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올해는 장마가 좀 늦은 편이었다. 가뭄이 오래 계속되어 이 근방의 농촌에서는 모내기 실적이 부진한 곳이 많았던 것 같다. 우리 고장의 부면장도 그런 사유 때문에 해직이 되었던 모양인데 나는 전연 그런 사실을 모르고 후임관계로 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잠시나마 기분을 울적하게 한 일이 있었다. 그 발단은 오랜만의 고향 나들이 길에서 생겼던 것이다.
며칠 전에 나는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정류소 앞에서 보통학교 후배인 K형을 만났다. 질금거리는 비를 피할 참인데 K형이 앞장을 섰다. 마침 가까운 곳에 다방이 있었다. 이런 촌구석에도 다방이 몇 개나 된다니 이제는 다방(茶房)이 아니라 다방(多房)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몇 패가 질펀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개 인근 마을의 낯익은 얼굴들이다. 볼일이 끝났어도 노닥거리다 보면 밑이 길게 앉아있게 마련이다.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이제는 다방출입이 예사라고 하니 다반사(茶飯事)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싶다. 자리에 앉자 K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아들 말씀이오 형님…….”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라야 그저 그렇고 그런 일일 터인데 마침 K형의 아들이 우리 학교의 졸업생이어서 화제가 그쪽으로 풀린 것이다. 그동안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 중이던 아들이 발령이 나서 마음이 놓인다는 얘기서부터 동창인 누구는 분만교사, 보충강사로 어느 학교에 근무 중이고 등등 주로 아들 친구에 관련된 몇 마디 얘기를 나누었다. 이어서 불쑥 군청의 간부급 중에서 누군가 아는 사람이 없느냐고 물어온 것이다.
나는 필경 무슨 부담스러운 부탁이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어서 대답을 주저했다. 그러나 30년이나 군청 소재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터에 안면 있는 간부 한두 사람 없다고 해서 납득할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의자까지 끌어당기며 자못 진지하게 나오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 뒷일은 별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간부 중에 제자가 한 사람 있다고 솔직하게 말해 버렸다.
나는 최근에 부임해온 어떤 과장을 생각하고 한 말이지만 사실은 이런 데서 내세울 만큼 탐탁한 생각이 드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 과장은 전에 내가 어떤 중학교에 있을 때의 학생이었는데 과장으로 승진해 왔다기에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마치 말투가 친구사이처럼 맞먹으려 드는 것이 아닌가?
말버릇이 잘못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나올 수도 있다고 이해는 하면서도 어딘지 탐탁치 않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또 내가 그 사람을 안다고 들먹였는지 아무래도 경솔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그것이 곤욕의 발단이 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속셈은 모르고 K형은 하여간 '사제지간'이란 말에 큰 기대를 거는 눈치였다. 짐작한 대로 K형은 어떤 인사문제에 관해서 나의 도움을 빌리려는 생각이었다.
“현재 이곳 부면장이 공석으로 있는데 금명간 후임발령이 날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후임으로 가까운 친지인 모 계장이 물망에 올라있는데 지방 유지들도 다 밀고 있으니 그 제자 과장에게 전화나 한 번 걸어 달라”는 것이다.
