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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성은 석가(釋迦)요, 종족은 찰리 왕족이며, 아버지의 이름은 열두단(閱頭檀)이요, 어머니의 이름은 마하마야(摩訶摩耶)요, 다스린 나라의 이름은 가유라위(迦維羅衛)이다.
게송은 다음과 같다.
허깨비는 원인도 없고 생겨남도 없으니
모두가 자연스럽게 그러한 것으로 본다.
모든 법 모두가 허깨비 아닌 것 없으니
허깨비는 생겨남 없으니 두려워할 것도 없어라.
幻化無因亦無生 皆則自然見如是
諸法無非自化生 幻化無生無所畏
이 석가모니불은 현겁(賢劫)의 넷째 부처님이시다.
세 겁 가운데서 처음의 천 부처님은 화광불(花光佛)을 시작으로 해서 비사부불(毘舍浮佛)이 마지막이니,
과거 장엄겁(莊嚴劫)에 성불하셨고,
중간의 천 부처님은 구루손불(拘樓孫佛)에서 시작하여 누지여래(樓至如來)가 마지막이니,
현재의 현겁에서 차례로 성불하신다.
끝의 천 부처님은 일광여래(日光如來)를 시작으로 수미상불(須彌相佛)이 마지막이니,
미래의 성수겁(星宿劫)에 성불하신다.
현겁의 시초에 향기로운 물이 가득하였는데 천 송이의 큰 연꽃이 떠 있었다.
제4 선천(禪天)에서 이런 상서(祥瑞)를 내려다보고 서로 말했다.
"지금 이 세계가 이루어지면 천 명의 현인이 세상에 나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를 현겁이라 한다.
『인과경(因果經)』에 이런 말씀이 있다.
"석가여래께서 성불하시기 전 큰 보살이셨을 때의 이름은 선혜(善慧)라고도 하고,
인욕(忍辱)이라고도 하였다.
공부가 다 되어 보처(補處)2)의 자리
2) 부처님의 처(處)를 보충하는 뜻으로 전(前) 부처님께서 멸하신 뒤에 부처님이 되어 그 처를 보충하는 것. 석존을 이어서 성불하는 보살, 보살의 최고위를 말한다.
에 오르시어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시니,
이름을 성선(聖善)이라고도 하고, 호명(護明)이라고도 하였다.
하늘의 천왕들에게 보처의 수행법을 말씀하시고,
또한 시방에서 몸을 나투어 설법하시다가 시기가 이르자,
아래 세상에 강탄하실 곳을 살피시되 '어디가 가장 중앙이 될까?' 하더니,
곧 가비라국(迦毘羅國)이 가장 중심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본기경(本起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위신력은 가장 높으시고 가장 존귀하시니, 변두리의 험한 나라에는 태어나시지 않는다.
이 가비라국은 3천 일월의 하늘과 땅에서 가장 중심이 된다. 예로부터 여러 부처님들이 모두 여기에 나타나셨다."
『구사론(俱舍論)』에서는 "섬부주(剡浮洲)의 중심" 이라 했고,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신독(身毒 : 인도)에는 헌원씨(軒轅氏)가 살았다"고 말씀하셨다.
곽박(郭璞)의 주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것은 즉, 중천축(中天竺)이다. 그 나라는 저절로 다섯 천축으로 나뉘었는데, 중천축은 천지의 중심으로 이름이 변두리가 아니니, 중심의 뜻이 분명하다."
『인과경(因果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중천축에는 네 종족이 있으니, 찰리(刹利) 종족과 바라문(婆羅門) 종족과 비사라(毘舍羅) 종족과 수다라(首陁羅) 종족인데,
찰제리 왕족이 가장 존귀하여 겁초부터 대를 이어 끊이지 않았다.
나머지 세 종족은 여기에서 논의할 바가 아니요, 다만 부처님 종족만을 밝히려 함이니, 자연 다섯으로 나뉜다."
또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계가 처음 이루어졌을 때는 해와 달의 광명이 아직 없었는데,
여러 하늘의 중생이 복이 다하자 모두가 인간에 태어나서 기쁨으로 음식을 삼고 몸의 광채가 멀리 비치고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남녀·존비·친속의 차별이 없었다.
그러다 자연 지미(地味)가 생겨났는데 그 맛이 꿀 같아서 간혹 맛을 보는 이가 있다 보니,
움켜 먹는 일이 생기면서 광채도 신통도 위엄도 모두 사라져서 속절없이 땅에 있게 되었다.
