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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비유경 제3권(法句譬喩經 卷第三)
진세(晋世) 사문 법거(法炬)·법립(法立) 공역
동국역경원 국역
제23 안녕품(安寧品)
昔佛在羅閱祇東南三百里有山民村五百餘家。
爲人剛强難以導化。宿世福願應蒙開度。
於是世尊化作沙門。至村分衛分衛畢竟。出於村外樹下坐定入泥洹三昧。至于七日不喘不息不動不轉。
村人見之謂爲命終。共相謂曰。
沙門已死當共葬送。
各持束薪就往燒之。火然薪盡佛從坐起。現道神化。光明照曜感動十方。
現變畢訖還坐樹下。容體靜安怡悅如故。
村人大小莫不驚懼。稽首謝曰。
山民頑野不識神人。妄以薪火燒於未然。自惟獲罪重於太山。唯垂慈赦不見咎怨。
不審神人得無傷病乎。將無愁慽乎。將無飢渴乎。將無熱惱乎。
옛날 부처님께서 나열기성(羅閱祇城)에 계셨다.
그 성 동남쪽 3백 리 밖에 5백여 채의 가구가 살고 있는 산간 마을이 있었다.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사람됨이 억세고 거칠었으므로 인도하여 교화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전생에 지은 복과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은혜를 입어 구제받을 수 있었다.
그 때 세존께서 한 사문으로 변화하여 그 마을로 가서 걸식하셨다.
걸식을 마치시고 마을 밖으로 나와 어떤 나무 밑에 앉아서 열반삼매[泥洹三昧]에 드시어
이레 동안 기침도 하지 않으시고 숨도 쉬지 않으셨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눕지도 않으셨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목숨을 마친 것이라 생각하고는 저희들끼리 수군거렸다.
"이 사문은 이미 죽었다. 우리 함께 장사를 치뤄주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는 그들은 각기 땔나무를 가지고 가서 불을 붙였다.
불이 꺼지고 땔감이 다 타자 부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도의 신통변화를 나타내셨고,
광명을 두루 비추어 시방(十方) 세계 중생들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신통을 거두시고 다시 나무 밑에 앉아 계시니 몸은 고요하고 편안하여 본래 모습과 같았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다.
"저희들은 산에나 머무는 족속으로 미련하고 무식하여 신인(神人)을 몰라 뵙고 함부로 땔나무에 불을 붙였사온데
아직 타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니 저희들이 지은 죄는 태산보다 무겁습니다.
원하옵건대 인자한 마음으로 용서하시어 저희 허물을 보지 마시옵소서.
알 수 없습니다만 신인께서는 혹 다치시거나 병에 걸리시지나 않으셨으며, 장차 근심 걱정이나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또 배고프거나 목마르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으셨습니까?"
於是世尊和顔含笑。而說偈言。
我生已安 不慍於怨 眾人有怨 我行無怨
我生已安 不病於病 眾人有病 我行無病
我生已安 不慽於憂 眾人有憂 我行無憂
我生已安 淸淨無爲 以樂爲食 如光音天
我生已安 恬惔無事 彌薪國火 安能燒我
그 때 세존께서 온화한 얼굴로 빙그레 웃으시면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원한에 대해 노여움 없으니 내 생(生)은 이미 편안하여라.
사람들은 누구나 원한을 품지만 내 행에는 아무런 원한 없다네.
병(病)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으니 내 생은 이미 편안하여라
사람들은 모두 병을 앓지만 내 행에는 아무런 질병도 없다네.
근심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으니 내 생은 이미 편안하여라
사람들은 누구나 근심이 있지만 내 행에는 아무런 근심 없다네.
맑고 깨끗하여 함[爲]이 없으니 내 생은 이미 편안하여라.
즐거움으로써 음식을 삼으니 마치 광음천(光音天)과 같다네.
편안하여 아무 일이 없으니 내 생은 이미 편안하여라
온 나라에 가득 한 불인들 어찌 나를 태울 수 있으랴.
爾時村中五百人聞說偈已。皆作沙門得羅漢道。
村人大小皆信三尊。佛與五百人飛還竹園。
賢者阿難見佛與得道者俱來。前白佛言。
此諸比丘。有何異德乃使世尊自往臨度。
佛告阿難。
我未下爲佛時。世有辟支佛常處是山。去村不遠在一樹下欲般泥洹。現道神德便取滅度。
村人持薪火就往燒之。斂取舍利著寶甁中埋在山頂。各共求願願後得道。如是沙門滅度快樂也。
緣此福故應當得道。是故如來往度之耳。
佛說是時天人無數皆得道迹。
그 때 그 마을에 살고 있던 5백 사람들은 이 게송을 듣고, 모두 사문이 되어 다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그리고 그 마을의 늙고 젊은 사람들도 다 부처님과 법과 승가[三尊]를 믿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그들 5백 사람과 함께 날아서 죽원(竹園)으로 돌아가셨다.
