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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있는 분을 보면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한 꽃다발들을 어떻게 누리고 계시나요? 아마 내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 같아 몽지천만 있는 게 아니고요. 춘천댐도 있고요. 고기도 있고요. 아무튼 아직 해져 있는 곳들이 있어요.
근데 아마 내일은 좀 비가 양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꽃다발을 이렇게 갖다 주는데 안 받고 다른 데 쳐다보고 있으면 이거 예의가 아니죠. 올해 참 꽃이 이쁩니다. 제가 이렇게 몇몇 분들을 보는데 알아요. 근데 못 봐요. 심지어 바로 집 옆에 그런 꽃길이 있는데도 못 봤다는 분들도 들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때문에 여러분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한 선물들을 바라볼 때 여러분들에게 참된 위로와 평안함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겁니다. 어떤 사람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해성을 관측했습니다.
근데 이 혜성이 규모가 어마어마해요. 근데 설상가상으로 이 혜성이 지구의 6개월 뒤면 정확하게 부닥칠 수 있는 해석입니다.
근데 이 사람은 지방에 있는 아주 이름이 없는 그런 대학 교수입니다. 근데 심지어 이 사람이 발견한 것도 아니고 그 사람에게 배우고 있었던 대학원생이 혜성의 궤도를 이렇게 연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거예요. 근데 아무튼 우연히 발견했지만 아무리 계산해도 이 해석은 분명히 6개월 뒤에 지구에 부닥칠 것이라는 예측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 지구의 종말을 알게 된 이상 이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대로 백방으로 이 사실을 알리고 어떻게든지 대비해야 된다고 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언론에도 알리고요. 이제 나중에는 대통령에게까지도 이 사실을 알리는 그런 상황이 됩니다.
근데 대통령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대통령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요. 지금 당장 자기 앞에 재선의 문제가 있습니다. 해성 충돌이라고 하는 이제 관측 가능한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겨버리고 또 뭔가 우리가 조금만 대비하면 충분히 이걸 벗어날 수 있는 일이야 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말하고 있는 내용은요. 영화의 한 줄거리입니다. 보신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어요. 돈 룩 업이라고 하는 영화 우리나라 말로 하면 뭘까요? 돈 룩 위를 보지마 그 위에서 지금 이제 혜성이 우리한테 막 충돌하려고 날아오고 있는데 위를 보지 않으면 안 보인다. 마치 정치과학 언론계가 다들 자기의 이익 문제 때문에 이 중요한 문제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그리고 대중들은 이 상황에서 뭘 해야 될지 모르니까 그냥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그려줍니다.
지구는 결국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데 마치 코미디 영화처럼 이 영화가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어요.
근데 여러분 이 영화의 내용을 그저 코미디처럼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난 사순절 기간 동안 뭘 했어요? 탄소 금식이라는 걸 해봤습니다. 그렇죠 그냥 그것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계속 우리는 그 캠페인을 해 나가야 돼요. 지난번에 우리 제직회 할 때 어떻게 하면 이 탄소 음식을 좀 더 우리 교회 속으로 지킬 수 있을까 고민들을 한번 이야기해 보자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제가 게시판에다가 조그마한 종이를 이제 붙여놓을 테니까 한번 여러분들이 생각나는 걸 써보세요. 그리고 한번 지켜보세요. 근데 여러분 지구가 점점 이제는 거의 불능 상태에 가까워 왔습니다고 많은 과학자들이 학자들이 경고한 지가 굉장히 오래됐어요. 우리도 이게 알아요. 탄소 금식을 하면서도 이게 왜 하는지를 우리는 이제 압니다.
그런데 전 지구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이제 바로잡을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요. 멋진 연설을 합니다. 그리고 또 자주 모여서 국제회의를 거듭하고 있어요.
