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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과
영적 성장을 이룬 초대교회 공동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전 제자들에게 주신 선교 사명은 오늘날 각 교회마다 잘 이루어져가고 있는가? 이 시대는 뜻뜻 미지근한 라오디게아교회 시대라 하지만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완벽히 이루고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교회시대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선교 사명을 이루고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것이다. 예수님의 선교명령을 성취하기위해 교회 공동체는 어떤 준비를 해야할 것인가? 이 시대의 선교사명을 이루기위해 본받을만한 교회는 바로 초대교회라 할 수 있다. 그럼 초대교회의 모습은 어떤 공동체의 모습이었는가? 초대교회 공동체를 통해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영적 성장을 이루고 선교사명을 성취하는 교회가 되어야할 것이다.
초대교회 공동체 모습은 첫째 예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1. 예수 공동체
(행 1:9-11)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은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았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때 제자들이 누구를 쳐다보고 있었는가? 바로 예수님이셨다. 예수님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시고 하늘로 승천하실때까지 그들이 끝까지 쳐다본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다. 그 이후 예수님만 바라보며 예수님을 위해 살았고 예수님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예수님때문에 말씀을 배우고, 예수님때문에 기도하고, 예수님때문에 하나가 되고, 예수님때문에 사명을 다하고, 예수님때문에 증인의 삶을 살았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을 위해 살아간 예수 공동체였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재림교회들도 예수님을 위해 존재하는 예수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성도들의 삶의 중심이 오직 예수가 되어 예수님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가는 예수 공동체가 되어야할 것이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3:18-19)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리고 각 교회 성도들이 예수님만 바라본다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가는 예수 공동체가 되어갈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을 바라보며 산 결과 모든 성도들에게서 예수님 사랑, 예수님 냄새, 예수님 향기가 품어져나오는 예수 공동체가 되어야할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오직 그 주님을 닮은 예수 공동체였다.
“그들은 더이상 개인주의적 모임이나 조화되지 않고 다투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그들의 희망은 더이상 세속적인 위대함에 고착되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고, “한마음과 한뜻이 되”(행 2:46, 4:32)었다. 그들의 생각은 그리스도로 가득 찼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되었다. 마음과 품성에 있어서 그들은 주님과 같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들이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행 4:13) 을 알았다.”(행적, 45)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의 선교사명만 바라보고 살아가므로 개인주의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마음을 같이하여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고 그들의 생각이 예수님으로 가득 찬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의 마음과 품성이 예수님과 같이 된 것이다. 예수 공동체는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예수님의 사명을 이루어가고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을 만나는 예수 공동체인 것이다. 각 교회마다 예수 공동체가 되어야할 것이다.
두 번째, 초대교회 공동체는 말씀 공동체이다.
2. 말씀 공동체
초대교회가 계속하여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말씀이 있었기때문이다. 예수님을 사모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말씀이 있는 곳에 모였다.
(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말씀을 사모하여 모였고 말씀의 가르침을 받기위해 모인 그들은 말씀으로 영적인 충만한 힘을 얻게된 것이다. 무엇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영적인 성장의 비결은 바로 말씀에 있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사모하여 말씀을 배우고자 모였던 것이다. 나의 영적인 성장의 비결은 바로 말씀에 있다. 말씀을 가까이해야할 것이다. 날마다의 삶이 말씀의 영향 아래 살도록 힘써야할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 발길을 옮기게되어 있다.
(마 24: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독수리들은 죽은 시체를 좋아한다. 그래서 죽은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인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것을 좋아하고 영적인 것을 더 가까이 하고 영적인 것에 모이게될 것이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가까이하고 어디에 모이기를 좋아하고 있는가? 육적인 것을 좋아하고 있는가? 영적인 것을 더 좋아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이 좋아하고 가까이 해야할 것은 영적인 것이 되어야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태복음 24장 28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같이 바뀌어야할 것이다.
