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주지 않는 짧은 가을! 숨은벽 능선의 품에서 해종일 느긋한 여유를 부려본다.
수억 년 자연이 빚은 거친 암봉에 가을이 내려앉은 장대한 풍경이 눈앞에 밀려든다.
모든 것을 털어내고 미련 없이 떠나는 가을의 생명들! 계절은 바람부터 달리 분다.
가을 햇살 정갈히 쏟아지는 마당바위에 격한 숨 몰아쉬며 오른 숱한 산객들!
그들의 일탈이 내일의 일상을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힘이 되는지도 모른다.
어느 해 겨울, 이 능선길을 홀로 올랐다.
그때 외롭고 절박한 벼랑에 거친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렸다.
그날 좌우로 흘린 능선들의 아찔한 전개 사이로 서늘한 긴장이 피어올랐다. 그때의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찌 보면, 다듬어지지 않은 이 산길은 자연의 거칠고 서늘한 매력을 맘껏 누리는 길일 터이다.
숨은벽에서 바라본, 도봉산 주봉의 위용과 위엄이 장관이다. 그 어디에 내놓은들 뒤질 것 없는 수려한 자태다
도봉의 오봉 역시, 수수만년 비바람이 깎아낸 기묘한 아름다움은 눈을 홀리고 마음을 뽑는다.
산은 지금, 일년 중 가장 붉게 물들어 뭍 가슴을 뜨겁게 하며,
회색빛 도심의 탁한 일상들을 지운다.
위로 오를수록 나뭇가지는 단풍을 떨군 채, 시린 바람마져 품고 있다.
수수만년 백운대와 인수봉의 화려한 그늘에 가려, 이름 없이 숨어 살아온 세월이 그 얼마였던가. 하지만 숱한 산객들의 발걸음마다 터지는 탄성과 환호 속에 가을 햇살이 그 설움의 세월을 마알갛게 씻는다.
그 산 굽이굽이 올라선 지금, 햇살 한 줌도 달리 느껴지고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의 거칠고 서늘한 매력을 맘껏 누리는 사이, 어느덧 하루 해가 설핏하다.
북한산 숨은벽 능선에서, 석등.
2024.10月 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