많이 먹은 이는 얼굴이 초췌해지고,
적게 먹은 이는 얼굴이 윤택하여 마침내는 이기고 지는 차별이 생겼다.
지미가 사라지고 지피(地皮)가 생겨나니 지피를 먹음으로써 모든 죄악이 생겼고,
또 임등(林藤)과 멥쌀 등 여러 가지 맛있는 것이 생겼는데,
그것들을 먹음으로써 남녀의 감관이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점점 변하여 드디어 혼인 중매의 법과 애 낳는 일이 생겼다."
『누탄경(樓炭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연히 생긴 멥쌀은 아침에 베면 저녁에 다시 돋는다."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쌀의 길이는 네 치인데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먼저 가지려 하였다.
이와같이 서로 죽이면서 먼저 가지려 한 곳에서는 쌀이 다시 나지 않았다."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때 중생들은 다시 나지 않는 것을 보자 제각기 근심이 되어 서로가 터전과 집을 장만하여 경계가 생겼다.
저마다 갈무리하기 시작한 뒤로부터는 남의 밭의 곡식을 훔치는 이가 생겼는데,
이로 인해 싸움이 일어났고 아무도 말리는 이가 없었으므로 한 사람을 추대하여 평등(平等)이라 부르고, 착한 이에겐 상을,
악한 이에겐 벌을 주는 일을 주관케 하고서 모두가 공동으로 그의 생활을 보장해 주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유난히 성질이 강직하고 풍채가 점잖아서 위엄으로써 사물을 다스리면 모두가 복종하게 되었다.
모든 일을 그에게 가서 청하고 그가 승락해 줌으로써 백성의 주인이라는 칭호가 생기게 되었다."
『누탄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 사람들이 의논하여 우두머리로 추대하고 왕이라 호칭하였는데,
법에 의해 우러러 받들었으므로 찰리(刹利)라 이름하니,
그 뜻을 번역하면 밭과 땅의 주인이 된다.
이 때 염부제(閻浮提)는 천하가 부유하고 안락하여 땅에는 푸른 풀이 돋아 공작의 털과 같았고,
8만의 고을이 서로 부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즐비하였으며,
추위·더위·병고·번뇌 등이 전혀 없었다.
왕이 바른 법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열 가지 선을 받들어 행하여 서로가 공경함이 마치 부자(父子) 같았다.
사람들의 수명은 지극히 길어서 헤아릴 수 없더니,
나중에 다른 왕들이 바른 법을 행하지 않자 그들의 수명은 차츰 줄어 1만 세에 이르렀다가 다시 지금의 1백 세에 이르렀다.
처음에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왕이 되어 차츰차츰 전하여 보살과 라후라(羅睺羅)에 이르러서 장손의 대는 영원히 끊기고,
나머지 종족의 방계(傍系)만이 아직도 지위를 이어가고 있으므로 이하부터는 전륜왕(轉輪王)과 속산왕(粟散王)의 계보를 서술하리라.
처음의 왕은 이름이 대인왕(大人王)이요,
둘째는 진보왕(珍寶王)이니,
이렇게 하여 제33대가 선사왕(善思王)이다.
이들 33왕이 대대로 이어갔으나 모두가 속산왕이었고,
이 다음은 모두가 전륜왕으로서 대대로 장손이 이어가다가 보살에게 이르렀느니라."
『누탄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사왕(眞闍王)에게 파책가(波迮迦)라는 태자가 있었으니, 번역하면 대어왕(大魚王)이다."
『불본행경(佛本行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중천축에 포다나(褒多那)라는 성이 있는데 백성이 많았고,
거기에 대어왕(大魚王)이란 임금이 계셨다.
이 왕으로부터 대명칭왕(大名稱王)에 이르기까지 자손이 대를 이었으니,
그 후예들은 수효가 모두 8만 4272왕으로 모두가 금륜왕(金輪王)이었다.
마지막 두 왕이 염부제의 주인이었는데 이름은 묘초왕(茆草王)이다.
묘초왕에게 태자가 있었으니 이름은 대묘초왕이었다.
대묘초왕에겐 왕위에 오를 태자가 없어서 항상 생각하였다.
