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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소백주 (111)야수(野獸)
“오호! 그 그렇다면, 어 어흠!”
그 말을 들은 산 도적 같은 이정승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흘렀다. 소백주는 이정승에게 붙잡힌 손을 슬그머니 빼내더니 방 가운데 차려진 술상을 부엌으로 가지고 나갔다. 그리고는 곧장 들어와서는 방을 대강 치우더니 방 윗목에 놓여 있는 커다란 장롱을 열어 비단이불을 꺼내 아랫목에 깔았다. 푹신한 요를 깔고 베개를 두 개 놓고 그 위로 붉은 모란꽃과 나비가 수놓아진 부드러운 비단 이불을 덮어 잠자리를 마련했다. 이제 이정승과 소백주는 그 안으로 들어가면 되었다.
“어서 잠자리에 드세요. 정승나리.”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방 가운데 엉거주춤 앉아있는 이정승에게 얼굴을 붉히며 소백주가 말했다.
“그 그래야지. 으음!”
이정승이 일어나 멈칫거렸다.
“자 잠자리에 드시려거든 옷을 죄다 벗어야지요. 정승나리…”
소백주가 조그맣게 속삭이듯 말했다.
“어 어흠!… 그 그렇군!”
이정승이 기쁨에 들뜬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한 겹 한 겹 입었던 옷을 발가벗기 시작했다. 이정승이 마지막 속옷 바지까지 죄다 벗어버리자 불빛에 곰처럼 살이 찐 커다란 알몸이 드러났다. 이정승이 재빨리 이불 속으로 푹 파고 들어가며 말했다.
“그 그대도 어서 들어오시구려.”
“아! 아이! 차암!… 부 부끄럽게… 자 잠시만요.”
수줍게 말을 하며 눈웃음을 치는 소백주가 방문고리를 잡아 걸어 잠그고는 호롱불을 확 입김을 불어 꺼버리더니 겉저고리와 치마를 벗고 슬그머니 이불을 비집고 들어가 이정승 옆에 누웠다. 순간 이정승이 소백주를 와락 끌어안더니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들어 속치마며 속저고리를 사정없이 벗겨 내는 것이었다.
“어! 어윽! 왜 이리 성급하신가요!”
마치 붙잡은 닭 털 뽑듯 무참하게 덤벼들어 옷을 발가벗겨 내는 이정승의 엄청난 손길의 완력을 어쩌지 못하고 소백주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으음!… 그대의 미모는 이 조선에서 가장 최고요. 이 길로 삼수갑산을 간대도 내 어찌 참을 수가 있겠소.”
이정승이 그렇게 말하며 덮고 있는 비단 이불을 발로 확 차버리더니 숙달된 솜씨로 마지막 남은 소백주의 속 고쟁이를 사납게 훌렁 벗겨버렸다. 이정승은 역시 탐욕의 세상사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탁월한 야수(野獸)였다.
기생 소백주 (112)일촉즉발(一觸卽發)
이제 소백주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털 뽑힌 닭이 되었다. 이정승이 몸을 일으켜 알몸이 된 소백주를 찍어 누르는가 싶었는데 벌떡 일어나더니 허연 두 다리를 들어 거칠게 확 잡아 벌리고는 치솟은 커다란 남성의 불기둥을 무릎을 꿇고 들이밀며 그대로 와락 삼키려 달려들었다. 저항할 틈도 없이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육식 짐승같이 사나운 이정승에게 단단히 붙잡힌 소백주가 다리를 흔들며 몸을 사정없이 뒤틀어대는 데도 움쩍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잡아먹히려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찰나였다.
“쾅! 쾅! 쾅!!!”
그때였다. 방문이 부서져라 하고 사납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뒤이어 우람한 사내목소리가 마른하늘에 벼락 치듯 우렁차게 날아들었다.
“문 열어라!”