이 정도의 부탁이라면 별로 큰 부담을 주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더구나 물망에 올라있다는 사람은 나도 잘 아는 사람이다. 고지식하고 부지런하기로 잘 알려진 사람이며 중요부서의 계장도 고루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인품으로나 경력으로나 이런 기회에 마땅히 승진할 만한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구나 지방민들이 다 같이 믿고 있다지 않은가? 나는 전화를 꼭 걸겠다고 약속을 했던 것이다. 주무과장이 아니어서 기대는 하지 말라고 다짐도 해두었다. 그런데 전화를 거는 일도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다음날 나는 강의시간의 틈이 나는 대로 일삼아서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늘어졌는데도 과장과는 한 번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번번이 회의 중 아니면 출타 중이란다. 야속스런 생각이 들었지만 받을 사람이 없다는 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환에게 꼬박꼬박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과장이 들어오는 대로 전화를 걸도록 단단히 당부를 해두었다. 그런데 전화는 한 번도 걸려오지 않았다. K형은 금명간 발령이 날 것 같다는 말을 강조했었는데 이러다가는 행차 뒤에 나팔 격으로 발령이 난 뒤에 전화를 거는 꼴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 이튿날 나는 다시 단단히 각오를 하고 전화통을 잡았는데 이번에는 첫 호출이 직통으로 걸렸다. 이쪽이 누구임을 확실히 밝혔는데 저쪽의 응대는 “아! 난데…… 그래서……” 하는 식으로 어조가 별로 달갑지가 않다.
나는 갑자기 열적은 생각이 들어서 전화를 끊어버릴까 하다가 약속을 어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친걸음으로 용건을 간단히 말해버렸다. 나는 차분한 기분이 아니어서인지 인적사항에 관해서 충분히 설명을 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설명이 충분했다 하더라도 나는 상대편의 반응에 큰 기대는 걸지 않았을 것이다.
절차는 잘 모르지만 그런 인사가 과장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더구나 이런 경우 전화 한 통의 효력이 얼마나 있을 것인지도 의심스러웠다. 다만 K형과의 약속이 부담이 되어서 이틀에 걸치면서까지 힘겨운 전화를 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남의 부탁은 잡아떼지 못하고 선뜻 약속하고 나선 자신의 나약한 마음이 야속스러웠다. 야속한 약속이라고나 할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인데 저쪽에서 말을 받았다. 과장의 말은 이러한 전화에 대비해서 미리 연습이라도 해둔 것처럼 조리가 정연했다. 이번에 부면장이 직위해제 당한 것은 개인의 과오가 아니라 가뭄 때문에 모내기 성적이 부진한 직책상의 책임을 진 것이다. 해임된 것이 불과 며칠이나 되었단 말인가?
이러한 개인의 불운을 동정은 못하나마 기다렸다는 듯이 후임운동을 하고 다니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런 사람은 승진은 고사하고 도리어 견책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 자리는 6개월간은 그대로 공석으로 남게 될 터인즉 아무리 후임운동을 한다 해도소용이 없는 일이다.
직접 운동의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부질없이 그런 운동에 개입하는 사람도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내 앞에서니 말이지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과장이 말한 요지는 대개 이러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과장은 다소 흥분하고 있는 것인지 시종 높은 억양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대화라고 하기보다는 훈계를 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다소 곤욕을 느끼며 부면장이 해직된 경위를 전연 몰랐고 또 이것은 당사자가 직접 부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곡히 말했지만 어조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사실 나는 해직 경위를 전연 몰랐었고 또 K형도 거기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었다. 경위를 알거나 모르거나 약속을 너무 가볍게 한 것은 나의 실수였던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조리가 정연한 과장의 전화는 그럴만한 근거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인사문제로 진정 차 찾아온 지방대표자들에게 주무과장이 타이르는 자리에 그 사람도 자리를 함께 했었고 내가 받은 전화는 바로 주무과장의 훈계내용이었던 것이다. 마침 내가 그 시기를 맞추어서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복창(復唱)을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모교의 교사들은 가끔 제자들을 쫓아가서 추수지도(追隨指導)를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일은 가만히 방에 앉아서 제자의 지도를 받은 셈이 되었다. 좌수지도(座受指導)라고나 할는지? 수화기를 놓는 순간 전화통은 통화의 작동을 완전히 끝냈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한동안 출렁이는 물결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창밖에는 간간이 푸른 하늘이 드러나 있다. 올 장마철도 이제 천천히 물러가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마음처럼 변화무쌍한 구름떼를 몰고서 장마철도 이제 천천히 물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韓國隨筆,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