'우리 조상은 대대로 이어오는 금륜왕의 후손인데 나는 지금 후사가 없으니,
우리 종족이 끊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내가 출가를 한다면 왕의 종족이 끊일까 걱정되고,
내가 출가하지 않으면 성현의 종성이 끊일까 걱정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나라 일을 대신들에게 맡기고 산에 들어가 수도하여 다섯 가지 신통을 얻었으니, 그 이름은 왕선(王仙)이었다.
왕선에겐 출가하기 전에 부인이 있었으니,
이름은 선습(善襲)이었다.
왕선이 아직 왕궁에 있을 때 태기가 있다가 나중에 아들을 낳았으니 대묘초왕의 후손이다.
후에 여러 대신들이 왕선의 태자인 줄 알고서 곧 추대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니,
이름이 차왕(遮王),
또는 울마왕(鬱摩王),
또는 의마왕(懿摩王)이었다.
왕에게 두 왕비가 있었으니,
하나는 선현(善賢)이요,
또 하나는 묘단정(妙端正)이었다.
묘단정 부인에게 네 태자가 있었으니,
첫째는 거면(炬面)이요,
둘째는 금색(金色)이요,
셋째는 상중(象衆)이요,
넷째는 별성(別成)이었다.
선현 부인에게는 외아들이 있었으니,
이름은 장수(長壽)요,
얼굴은 매우 단엄하여 세상에 짝할 이가 없었으나 다만 씩씩한 기상이 없어서 왕위를 이을 수가 없었다.
이에 선현 부인이 생각하였다.
'묘단정의 거면 등 형제들은 번성한데 나는 지금 오직 이 한 아들뿐이다.
비록 그가 단정키는 하나 왕위를 이을 수 없으니,
어떤 방편을 써야 내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할까?'
그 때 차왕이 대궐 뒤뜰에 행차하여 여러 후궁들을 위로하고 있었는데,
선현 부인이 나와서 왕께 아뢰었다.
'저는 모든 것이 만족합니다만 오직 한 가지 소원만을 대왕께 더 청하겠으니 대왕께서 이루어 주소서.'
왕이 대답했다.
'마음이 원하는 바를 다 짐이 이루어 드리리다.'
선현 부인이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변하시어 후회하시면 안 되옵니다.
바라건대 맹세를 해 주십시오.'
왕이 말했다.
'내가 만일 후회한다면 짐의 몸이 일곱 조각으로 부서질 것이오.'
선현 부인이 말했다.
'거면 등 네 아들을 내쳐 주십시오.'
왕이 말했다.
'이 네 명의 아이들은 아무런 허물도 없는데 어떻게 내치겠소?'
그리고는 한참 생각 끝에 자기가 이미 맹세한 후이고 그것을 어길 수 없어서 네 아들을 먼 곳으로 내쫓기로 결정하였다.
이 때 네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저희들 네 형제는 아무런 죄도 없는데 갑자기 다른 나라로 내쫓으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왕이 말했다.
'너희 네 형제가 아무 죄 없이 불행하게 환난을 만난 줄을 안다.
위에서와 같이 말한 것은 나의 마음이 아니라 선현 부인의 뜻이니라.'
이 때 네 아기를 낳은 서모와 그 권속들은 이 말을 전해 듣고 급히 왕에게 가서 말했다.
'저희들, 네 왕자가 왕의 명을 받들어 쫓겨나니 저희들도 따라가겠습니다.'
왕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라.'
그리고는 네 아들에게 이어서 분부를 내렸다.
'만일 혼인을 하려거든 다른 종족과 하지 말고 같은 종족끼리 하여 혈통을 끊이지 않게 하라.'
이 때 네 왕자는 왕의 분부를 공경히 받들고 권속들과 함께 북쪽을 향해 떠나서 사이림(舍夷林)에 다으니,
거기에는 물과 땅이 풍족하였고,
언덕이나 구덩이가 전혀 없었다.
권속들과 함께 그 숲 속에 살기 시작하니,
복덕이 많기 때문에 마침내 큰 나라가 되었다.
나중에 차왕이 생각나서 신하에게 물었다.
'내가 전에 내쫓은 네 명의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대신이 대답했다.
'지금 향산(香山)의 북쪽,
설산(雪山)의 남쪽,
두 산 사이에 사이(舍夷)라는 숲이 있는데 땅이 기름지고 사람들이 많아서 백성들이 장꾼처럼 모여들어 마침내 큰 나라가 되었고,
백성들이 추대하여 왕으로 모셨습니다.