(마 24:28) 『말씀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인들이 모일지니라』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영적인 성도는 육적인 것에 붙잡혀있지 않게될 것이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능력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영혼을 영적 사망에 붙잡아둘 수 없다. ”(소망, 320)
무엇을 가치있게 여기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따라 가까이 하는 것이 달라질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씀이 영적인 힘을 주는 것임을 깨달았기에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을 배우기위해 말씀이 있는 곳에 모였다. 말씀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더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될 것이다. 말씀을 가까이하면 분명하게 영적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한 결과 영적으로 부흥하고 성장하게 되었다.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질 때 따라오는 놀라운 변화가 있다. 바로 제자들의 숫자가 심히 많아지게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질 때 교회가 질적인 성장과 함께 양적인 성장이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도들 한 명, 한 명이 하나님의 말씀에 점점 왕성해져갈 때 교회는 영적인 부흥을 맞이하게될 것이다.
성도들이 말씀을 먹고 누룩의 변화가 일어날 때 교회는 영적 부흥과 함께 성도들의 수가 많아질 것이다. 초대교회가 부흥은 구제 때문에 부흥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왕성해진 결과이다. 초대교회의 부흥의 비결은 바로 말씀이었다. 말씀이 들어가 누룩의 변화가 일어난 결과인 것이다. 말씀은 누룩과 같아서 말씀이 들어가면 그 사람이 변화된다.
(마 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말씀은 누룩이 되어 한 사람에게 미친 영향이 함께 있는 가루 서 말 전부가 부풀게되도록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말씀의 누룩이 교회마다 큰 영향을 미치기를 소망한다. 오늘날 교회마다 말씀 공동체가 되어 영적인 성장과 변화를 이루어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말씀이 좋은 밭에 떨어질 때 가능한 것이다. 길가에나 돌밭에 떨어져서 아무런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더 성장하지 못한다면 누룩의 변화는 잠깐일 것이다. 그리고 세상적인 욕심이 가득한 가시밭에 떨어진다면 말씀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열매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각 개인마다 영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할 것이다. 내 마음이 길가요 돌밭이요 가시밭이면 아무리 많은 씨앗이 떨어져도 잠깐의 변화가 있다가도 더 이상 지속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텃밭을 가꾸듯 날마다 내 마음밭을 가꾸면서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가꾸어야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할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는 사실이다. 기도없이는 결코 곡식이 온전히 자랄 수 없다. 계속해서 자라나는 잡초들을 회개의 기도로서 뽑아주어야하는 것이다. 좋은 밭에 심겨진 씨앗이라도 곡식만 자라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한다. 곡식과 함께 잡초들도 자라서 곡식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기때문에 잡초들을 뽑아주어야한다. 만약 곡식을 심어놓고 풀들이 자라는 것을 방치한다면 곡식은 온전히 성장하지 못하게되고 어쩌면 열매도 거둘 수 없게될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을 심고 잘 자라고 있는지 살피고 함께 자라고 있는 풀들을 계속해서 뽑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아직도 불완전하기 때문에 생각지 않은 문제들이 발생될 수 있다. 사도들도 구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구제사역에 전념하게 되었다. 하지만 말씀을 소홀이하면서 구제사역에 전념하였고 그 결과 교회에 문제가 발생되었다.
(행 6:1-2)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사도들도 완벽하지 못했다. 잠시 중요한 것을 놓고 다른 것에 집중하였던 것이다. 구제 사역으로인해 말씀 사역에 집중하지 못하게된 것이다. 말씀에 집중하지않고 다른 사역에 집중하자 초대교회에 문제가 발생이 되었다. 사도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닫고 다시 근본으로 돌아갔다. 그 근본은 바로 말씀이었다. 우리들도 때로는 중요한 것을 놓고 다른 것에 집중할때가 있다. 그래서 다른 일에 집중하다가 말씀을 놓거나 말씀에서 멀어지고 영적인 것에 멀어질 때가 있다. 그 결과 내 자신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또 다른 문제가 발생되므로 영적인 손해를 입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이 중요한지를 한시도 잊지않고 살아가야할 것이다. 혹 문제가 발생될때마다 영적이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근본으로, 말씀으로 돌아가야할 것이다.
사도들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닫고 문제를 해결한다.