현자 아난(阿難)은 부처님께서 도를 증득한 그들과 함께 오시는 것을 보고,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이 모든 비구들은 어떤 특별한 공덕이 있기에 세존으로 하여금 몸소 오셔서 제도하시게 하였습니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이 세상에 내려와 부처가 되기 전 어느 때에 이 세상에 벽지불(辟支佛)이 있었다.
그는 항상 이 산에서 살다가 마을에서 멀지 않은 어떤 나무 밑에서 열반에 들려고 하였고,
도의 신통을 나타내어 열반[泥洹]에 들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땔나무를 가지고 가서 그를 화장하고 사리를 거두어 보배병에 넣어,
그 산 꼭대기에 묻고는 각기 발원하였다.
'원컨대 우리도 후생에 도를 얻어 이 사문처럼 편안히 열반에 들게 하소서.'
그들은 이 복의 인연으로 반드시 도를 얻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여래께서 직접 가서 구제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무수한 하늘과 사람들은 모두 도적(道迹)을 증득하였다.
昔佛在舍衛國精舍。
時有四比丘坐於樹下。共相問言。
一切世間何者最苦。
一人言。天下之苦無過婬欲。
一人言。世間之苦無過瞋恚。
一人言。世間之苦無過飢渴。
一人言。天下之苦莫過驚怖。
共諍苦義云云不止。
佛知其言往到其所。問諸比丘屬論何事。
即起作禮具白所論。
佛言比丘汝等所論不究苦義。天下之苦莫過有身飢渴。寒熱瞋恚驚怖色欲怨禍皆由於身。
夫身者眾苦之本。患禍之元。
勞心極慮憂畏萬端。三界蠕動更相殘賊。吾我縛著生死不息。
皆由於身欲離世苦。當求寂滅。攝心守正怕然無想。可得泥洹此爲最樂。
옛날 부처님께서 사위국 정사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네 비구가 나무 밑에 앉아서 서로 의논하여 물었다.
"이 일체 세간에서 무엇이 가장 괴로운가?"
한 사람이 말하였다.
"천하의 괴로움 중에서 음욕보다 더한 것이 없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세상의 괴로움 중에서 성내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이 없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 세상의 괴로움 중에서 배고프고 목마른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천하의 괴로움 중에서 놀라움과 두려움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다."
이와 같이 괴로움의 뜻을 두고 서로 다투기를 그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그 곳으로 가서 그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무슨 일로 서로 다투느냐?"
그들은 일어나 예배하고 이야기하던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아직 괴로움의 뜻을 깊히 알지 못하고 있구나.
천하에서 몸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느니라.
배고프고 목마른 것과 추위와 더위, 그리고 미워하고 성내는 것,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
색욕과 원한은 모두 몸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무릇 몸은 온갖 괴로움의 근본이요, 모든 재앙의 근원이다.
마음을 괴롭히고 생각을 태우며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온갖 실마리와 삼계의 모든 곤충들이 서로 해치는 것과
우리를 결박해 생사가 그치지 않는 것이 모두 이 몸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온갖 괴로움을 여의려면 마땅히 적멸(寂滅)을 구해야 하나니,
마음을 거두어 잡고 바른 길을 지켜, 말끔하게 아무 생각이 없어야 열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것이 가장 즐거운 것이기도 하다."
於是世尊即說偈言。
熱無過淫 毒無過怒 苦無過身 樂無過滅
無樂小樂 小辯小慧 觀求大者 乃獲大安
我爲世尊 長解無憂 正度三有 獨降眾魔
그리고는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음욕보다 더한 뜨거운 것 없고 성냄보다 더한 독(毒)이 없으며
몸보다 더한 괴로움 없고 열반보다 더한 즐거움 없네.
조그만 즐거움과 조그만 말재주와 조그만 지혜를 즐거워하지 말라
자세히 관찰해 큰 것을 구하면 비로소 큰 안락 얻게 되리라.
나는 이 세상 높은 이 되었나니 영원히 해탈해 근심이 없네
삼계의 중생 바르게 제도하고 혼자서 많은 악마들을 항복받았네.