성의 이름은 니구라(尼拘羅)이니,
옛 선인 가비라(迦毘羅)가 도를 이룬 곳이므로 성의 이름을 그렇게 부른답니다.'
이 때 차왕이 이 말을 듣고 두세 번 감탄하면서 말했다.
'내 아들은 석가(釋迦)로다,
내 아들은 석가로다.'
이런 공덕 때문에 석가라는 성이 되었으니,
석가는 능인(能仁 : 장하다, 침착하다)이라 번역한다.
대차왕의 네 아들 중 세 사람은 이미 죽고 오직 넷째인 별성만이 남아 니구라왕(尼拘羅王)이라 불렸는데,
이 왕이 부처님의 5대조이시다.
이 왕에게 태자가 있어 구로라왕(拘盧羅王)이라 불렸으니 이 왕이 부처님의 고조(高祖)이시며,
이 왕에게 태자가 있어 구구로왕(瞿拘盧王)이라 불렸으니 이 왕이 부처님의 증조이시고,
이 왕에게 태자가 있어 사자협왕(師子頰王)이라 불렸으니 이 왕이 곧 부처님의 할아버지이시다.
이 왕에게 네 태자가 있었으니,
첫째가 수두단나(輸頭檀那)이시니 정반왕(淨飯王)이시고,
둘째는 수구로단나(輸拘盧檀那)이니 백반왕(白飯王)이시고,
셋째는 도로나(途盧那)이시니 곡반왕(斛飯王)이시고,
넷째는 아미도단나(阿彌都檀那)이시니 감로반왕(甘露飯王)이시다.
정반왕에게 두 태자가 있었는데, 첫째는 실달다(悉達多)이시니,
그가 곧 부처님으로서 4월 8일에 태어나셨고,
키가 1장 6척이요,
둘째는 난타(難陀)이니,
바람을 거슬려 마당을 쓸던 사람으로서 4월 9일에 태어났고,
키는 1장 5척 4촌이었다.
백반왕에게 두 태자가 있었는데,
첫째는 조달(調達)이니 부처님의 사촌형제로서 4월 7일에 태어났고,
키는 1장 5척 4촌이었다.
둘째는 아난(阿難)이니,
부처님의 시자로서 4월 10일에 태어났고,
키는 1장 5척 3촌이었다.
곡반왕에게 두 태자가 있었는데,
첫째는 석마남(釋摩男)이니 흙을 움켜서 금을 만드는 이로서 4월 12일에 태어났고,
키는 1장 4촌이요,
둘째는 아니루타(阿尼樓陀)이다.
감로반왕에게는 두 태자가 있었으니,
첫째는 파투(波投)이니 출가한 분으로서 4월 13일에 태어났고,
키는 1장 4촌이요,
둘째는 발제자(跋提子)이니,
도에 든 이로서 4월 14일에 태어났고,
키는 1장 4촌이다."
『불본행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호명(護明)보살이 도솔천에서 일체 중생을 교화하려는 생각을 내고는 곧 금단(金團) 천자(天子)에게 분부했다.
'그대는 인간 세상의 여러 왕족을 잘 살펴서 내가 태어날 만한 곳을 고르라.'
금단 천자는 보살의 분부를 받들고 관찰하였다.
관찰을 마치고서 보살께 아뢰었다.
'찰리 종족으로서 구담(瞿曇)씨가 있습니다.
찰리의 후손으로 큰 선인인 구담을 따라 도를 배웠는데 스승의 성을 따라 구담이라 하였습니다.
구담씨는 본래 대대로 금륜왕이 된 왕족으로서 차왕의 뒤부터는 대를 이어 가비라성에 살았으니 가비라성은 석씨 종족의 수도입니다.
그 중에 사자협이라는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1 권 > 13 - 22쪽
K.1503(45-233),
왕이 계셨고,
그 왕의 태자에 수두단나왕이 계시는데,
이 왕은 모든 세간과 하늘 무리들 사이에 이름이 크게 나 있으니,
보살께서 의탁하실 만합니다.'
보살은 찬탄하였다.
'장하도다, 장하도다.
그대는 여러 왕들의 집안을 잘도 살폈구나!