순간 바로 방문 앞에서 잠겨있는 문고리를 덜커덕! 사납게 잡아채며 커다란 사내목소리가 다시 벼락 치듯 날아드는 것이었다. ‘엥! 문 여라니! 이미 문은 활짝 열렸거늘 들어가면 될 터인데!……이 이 좋은 밤……이 이거 아닌 밤중에 무슨 홍두깨란 말인가?’
그 소리를 들은 이정승이 주춤하더니 무의식적으로 방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 틈에 소백주는 이정승을 밀어뜨리고는 얼른 몸을 빼고 일어나며 조그맣게 말했다.
“아이구! 저 정승나리! 크 큰일 났네요!”
“무……무슨 일인가?”
이정승이 화들짝 놀라 어둠속에서 더듬더듬 옷을 찾는 소백주 쪽을 보고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우 우리 남편입니다… 이런 한밤중에 집에 오다니… 크 큰일 났습니다!”
소백주는 더듬더듬 벗어둔 속옷을 급하게 찾아 입으며 말했다.
“여보! 문 여라니 무얼 하고 있는 게요! 그새 잠이든 게요! 얼른 문 열어요! 빨리! 문 안 열면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리다! 쾅! 쾅! 쾅!”
문을 두들기고 문고리를 다시 덜커덕! 잡아채며 사내의 성난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가 가만있어요. 문 엽니다.”
소백주가 잽싸게 속옷을 입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이제 다급한 것은 이정승이었다. 남의 아녀자와 버젓이 동침한 것이 발각 되면 그 길로 모든 것이 끝장날 것이었다.
“어어! 이… 이…”
발가벗은 이정승이 이불 위에 웅크리고 앉아 허둥거리며 가느다랗게 신음을 토해냈다.
“우선 저 저기 윗목에 있는 장롱 속으로 들어가셔요. 얼른!”
소백주가 이정승을 보고 다급하게 말했다.
기생 소백주 (113)마(魔)
‘어허! 저 우라질 대번 급살 맞아 죽을 작자가 결정적인 찰나에 나타나 판을 깨버리다니! 목구멍으로 다 넘어간 맛난 고깃점을 도로 토해냈으니! 이이 무슨 낭패인가! 삼천 냥이나 돈을 빌려가 장사를 간다는 놈이 이 한밤중에 들이닥치다니! 이이 당장 날벼락을 맞아 뒈질 놈! 에구구구구! 정승 체면에 이 무슨 사나운 꼴인가! 마구 잡아 죽일 수도 없고!… 에이이이이이!… 저저! 씨부랄 놈! 재수에 추저분한 옴 붙은 날이네! 쯧쯧!...’
방 윗목에 놓인 사각의 커다란 장롱을 가리키며 소백주가 말하자 이정승은 낙심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하는 수 없이 벌거벗은 채로 장롱 안으로 재빨리 기어들어가 앉았다. 소백주가 방안에 어지럽게 널려진 이정승의 옷을 쓸어 장롱 속에 넣고는 철컥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그리고는 방안에 호롱불을 켜더니 잠겨 진 문을 열었다. 순간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김선비가 들어왔다.
“왜 이리 늦게 문을 여는 것이요? 무슨 일 있나요?”
김선비가 성난 목소리로 외치며 방안을 휘 둘러보더니 이불이 깔린 아랫목에 풀썩 앉으며 말했다.
“무슨 일은요! 서방님이 아니 계시니 혹여 아녀자 혼자 있는 집에 괴한이라도 침입하여 무슨 변이라도 당할까 싶어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잡니다. 그런데 오늘은 집안일을 좀 했더니 피곤하여 여느 때 같잖게 깊이 잠이 들어 문 여는 것이 좀 늦었습니다. 그런데 멀리 장사 나간 분이 벌어오라는 돈은 아니 벌어오고 갑자기 이 야심한 밤에 왜 집에 온 것입니까? 정승나리께 빌린 삼천 냥은 어떻게 갚을 것입니까?”
