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 / 김정수
어린 시의 손을 잡고 외출했어
구름이 측백나무 가지에 내려온
궂은날이었지
종일 집에서 칭얼대던 어린 시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림책처럼 쫑알거렸어
학교 운동장은 질척거렸지
소금쟁이의 물웅덩이엔
하늘이 거꾸로 처박혀 사부작거렸지
어린 시가 물을 첨벙 밟아대자
구름과 하늘이 사라지고
옷이 젖고
몸이 젖고
웃음도 젖을 만큼
마음껏 놀고 나니
양껏 살아 움직이는 것은
온통 흙탕물
몰골이 봐줄만 했어
길을 되짚어
무용담처럼 웃으며 귀가했는데
한바탕 혼이 났지
세탁기의 세상이 깨끗해지는 동안
욕조에 들어가 구석구석 씻겨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자
해맑은 시가 훌쩍 커 있는 거야
이제 학교에 보내도 될 것 같아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주관하는 「제9회 사이펀문학상」 수상자로 김정수 시인을 선정합니다. 수상작은 31호(2023년 겨울호)에 발표된 「진학」이라는 시입니다. 강은교 심사위원은 “시 진학은 다른 시인들의 시보다 수사적 화려함은 없었지만 은유에 의한 상큼한 이미지의 부드러움이 눈길을 끌었”으며 “한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의 힘겨운 과정을 시인은 너무도 편안한 느낌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사유적 깊이가 남다르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간(31호~34호) 발표된 신작시들을 대상으로 하는 후보작들 중 이미 큰 상금(1천만원 이상)을 받은 분들은 본 상의 가치구현에 부합하지않아 제외하였습니다. 다양한 개성의 시편들을 최대한 존중하여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교차적 시각으로 예심작들을 선별했습니다. 거론된 시인들을 일별하면 권기만 권성훈 권애숙 김동원 김루 김순아 김숲 김완 김정수 김지율 김태완 나석중 노혜경 박상봉 박완호 배옥주 배주열 석미화 안채영 우대식 유현숙 이강하 이병일 이영주 이월춘 이재연 장인수 정창준 조서정 채수옥 최규리 하린 한보경 등 33명의 작품이었습니다. 이들 시인들의 시들을 읽고 읽으며 다시 선별, 최종 김정수, 석미화, 이병일, 정창준, 하린, 한보경 시인의 작품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들 후보작들을 강은교 심사위원이 김정수 시인의 시 「진학」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수 수상자에게 깊은 축하를 보냅니다.
- 사이펀 발행인 배재경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