근데 결과적으로는요. 이게 돈 문제인 거예요. 탄소를 제로화하려면 이제 돈 벌이가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실질적인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해요. 그들만의 셈법, 자기의 이득을 위해서 뭔가 결정하려고 하고 결정해 놓고는 지키지 않습니다. 대중들 많은 사람들은 이 어려운 문제가 어떻게든지 해결은 될 거야 설마 지구가 망하게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그냥 막연한 기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의 편리 그리고 나의 풍요 이런 것들이 보장되는 것 거기에만 관심이 있지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크게 마음 쓰지 않습니다. 마치 이 영화의 제목처럼 돈 무겁 지금 막 떨어지는 그 해석이 있는데 위 보지 마 땅만 봐 그냥 너 인생만 신경 써. 너의 삶만 바라봐. 마치 그런 우리의 삶에 말을 되새기면서 이 영화의 내용처럼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라고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무슨 일이 지금 이 땅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또 안다고 해도 별로 직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내 인생에 지금 당장 내 앞에 놓여져 있는 문제가 더 커 보이거든요. 누군가는 분명히 이 문제를 해결할 거야.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그냥 그저 조금 더 넓으면 우리 가정 정도 아기만 보장되면 괜찮을 거예요.
근데 여러분 이런 삶의 태도는요.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이 내용이 지금 우리가 함께 강의로 나누고 있는 이 요엘서에서도 등장합니다. 지난주에 요엘서 1장을 우리가 함께 나눴잖아요. 요엘서 1장에서는 큰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메뚜기의 그때 재앙이 일어났죠.
그런데 이런 큰 재앙을 경험한 사람들이 똑같이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지나간 대 그냥 좀 버티면 되겠지 그래서 1장 15절에 슬프다 이 날이요. 여호와의 날이 가까운 날인이라고 말합니다. 불가항력적인 재난 나의 삶 가운데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근데 그 재난은요 마지막 날인 여호와의 날의 전조라고 하는 말씀을 지난주에 드렸죠. 그러니까 마지막 날 여호와의 날을 미리 예고하는 예고편과 같은 것들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그러한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나의 삶에 일어날 때 세계적으로 일어날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리고 그 상황에 직면하고 깨워서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 메시지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요엘서 1장에서는요. 현재 진행형 그들이 지금 겪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기술했다고 한다면 2장에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고를 기록해놓고 있어요. 이게 예언서의 특징입니다. 여러분들 예언서라고 하는 부분이 성경에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예언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언서의 주된 내용이 아니라 그런 일들도 물론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슨 이유인가 이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하는 데 많은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1장에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그런 엄청난 아픔과 고통이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라고 설명했다면, 2장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토대로 이제 더 큰 앞으로의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마스크를 쓴 분이지 그래도 평상시에 조금 더 있어요. 요즘 코로나가 약간 또 다시 돌고 있어서 그런지 근데 여러분 우리가 어느 사이에 벌써 코로나가 엄청 오래전에 있었던 일처럼 그냥 벌써 잊어져 가고 있지 않습니다. 코로나19라고 하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우리는 정말 경험하지 못한 삶을 경험했거든요.
근데 벌써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불가항력적인 재난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하나님의 메시지는 뭐라고요? 이 불가항력적인 재난을 통해서 지금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일을 대비하라.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길 원합니다. 앞으로 코로나19 아니 그 뒤에 어떤 또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우리에게 다가올지 몰라요. 물론 고통스럽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때 여호와의 날을 대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하길 원합니다. 2장 1절에서 12절까지는 1장에서 있었던 메뚜기의 재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말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것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장 1절에 보면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에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1장에서 이렇게 경고하면서 거론되지 않았던 두 가지 요소가 나오는데요. 나팔을 불어라 그리고 모든 백성으로 떨게 해라고 하는 거 맞습니다.
보통 나팔은요. 기쁠 때 대관식이나 뭔가 의식이 있을 때 군대가 진군할 때 이럴 때 나팔 소리가 보통 나는데요. 또 나팔 소리는 부정적으로도 많이 쓰입니다. 적군이 공격해 올 때 경고의 메시지로 나팔을 불어요.
