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환자 나무
조성순
시내버스를 두 번 타고 대청댐까지 갔다. 대청호 둘레길을 걷는다. 칡꽃이 향기로운 물가에 백로가 날고 있다. 넓은 코스모스 밭에 드물게 핀 꽃송이, 아직 제 철을 만나지 못했음이다. 야박하게 부는 바람에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넷 제로를 지향하는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간다. 국내 유일 ‘넷 제로 마을’은 대전 대덕구 미호동이다. 물론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다. 대청댐 물가에 있는 미호동은 1950년대 섬 아닌 섬이었다. 교통수단은 오로지 배뿐이었고 배를 두 번씩 타야 신탄진에 나갈 수 있었다한다. 1980년 대청댐이 생기자 비로소 도로가 생겼고 전기도 들어왔지만 삶의 터전을 잃고 고향마을을 떠나야 했던 이들도 있었다.
그 마을에 청남대 별장을 지키던 파출소 자리가 ‘정다운 마을쉼터’에서 지난 5월 ‘넷 제로 공판장과 도서관’으로 거듭났다. 사회적 협동조합 ‘에너지 전환 해유’ 활동가들과 녹색연합 등 5개 단체의 협약과 마을사람들의 협조로 운영되고 있다. 공판장에는 마을 사람들이 직접 제배한 농산물과 친환경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며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이층 도서관으로 간다. ‘월든 기획전’으로 책 내용이 그림으로 전시되고 환경, 에너지전환, 기후위기와 관련된 많은 도서들로 마을풍경처럼 초록향기가 물씬 난다. 이 도서관에서 첫 기획으로 『월든』을 선택한 것은 월든 호숫가의 정경이 미호동 마을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라 한다. 도서관 통유리 창으로 바깥풍경이 오롯한데 거기 창밖으로 이어진 멋진 테라스도 있다. 테라스에 의자를 놓고 앉아 눈빛을 반짝이는 한국양서파충류협회 문광연 이사의 소개로 우리는 오늘 ‘월든’에 입성할 수 있었다. 빗방울 떨어지니 재빨리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 저런 열정으로 장태산 이끼도롱뇽이 알에서 부화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발견한 것이리라. 미호동을 소개하던 방송에선 멸종 위기 종 맹꽁이합창을 들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때가지나 아쉬웠다.
낯선 단어 ‘넷 제로’는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에 맞먹는 환경보호 활동을 펼쳐 실질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것이라 했다. 나무를 심거나 풍력ㆍ태양력 발전과 같은 청정에너지 분야에 투자해 오염을 줄이자는 세계적인 운동으로 기후위기가 심각한 오늘, 우리 모두 행동으로 옮겨야 할 일인데 미호동에서 시작을 하니 본받을 일이다.
거리에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다. 녹색연합 친구들과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대청댐 물가를 여유자적 거닐다 도착한 도서관. 입구 한쪽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벤치가 있고, 한쪽엔 낯선 나무 두 그루가 양팔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계절에 맞게 단풍드는 나무쯤으로 지나쳤을, 참나무 같기도 하고 아카시아 잎사귀 같기도 하고 밤나무 꽃 같기도 한 그 이름은 ‘무환자나무’였다. 뒷동산에만 가도 수많은 초목이 있는데 과연 이름을 아는 나무와 풀은 얼마나 될까? 자세히 보고 이름을 알아보고 그래야 비로소 ‘네 이름을 불러주어 꽃이 된다.’하지 않던가.
넷 제로 마을도 그랬다. 대전에 살면서도 알아봐 주지 못했다. 대청댐과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취백정>은 제월당 송규렴이 말년에 제자를 모아 학문을 가르치던 강학처였다. 흙담에 어우러진 탱자열매 노란빛에서 옛 학동들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더 아래쪽으로 가니 조선 고종 때 세운 소박한 효자비<효자정려각>에 다다랐다 기품 있는 소나무 두 그루 아래에 멈춰서 잠시 효에 대해 달라진 시각을 생각해본다. 유서(由緖)깊은 문화재가 마을의 뿌리가 아닐까. 더불어 이 아름다운 풍경을 지켜야 하는 우리의 무분별한 행동을 돌아본다. 오늘도 텀블러 챙기지 못한 무심함이라니 솔직히 편리함이 항상 환경문제를 앞선다.
도서관을 지키는 ‘무환자나무’는 지리산 하동에서 20살이 넘은 상태로 이식을 했다고 한다. 오래전 인도인들이 빨래할 때 양잿물처럼 사용했다는데 우리나라도 아이가 태어나면 오동나무 심듯 무환자나무를 심어 비누대신 사용했다지만, 편리한 제품이 쏟아지면서 점차 사라져 이젠 귀한 나무가 되었다. ‘인도의 비누’라는 나무열매는 물과 만나면 계면활성제가 나와 화장품원료가 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염주나무라 불리며 염주로 사용했다니 이미 열매의 효능(코로나 시대 손 소독)을 알았던 시대를 앞서간 지혜로운 조상님을 둔 우리들이라며 뿌듯해한다. 나도 열매를 사다 끓여 설거지를 해본다. 그릇이 뽀드득뽀드득해서 참 좋다.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미호동에서는 ‘생태마을 넷 제로 공판장과 프리마켓’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대전의 명소 대청댐 가에 아름다운 마을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다 같이 ‘넷 제로’로 향해 갈수 있으면 좋겠다. 갸우뚱하던 탄소중립 넷 제로라는 단어도 이젠 잘 이해하고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참 다행이다.
탄소중립도 제로 웨이스트 가게도 무환자나무도 낯설지 않은 미호동 사람들에게 물었다. 넷 제로는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어떤 이는 쌀 · 누구는 나 자신 혹은 시작 · 그리고 마을 · 활력소 · 미호동이라 답한다. 나에게 묻는다면 '무환자나무'라 하고 싶다. 소프넛 열매를 낳는 나무, 방방곡곡에 무환자나무를 심어 그 취지와 쓰임새를 알리고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시작으로 전국이 ‘아름다운 미호동’을 닮기를 기대해본다.
《수필미학》 2022 가을
기획특집<생태수필>
첫댓글 무환자나무
궁금증이 풀렸 습니다
생태수필 ~
그 마을 풍경을 떠올리며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