고, 이게 인격이고, 살맛나는 것이구나 하는 일들이, 축복이 자꾸 벌어진다
지금까지는 나를 살려고 했기 때문에 하늘의 축복이 필요가 없었다. 나를 사는데는 하늘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하나님, 나는 이스라엘입니다. 그 이야기는 내 안에 열두 개의 생명이 있는데, 이것을 살아낼 것입니다
즈불론, 잇사갈을 서포트하는 겉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면 내 안의 비지니스맨들이 살아나서 비지니스를 잘 하게 된다. 속사람을 서포트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 내 삶에 막 일어난다. 토라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것등은 핑계가 안된다. 아직 즈불론이 살아나지 않은 것이다. 즈불론이 살아나면 토라공부할 시간 많다. 즈불론이 자연적인 것들을 팍팍팍 처리해준다.
그런데 즈불론이 살아나지 않으면 자연적인 일이 처리가 안된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것이다. 그냥 해안가에 앉아서 배 타고 다니면서 못 가는데가 없다. 여기저기 다 다니면서, 아무리 문제가 심각하더라도, 해결하려니까 멀리 있다는 소리이다. 즈불론이 배 타고 슉 다녀온다. 안 그러면 잇사갈이 걸어갔다 와야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바다가 막혀있어서 가지고 못한다. 즈불론이 다 처리해준다
맨날 엉뚱한 나, 정체불명의 나를 살고 싶어했다. 나는 도대체 뭔데 나를 그렇게 어떻게 했다고 하는가? 그게 도대체 뭐인가? 그 삶에서 완전히 나오는 것이다. 창세기는 정말 위대한 것이다. 내가 살아야 할 생명이 이것이구나. 라고 딱 하면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신다. 축복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도움이다.
그런데 내가 가치있는 생명을 선택해야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정체불명의 삶을 살겠다고 하면 그것은 지옥, 사탄이 축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삶에서 생명을 먼저 선택하면 축복은 자연히 온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가만히 있어도 야곱이 축복하고 간다
그래서 우리는 야곱의 죽음을 통해서 이중 구조를 볼 수 있고, 야곱의 죽음을 통해서 야곱이 무엇을 완성했는지를 볼 수 있다. 자기를 완성한 것을 아들에게 넘겨주는 일들을 이번 주에 모았다. 열두 아들에게 야곱이 축복하는 것들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בָרַךְ 바라크 : 축복, 아들(בַר)이 적용(ךְ)되는 것
아들들에게 축복하는 축복이다. 야곱이 재산이 많았는데, 자식들에게 준 축복은 재산이 아니라 언어, 말을 주었다. 그래서 너의 삶들에 바라크, 아들이 적용되기 원한다고 하는 것이다. 야곱은 언어, 그 말, 영의 세계를 아들들에게 전수하고 떠난다.
사람이 살아야 할 신성, 열두 가지 신성, 열두 가지의 생명의 종류
여러분 안에는 군대가 있다. 부정적인 이야기로는 귀신이 들어와도 군대로 들어오는 것이다. 여러분 안에는 군대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가 있다. 주님이 너희가 나보다 더 큰 일을 행하리라고 한다.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군대이다. 갓 지파 사람 중 유명한 사람이 엘리야이다.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파워를 지닌 갓 지파 출신이다. 군대라는 뜻이다
어떠한 장애물도 폴짝폴짝 뛰어서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영, 우리 안에 자유로운 영혼, 암사슴, 납달리이다. 이 납달리가 자유롭게 뛰는데 불구하고 무슨 소리가 나오는가?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이다. 주는 사랑에 대한 갈급함, 굶주린 것들을 뜻하는 물어뜯는 이리이다.
제에브는 자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베냐민은 자인하는 자이다. 자기에게 끌어오고자 하는 굶주림이 아니라, 비추기 위한 굶주림이다. 주님의 신성(א)에 대한 굶주림을 가진 자이다. 제에브는 비추는 빛과 아브로 이루어져 있다. 아버지의 신성을 향한 굶주림을 뜻하는 것이 베냐민이다. 비추는 사랑에 대한 갈망을 뜻하는 것이 베냐민에 대한 부르심이다
- 벤 포라트가 2번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