소백주가 김선비를 핀잔하며 누구 들으라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어허! 부인, 그게 아니라 내 말 좀 들어보시지요. 내 장삿길을 떠나 무엇을 사서 팔면 돈이 되려나 하고 저자거리를 탐문하고 다니다가 우연히 머리가 허연 늙은 소경하나가 길가에 앉아서 점을 치는 것을 보았지요. 이 소경이 모든 사람의 과거사와 미래사를 훤히 다 알아본다고 하여 내 미래사가 참으로 궁금하여 그 소경을 한번 만나 점을 보기로 하였지요. 그런데 그 소경이 나를 보자마자 내가 천 냥을 가졌다는 것을 그대로 알아보는 것이었어요. 귀신도 이런 귀신이 없구나하고 내 점을 좀 쳐달라고 부탁했지요. 그랬더니 복채를 두둑이 내라는 것이었어요. 가진 돈은 있으나 장사 밑천이라 쓸 수 없고 하여 그냥 점을 좀 봐 줄 수 없느냐고 부탁을 했지요. 그런데 이 소경 점쟁이가 돈을 적게 내면 점이 맞지도 않고 점을 봐주지도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사실 이야기를 하고는 천 냥을 다 줄 수 없으니 내 이백 냥을 주리니 점을 좀 봐달라고 했지요. 그러자 점을 못 봐준다고 하면서 그 돈이 참 소중하겠다고 하더이다. 그러면서 이 소경 점쟁이가 하는 말이 ‘당신은 마(魔)가 끼어서 이 마를 풀지 않고서는 그 사이 이천 냥을 빚진 것은 고사하고 수십만 냥을 가졌더라도 절대로 돈을 벌기는커녕 사람까지 아주 버리게 되었소.’ 그러더이다. 그래 내 깜짝 놀라 도대체 그 마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 소경 점쟁이가 하는 말이 그것 참 기이하게도 ‘당신 집 안방 윗목에 있는 저 장롱이 바로 마’라는 것이었어요.”
김선비가 윗목에 놓여있는 커다란 장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기생 소백주 (114)독 안에 갇힌 생쥐
순간 장롱 안에 숨어서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발가벗은 채 숨을 죽이고 잔뜩 웅크리고 앉아있는 독 안에 갇힌 생쥐 꼴이 된 이정승의 귀청을 그 장롱이라는 소리가 송곳처럼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
‘어어! 저 작자가! 시 시방 뭐라 했나? 자! 자! 장롱이 마마 마라니? 이이……이 무 무슨 말인가?’ 이정승은 자신의 일이 모두 발각되기라도 한양 심장이 덜컥 멎는 것이었다.
“아니, 저 장롱이 마라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서방님!”
소백주가 태연히 말했다.
“아닙니다. 부인! 나도 처음에는 무슨 방안에 있는 장롱 따위가 마가 될 수 있겠느냐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 용하다는 소경 점쟁이가 저놈의 장롱이 내 인생을 가로막고 있는 마라고 하니 마가 분명한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이 드는 것이었지요. 그래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그 소경 점쟁이가 하는 말이 이 길로 곧장 집으로 가서 한밤중에라도 저 장롱을 들어다가 당장 깊은 강물에 갖다버리든지 아니면 장작불 위에 놓고 활활 불에 태워버리든지 하시오 하더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돈도 많이 벌고 바로 입신출세하여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그러더이다! 내 그래서 한달음에 이 밤길을 달려왔소이다!”
김선비가 윗목에 놓인 장롱을 당장 끌어내 요절을 낼 기세로 으르며 큰소리로 말했다.
장롱 속에 꼼짝없이 갇혀서 설마하고 앉아있는 이정승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움찔 놀라며 오금이 저리는 것이었다. 이거 자칫 잘못했다가는 생목숨이 흔적도 없이 달아날 판이었다. 이정승은 귀를 쫑긋 세우고 사정없이 물방아 짓는 심장을 가까스로 가누며 숨을 죽였다.
“아니 서방님! 그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저 장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어머니가 나 시집 올 때 해주신 것 아닌가요! 내 어머니의 사랑이 깃든 소중하고 귀한 저 장롱을 없애다니요. 절대로 아니 되옵니다!”
