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주
정용국
소주보다 쏘주에는 진한 눈물 스며 있다
고맙고 마음 짠한 사람들이 만났을 때
소주는 쏘주가 되어
눈자위를 적신다
쌍시옷의 위세가 거칠게 터져 나와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느꼈을 때
쏘주는 위로가 되어
굳은 어깨 감싼다
착한 술 소주보다 깡다구가 조금 쎈
쏘주의 쓰디쓴 맛 알 사람은 다 알지
쓴맛에 쓴맛을 더해
주먹 불끈 쥐게 하는
길이 된 시
정용국
비명을 지르다가 비명에 세상을 뜬
당신의 울화통이 겹겹이 쌓여 있는
백운대 혁명의 아침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시퍼렇게 날 선 말들 품고 산 쇠귀골엔
4.19와 푸른 하늘도 어설프게 터를 잡고
거대한 당신의 뿌리는
주춤대고 있습니다
밑씻개가 되어버린 대통령의 사진도
바람보다 재발라서 가엾던 풀뿌리도
단단한 변주곡으로
이 길 위에 흐릅니다
국물의 위로
정용국
무작정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가 있지
왜 나만 힘드냐고 하소연을 해보지만
국물도 없을 줄 알라며 되레 눈총 날아오고
그럴 땐 눈물겨운 엄마 밥이 생각나
동지 견딘 김치 얹어 미어지게 떠먹던
밤새워 아궁이를 지켜 뜨끈하던 한 그릇
잠이 녹은 뚝배기는 심장처럼 뜨거워
빈 속을 달래주고 제정신도 들게 했네
가마솥 진국의 힘으로 또 한 해를 넘는다
정용국의 시집 『그래도 너를 믿는 그래서 너를 참는』 중 3편 발췌함.
-----------------------
정용국
2001년 《시조세계》 등단. 시조집 『내 마음 속 게릴라』 『명왕성은 있다』 『동두천 아카페라』 등. 평양기행문 『평양에서 길을 찾다』 노산 시조문학상 수상. 사)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카페 게시글
회원 시
쏘주 외 2편/ 정용국
경기작가회의
추천 0
조회 7
24.08.31 01:41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