(행 6:3-4)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구제사역을 위해 일곱 사람을 택하여 그 일을 맡도록한 것이다. 그리고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해야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회의 성장은 구제사역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목회자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때 교회에 영적인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사도 당시와 같은 질서와 규율이 오늘날의 교회에도 꼭 필요하다. 사업의 번영은 그 사업의 여러 부분들이 그 직임을 감당할만한 자격을 갖춘 역량 있는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는데 크게 좌우된다. 하나님의 사업에서 지도자로 선택되어 교회의 영적 이익을 위해 감독할 책임을 맡은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세속적 성격의 사무와 골칫거리에서 떠나 있어야 한다. 말씀과 교리를 위한 봉사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성경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기도할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소한 사무에 집착되거나 또한 교회 안의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모여든 사람들을 다룸으로 지도자의 명민한 영적 분별력은 흐려진다. 온갖 세속적인 문제들은 그것에 대한 책임을 맡은 자들 앞에 제출하여 그들이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살아, 260)
목회자는 당연히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여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은 역할 분담을 통해 목회자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할 것이다. 교회가 영적으로 성장하는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또한 성도의 신앙이 성장하는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말씀과 기도이다.
교회의 영적 성장의 비결은 바로 말씀과 기도이다. 성도들 개개인마다 말씀과 기도가 왕성해져갈 때 교회가 성장하게 될 것이다.
말씀에 힘이 있을 때 교회는 흥왕하게된다.
(행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초대교회는 말씀으로 힘을 얻게되었고 교회가 흥왕하게 되었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이다.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고, 순종하면 그것이 품성의 변화에 큰 역할을 해준다. 그것은 육체적·정신적·영적 힘을 일깨워 주고 생애를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해 주는 큰 자극제요 힘이 된다.”(가건, 295)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위해 모였고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이 임하였다.
(행 10:44-46) 『[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말씀을 듣던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한 것이다. 성령은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이 임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축복의 통로 속에 세워 놓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장막회와 같은 교회의 집회들, 가정 집회소의 모임들, 영혼을 위해 개인적 수고를 바칠 수 있는 모든 일들은 이른비와 늦은비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기회들이다.”(목사와복음교역자에게보내는증언, 508)
하나님께서는 모든 집회에 이른비와 늦은비를 주시기위해 예비해 놓으셨다고 말씀하신다. 교회 정기예배들, 소그룹 예배들, 합회마다 운영하는 큰 집회들은 성령을 주시는 기회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큰 집회뿐만 아니라 작은 모임, 교회정기예배에 모이기를 힘써야할 것이다. 특히 매주 진행되는 화,금,토 정기 예배에 모이기를 얼마나 힘써야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기 집회에 이른비와 늦은비를 주시기위해 정해 놓으신 기회들임을 기억하고 모이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한다.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이 임하였다. 말씀을 듣는 곳에 성령이 임하였다. 초대교회는 말씀 공동체였기에 성령 충만한 공동체가 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도 초대교회처럼 말씀 공동체 정신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말씀 공동체에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셋째, 초대교회는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사명을 실천하기위해 살아간 사명 공동체라할 수 있다.
3. 사명 공동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완수하도록 하기위해 성령을 임하게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사명을 완수하기위해 한 마음으로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행 1:13-15) 『[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15]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모인 수가 120명이나 되었다. 120명의 공동체 전체가 함께 기도에 힘쓴 것이다. 그 이유는 사명을 이루기위함이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기도하는 일에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초대교회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사명을 이루기위해 함께 모이고 함께 기도하는 일에 전혀 힘썼기 때문이다.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를 통해 성령이 충만해지자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성령의 충만해야한다. 성령의 충만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성령의 충만을 위해서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기도하는 것이다. 혼자 기도하기보다 함께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이 더 강하게 임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사명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함께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할 것이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죽자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족한 한 사람을 뽑고자 하였다.
