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대하여
제3회 대상
구 활
나는 외로워서 글을 쓴다. 내 글은 모두 외로움의 소산이다. 만일 외롭지 않았다면 단언하거니와 절대로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일 때도 물론 외롭지만 둘이 있을 때도 외롭고 다중이 꽃밭의 꽃처럼 모여 있을 때도 역시 외로움을 느낀다.
아내와 함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란 영화를 보러 갔었다. 대형 화면에 음향도 좋았고 분위기도 그럴만했다. 캄캄한 객석에서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니 내 옆에 앉았던 아내는 간 곳이 없고 나 혼자 갯세마네 동산을 배회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수한 채찍질을 당하며 언덕 위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당신의 그 쓸쓸함과 외로움이 내 가슴으로 전이되어왔다. 나는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놓고 대신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내 옆에 매달려 있는 바비도의 귀에 들릴만한 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쳤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외로웠고 아내의 손을 잡고 영화관 밖으로 나와서도 몹시 쓸쓸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어떤 이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어떤 이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한다. 모든 예술의 탄생은 외로움이 빚어낸 영근 결실인 셈이다. 아무리 외롭고 괴로워도 선천적으로 예술 쪽으로 기울지 못하는 사람들은 차선책으로 어리광을 부리게 된다. 어리광은 혼자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외로움을 이기는 묘약 한 사발이다.
종교는 외로운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성황당의 돌무지며, 바라보고 두 손 모으는 교회의 종탑이며, 외로운 사람끼리 모여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탑돌이 석탑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어쩌면 종교는 모든 중생들이 부리는 어리광을 조직적으로 받아들이는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사람들의 기대고 싶은 어리광이 없었으면 아예 종교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외로워야 한다. 외롭지 않으면 예술도 없고 종교도 없고,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인 사랑도 우정도 없다. 나는 얼마 전 우리 내외의 품을 떠나 살고 있는 딸아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지은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쓸쓸한 감정은 홀로움이 차려주는 최상의 만찬이다. 너희들도 자주 외롭고 쓸쓸한 감정에 휩싸이기 바란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시를 읽고, 그림을 보면서 자주 눈물을 흘리기 바란다. 예술적 감수성에서 비롯되는 눈물은 인류를 사랑하게 되고, 또 동물과 식물을 사랑하게 되며, 나아가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삼라를 보듬고 껴안을 수 있는 묘약을 마시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외로움은 민초들만 느끼는 쓸쓸한 감정이 아니다. 임금도, 신하도, 성직자도, 어머니도, 유생들도 그들의 외로움을 붙들어 맬 의지처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옛 선비들의 경우를 보자. 원래 유생들의 삶이란 숲이 없는 들판에 지은 기와집처럼 햇빛을 받아주는 그늘이 없다. 그들은 햇빛에 노출되어 있는 이끼나 음지식물처럼 늘 불안해한다. 그래서 평소 맘속으로 하대하고 있던 뜻이 맑은 스님들을 가까이 끌어당겨 마음을 의탁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강진으로 귀양 온 다산이 주역과 기신론에 빠져든 채 술주정을 하곤 백련사 혜장의 번뜩거리는 형안을 기특해하고, 아들뻘인 그에게서 위안을 얻으려 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더러운 현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유학이라고 내세우고 불교의 무와 공을 비판하면서도 혜장과 초의를 가까이하려 한 것은 유현한 그늘을 만들어 그 속에서 햇볕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낙향한 회재 이언적도 마찬가지다. 그는 경주 안강 자옥산 기슭,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 홀로 머물면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인 독락당을 지었다. 회재는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흘러가는 개울물을 벗하기 위해 시야를 가로막는 담장을 헐고 그곳에 나무 창살을 달아 귀에 들리는 개울물 소리를 눈으로 들었다.
그러는 한편 회재는 독락당 뒤에 있는 정혜사의 스님이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있도록 자신의 독락당 안 계정溪亭을 산 내 암자로 비워주었다. 그래도 스님의 발걸음이 잦지 않자 계정이란 현판 옆에 양진암養眞庵이란 현액을 달아 외로운 낙향 선비의 집에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를 넘쳐나게 했다. ‘억불숭유’란 기치 아래 유불儒佛이 유별한 시대였는데 왜 그랬을까. 외로움과 쓸쓸함을 이겨내는 한 방편이었으리라.
감옥은 외로운 마음을 진열해둔 표본실이다. 그곳에는 비단 외로움뿐 아니라 그리움 지겨움 미움 그리고 황량함까지를 농축해둔 전시실이다.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은 여럿이 함께 살면서도 그 여럿을 인정하지 않는다. 혼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끊임없이 ‘바깥세상’을 지향할 뿐 실제 생활하고 있는 ‘안 세상’은 돌아보지 않는다.