그대의 말과 같이 나는 거기에 태어나기로 결정하겠노라.' "
또 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호명보살이 하강하시려 할 때에 마야(摩耶)부인이 정반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제가 지금 여덟 가지 청정한 재계(齋戒)를 받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재계가 끝나자 바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어금니가 여섯 개이고 붉은 머리에 일곱 활개로 땅을 버티고 황금으로 어금니를 장식한 코끼리를 탄 하늘 사람이 정반왕궁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아함경(阿含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영신(靈神)이 어머님 태중에 의탁한 것을 미루어 보니,
중국의 주(周)나라 다섯째 임금인 소왕(昭王)이 즉위하신 지 23년 계축 7월 15일쯤이 된다.
24년 갑인(甲寅)에 이르러 마야부인이 비라(毗羅) 동산에서 즐거이 거니시다가 바라(波羅)나무 꽃이 예쁘게 핀 것을 보자 오른손을 들어 가지를 휘어잡으려는데 보살이 오른 겨드랑이로부터 탄생하시니,
온몸이 금빛이요 상호가 구족하였다."
또 『보요경(普曜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처음 탄생하실 때에 큰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셨고,
땅에서는 금빛 연꽃이 솟아 부처님의 발을 받들었다.
동·서·남·북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걷고,
사방을 살피고는 한 손으로 하늘을,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사자후(師子吼)로 외치셨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내가 가장 높다.'
또 다음과 같은 게송을 말씀하셨다.
내가 태에 들어갈 일이 끝났으니
이것이 마지막 몸이다.
나는 이미 해탈을 얻었지만
다시 중생을 제도하리라.
我生胎分盡 是最後末身
我已得解脫 當復度衆生
이 게송을 읊고 나니,
아홉 마리 용이 물을 뿜어 태자의 몸을 씻었고,
태자의 몸을 씻은 뒤엔 잠자코 말없이 세간의 아기와 같아졌다."
또 『주이기(周異記)』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소왕이 즉위한 24년 갑인 4월 8일에 강과 바다가 갑자기 불어 넘치고,
궁전과 민가와 땅이 모두 흔들리더니 오색 광채가 대궐로 뻗었다가 다시 사방으로 퍼졌다.
왕이 태사(太史)인 소유(蘇由)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상서(祥瑞)인가?'
태사가 여쭈었다.
'큰 성인이 서쪽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물었다.
'천하에 무슨 변동이 있겠는가?'
태사가 대답했다.
'당장에는 없사옵고 1천 년 뒤엔 그의 교법(敎法)이 이 땅에 퍼질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서쪽 천축 나라 가비라성의 정반왕궁에 처음 탄생하신 징조가 이 땅에 미친 것이다."
『십이인연경(十二因緣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태자의 나이 19세가 되자 왕위도 왕비도 모두 싫어하니,
부왕은 출가할까 걱정되어 악사들에게 분부하여 태자를 즐기게 하였으나 태자는 즐거워하지 않고 앉은 채로 3경(更)에 이르렀다.
5백의 궁인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지니,
이 때 정거천왕(淨居天王)이 허공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세상에 더럽고 중생을 미혹함에
여자의 몸뚱이가 가장 으뜸이더라.
세상의 의복으로 장식하기에
바보들이 이런 쪽으로 탐욕을 낸다네.
世間不淨衆惑迷 無過婦人身體性
世間衣服莊嚴故 愚癡是邊生貪欲
누구든지 이렇게 관찰한다면
꿈이나 허깨비요 거짓인 줄 알려니
어서 바삐 무명 버려 방일치 않으면
마음은 해탈하고 공덕의 몸 이루리.
是人能作如是觀 如夢如幻非眞實
速捨無明勿放逸 心得解脫功德身
또 하늘 사람이 창 틈으로 합장하고 태자에게 아뢰었다.
'떠나실 시각이 되었습니다.'
태자는 이 게송을 듣자 마음에 기쁨이 일어 가만히 차닉(車匿)에게 분부하였다.
'백마 건척(揵陟)에게 안장을 갖추어 오라.'
네 신장(神將)이 발을 받들어 성을 넘어 서북쪽으로 가려는데,
태자가 다시 생각했다.
'출가하는 이는 큰 자비가 있어야 하니 말 발자국을 남기지 말아야 되겠다.
왕께서 반드시 문지기를 벌하시리라.'
그리고는 성 서북쪽에 발자국 하나만을 남기어 하늘로 날아서 서북으로 떠났음을 알게 하였다.
이는 중국의 주(周)나라 소왕 42년 임신(壬申)의 2월 8일 밤중에 해당한다."