소백주가 펄쩍 뛰며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허! 부인, 그거야 이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더 좋은 장롱으로 사드리면 될 것 아니겠어요. 저놈의 장롱이 내 앞길을 가로막는 마라고 하니 당장 마당으로 끌어내 지게에 짊어다가 강물에 풍덩 내던져 버리던지 아니면 장작불을 지펴 불에 태워 없애버립시다!”
김선비가 강한 어조로 못을 박아세우며 말했다.
‘뭐! 뭐라! 저 작자가 시 시방! 이 장롱을 들어내 강물에 풍덩 던져 버리든지 아니면 불에 태워 버리겠다고 했는가!’ 장롱 속에 갇힌 이정승은 김선비의 뜻밖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아악!’ 하고 날선 비명을 지르며 심장이 덜컥 멎는 것이었다.
기생 소백주 (115)황천길
장롱 속에 쥐 죽은 듯이 웅크리고 앉아있는 온몸에 소름이 오싹 끼친 이정승은 그 말을 듣고는 제 귀를 의심하며 정말로 오늘밤에 물에 빠져 죽은 물귀신이 되든지 아니면 생으로 화장을 당하지나 않을까 싶은 생각이 번쩍 들어 대번 숨이 큭 막히는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서방님, 그 그래도 저 장롱은 우리 어머니가 시집 올 때 해주신 소중한 것이 온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강물에 던진다거나 불에 태우실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소백주가 막아서며 말했다.
“무엇이 어째! 저놈의 장롱이 내 앞길을 온통 가로막고 있다고 하는데도 부인께서는 가만 두자는 말인가요!”
김선비가 순간 벼락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서 서방님, 그 그게…”
소백주가 말끝을 흐렸다.
“듣기 싫소! 내 저놈의 장롱을 당장 끌어내 강물에 내던져 버리든지 불에 태워 버려야겠소!”
김선비가 소리를 꽥 지르더니 벌컥 방문을 열고 나갔다.
‘아! 아니! 저 작자가 정녕 큰일을 낼 참이란 말인가! 아! 아이고! 나는 죽었네! 이 이를 어쩐다?’ 장롱 속의 이정승은 이러다가 정말 오늘 아무래도 자신이 황천길 길 가는 객이 되는 날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덜컥 들어 온몸에 식은땀이 주르르 흐르고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것도 강물에 던져져 물귀신이 되든지 아니면 뜨거운 불에 활활 온몸이 지글지글 태워져서 말이다.
다시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김선비가 굵은 새끼줄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윗벽에 붙은 장롱을 들어 덜컹 앞으로 움직거리더니 앞뒤로 아래위로 친친동여 꽁꽁 묶는 것이었다. 그 김선비의 손길을 가로막으며 소백주가 다급하게 말했다.
“서 서방님! 오늘밤은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니 자 잠시 쉬었다가 내일 아침 밝은 낮에 없애도 좋지 않나요?”
“무슨 말씀이오! 소경 점쟁이가 바로 이 밤에 저 장롱을 반드시 없애버려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였소! 그렇지 않으면 효험이 없다고 하였소. 어서 비키시오!”
김선비가 소백주의 손을 뿌리치더니 장롱을 묶은 새끼줄을 잡고 덜컹덜컹 방 가운데로 장롱을 밀어 끌어내는 것이었다. 장롱을 떠미는 대로 이리저리 몸이 기우뚱거리는 이정승은 바삭바삭 속을 태우며 생 오줌을 질금거렸다.
더 이상 체면이고 나발이고 뭐고 따지면서 이렇게 웅크리고 앉아있어서만은 절대로 아니 될 판이었다. 그러다간 정말 큰일 날 것이었다. 생사(生死)가 오락가락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기생 소백주 (116)혼비백산(魂飛魄散)
순간 김선비가 새끼줄로 친친 동여 묶은 장롱을 마구 덜커덩덜커덩 잡아끄는 데 그때 장롱 문을 사납게 ‘쿵쾅! 쿵쾅!’ 밀며 혼비백산(魂飛魄散)한 이정승이 순간 볼멘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아! 아이쿠! 나 죽네! 여 여보게! 나나! 나 좀 살려 주시게!”
