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대서치성 태을도인 도훈
상생의 마음을 닦아야 하는 태을도 길
2024. 7. 22. (음 6.17)
오늘 하루종일 장대비가 내렸잖아요? 그 비가 퇴근길에 잠깐 그쳤는데, 그 틈새에 매미가 아주 맹렬하게 울더라고요. 원래 제가 여름에는 더위로 무기력해져서 차라리 겨울에 떠는 게 낫지,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겨울에 추우면 껴입으면 되고 줄넘기나 운동 등을 하면 몸이 데워지는데, 여름엔 움직이면 땀이에요. 게다가 한창 더울 때 매미가 시끄럽게 울면 더 덥게 느껴져요. 소리도 아주 커서, 더운데 불쾌지수가 더 올라가지요. 당연히 매미 울음소리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요.
그러다 4년 전쯤 제가 6학년 과학교과를 맡게 됐어요. 그때 수업 중에 동식물의 생존과 번식 전략을 EBS 영상자료로 보여줄 기회가 있었어요. 매미의 경우, 자기들끼리도 최대한 겹치지 않으려고 종별 생애 주기를 소수로 한대요. 7년, 11년, 13년, 이렇게요. 그 시간의 대부분을 땅 속에서 보내고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서 우화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새들에게 쪼아먹히고 살아남은 굼벵이가 우화해서 사는 기간이 3주 정도예요. 오랜 시간 땅 밑에서 굼벵이로 있다 지상으로 나와서 매미로 사는 기간, 짝짓기로 종족을 번식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 고작 3주인 거예요. 그 3주 동안 더위를 에너지 삼아 오직 이슬만 먹으면서, 짝짓기를 위해 치열하게 울다 가는 거예요. 어찌 보면 오직 번식에 초점이 맞춰진 삶이라 할 수 있지요.
그걸 알고 나니, 예전에 들었던 매미 소리와 똑같은 소리이고 지금도 그 소리는 찜통더위를 연상케 하지만, 그때만큼 불쾌지수가 올라가진 않더라고요. 아마 종장님이 말씀하신 ‘중심’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닐까요? 이치를 파고 들어가 깨치고 보면, 그 이치가 밖으로 드러난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이치를 생각하기 때문에, 현상을 보면서도 우리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지요.
이런 얘기를 한다고 제가 그닥 중심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요즘 십여 년 전 태을도에 다녀가신 한 도인을 종종 생각합니다. 2011년도 여름에 캐나다에 거주하는 도인이 한 달 정도 체류 예정으로 한국에 들어와, 태을도에 입도하고 몇 번 다녀간 적이 있었어요. 우리는 그때 사람이 너무 귀해서, 그분이 한국에 들어오신다고 연락 왔을 때부터 기대하고, 체류하는 한 달이 너무 소중했어요. 그분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 체류비용을 마련해 들어온 터라 어머니 생신과 친척 방문, 친구들과의 만남 등 엄청 바빴을 텐데도 태을도에 입도하고 종장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애쓰셨어요. 캐나다 돌아가기 이틀 전인가 마지막으로 함께 식사하고 아쉽게 헤어진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러고는 그분이 캐나다 돌아가서 종장님 카페글에 댓글을 달면서, ‘오늘도 상생이 잘 안되더라’, ‘생업에 종사하면서 참지 못하고 독기와 살기가 튀어나왔다’ 이런 내용을 쓰시길래, 그걸 보면서 제가 그 마음을 한순간에 딱 끊어내면 되는데, 그게 그리 힘든가? 내심 그랬어요. 그런데 그때 저는 애들한테 화도 내고, 저 혼자서 성질도 부리고 했거든요. 돌이켜보면 그때 제가 사람들한테 강조하며 나는 알고 있고 가지고 있다고 여겼던 상생이 관념적인 상생이었던 거지요. 캐나다 도인분은 그렇게 잠깐 태을도에 다녀갔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의 움직임을 잘 들여다보신 거예요, 면밀하게.
전 제 마음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게 된게 얼마되지 않아요. 학교에서 아이들 대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내가 갖는 감정들, 제 마음의 움직임을 이제야 좀 봅니다. 그런데도 사실, 상대가 상극으로 다가오면 그 상극을 끌어안아 상생으로 풀어내는 게 아직도 잘 안 돼요. 오직 상생으로 대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참 안 돼요. 그러면서, 캐나다 그 도인분을 종종 떠올립니다. 그분에 비해 난 느끼는 것도 깨닫는 것도 정말 느리구나, 생각하면서요.
여기 태을도에 오는 순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근기가 적은 사람들, 둔한 사람들 먼저 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더 많은 시간을 닦아야, 뒤에 오는 사람들과 균형을 이루지 않겠나 하는 거지요. 종장님이야 천명을 받아서 태을도를 여신 분이니 맨 앞에서 갈 수밖에 없는 선구자시지만, 저는 그 옆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들으면서도 깨침의 발걸음은 참으로 더디구나 싶거든요.
그래서 태을도 신앙의 길을 걸어가면서 상제님 말씀처럼 마음을 바꾼다는 게 참 쉽지 않구나, 정말정말 어렵구나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미련한 사람을 먼저 들여보내서 닦을 수 있게 배려해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이후에 들어오신 분들에 대해서 항상 기대를 합니다. 저보다 나으신 분들이 들어오시니까요. 그리고 놀랍도록 빨리 자리 잡으시는 모습에, 자극도 되고 반성도 하면서 많이 배워요.
굉장히 어려운 상생의 길이지만, ‘마음이 관건’이라는 건 태을도 신앙하시는 분들은 다 잘 아실 거예요. 종장님께서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생기와 화기의 태을도인이 되어야 하고, 원수를 은인과 같이 대할 수 있게 마음을 상생으로 닦아내지 않으면, 우리가 후천으로 넘어갈 수도 없고, 사람들을 살릴 수도 없다는 거예요. 분명 어려운 길이긴 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길은 아니며, 여러분은 저보다는 훨씬 근기가 좋으신 분들이니 저보다 훨씬 빨리 상생의 그 길을 잘 가실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 힘내서, 서로 격려해가면서, 태을도 상생길을 잘 걸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