율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태자가 집을 떠나 마갈타국(摩竭陀國)의 반다산(斑茶山)에 이르러 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생각했다.
'무엇으로 머리를 깎을까?'
이러한 생각을 일으키자마자 정거 천자가 얼른 체도(剃刀)를 받들어 올렸다.
태자가 스스로 머리채를 잡고 깎으니 정거천의 천자가 얼른 실로 짠 승가리(僧伽梨)를 받들어 올렸다. 그러자 전에 입었던 옷과 관(冠)과 백마 건척을 모두 차닉에게 주어 왕궁으로 되돌아가게 하였다.
그리고 게송을 말하여 하직의 뜻을 부왕께 전하게 하였다.
임시로 애정을 따라 오래 같이 산다 하여도
때가 되면 죽거나 이별을 못 면하네.
이렇듯 무상하고 잠깐 사이임을 알았기에
나 이제 해탈의 길을 찾으렵니다.
假便恩愛久共處 時至命盡會別離
見此無常須臾間 是故我今求解脫
그 때에 태자는 산에서 용맹정진으로 위없는 도를 닦고 다시 아람가람(阿藍迦藍)에게 가서 3년 동안 불용처정(不用處定)3)을 배웠으나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서 곧 버렸다.
다시 울두람불(鬱頭藍弗)에게 가서 3년 동안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배웠으나 그것 역시 옳지 않은 줄 알자 또 버렸다.
다시 상두산(象頭山)에 가서 다른 외도들과 같이 날마다 마맥(麻麥)을 먹으면서 6년을 지냈다.
고행이 끝나자 니련하(니連河)에 가서 목욕을 하려는데,
지난날 고행을 너무 많이 해서 기슭으로 올라가기가 어려우니 추성(追成) 선인(仙人)이 나뭇가지를 휘어서 태자의 손에 잡히게 해 주었다."
또 『인과경(因果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마치고 태자는 생각하였다.
'내가 만일 바짝 마른 몸으로 도를 얻는다면 외도들은 굶는 것이 열반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음식을 받아야 되겠구나.'
태자가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난타(難陀)와 바라내(波羅奈)라는 두 자매가 우유죽을 받들어 올렸다. 이에 태자가 또 생각했다.
'어떤 그릇에다 받아 먹어야 되겠는가?'
3)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이라고도 한다. 『장아함경』 8권, 대정장 22권 p. 780 참조.
태자가 이렇게 생각하자 사천왕이 제각기 돌발우 하나씩을 바쳤는데,
보살이 평등하게 대하기 위해 같이 받고서 탐욕을 쉬게 하기 위하여 포게 눌러서 하나로 만들어 우유죽을 받으니,
얼굴도 힘도 충실해져서 정각산(正覺山)으로 갈 생각을 하였다."
『본행경(本行經)』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태자는 생각했다.
'무엇에 앉을까?
깨끗한 풀이 있어야 되겠구나!'
태자가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길에서 풀 베는 길안(吉安)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태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 풀을 나에게 조금 주시오.
욕심을 내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오.'
길안이 그것을 당장 주고는 떠났다.
구불구불 연이은 길을 따라 정각산(正覺山)에 이르자 태자의 덕이 무거워서 산이 진동하니,
산신이 나타나서 태자에게 말했다.
'여기는 도를 이룰 곳이 아닙니다.'
태자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어디가 도를 이룰 만한 곳인가?'
산신이 대답했다.
'여기서 마갈제(摩竭提) 나라의 남쪽으로 16리를 가면 금강보좌가 있는데,
현겁(賢劫)의 천 부처님께서 모두가 그 자리에 올라 도를 이루셨으니, 그리로 가소서.'
그 때 태자가 산을 내려오다가 눈먼 용 하나를 만났는데,
용이 태자에게 말했다.
'보살은 도 이룰 곳을 구하시는군요?'
태자가 물었다.
'너는 어떻게 내가 보살임을 아느냐?'
용이 대답했다.
'제가 옛날 비바시불(毗婆尸佛) 때에 악한 비구가 되어 3보(寶)를 헐뜯고 비방했던 죄로 용의 무리에 떨어졌고 겸하여 눈까지 멀었습니다마는,
과거의 세 부처님께서 나타나실 때마다 제 눈이 보였다가 열반에 드시면 다시 눈이 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대를 만나자 저의 눈이 보이니,
그대가 보살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태자를 금강좌로 인도하니 태자가 풀을 자리 위에 펴고서 올라앉아 서원하였다.
