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식민지시대의 동요 음반(상)
매일신문
매일신문 입력 2013-09-17 11:17:43 수정 2013-09-17 11:17:43
'오빠생각' 부른 이정숙, 동요사에 큰 족적
동요는 어린이의 생각과 표현을 담아서 만든 가사와 노래의 혼합이지요. 우리 민족이 제국주의 침탈로 말미암은 시련과 고통에 허덕일 때에 당시 아동문학가들은 숱한 동요를 만들어서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주었습니다. 그 이름도 고결한 소파 방정환(方定煥'1899∼1931) 선생을 비롯해 홍난파, 윤극영, 정순철, 윤복진, 박태준, 윤석중 등 당대 최고의 아동문학가 및 작곡가들이 색동회를 조직하고 동요 보급과 확장에 노력했던 일들은 이제 아득한 신화처럼 여겨집니다.
동요는 1920년대 중반부터 대중들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상으로 보면 1926년 9월에 발표된 홍재유의 동요 음반 '할미꼿'과 '춤추세'가 첫 음반으로 보입니다. 그로부터 1939년 5월까지 약 13년 동안 230여 종이 넘는 동요 음반이 10개의 음반회사에서 제작발매가 되었습니다.
동요라는 부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왕성하게 음반을 발매했던 회사는 단연 리갈레코드사였습니다. 여기서 활동했던 동요가수들은 이정숙, 서금영, 이경숙, 최선숙, 원치승, 강한일, 녹성동요합창단 등입니다. 김복진은 동화구연 음반을 주로 발표했지요. 리갈에서 활동했던 작사 작곡가로는 윤석중, 선우만년, 이정구, 신고송, 윤복진, 홍난파, 원유각, 유기흥, 김성도, 박종선, 송완순, 유기흥, 김여수 등입니다.
두 번째로 동요 음반을 많이 제작발매한 곳은 빅타레코드사입니다. 빅타에서 활동했던 가수들은 김연실, 김순임, 윤현향, 강석연, 김정임, 전명희, 송보선, 정경남, 진정희, 계혜련, 신흥동인회 등입니다. 윤백남은 동화구연 음반제작에 참가했습니다. 빅타 소속 작사 작곡가로는 이정구, 모령, 정인섭, 정순철, 최순애, 박태준, 엄흥섭, 안기영, 윤석중, 홍난파와 일본인 중산진평입니다.
세 번째로는 콜럼비아레코드사였고 여기서 활동한 가수로는 이정숙, 채동원, 서금영, 최명숙, 이경숙, 이삼홍 등입니다. 작사 작곡가로는 윤석중, 홍난파, 박태현, 이원수, 방정환, 정순철, 유지영, 윤극영, 한정동, 윤백남 등입니다.
오케레코드사에서도 아동물 음반을 발매했었는데 동요 가수로는 김숙이, 정경남, 고천명, 조현운, 김소희, 전병희, 송보선 등이며, 작사 작곡가로는 박세영, 염석정, 김태오, 원유각, 목일신, 김성칠, 조현운 등이 활동했습니다.
닙본노홍과 같은 일본음반사에서는 홍재유(홍재후), 임건순, 이정숙, 서금영, 이경숙, 최명숙 등이 음반을 발표했고, 작사 작곡가로는 홍난파와 박태준이 전담했습니다. 이글레코드사에서는 서금영, 이경숙, 최명숙이 음반을 내었고, 그들을 위해 김태오, 김신명, 박노춘, 김수경(윤복진), 박수순, 홍난파 등이 작사 작곡을 맡았습니다. 시에론레코드사에서는 강금자, 신카나리아, 임수금의 음반이 보이고, 닛토레코드에서는 이종옥과 이정숙의 음반이 확인됩니다. 디어레코드에서는 강금자와 신카나리아의 동요 음반도 보입니다.
취입 동요 음반들을 가수별로 집계해 보면 누가 가장 최고의 동요가수였었던가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다취입가수는 단연코 50여 곡 이상을 음반에 취입한 소녀 이정숙(李貞淑)입니다. 그녀는 피아노 연주 2곡과 작사 1편까지 포함해서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한국 근대 최고 동요가수였습니다. 이정숙이 활동했던 음반사로는 주된 터전이었던 콜럼비아, 리갈사를 비롯하여 닙본노홍, 이글, 리갈레코드사 등 여러 곳이었습니다. 그만큼 이정숙은 한국동요사에서 동요 음악을 유성기 음반으로 취입하여 전국적인 동요 보급 확산에 크게 기여했던 인물입니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이정숙의 대표곡 '오빠생각' 1절)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