佛說偈已告諸比丘。
往昔久遠無數世。時有五通比丘名精進力。
在山中樹下閑寂求道。
時有四禽依附左右常得安隱。一者鴿二者烏三者毒蛇四者鹿。
是四禽者晝行求食暮則來還。
四禽一夜自相問言。
世間之苦何者爲重。
烏言飢渴最苦。飢渴之時身羸目冥神識不寧。投身羅網不顧鋒刃。我等喪身莫不由之。以此言之飢渴爲苦。
鴿言淫欲最苦。色欲熾盛無所顧念。危身滅命莫不由之。
毒蛇言瞋恚最苦。毒意一起不避親踈。亦能殺人復能自殺。
鹿言驚怖最苦我遊林野心恒怵惕。畏懼獵師及諸豺狼。髣髴有聲奔投坑岸。母子相捐肝膽悼悸。以此言之驚怖爲苦。
比丘聞之即告之曰。
汝等所論是其末耳。不究苦本。天下之苦無過有身。身爲苦器憂畏無量。
吾以是故捨俗學道。滅意斷想不貪四大。欲斷苦原志存泥洹。
泥洹道者寂滅無形。憂患永畢爾乃大安。四禽聞之心即開解。
佛告比丘爾時五通比丘則吾身是。時四禽者今汝四人是也。
前世已聞苦本之義。如何今日方復云爾。
比丘聞之慚愧自責。即於佛前得羅漢道。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마치시고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수없이 먼 옛날 어느 세상에 다섯 가지 신통을 가진 비구가 있었는데 이름을 정진력(精進力)이라 하였다.
그는 어느 산 속의 나무 밑에 앉아 고요히 도를 닦고 있었다.
그 때 네 마리 짐승이 항상 그의 곁에 의지해 편안히 살고 있었는데
첫째는 비둘기요, 둘째는 까마귀이며, 셋째는 독사요, 넷째는 사슴이었다.
이 네 마리 짐승은 낮에는 나가 먹이를 구하다가 날이 저물면 돌아오곤 하였다.
어느 날 밤 네 마리 짐승은 저희들끼리 서로 물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제일 괴로운가?'
까마귀가 말하였다.
'배고프고 목마른 것이 가장 괴롭다.
배고프고 목마를 때에는 몸이 피로하고 눈이 어두워지며 정신이 편치 못해서
그물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작살이나 칼날도 돌아보지 못한다.
우리가 몸을 죽이는 것이 모두 그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고프고 목마른 것이 가장 괴롭다고 말하는 것이다.'
비둘기가 말하였다.
'음욕이 가장 괴롭다.
색욕(色慾)이 불꽃처럼 일어날 때에는 아무 것도 돌아보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몸을 위태롭게 하고 목숨을 잃는 것이 모두 그것으로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다.'
독사가 말하였다.
'성내는 것이 가장 괴롭다.
독한 마음이 한 번 일어나면 친소(親疎)를 가리지 않고 남을 죽이기도 하고 또 스스로 죽기도 한다.'
사슴이 말하였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가장 괴롭다.
나는 숲 속에서 놀면서도 늘 마음으로 사냥꾼이나 늑대나 이리들에게 습격당할까 걱정하고 두려워하다가
어디서 그럴싸한 소리가 들리면 곧 내닫다가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언덕에서 떨어지기도 하며,
어미와 새끼가 서로 헤어져 애를 태우며 슬퍼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놀라움과 두려움이 가장 괴롭다고 말하는 것이다.'
비구가 그 말을 듣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이 논하는 것은 곧 지말적인 것만 말하는 것이지, 아직 괴로움의 근본을 궁구하지 못한 말들이다.
천하의 괴로움으로는 몸보다 더한 괴로움이 없다.
이 몸은 괴로움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 근심과 두려움이 한량없다.
그러므로 나는 속세를 버리고 도를 공부하되, 뜻을 없애고 생각을 끊어 이 몸[四大]을 탐하지 않고,
괴로움의 근원을 끊으려고 오직 열반[泥洹]에 뜻을 두는 것이다.
열반의 도는 아주 걱정하여 형상이 없는 것이니, 근심과 걱정이 영원히 끝나야 비로소 큰 안락을 얻는 것이다.'
네 마리 짐승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곧 열렸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그 때 다섯 가지 신통을 가진 비구는 바로 나이고, 그 때 네 마리의 짐승은 바로 지금의 너희 네 사람이다.
전생에 이미 괴로움의 근본이 되는 이치를 들었는데 어째서 오늘 또 그런 말을 하느냐?"
비구들은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면서 자책하고 이어 부처님 앞에서 아라한도를 증득하였다.
[출처]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제3권 제23 안녕품(安寧品)|작성자 목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