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거리두기가 끝났다.
그리고 맞이한 새로운 봄. 사람들은 달뜬 마음으로 올해 봄을 유독 기대한다.
지난 3년간은 달리, 이번 봄에는 마스크 없이도 따뜻한 공기감을 가득 폐 속에 불어넣으며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온도 껑충 따뜻해진 지금, 온 지구가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변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내리는 포근한 햇살에 꽃봉오리들은 만개할 채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거리두기도 사라졌으니, 이번엔 조금 무리해보기로 마음 먹는다.
아이 둘을 데리고 남쪽나라로 가보기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봄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는 곳, 구례산수유 마을.
첫 봄의 향연을 느끼기 위한 우리의 목적지다.
구례산수유마을은 세종시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다.
생각보다 멀지 않아 일직선으로 쭉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카시트에서 잠을 청해줬기 때문.
지리산 노고단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산수유 마을에는
이미 봄이 온 듯, 기온은 15도를 훌쩍 넘고 있었다.
노란색. 우리는 이 색에서 봄을 느낀다고 한다.
긴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생명과 봄의 따스함 자체가 노란색을 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례산수유마을은 봄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도착하면, 바로 노오란 향연을 마을 어디서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구례 산동면은 전국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가 있는 곳이다.
3월 초부터 4월까지 샛노란 면모로 화사하게 봄을 알리는 이 나무는
이 지역 사람들의 중요한 관광자원으로도, 또한 영농 생계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70~80%가 이 곳에서 수확될 정도라고.
이번 여행의 반가움은 봄의 풍경을 만나는 것 외에 하나 더 있는데
광주에 거주하고 있는 친언니가 나를 보기 위해 이 곳을 갑작스럽게 찾은 것이다.
내 사진 모델이 되어주기 위해서일까,
생각치 못하게 노란색 가디건을 입고 온 언니가 어색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언니가 반갑기도하고, 용기도 가상하니 몇 컷 찍어주기로 한다.
3월 5일. 이 곳의 풍경을 일찍 알리기 위해 찾은 산수유 마을엔
아직 '향연'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모습이라 아쉬운 감이 들었다.
화사하게 만개하기에 1~2주 이른 시기라
포토존으로 유명하다는 둘레길 등 그늘 진 곳에는 나무 가지마다 꽃봉오리들이 옹알종알 만개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행이도,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는 이미 화사함이 가득했다.
꽃잎이 활짝 피어난 나무가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고, 길목과 길목 사이,
산수유 나무를 만나기 위해 이른 발길의 상춘객들이 기념 사진을 남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봄이 되면 자연과 더불어 자연에 빚을 내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분주해진다.
여행은 물론이거니와, 농사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새로운 결실을 맺기 위한 시작을 내딛는다.
산수유를 통해 삶을 꾸려나가는 구례 산동면의 주민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 곳의 주민들은, 힘겨운 코로나 시기를 이겨내고 3년만에 개최되는 산수유 축제를 준비하느라 무척 분주한 모습이었다.
올해는 3월 11일부터 19일까지 펼쳐진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터.
구례산수유축제 정보
1999년부터 시작된 구례 특화 산수유 축제.
구례군 산동면 온 일대가 노랗게 물들어 장관이 펼쳐진다.
2023년 축제 개막식은 3월 11일 오후 6시, 가수 장민호 등이 출연한다.
산수유까기대회, 스탬프투어, 꽃길 걷기 등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산수유축제 홈페이지 https://www.gurye.go.kr/tour/main.do)
산수유 축제는 1999년부터 시작돼 현재는 구례를 상징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축제 기간에는 수십만 그루의 산수유 나무와 함께
봄을 맞이하려는 관람객이 전국구에서 몰려들어 일대가 북적인다.
이 곳 산수유 나무는 구례군 산동면의 대평, 평촌, 반곡, 상위마을 등 지리산 기슭 대부분에서
자생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맨 꼭대기 마을이 산수유꽃 경관이 뛰어나다고 한다.
산수유마을은 이미 축제가 시작된 듯, 특산물을 판매하려는 상인들과
관광객들로 붐빈다.
상인들이 마련한 좌판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것은 '산수유 막걸리'.