갑자기 장롱 안에서 다급하게 외치는 웬 사내의 목소리가 나고 장롱 벽을 ‘쿵쾅! 쿵쾅!’ 치는 소리를 들은 김선비가 장롱을 잡아끄는 손길을 멈추며 깜짝 놀라 말했다.
“엥! 이 이게 무슨 소린가?! 분명 장롱 안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가?! 부인, 이 안에서 소리치는 게 필시 악귀! 마(魔)가 아니고 무엇이요! 허험!”
“서 서방님… 그 그 그게 아니고, 시 실은!…”
소백주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얼굴을 붉히면서 김선비를 막아섰다.
“듣기 싫소! 저놈이 분명 내 앞길을 막고 있는 마가 아니고 무엇이요! 과연 소경 점쟁이로다! 참으로 용하도다! 천 냥을 주고 본 점괘의 효험이 바로 나는구나! 내 기필코 오늘 저놈을 깊은 강물에 풍덩 던져버리든지 아니면 뜨거운 불에 태워 죽이리다. 저리 썩 비키시오!”
김선비가 소백주를 뿌리치며 사납게 소리쳤다.
“아! 아악!…”
순간 김선비에게 냅다 떠밀린 소백주가 송곳처럼 날카로운 비명을 자지러지게 지르며 방 가운데로 나무토막처럼 풀썩 쓰러졌다. 김선비는 쓰러진 소백주를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 장롱을 묶은 새끼줄을 잡고 낑낑 대며 덜커덕 한자만큼이나 떠밀어냈다.
소백주의 날선 비명소리를 들은 이정승은 ‘어허! 필시 제 마누라가 크게 다친 모양일세! 아이구! 저 작자가 제 마누라까지 마구 두들겨 패 죽이는구나! 날뛰는 꼴이 아주 미쳐 실성을 하였구나! 정말로 생사람 죽일 놈일세! 아니 죽이고 있네! 보아하니 정말로 오늘밤 큰일을 치를 놈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덜컥 들자 다시 미친 듯이 장롱 문을 부셔져라 ‘쿵! 쿵!’ 밀며 이판사판 죽기 살기로 소리쳤다.
“여여여! 여 여보게! 마마마 마가 아니고 나나나 날세 나여!”
성난 호랑이처럼 날카롭게 이빨을 세우고 거센 북풍에 휘몰아 오르는 불길같이 마구잡이로 덤비는 김선비하는 꼴이 이러다간 정말 이 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소리 소문 없이 그야말로 짹 소리도 못하고 죽겠구나 싶은 불길한 생각이 한여름에 먹구름처럼 머릿속에 뭉게뭉게 가득 몰려들어 이정승은 아주 넋이 나가 버렸던 것이다.
“나 나라니! 얼씨구! 저놈이 필시 아름다운 팔도강산 이 나라 좋은 운길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흉악한 검은 마라! 찢어죽일 악귀라! 그러기에 내 앞길도 가로막고 있는 반드시 당장에 때려죽여 없애 버려야할 너는 악귀니라!”
김선비가 장롱을 주먹으로 ‘쿵!’ 하고 냅다 내리치며 사납게 소리쳤다.
기생 소백주 (117)발악(發惡)
“아! 아악! 아이쿠! 사람 죽네!”
순간 이정승이 깜짝 놀라 날선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아하하하하하! 이놈! 내 너를 오늘밤에 저 깊은 강물에 던져 빠쳐 물고기 밥을 만들어 줄거나? 아니면 저 뜨거운 불에 활활 태워 흔적도 없이 검은 재를 만들어 바람에 날려 버려줄거나? 이놈 마야! 바다 건너 온 마냐? 검은 하늘을 날아온 마냐? 네놈 한 놈 욕심 채우자고 죄 없는 백성을 괴롭히고 죽인 악마야! 어떻게 삼천리강산에 깊이 맺힌 이 한(恨)을 풀거나! 너는 이제 오늘밤 꼼짝없이 죽었구나! 내 어찌 해주면 좋겠느냐?”