'내가 위없는 보리를 이루기 전에는 맹세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니,
정각을 이루어야 부처라 이름하기 때문이라.' "
『보요경』에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2월 8일 샛별이 뜰 때에 크게 깨달으시고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별로 인하여 깨달았으나
깨달은 뒤엔 별이 아니로다.
사물을 따르지 않지만
무정함도 아니로다.
因星得悟 悟後非星
不隨於物 不是無情
이는 중국의 주나라 제6대 왕인 목왕(穆王) 3년 계미(癸未) 2월 8일인데, 이 때에 성도하셨으니,
이것으로써 30세에 성도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 때에 석가여래께서 도를 이루시고는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출가한 사문은 욕심을 끊고 애착을 버려 자기 마음의 근원을 알아서 부처의 근본 이치에 통달하여 무위의 법[無爲法]을 깨달아야 한다.
안으로 얻을 것이 없고 밖으로 구할 것이 없나니,
마음이 도에 얽매이지 않고 업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생각도 없고 지음도 없으며 닦음도 아니요 증득함도 아니니,
모든 지위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를 높이고 공경하는 것을 도라 하느니라.'
어떤 비구가 물었다.
'어떤 것이 청정한 본래의 성품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끝내 청정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본성에 대한 무지(無知)입니까?'
'모든 법에 어리석은 것이니라.'
어떤 외도(外道)가 물었다.
'말 있음도 묻지 않고 말 없음도 묻지 않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양구(良久)하시니 외도가 절을 하면서 찬탄했다.
'거룩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그토록 대자대비하셔서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 주시어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외도가 물러간 뒤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깨달았기에 깨달음에 들었다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의 좋은 말[馬]은 채찍 그림자만 봐도 달린다.'
이와 같이 설법하시면서 세상에 머무시더니 49년 후에 구시나성(拘尸那城)의 희련하(熙連河) 곁의 사라쌍수(娑羅雙樹) 사이에서 열반에 드시니,
나이는 79세였다.
이 때는 주(周)의 목왕(穆王) 52년 임신(壬申) 2월 15일이었는데,
폭풍이 갑자기 일어 사람의 집을 뒤엎고 나무를 부러뜨리고 산하대지가 모두 뒤흔들리고,
서쪽에서 흰 무지개 열두 가닥이 이 땅에 뻗어 밤새도록 걷히지 않았으니,
이것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상서였다."
또 『열반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려는데 가섭이 대중에 없는 것을 아시고 여러 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이 오거든 바른 법을 펴 드날리게 하라.'
또 말씀하셨다.
'나에게 있는 청정한 법안(法眼)과 열반의 묘한 마음과 형상 없는 실상과 미묘한 바른 법을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그대는 잘 지니라.'
이어 아난에게 분부하셨다.
'2대의 법을 이어받아 끊이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법이라고 하나 본래 법은 없는 법이요
없는 법이라고 하나 그 법도 역시 법이라.
지금 그 법이 없음을 부촉하나니
법이라고 하는 그 법은 언제적 법이던가.
法本法無法 無法法亦法
今付無法時 法法何曾法
그 때 가섭이 5백 명의 제자들과 함께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삼매에 들었는데 삼매 속에서 갑자기 마음이 놀라지고,
온몸이 떨리어 선정으로부터 깨어나니 모든 산천이 흔들렸다.
이를 보자 여래께서 이미 열반에 드셨음을 알고 제자들에게 고했다.
'우리 부처님,
큰 스승께서 이미 열반에 드신 지 7일이 지나 입관이 끝났구나.
슬프구나, 슬프구나!
어서 부처님께로 가자.
이미 다비(茶毘)가 끝나 부처님을 뵈올 수 없을까 걱정이다.'
그는 부처님을 공경하기 때문에 공중으로 날아서 가지 못하고 제자들과 함께 길을 따라 바삐 걸었다. 슬퍼하면서 빨리 갔으나 7일이 지나서야 구시나성의 다비소에 이르렀다.
이에 대중에게 물었다.
'어찌하여야 큰 성인의 금관을 열 수 있을까?'
대중이 대답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벌써 두 이레가 지났으니 이미 변했을 것인데 어떻게 열겠습니까?'
가섭이 말했다.
'여래의 몸은 금강같이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으며 공덕의 향기는 전단산(栴檀山) 같으니라.'