근데 그 적의 그 수요, 그 군대의 강함에 따라서 그 소리가 더 크고 무섭게 매섭게 울려퍼집니다. 그러니까 지금 1장에서 나오는 나팔 소리는 굉장히 무서움 두려움의 소리입니다. 1장에서는 그저 일어나고 있는 그 재앙이 그들에게 슬프다 정도로 표현됐는데 2장에서는 너희가 공격당한다 슬픔의 정도가 아니라 두려워서 몸소리칠 정도가 된다라고 하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장 2절에 보면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로 없으리라 1장에서 말한 메뚜기의 재앙도 여태까지 없었던 재앙이라고 표현을 했었는데요. 2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제 앞으로 일어날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정도의 엄청난 심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이제 우리가 전체적인 그림을 갖기 위해서 2장에 대한 큰 그림을 제가 다시 한 번 설명해 드리자면 2장 1절에서 17절까지 이제 오늘의 주된 내용이 이 부분인데요. 17절까지는 이제 전대에 일어나게 될 앞으로의 그 심판의 날에 대한 예언이라고 한다면 18절부터 28절까지의 내용은 이제 하나님의 본심을 표현해요. 하나님의 본심은 여호와의 날에 이런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지만 너희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그 심판은 거두어 들겠다. 오히려 너희들에게 복을 줄 거야 그게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나서 28절에서 32절까지는 여호와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줄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약속까지도 놀라운 계획을 공개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그 마음은요. 이스라엘이 회복하기를 이스라엘이 간절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영화의 날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계시. 그러니까 이 말씀을 듣고 두려움으로 돌이키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놀라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는 것이죠.
근데 여러분이 시간을 내셔서 제가 이걸 하나하나 일일이 다 하면 시간이 너무 많아서요. 1절에서 11절까지 무지막지한 군대가 침략한 내용이 쫙 이렇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견뎌낼 수 없는 그리고 그 군대는 메뚜기 때보다 더 신속하게 공격하고 최첨단의 무기와 최첨단의 그러한 군사력을 가지고 끊임없이 올 것이다. 성을 공격하면서 성벽까지 올라가 노력하는 노력하는 적군의 위세에 대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무지막지하게 놀라운 모습으로 이방이 될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약간 포인트가 뭐냐 하면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다.
이렇게 11절에 보면 요엘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그의 군내 앞에서 그의 진영, 그의 명령을 그애라고 하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말을 하는데, 이 그가 바로 하나님이세요. 그 전쟁의 총사령관이 하나님이시라고 말하는데 그가 지금 이 전쟁이 어떤 전쟁이라고요? 이스라엘이 침략당하고 엄청나게 고통당하는 심판과도 같은 전쟁인데 그 전쟁의 총사령관이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 여호와의 날이 오면 하나님이 나의 대적들을 물리쳐 주시고 나를 하나님이 세워주실 것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내 편이시고 하나님이 여호와의 날이 되면 나를 지금까지 못 살게 굴었던 사람들 혼내주시고 나를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실 거야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의회를 통해서 이런 말씀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신 근데 여러분 요엘 선지자뿐만 아니라 이 소 선지서에서 말하는 주제의 전체적인 내용이 뭐냐면 심판의 대상이 거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들이 바로 심판의 대상이라는 거예요. 주변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공격하신다라고 말씀합니다.
왜 그래요? 하나님과의 약속을 헌신자까지 헌신자처럼 내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도 가볍게 여기며 살아가는 그들, 영적 가난과 사회적인 불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돌아오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거절하고 있는 그들. 그래서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경고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경고하라고 내가 너희를 벌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직접 그 공격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공격하시면 누가 견뎌낼 수 있을까요? 누가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요일은 마치 호소하듯이 지금 그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요.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러나 이제라도 돌아오라 이제라도 돌아오라. 그러나 이제라도 우리 개혁 개념 성경에서는 이 그러나 이제라도라는 말씀이 12절에 생략되어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원문에는 그러나 이제라도라는 말이 포함돼 있어요. 그러나 이제라도 여호와께서 선언하신다. 회개하고 돌아와 애통하고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 돌아와라.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하나님의 절박한 심정이 그 안에 있는 겁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내가 지금 이렇게 경고한 그 모든 심판의 메시지를 거둬드릴게.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그들이 돌아오기를 온전하게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하나님이 예비한 심판을 우리를 위해서 유보하거나 수정할 계획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돌아오기만 그런데 결국은 이 예언마저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예언이 실제로 그들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서 25장에 보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고통을 당했는지 역사적인 내용을 여러분들이 아마 알고 계실 겁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아니하고 그들은 완전히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러면 이 요에서 과거에 이스라엘을 위해 쓰여졌던 이 외서가 현대 우리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씀일까요? 여호와의 날이라고 하는 이 말은요. 약 2500년 전 성취된 예언이면서 동시에 2천년 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심판 그리고 회복의 때를 가리켜 나간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요. 이 요에서가 예언했던 이스라엘 멸망,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심판으로부터 이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라고 말할 정도로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는데, 그 심판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지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불 같은 진로를 예수님이 대신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을 얻었고 하나님의 새로운 공동체가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새 이스라엘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한 가지를 더 기억하고 있죠. 온 인류를 위한 여호와의 날, 마지막 여호와의 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대 앞에 십자가를 대신 지신 예수님 그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가 구원받게 하기 위하여 심판의 때 마지막 여호와의 날을 유예시키신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 진짜 마지막 때에는 심판과 회복이 동시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새 이스라엘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요? 한번 이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여러분 구원의 확신이 있으십니까? 그러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 아무리 여러분들이 좀 연약하고 쓰러지고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겁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운 하나님이세요. 우리는 아멘 하고 아멘 이 말씀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근데 여러분 사도바울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 할지라도 충성하지 않을 때는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계속 말씀하시고 계시며 또한 마지막 경고까지 무시하면 내치셨습니다.
