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부르짖으라 응답하겠고 Date 2016. 8. 14
Text Jrmh 33,1-3
(1)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1. 요즘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픽 경기가 화제입니다. 올림픽화제가 많습니다만 그 중에 북한선수단의 태도변화도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다른 나라 선수들과 어울리려고 애쓰는가 하면 우리 선수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수상 소감 중에 조국, 당, 지도자 등을 언급하지 않는 것도 이채로운 풍경입니다. 북한 권력 서열 2위라고 하는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의 편안한 옷차림을 보고 ‘북한 돌아가서 숙청당하는 거 아냐?’라는 걱정을 하게 할 정도입니다.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상황을 타개해 보려는 시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하지만 그런 태도변화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통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통일 가능성은 어느 정도나 된다고 보십니까? 여러분 마음 속 생각이 정답입니다. 왜냐하면 세상만사는 대체로 사람이 생각하는 만큼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다양한 상황을 가늠해보면 한반도통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 때 현 대통령이 직접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을 하였을 때, 통일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만 보이던 보수세력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등 관심이 반짝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지금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통일에 대한 그 어떤 논의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 해결해야할 문제들만 생각하면 통일은 영영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통일을 공식적으로 말하는 단체가 있다면 NCCK 산하 교회들입니다. 오늘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과 광복절기념주일을 맞아 이 어려워만 보이는 한반도통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2.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은 나라가 멸망당할 위기가 닥쳤음을 외치던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 중 일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던 당시 지도자들은 그 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책들을 만들어보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상황이 만들어진 이유와 추후에 전개될 과정을 말하면서 이 이유가 바로 문제의 핵심임을 깨닫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대책이 아니면 백가지 처방을 내린다 해도 다 효과가 없다고 외칩니다.
예레미야가 그렇게 눈물로 호소한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뒤에 나오는 4-5절 말씀입니다. “(4)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5)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하여”
예레미야는 당시의 위기상황을 자기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성 심판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나라 멸망의 위기는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에 어떤 노력도 무위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말입니다. 전쟁에 패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싸워보지도 않고 패배주의에 젖어 있는 말일까요? 당시의 왕 시드기야와 집권자들, 그리고 절대다수의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하였기 때문에 예레미야를 적전분열을 일으키는 중증 범죄자로 체포하여 구금하여 놓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가 말하려는 본 의도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성 심판이니 먼저 본질적인 문제인 우리의 범죄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과 깨달음에 상응하는 회개를 행동으로 보여서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말이 먹혀들지 않는 것이 당시 상황이었습니다. 당장 눈앞의 현실문제에만 매달려 있고 근본적인 해결책에는 무관심한 채 선지자 예레미야를 구금하여놓은 것은 예레미야라는 사람을 구금하여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가두어놓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갇혀 있다는 것은 난국을 타개할 유일한 가능성이 감금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나라가 망하는 이유가 군사력이 약해서일까요?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고 역사장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는 징기스칸의 몽고였습니다. 한 때 유럽까지 휩쓸어 한반도로부터 독일 헝가리까지를 영토로 삼은 나라를 이루었지만 그 제국은 1207년에 시작하여 불과 100년도 안 된 1297년에 이미 분열되어 무너지기 시작하여서 나중에는 중국의 변경국가로 전락합니다. 역사가들은 몽골제국이 멸망한 것은 제국을 지탱하고 융합하며 이끌어갈 정신문화가 빈약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신과 주술이 성행하고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기를 좋아하는 정신문화는 스스로 썩어 소멸되고 맙니다. 그런 저급한 정신문화가 국민들의 보편적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나라나 가정, 기업은, 부패하게 되어 있고 결국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신숭배, 미신과 주술의 성행, 사치와 향락으로 타락한 시민의식이야말로 위기의 주범이라고 눈물로 호소하면서, 아무리 급해도 이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외쳤던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들으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남북의 분단고착화와 극심한 갈등 및 대립이라는 중병에 걸려있는 우리 민족이 꼭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3. 딤후2,20-21에서 바울 사도는 그러셨습니다. 집에 있는 그릇은 무슨 재료로 만들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그릇이 제대로 쓰임 받기 위해 필요한 최우선선결과제는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고. 금으로 만든 그릇이라 하더라도 더러우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된 심령이 되고, 정결케 된 심령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들어 순종하며 살아 가정생활이 거룩해지고 사회생활이 성결하여지는 것이 복된 인생, 복된 가정, 복된 나라를 이루는 정도임을 알아 그 길을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이 나라 이 민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시위대 뜰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 또 임합니다. 두 번째 임하였다는 것은 32,1에 첫 번째 임하였었는데 33,1에 또 임하였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강조법입니다. 처음 임한 말씀은 생뚱맞게도 밭을 사서 매매증서를 꾸며 공개적으로 보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가 어떤 때이냐 하면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위협하고 있는 때였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나면 매매증서가 무슨 효력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망하게 하시겠지만 또한 이 나라를 반드시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또 주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2)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6)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상식적으로 판단해볼 때, 완전히 멸망한 나라가 다시 세워져서 영화로워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 같은 약소국가가 강대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 나라를 이룰 가능성이라고는 거의 0%에 가깝습니다. 무슨 힘으로 이미 망하여 70년 세월이 흘러간 약소민족이 거대 강대국의 지배로부터 독립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거듭해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10)...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71년 전, 일제 통치 35년이 됐을 때, 갑자기 일본이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해방과 독립을 얻었던 광복절에서 배워야 합니다. 그때 광복과 해방은 우리의 군사력이 강해져서 싸워 이긴 결과가 아닙니다. 우리가 갑자기 지혜로워지고 없던 단결력이 생겨서 똘똘 뭉쳐 얻은 결과도 아니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광복절은 말해줍니다.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이 없으니,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니, 우리가 할 힘이 없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못하는 것도 아니란 말씀입니다. 이것만 명심하면 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내게 부르짖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찾는 믿음의 마음, 하나님의 뜻을 즐겁게 수용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우리 온 동포의 마음이 되면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응답하시겠고, 그 마음이 우리 온 가족의 마음이 되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응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힘이나 세상의 방법으로 자기 욕망을 이루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굳건히 신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놓고서 한 걸음 한 걸음 주와 동행하며 가다가 보면 ‘네가 알지 못하던 크고 은밀한 일’ 도저히 될 것 같지도 않고, 된다 해도 문제만 많아 보이는, 남북통일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4. 예레미야가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은 그 자신의 목숨을 건 말씀입니다. 시위대 뜰에 구금되기도 하고 물 없는 구덩이에 들어가 있으면서 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몇 번씩이나 거듭해서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며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무엇을요? “부르짖으라, 응답하리라”는 말씀을요. 내 힘으로 안 된다고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이에게는 도와주시는 이, 부르짖으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선물로 광복을 주신 하나님을 감사하면서 선물로 통일한국도 주실 수 있음을 믿고 통일의 날을 꿈꾸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