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태: 혹한 속에서도 움트는 희망
연일 한파경보가 내려졌제. 건물 안은 훈훈헌디, 밖에 나가면 얼음장 같은 바람이 살을 에뿌네. 어제 대문앞에 내놨던 폐박스 묶고 있는 노부부를 봤당께. 허리는 꾸부정허고 손끝은 얼어붙어부렀네. 아내시켜 따뜻한 음료 한 잔 드리고, 버릴 박스 몽땅 챙겨드렸제. 그제서야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에 살짝 미소가 번지더만.
“춥고 끼니 걱정돼 나왔는디, 요즘 박스 줍는 사람이 많아 얼매나 주울지 모르겄당게.”
할아버지가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말했어. 근디 그 말 속에 묵직한 삶의 무게가 배어 있더라고.
노부부는 80대가 넘었는디도 폐지 줍는 거 말고는 딱히 할 게 없단다. 하루 다섯 시간 넘게 돌아다녀서 삼일에 한 번 고물상 가믄 2만 원 남짓 손에 쥐제. 근디 그것도 난방비 내고 나믄 끼니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여.
“시청서 안 도와줘요?”
“공공사업인가 뭔가 일주일에 한 번 나가제. 근디 늙었다고 일도 잘 안 줘.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음 좋겄는디, 이제는 그것도 못혀.”
할아버지는 긴 한숨을 쉬더니, 폐지값도 많이 떨어져부렀다고 하셨제. 작년만 혀도 70원 하던 것이 이젠 40원밖에 안 한당께. 예전엔 텔레비전이라도 하나 주우면 삼천 원이라도 받았는디, 요즘은 폐기물법 바뀌면서 그것도 못 한단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어도, 살다 보면 또 살아지는 거제.”
할아버지 말이 귓전에 맴돌더라고.
전주 고사동 우체국 앞. 새벽 여섯 시.
한 아주머니가 두꺼운 외투를 여미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제. 이른 새벽부터 나온 사람들 틈에 끼어,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고 혀.
“2주 전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나오고 있제라, 어제 하루만 겨우 일자리 구했당게.”
중풍 맞은 남편이랑 고등학교 다니는 두 아들 둔 아주머니는 매일같이 인력시장에 나온다고 혀. 근디 요즘은 일거리가 영 없다더라고.
승합차라도 한 대 멈춰서믄 아주머니들 우르르 몰려가제. 혹시나 하는 맘에. 근디도 헛걸음일 때가 많아. 독감에 겨울까지 겹쳐서 일거리가 뚝 끊겨부렀단다. 설상가상으로 경기도 안 좋아서, 그나마 있던 식당 일도 구하기 힘들어진 거제.
40대 아주머니 하나가 말했제.
“요즘 같으면 서민들 어떻게 먹고 살라는 건지, 정말 앞이 깜깜혀.”
나는 뭐라고 위로할 말도 찾지 못하고, 그저 하늘만 벙하니 쳐다봤제.
겨울이 혹독허면 혹독할수록, 그 속에서도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있제.
하루 종일 폐지 주워도 라면 한 그릇(3,000원) 사 먹기 힘든 현실. 몇 시간씩 길거리서 추위에 떨며 기다려도 일자리 하나 건지기 힘든 나날들.
그래도 혹한 속에서도 꽃망울은 터지제.
꽃샘추위 속에서도 꽃 피우는 봄꽃처럼, 우리 서민들도 이 시련 잘 이겨내고 따뜻한 봄날 맞이할 수 있었음 좋겠제. 부디, 우리네 주름살이 활짝 펴지는 날이 오길 바라본당께.
2025.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