김선비가 방안이 통째로 무너져라 우뢰같이 소리치며 장롱을 다시 덜커덩 잡아끌었다.
“아이쿠야! 여보게! 나나! 이이!… 이 이정승일세! 아이쿠! 내 내 죽을죄를 졌네! 사! 사!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사사 사 사람 살려!”
비좁은 장롱 속에 갇힌 이정승이 식은땀을 발가벗은 온몸에 주르륵 흘리며 젖 먹던 힘을 다해 발악(發惡)을 하며 넋 나간 듯 사정없이 소리쳤다.
“엥! 이정승이라니? 이 이게 무슨 말인가? 허허! 이놈! 마야! 너 살겠다고 이제 이 나라의 훌륭하신 이정승을 마음대로 갖다 붙이면 내가 속을 줄 아느냐? 하하하하하하! 이놈이 보통 요물이 아니로구나! 저 살겠다고 이 나라에 학덕 높고 고명하신 제일가는 이정승을 갖다 대며 흉악한 꾀를 다 부리는구나! 허허허! 이놈아! 그깟 잔꾀가 통할 것 같으냐!”
김선비가 다시 장롱을 덜커덕 끌며 사납게 소리쳤다.
“아 아니! 나나 저저 정말 이이이 이 이정승일세! 내 잘못했네! 사사 사람 좀 살려 주시게나! 거 거거 거기 누구 없소! 사사사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장롱 속의 이정승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걸하며 정신이 나간 듯 마구 비명을 질러댔다.
“어허! 장롱 속의 마가 이정승이라! 도대체 왜 하늘같은 이정승이 우리 집 안방 장롱 속에 있는 것이더냐! 팔도강산을 정의롭게 다스리려 노심초사 하시는 저 훌륭한 이정승이 내 안방 장롱 속에 있다!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 이 이런! 빌어먹을 마야! 터무니없는 소릴랑 그만 두어라! 도무지 믿기지 않는구나!”
김선비가 장롱을 바라보며 호통을 쳤다.
“저 정말 나나 이이이 이정승일세! 어흐흐!… 이 사람아! 어 어서 문 좀 열어주게! 어흐흐… 어어엉!”
이정승이 눈물을 질금거리다가 마침내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천하가 다 아는 일국의 정승 체면이 이 무슨 꼴인가! 여색을 탐하려다가 그것도 겁도 없이 여염집 아녀자를 탐하려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이 밤 꼼짝없이 그것도 장롱 속에 갇혀 죽게 되었으니 이 무슨 흉악한 꼴이란 말인가!
기생 소백주 (118)측은지심(惻隱之心)
“어허! 이놈! 마가 저 살겠다고 훌륭하신 이정승을 갖다 붙이더니 이젠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로구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유발하려는 것이냐! 내 속을 줄 아느냐? 이놈!”
김선비가 아랑곳하지 않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흐! 어어엉! 이이 이 사람아! 나 지 진짜 이이 이정승이란 말일세! 어흐흐 어어엉!…”
이정승이 체면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는 ?아예 내놓고 마구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어 어험! 그 그래!… 그렇다면 정말 마가 아니고 이정승인지 내 몇 가지 질문을 할 터이니 답을 할 수 있겠느냐?”
김선비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어! 어흐흐흐흑!… 그 그렇다마다! 어어 어서 물어보시게!”
이정승이 순간 울음을 뚝 그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어 어흠! 그렇다면 내가 이정승 댁에 가서 벼슬을 부탁하며 돈을 갖다 바쳤는데 그게 얼마인지 아느냐?”
김선비가 크게 기침을 하고는 장롱을 바라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 그게… 얼마더라!… 아! 사사 삼천 냥일세!”
