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8월 03일
文정부 ‘다주택자 = 죄인’ 낙인… 이념 앞세운 ‘부동산정치’로 전·월세 대란
다주택자, 임차가구 위한 공급·시장의 붕괴 방어 역할… 규제 ‘강화’ 盧 때 ‘자가율’ 하락, ‘완화’ DJ·朴 때엔 향상
與, ‘1가구1주택’ 내세워 다주택자 죄악시… 보유·거래세 강화→조세 전가→전·월세 인상으로 ‘정부의 실패’ 초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다주택자에게는 장기보유 특별공제 혜택을 축소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주택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들고 부동산 대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다주택자를 또다시 때리겠다는 것이다.
다주택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죄인’이라는 낙인과 멍에를 짊어져야만 했다. 다주택자인 김현아 전 의원의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임명과 관련된 논란은 김 전 의원의 자진사퇴로 마감됐다. 다주택자들은 정말 공직을 담당하면 안 될 만큼 우리 사회에서 배척돼야 할 사람들인가. 문 정부의 다주택자 정책은 정치·사회적 광기(狂氣)를 부르는 일종의 ‘부동산정치’다.
▲ 홍남기(왼쪽 두 번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낭독하고 있다. / 뉴시스
◇ 다주택자의 순기능
어느 나라든 ‘자가율(自家率)’은 3분의 2 내외다. 나머지는 임차가구로 존재하는데, 그들을 위해 주택을 공급하는 주체가 다주택자들이다. 이는 일정 비율의 임차가구가 유지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민간임대사업자로서 다주택자의 사회적 필요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들은 중장기적인 부침을 반복하는 주택시장에서 가격 상승기에는 생산을 촉진하고, 침체기에는 시장의 붕괴를 막아 시장의 반전을 촉발하는 투자자로서 기능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다주택자들에게 무시 못 할 역할을 부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만 다주택자에 대한 파괴적인 국민 정서가 강하게 형성됐을까.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문 정부의 ‘부동산정치’에 의한 공세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전세’라는 특유의 임대차계약 존재 때문이다.
이번 정부에서 계속 전달하는 메시지는 불로소득을 취하는 구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부동산뿐 아니라 주식·채권 투자로부터 얻는 소득이 불로소득인 것은 맞다. 하지만 불로소득을 차단하는 것이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과제는 아니다. 전 생애에서 근로소득으로 살아가는 기간은 짧다. 일반적으로는 대략 30∼60세 사이에 근로소득으로 살아가지만 은퇴한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그렇다면 은퇴 후 기간은 어쩔 수 없이 은퇴 전 근로기간에 쌓아놓은 자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중요한 소득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야 젊은층에 폐를 덜 끼치는 노후의 삶이 가능해진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불로소득으로 살아가야 하는 기간은 점점 늘어난다.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은 다양한 생애주기의 국민이 공존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따라서 사회악으로 몰아붙일 수 없는 긍정적인 기능을 갖는 것이다.
◇ 갭투자와 전세, 월세
사실 다세대주택이나 다가구주택 임대인들이 투기적 행태를 보인 일은 거의 없다. 이들이 전세를 통해 자본차익을 극대화하는 단기투자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월세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심지어는 국민의힘에 입당한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조차 “다주택자들에 대한 특혜를 해소해 매물을 풀리게 해야 한다”고 발언해 같은 당의 윤희숙 의원으로부터 “부동산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파트를 대상으로 전세나 높은 보증금을 안고 이뤄지는 갭투자다. 법인까지 설립해 자본차익에 기초한 투자수익으로 불로소득을 실현하는 갭투자가 문제다. 그런데 이런 갭투자가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시장에서 매매가격의 급등은 전세가의 상대적인 안정을 가져왔다. 서울의 경우 가격 급등기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30%대로 떨어져 갭투자의 매력을 둔화시켜왔다.
그런데 유독 문재인 정부에서는 부동산 수급 악화, 종합부동산세의 전·월세 전가, 임대차 2법의 복합적 작동 등으로 매매가가 급등하고 전세도 동반 상승해 갭투자의 매력이 계속 유지됐다. 이에 더해 다른 한쪽에서는 갭투자가 있어야 존재하는 전세를 얻으려고 목매달고, 정부에서는 저리의 전세금 대출 창구를 열어두고 있다.