하물며 한때 이방인이었던 여러분들은 적부심을 받은 이들이니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겠습니까? 더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까요? 히브리서에는 지금 이 바울이 말하는 이런 경고의 내용들이 가득합니다.
특별히 신약 성경 요한계시록에는 충격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있어요.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교회가 세워진 지 60~7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 요한계시록에 에베소 교회를 하신 말씀이 요한계시록 2장 5절인데 한번 말씀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여러분 교회가 타락한 거는요. 교회가 생겨나고 나서 천년 2천 년이 지나서가 아니 100년 200년도 아닙니다. 불과 50년 60년도 되지 않아서 지금 에베소교회가 이런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 있는 겁니다.
근데 여러분 기독교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시면요. 교회는요 세워졌다가 무너졌다가 또 다시 세워졌다가 무너졌다가 하는 역사를 반복하게 여러분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가 무너진다고요? 아니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 교회가 무너질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질문 던질 수 있어요.
근데 여러분 마태복음 16장 18절 말씀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성을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기지 못하리라.
아멘 음부의 권세 즉 죽음의 물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라고 분명히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권세도 이기지 못하는 것이 바로 교회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왜 역사적으로 수많은 교회들이 무너졌을까요? 예수님이 말한 이 음부의 권세도 이기지 못할 교회와 뭐가 달라서 그 교회들은 무너졌을까요? 바로 여기서 말하는 이 반석 위에 세운 교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 반석은 무엇입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에 기초되어 세워진 곳이 바로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고 그리고 모든 신들은 가짜야 우상이야 이게 우리의 신앙적인 고백인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동시에 우상을 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과도 다를 바가 없다면 우리의 고백과 우리의 삶이 다르다면 그러면 우리도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고 있지 않은 신앙인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은 홍수가 나면 무너진다고 산상수훈에서도 말씀을 하죠. 기독교의 역사는 수없이 많이 무너지고 세워지고 하는 역사를 반복합니다. 진실한 고백이 이어질 때, 그 진실한 고백이 삶으로 세워질 때 교회는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반석 위에 세운 교회를 절대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런데 말로만 고백하고 행함이 없다면 그 교회는 무너뜨려진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의 옛 이스라엘이 메뚜기의 재앙을 그 엄청난 재앙을 경험하고 난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자극하지 못하고 돌아오라고 하는 말씀에 그 돌아오지 않은 이스라엘 회개하지 않고 그들은 결국 그 심판의 때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근데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그들과 별반 다름이 없다면 우리의 결과도 이미 예정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또 요즘 전쟁의 소식들, 기후의 위기, 재난 여러분 이런 소식을 들을 때 그냥 남의 이야기로 마치 하늘 보지 마 안 보면 안 보여. 너하고 무슨 상관이야 지금 직장에서 월급 좀 더 오르는 게 더 우선이지 건강 더 해주는 게 더 나아. 더 너에게 지금 실질적인 문제지.
만약에 대비하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삶을 계속 살아간다면 우리 역시도 버려질 수 있다고 하는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엘 이스라엘이 메뚜기의 재앙을 겪으면서 앞으로 닥치게 될 여호와의 날을 대비하고 돌이키고 회개해야 했듯이, 오늘날 우리는 불가항력적인 일을 만날 때마다 나 자신을 점검할 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점검하고 그것이 깨어진 세상의 한 면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임을 기억하고, 그 원인을 숙고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회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