(행 1:22-23)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가룟 유다 대신 맛디아를 뽑은 것은 주님을 증거할 사람을 세워고자 함이었다. 즉 사명을 완수하기위해 맛디아를 뽑게된 것이다. 사명을 이루기위해 기도하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뽑은 것이다. 오직 초대교회는 사명 공동체였던 것이다. 오늘날 교회도 사명 공동체가 되어야할 것이다. 사명을 이루기위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증거하는 공동체가 되어야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을 받자마자 선교사명을 위해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행 2:1-4) 『[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명을 이루기위해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였다. 사명을 이루기위해 함께 연합하여 기도하였다. 다같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하였다. 함께 기도할때에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였다. 성령을 받자 모두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함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방언의 은사까지 임하게된 것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었는가? 성령의 충만함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않았고 오직 사명을 성취하는 일에 사용하였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사용한 것이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그들은 사명을 이루기위해 보고들은 것을 전함에 있어서 기탄없이 전하였다.
(행 4:13)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선교 사명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고 들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행 4:19-20)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부터 받은 축복들을 자신들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세상에 나누어주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대표자로서의 그들의 고상한 특권을 분별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었으며 그들의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받은 바 축복을 세상에 나누어 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 모든 이점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행적, 14)
교회는 선교의 사명을 실천할 때 부흥하게될 것이다. 사명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나라는 남에게 축복을 나누어주지않자 자신들에게 축복이 되지 않았다.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사명을 실천하지않는 교회는 교회의 기능을 잃게될 것이다. 그 결국은 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다.
“교회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이다. 교회는 봉사를 위하여 조직되었으므로, 그 사명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행적, 9)
교회 존재의 이유는 복음의 사명을 이루는 것이다. 사명 때문에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명을 다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수가 점점 늘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명을 실천할 때 수가 점점 늘어나게될 것이다.
사명이 있는 성도는 무엇을 사랑할까?
“형제들과 저희가 지지한 사업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돈과 소유물에 대한 애착보다 훨씬 더 컸다. 그들의 행위로 보아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세상 재물보다 더욱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이 분명하였다.”(행적, 70)
사명이 있는 성도는 선교사업에 대한 사랑이 크다. 세상의 돈과 소유물에 애착을 가지지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보다 선교사업에 대한 애착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다른 일보다 더 가치있게 여긴다.
“복음으로 개심한 사람들은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의 공통된 관심, 곧 그들에게 위임된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일로 마음이 가득 차서 탐심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었다.”(행적, 70)
사명을 완수하려는 사명 공동체는 사명을 완수하는 일로 마음이 가득차서 다른 탐심이 들어와 자리잡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사명 공동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업을 이루는 사명이란 것이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선교의 사명을 이루고자할 때에 탐심이 자리잡을 수 없을 것이다.
교회를 살리는 것은 사명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분의 나라를 확장시키고자하는 사명을 가질때에 부흥이 따를 것이다.
“한 가지 관심사가 널리 보급되었으며, 한 가지 경쟁적인 주제로 다른 모든 문제들은 사라졌다. 신자들의 포부는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나타내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었다.”(행적, 48)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때 나라의 멸망이 따랐었다. 성도들의 시선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렸을 때 모든 것을 잃게될 것이다. 성도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이 자리잡을 때, 성도들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 초대교회 공동체처럼 교회는 영적으로 부흥하게될 것이다. 각 교회가 초대교회 공동체 모습을 다시 재건하고자 함께 노력한다면 예수님을 바라보는 예수 공동체, 말씀을 찾는 말씀 공동체, 선교의 사명을 이루고자하는 사명 공동체를 만들어가게될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교회는 반드시 영적인 부흥을 맞이하게될 것이다.
사명 공동체의 특징은 말씀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의 골고루 여러 일들이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행 2:44-47)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각 사람이 이기심 없이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각 사람이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사람들의 필요를 나눠주고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떡을 떼며 음식을 먹고 찬미하는 일들이 일어났었다.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일들이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한 결과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신 것이다. 곧 이 모든 일이 사명을 이루는 일이었고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 그들이 받은 선교 사명을 이룬 것이다. 선교는 꼭 말씀만 전하는 것만이 사명을 이루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해준다.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도 사명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