이 말을 하고는 눈물과 콧물을 뒤섞어 흘리면서 부처님의 관으로 가까이 가니,
그 때에 부처님께서 대비와 평등으로 가섭을 위하시므로 관이 저절로 열리어 모두 흩어지고 32상(相) 80종호(種好)의 순금의 자마(紫磨) 빛 몸이 활짝 드러났다.
이 때 가섭이 더욱 슬피 울면서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을 일곱 번 돌고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게송을 읊어 슬피 탄식하였다.
애달프도다, 큰 성인 부처님이시여,
나 이제 심한 고통 마음에 사무칩니다.
세존의 열반이 어찌 그리 빠른가.
큰 자비는 이 몸을 기다리지 않으시네.
苦哉苦哉大聖尊 我今荼毒苦切心
世尊滅度一何速 大悲不能留待我
내가 굴산에서 선정에 들었을 때
여래를 두루 찾았으나 어디에도 안 보였네.
그리고 부처님께서 이미 열반하심 알고는
갑자기 마음이 떨리고 놀랐네.
我於崛山禪定中 遍觀如來悉不見
又觀見佛已涅槃 倏然心戰大振驚
갑자기 어둔 구름 세계를 뒤덮고
산천이 한꺼번에 진동함을 보고서
여래께서 이미 열반에 드신 줄 알고
재빨리 달려 왔으나 벌써 뵐 수 없었네.
忽見暗雲遍世界 復覩山地大振動
則知如來已涅槃 故我疾來已不見
세존의 대자비가 나에게는 안 미쳐
부처님의 임종을 나는 못 봤네.
한마디 가르침도 받잡지 못했으니
이제 나 외로워 어디에 의지할꼬.
世尊大悲不普我 令我不見佛涅槃
不蒙一言相敎告 今我孤露何所依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몹시 괴로워
마음이 어지럽고 혼란하며 캄캄합니다.
제가 지금 여래의 정수리에 예배할까요?
아니면 여래의 가슴에 슬프게 예배할까요?
世尊我今大苦痛 情亂迷悶昏濁心
我今爲禮世尊頂 爲復哀禮如來胸
아니면 성스러운 큰 손에 예배할까요?
아니면 여래의 허리에 슬프게 예배할까요?
아니면 여래의 배꼽에 절을 할까요?
아니면 깊은 신심으로 부처님의 발에 예배할까요?
爲復敬禮大聖手 爲復悲禮如來腰
爲復敬禮如來臍 爲復深心禮佛足
어째서 부처님의 열반을 못 뵈었던고.
저에게 예배할 곳을 보여 주소서.
여래께서 계실 때엔 모두가 편안했는데
열반에 드신 지금, 모두가 슬퍼합니다.
何故不見佛涅槃 唯願示我敬禮處
如來在世衆安樂 今入涅槃皆大苦
애달프고도 괴로워라.
대자비로 저에게 예배할 곳 보여 주소서.
哀哉哀哉深大苦 大悲示敎所禮處
그 때에 가섭이 이 게송을 마치자 세존께서는 대자대비로써 두 발의 천복륜상(千輻輪相)을 드러내어 관 밖으로 가섭에게 보이시니,
천복륜상에서 천 줄기의 광명이 나와 시방의 온 세계를 비추었다.
그 때에 가섭이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의 발을 보고서 모두 함께 부처님 천복륜상에 절을 하니,
대각세존의 금강 같은 두 발이 다시 관으로 들어가고
조당집 > 조당집(祖堂集) > 조당집 제 1 권 > 23 - 32쪽
K.1503(45-233),
관은 전과 같이 봉해졌다.
그 때에 여래께서 대자비의 힘으로 가슴에서 불이 솟아 관 밖으로 나와 차츰차츰 다비하여 7일이 지나 묘하고 향기로운 땔감이 다하고야 끝났다.
그러나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안팎의 흰 상복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으니,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겉의 한 겹의 흰 상복이 타지 않은 것은 세속제(世俗諦)가 남아 있음을 뜻함이요,
둘째, 속의 한 겹의 흰 상복이 타지 않은 것은 진제(眞諦)가 없어지지 않았음을 뜻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임신년(壬申年)으로부터 지금 당(唐)의 보대(保大) 10년 임자(壬子, 592)에 이르기까지는 1,912년이요,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뒤로부터 지금 임자년까지 무릇 886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