결국 감옥은 외로움의 부피가 커지면서 그리움만 켜켜로 쌓이는 곳이다. 그리움은 만남을 통해 해소되지 않으면 사람의 심성이 황폐해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감옥은 그런 곳이다. 감옥 속의 겨울은 서로가 서로의 체온이 필요하여 끌어당기는 인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계절이기에 그런대로 지내기가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감옥의 여름나기는 그야말로 지옥이다.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고 체온이 체온을 싫어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옥 속의 외로움은 미움으로 변주되어 동료라는 유대감마저 상실하게 된다. 유대감의 상실은 바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란 진리를 거부하는 것과 통한다.
연 전에 삼십 년 넘게 근무해 오던 직장을 떠나면서 이런 글을 써 사보에 기고한 적이 있다. 재직하고 있을 적에는 일상이 바쁜 탓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외로움을 많이 타진 않았다. 그때는 외로움이란 단순하게 ‘수컷이 암컷에게 보내는 연가’의 한 소절이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막상 실직이 주는 외로움의 강도는 그게 아니었다.
“회사를 떠나던 날, 바다를 연상했습니다. 여러명의 동료들과 함께 뛰어내려 우선은 동아리를 지울 수 있으나 결국 혼자가 되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바다의 두려움은 파도와 추위가 아니라 외로움이란 걸 느끼게 됩니다.
혼자라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나무와 풀꽃들 그리고 산새들과 바람에게도 얘기를 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직 저는 홀로서기가 어렵습니다만 곧 고독 속에 함몰하여 일체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가 되면 하늘과 그리고 별들과도 교통할 수 있겠지요.”
실직 후 나는 정말 외로웠고 쓸쓸했다. 하늘과 땅이 내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울고 싶지만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아침 먹고 만나는 산山만이 위안이었다. 그래서 <산에서 운다>라는 글 한 편을 쓰면서 산에서 죽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이들에게는 “너희들도 자주 외로워하고 쓸쓸한 감정에 휩싸여 눈물을 흘리기 바란다”고 당부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으니. 결국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고 아무도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장사는 없는 법.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낙향한 선비가 산천을 찾아 나서듯 나는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유산들을 찾아 답사라는 길떠남의 신들메를 조여 맸다. 답사는 외로움을 떨쳐 내는 작업이 아니라 더 외로워지는 길이었다. 나는 이렇게 외로운 작업을 몇 년째 계속하고 있다.
답사에서 건진 이삭들을 글로 쓰고 그림을 그려 내가 봉직하던 신문에 이 년 동안 일 백회를 연재했다. 지난번 연재가 최종회에 이르렀을 때는 마지막 답사지를 고향집으로 정하고 내 외로운 심정을 이렇게 노래했다.
“사실 답사를 시작한 건 외로움 때문이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철저히 외로워지는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 떠났다가 홀로 돌아왔다. 보아라.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오고, 가진 것 없는 빈 마음들도 저물 무렵이면 주막 어귀로 모여든다. 사람만 외로움을 타는 것이 아니다. 벌과 개미가 모여 사는 것도, 바람과 구름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흘러가는 것도 모두 외로움 탓이다.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혼자 울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겨울바람에 맞서는 문풍지의 떨림 같은 것이며 그래도 산다는 것은 눈물로 부르는 슬픈 노래 같은 것이다. 삼라를 주관하는 하나님도 더러 눈물을 흘리시는 까닭도 외로움 때문이란 걸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 때문에 터득했다. 그리고 ‘유적답사’라는 것도 사실은 자연이란 스승이 불러주는 ‘받아쓰기’란 것도 그때 알았다.”
이제 다시 길 떠나게 되면 산부인과 의사인 친구에게 청진기 하나를 빌려 카메라 대신 그걸 메고 답사에 나설 참이다. 바람맞이 언덕에 홀로 서 있는 등 굽은 소나무는 얼마나 외로운지, 해바라기와 달맞이 풀은 무엇이 그렇게 그리워 해와 달을 끊임없이 쫓아다니는지, 나무와 풀꽃들의 상심한 야윈 가슴에 청진기를 대보고 또 물어도 볼 것이다. 그래서 나의 외로움이 그들 풀꽃들의 그리움을 능가하는지를 한번 재볼 작정이다.
첫댓글 나는 외로워서 글을 쓴다. 내 글은 모두 외로움의 소산이다. 만일 외롭지 않았다면 단언하거니와 절대로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답사를 시작한 건 외로움 때문이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철저히 외로워지는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 떠났다가 홀로 돌아왔다.....어쩌면 산다는 것은 겨울바람에 맞서는 문풍지의 떨림 같은 것이며 그래도 산다는 것은 눈물로 부르는 슬픈 노래 같은 것이다. (본문 부분 발췌)
어떤 결핍과 어떤 허기와 어떤 그리움과 어떤 외로움이
저마다 글을 쓰게하는 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 어쩌면 산다는 것은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구활 선생님의 '외로움에 대하여 '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늘 외로움은 떨구어 내지 못하지요
외로움을 이겨낼 수있는 정답은 미지수로 남게 돼요
혼자 사색하는 습관이 배어 있답니다
사색하며 도움을 받는게 저는 최고의~~공감하는 글
잘 읽고 나갑니다
@송심순 맞아요!!! 외로움은 이겨내는 게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것, 스며들어야 하는 것인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