이정승이 재빨리 말했다.
“어허! 그걸 다 알아! 이제 보니 저놈이 보통 마가 아니로구나! 이놈 천벌을 받을 악귀야! 마야! 그렇다면 왜 돈만 받아 챙기고 벼슬은 내려주지 않았더냐? 돈이 적었다더냐?”
“아아아 아닐세! 아이쿠야! 그그 그 그건… 내! 저저… 저 정말, 자자 잘못했네!”
이정승이 말을 더듬으며 머뭇거렸다.
“그렇다면 내가 이정승께 장사 밑천을 한다고 돈을 빌렸는데 그게 얼마더냐?”
“사사 삼천 냥일세! 그 그건 아니 갚아도 되네! 그그 그리고 내일 아침에 우리 집에 오시게나! 내 자네가 원하는 벼슬자리를 바로 내려주겠네! 내 잘못했네! 어어 어서 나 좀 살려 주시게나!”
이정승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급하게 말했다.
“어 어흠! 그럼 너는 정말 마가 아니란 말이냐?”
김선비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이쿠! 이 사람아! 나 진짜로 이이 이정승일세! 저 정말일세! 내 말한 것은 약속을 단단히 지킬 것이니 어서 나 좀 살려 주시게나! 어흐흐흑!…”
이정승이 다시 눈물을 질금거리며 넋 나간 듯 말했다.
“허허! 정말로 저놈이 마가 아니고 저 지체 높은 이정승나리라고? 그그 그럴 리가!…”
김선비가 의아스럽다는 듯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말했다.
기생 소백주 (119)약조(約條)
“아닐세! 정말 나나나 이이 이정승일세! 날 한번만 용서해 주시게. 죽을죄를 지었네. 앞으로는 내 절대로 뇌물을 받아먹지 않고 주색을 멀리하고 백성을 위해 정직하게 일하며 사람답게 살겠네. 내 이 목을 걸고 진실로 약조(約條)하겠네. 이이 이 사람아! 어 어서 이 장롱 문을 좀 열어주시게나!”
이정승이 다시 징징 짜며 애원하며 말했다.
“어허! 정말 저놈이 마가 아니고 이 나라의 지체 높은 저 훌륭한 이정승나리라면… 이 밤에 물에 빠트리거나 불에 태워 죽였다간 큰일이 아닌가!… 어 어흠! 그렇다면 필시 이 두 눈으로 확인을 해야 할 터!…”
김선비가 장롱에 대고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그 그렇지! 이 사람아! 어 얼른 이 문을 열고 확인해 보시게나! 부부 분명 나 이정승일세!”
이정승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소리쳤다.
“어 어흠! 그 그래!… 저놈이 이정승이 아니고 마라면 저 장롱 문을 열었다가는 정말 큰일이 아닌가!…”
“그 그럴 리가 없네! 나나 정말 이이 이정승일세! 그그그 그딴 것은 절대로 걱정 마시게!”
“어허! 정말 이정승나리란 말인가! 일국의 정승 이정승나리가 내 집 안방 그것도 장롱 속에 있다! 이 무슨 귀신이 곡할 일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터!… 아무튼 내 이 두 눈으로 꼭 확인을 해야!…”
김선비가 그렇게 말을 하며 잠시 골똘하게 무슨 생각에 잠긴 듯 머뭇거리다가 대담하게 장롱을 묶은 새끼줄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장롱 문을 걸어 잠갔던 자물쇠를 덜컥 열었다. 순간 장롱 문을 사납게 밀어젖히며 파리하게 질린 얼굴에 온통 눈물자국이 진득진득 흘러 번지고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하게 흘러 배인 돼지같이 살이 찐 웬 배불뚝이 맨살덩어리 사내하나가 불쑥 솟구쳐 나오는 것이었다. 보니 온몸을 온통 발가벗은 이정승이었다.
“여여여 여 여보게! 보보 보 보시게! 나나나 마마마 마가 아니고 이이이 이! 이정승일세!”