산수유 열매를 닮은 영롱한 색깔이며, 모양새가 범상치 않다.
한병에 4천원. 무려 3병을 구매해 쟁여두기로 했다.
(이후 집에와서 먹어봤는데, 막걸리 색깔은 딸기우유를 닮은 연핑크에 향긋하고 새콤한 맛이 가미된 부드러운 막걸리였다. 추천!)
해당 술은 지역 특산물로 구례군이 2004년부터 개발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산수유 꽃을 보다 지치면, 산수유 문화관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문화관 안에도 산수유로 개발된 전통술과 특산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산수유 축제와 마을의 연혁 또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특별한 것은 없고 그늘이 져있어 쉬기 좋은 곳이다.
아이들이 즐기기에 좋은 놀이시설과 운동 시설이 적당히 마련돼 있어
꽃보기가 지겨운 아이들도 어느정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사실, 아이들을 데리고 꽃놀이를 다녀봤지만
어른들만큼 재미를 느끼진 못한다.
자연에 벅찬 아름다움을 느끼는 아이들을 만나기는,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곳의 한가지 아쉬운 점은, 워낙 봄맞이 여행지로 입소문이 난 곳이라
자연 그대로의 관광지로 보존해두지 않고
인공적인 조형물이 우후죽순 채워지고 있는 점이다.
나는 이런 인공적인 상징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자연을 주제로 한 여행지라면, 더더욱.
그래도 이 조형물은 산수유의 모양새를 하고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마을 곳곳엔 산수유와는 상관없는 빨간색 하트 포토존이며, 뭔가 인공적이면서도 촌스러운 조형물들이 가득했는데,
경관을 해친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곧 노란 빛으로 만발할, 산수유 마을의 언덕길을 올라본다.
산수유를 배경으로 한, 한 연인의 뒷모습이 예쁘다.
연인들의 예쁜 모습처럼, 산수유의 꽃말은 '영원불멸한 사랑'이라고 한다.
예전, 이 곳 마을의 젊은 연인들은 산수유 꽃과 열매를 꺾어다 변치않는 사랑을 확인하곤 했다고.
여담으로, 예전 구례 산동면 처녀들은 입에 산수유 열매를 넣고 앞니로 씨와 과육을 분리했다고는 한다.
어릴 때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이 작업이 반복돼 앞니가 많이 닳아있어
다른 지역에서도 산동 처녀는 쉽게 알아보았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도 전해내려온다.
구례산수유 마을의 언덕과 개울가, 주차장과 놀이터 등 이 곳에 산수유가 없는 곳은 없다.
마을과 길, 그리고 골목 사이에 산수유가 빈 공간을 메우고 있다.
이쯤되면 산수유가 마을을 잇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다.
산수유 나무는 3∼4월, 잎보다 먼저 핀다.
예전에는 약욕으로 재배됐으나 현재는 모양이 아름다움으로 관상수로 많이 재배된다.
또한 신비롭게도, 산수유는 꽃이 세 번 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담스러운 꽃망울에는 스무개의 샛노란 꽃잎이 돋아나있고, 이후 4~5mm가량 되는 암술이 고고한 모습을 드러낸다.
산수유마을이라고 해서 산수유만 있는 것도 아니다.
봄을 알리는 복수초가 산수유에 질세라 노란 얼굴을 말갛게 들이밀고 있다. 소담스럽기 그지없다.
마을 안에는 4층 높이의 전망대도 있는데, 올라가면 기대보다 트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산수유 나무가 드리워진 돌담을 걷는 가족들과 꺄르르 웃으며 사진찍는 연인들.
손잡고 놀멍쉬멍 거니는 노부부까지. 괜히 마음이 노랗게 벅차오른다.
다음주부터 이 넓은 거리 모두가 더 노란색으로 화려하게 변모한다니,
일찍 온게 아쉽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다음주면 이 곳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로 채워질 터.
아쉽지만 봄을 준비하는 산수유 군락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곧 봄이 노랗게 피다 못해 흘러내릴 구례 산수유 마을.
이 곳에서 이른 봄의 정취를 한껏 몸에 담고
곧 어지러울 정도로 만개할 봄을 기쁜 마음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