두 가지 상반되는 바람, 즉 전세라는 임대계약 형태의 낮은 주거비 부담을 누리는 동시에 갭투자를 억제해 다주택자의 투기 행태를 억제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세가 안정적인 월세를 포기하고 자본차익으로 임대수입을 실현하는 계약이란 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 부정적인 측면에 몰입한다면 사회적으로 전세를 폐기하는 선택이 필요하다.
◇ 문 정부의 ‘부동산정치’
문 정부 들어 유권자의 마음을 훔친 ‘1가구 1주택론’은 경제정책 이전에 정치구호에 가깝다. 다주택자를 죄악시하는 ‘1가구 1주택 주의’는 시장경제에 기초한 어느 국가도 시도하려 하지 않았고 달성할 수도 없는 것이다.
과거에 토지공개념을 앞세워 비슷한 구호를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 시기에 자가율은 하락했다. 이번 정부 역시 집요하게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가율 향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자가율 향상은 오히려 규제 완화에 따른 가격 상승이 시장 신호가 돼 공급 확대로 이어졌던 김대중 정부나 박근혜 정부 때 일어났다. 이때가 바로 ‘플러스 섬’ 게임의 시기다. 다주택자에게 주택을 뺏어 뭘 도모하겠다는 시도는 성공적일 수 없다. 이는 부동산정치에 의한 이념 공세일 뿐 부동산경제에 입각한 시장 해법은 아니다.
다주택자 규제 수단으로 활용되는 종합부동산세 및 양도소득세 강화는 결국 임대사업자의 보유비용과 거래비용을 높임으로써 전·월세 앙등을 초래했다. 과세를 통한 부동산 규제가 실질적인 조세 부담을 임차인에게 귀속시키는 ‘조세의 전가’ 현상을 부른 것이다. 과세 중심의 규제 대책으로 다주택자를 혼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단선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조세의 전가’에 눈을 감은 결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완전한 ‘정부의 실패’를 드러냈다.
이 시점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주택시장을 지탱하는 중요한 투자자였던 다주택자들의 역할 위축이다. 지금처럼 보유·거래 과세 부담이 늘어난 상황에서 부동산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면 추가적인 투자를 기대하기는 더 힘들어진다. 무주택자들 역시 가격이 떨어지는데 굳이 주택을 사느라 목을 맬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부동산 침체기에 반전의 모멘텀을 만들어줄 수 있는 투자자는 다주택자들이다. 부동산정치에서 벗어나 다주택자에 대한 정치적 낙인과 경제적 규제를 걷어내기 위한 정책적 ‘유턴’이 절박하다.
이창무 /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전 아시아부동산학회장
문화일보
■ 세줄 요약
다주택자의 순기능 : 다주택자는 부침을 반복하는 주택시장에서 순기능적 역할을 담당함. 유독 한국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파괴적 국민 정서가 강하게 형성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치’와 ‘전세’라는 특이한 계약 때문.
갭투자와 전세, 월세 : 문제가 되는 건 법인까지 설립해 전세나 높은 보증금을 안고 자본차익과 불로소득을 실현하는 갭투자. 하지만 주로 월세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다주택자, 임대인들이 투기적 행태를 보인 일은 거의 없음.
문 정부의 ‘부동산정치’: 여당의 ‘1가구 1주택’론은 다주택자를 죄악시하는 ‘부동산정치’임. 다주택자를 혼내주기 위한 보유·거래세 강화는 전·월세 앙등을 초래하는 ‘조세의 전가’로 이어지고 결국 ‘시장의 실패’를 부름.
■ 용어 설명
‘자가율’, 즉 ‘homeownership rate’는 현재 거주하는 주택이 거주자의 소유 주택인 비율. 주택 단순 소유 가구 비율인 ‘자가 보유율’과 구분하기 위해 ‘자가 점유율’이란 개념으로도 쓰임.
‘조세의 전가’는 특정인을 목표로 세금을 부과했지만, 시장의 가격조정을 통해 타인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것.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부과가 임차인의 전·월세 인상으로 연결되는 게 대표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