기겁을 한 얼굴의 이정승이 이마의 식은땀을 쓱 훔치면서 장롱 밖으로 나오더니 김선비 앞에 발가벗고 서서 부들부들 떨며 더듬더듬 소리쳤다.
“아아! 아이쿠! 저 정승나리! 이 밤에 그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 했습니다. 소생, 주주 죽을죄를 졌습니다!”
김선비가 넙죽 엎드려 절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넋이 나간 눈빛의 이정승이 허겁지겁 떨리는 손으로 장롱 속에 구겨 넣어둔 옷을 되는대로 얼렁뚱땅 걸쳐 입으면서 그때까지 저만치 방안에 죽은 듯이 쓰러져 누워있는 소백주를 흘깃 훔쳐보더니 무릎을 꿇고 앉은 김선비를 바라보면서 두 손을 싹싹 빌며 애원하듯 더듬더듬 말했다.
기생 소백주 (120)박장대소(拍掌大笑)
“어어 어서 이이 일어나시게! 내 자네에게 주주 죽을죄를 졌는데 무무 무슨 소리인가!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왕에 사람을 살릴 테면 아주 살려 주시게나! 자네와 나와 단 둘이만 아는 일이니 이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은 이 일을 절대로 모를 것이네! 자 자네가 나나나! 나를 좀 살려 주시게나!”
한 나라의 왕비의 오라비에 일국의 내로라는 정승 체면에 여염집 남편 있는 아녀자를 마치 파렴치한 날강도처럼 끓어오르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탐하려다가 그 집 안방 장롱 속에 갇혀 죽을 뻔 했다 살아났다는 이 추저분하고 창피한 일이 온 세상에 파다하게 소문이 나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것을 이정승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승나리! 그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이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 철딱서니 없이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겠습니까!”
김선비가 흔쾌히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 으음! 그 그렇다면 내 내 안심이네. 그리고 삼천 냥은 안 갚아도 되네! 또 내 자네에게 벼슬자리를 내려준다고 한 약속도 지킬 터이니 내일 아침 사시(巳時: 오전 9-11시)에 내 집으로 오시게! 꼭 와야 하네!”
말을 마친 이정승이 소름이 끼친 듯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한번 부르르 떨더니 쥐구멍을 찾아 도망가는 생쥐마냥 재빨리 쪼르르르르 방문 앞으로 달려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덜컹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는 방문 밖에 서서 ‘휴우!’ 하고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갑자기 밤하늘을 바라보며 ‘으흐허허허허허허헝!’하는 기묘한 신음소리를 토해내는가 싶더니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부리나케 제 집 가는 쪽을 향해 소나기 몰아오는 날 비 맞은 수탉 꼴로 비칠비칠 어둠 속을 재우쳐 달려가는 것이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저 장롱 속에 영영 갇혀 이 밤에 깊은 강물에 던져져 죽거나 혹은 뜨건 불에 타져 죽는 험한 꼴을 속절없이 당해 뼈도 추리지 못하고 그만 비명횡사하여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을 터인데 살아서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게 되다니 꿈만 같았던 것이다. 용궁 간 토끼 탈출한 기분으로 단단하게 혼쭐이 난 이정승은 벌렁벌렁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마구 집을 향해 미친 듯이 밤길을 뛰어 달았다.
그때야 죽은 듯이 방안에 쓰러져 누워있던 소백주가 부스스 감았던 눈을 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김선비를 바라보며 손뼉을 치며 ‘깔깔깔깔깔깔깔!’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김선비도 ‘으으하하하하하하!’ 창자가 다 꼬부라지도록 웃어재끼며 소백주를 마주 바라보고 박장대소(拍掌大笑)하는 것이었다.
소백주의 치밀한 계략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일국의 정승, 그것도 독사보다도 더 표독하고 미련한 곰보다도 더 탐욕스럽고 저 알도 낳지 못한 늙은 암탉대가리만큼이나 텅텅 골빈 이정승이 그대로 나가 떨어져 버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