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간 : 법과 도덕 아래에 복종
비범한 인간(=초인) : 법과 도덕 위에 군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프랑스어: Napoléon Bonaparte, 코르시카어: Napoleone di Buonaparte, 이탈리아어: Napoleone Bonaparte, 독일어: Napoleon Bonaparte, 1769년 8월 15일 ~ 1821년 5월 5일)는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군인이자 1804년부터 1814년, 1815년까지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였다. 흔히 나폴레옹(프랑스어: Napoléon)으로 불린다.
나폴레옹의 '초인 사상'은 그가 단순히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라, 역사적 운명을 개척하고 사회를 변혁하는 비범한 인물이라는 인식을 나타냅니다.
이는 니체가 나폴레옹을 '초인(Übermensch)'으로 표현한 것과 연결되며, 프랑스 혁명의 성과를 확산시키고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등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정복 전쟁으로 인한 잔혹한 학살과 식민지 건설 시도 등 '파괴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이 또한 그의 복합적인 평가와 연결됩니다.
〈생 베르나르 고개의 나폴레옹〉(Napoleon at the Saint-Bernard Pass, 프랑스어: Le Premier Consul franchissant les Alpes au col du Grand Saint-Bernard로 등재됨)은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1801년부터 1805년 사이에 그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승마 초상화 5점 시리즈이다. 〈알프스를 건너는 나폴레옹〉(Napoleon Crossing the Alps) 또는 〈알프스를 건너는 보나파르트〉(Bonaparte Crossing the Alps)라고도 불린다. 처음에는 스페인 국왕이 의뢰한 이 작품은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가 1800년 5월 그랑 생베르나르 고개를 통과해 알프스산맥을 넘어간 실제 횡단에 대한 매우 이상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긍정적 평가: 프랑스 혁명의 계승과 확산
근대 법전 확립: 나폴레옹 법전 편찬을 통해 근대적인 법률 체계를 확립하고, 이는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 법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랑스 혁명 정신 전파: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은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유럽 전역에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정 개혁: 국민 교육 제도 도입, 중앙 집권적 행정 제도 구축 등 내정 개혁을 통해 프랑스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비판적 평가: 정복자의 폭력성과 인종차별
잔혹한 전쟁과 학살: 나폴레옹의 군대는 정복지에 대한 저항에 강력한 학살로 대응하는 등 침략자로서 잔혹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특히 스페인에서의 학살이 대표적입니다.
인종차별과 노예제 부활: 제1통령이 된 후 노예제를 부활시키고 흑인들을 하등하게 여기는 끔찍한 학살을 자행하여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결론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는 '초인'과 '파괴자'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합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근대적 법률 시스템을 구축한 개혁가였지만, 동시에 정복 전쟁과 식민지 정책에서 잔혹한 폭력성과 인종차별적 태도를 보인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위버멘쉬(독일어: Übermensch / 영어: Overman)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삶의 목표로 제시한 인간상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긍정할 줄 알아서 고통마저도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외부의 힘이나 절대자에게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해 내는 자.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니체는 인간이 위버멘쉬를 향해 나아가야 된다고 말했지, 매번 위버멘쉬가 될 수 있다고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간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의 밧줄 위에서 위버멘쉬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 즉, 삶이 무기력해서 그 권태를 극복하고자 하는 필요가 있을 때 그 '나아감'이 본능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지, 인간이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았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또한 이 말은 자신의 행복 추구를 위해 그 어떤 짓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위버멘쉬는 자신이 세운 가치관에 의해 스스로 몰락하는 자다.
동정에 기반을 둔 기존 도덕의 선악과 출발점이 다를 뿐 위버멘쉬는 자신을 제어하는 '자신만의' 엄격한 가치관을 자신의 내부에 가지고 있다. 위버멘쉬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강력한 자를 존중하는바, 이 강력한 자란 자신을 제어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말하고 침묵하는 법을 알고 있고, 자기 자신을 엄격하고 혹독하게 다루는 데서 기쁨을 느끼며, 엄격하고 혹독한 모든 것을 존경하는 자다. 그는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는 겁 많은 인간, 불안해하는 인간,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인간, 편협하고 의심 많은 인간, 비굴한 인간, 남에게 아첨하는 인간,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모든 이를 경멸한다.
다시 말해, 위버멘쉬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제어하는 크고 작은 자기 긍정의 엄격함을 통해 자기 자신으로 사는 데서 기쁨을 느끼며 그 기쁨으로 삶의 고통을 극복하는 사람, 그리하여 삶의 필연적인 면마저 어리숙하게라도 춤추고 노래하고 웃는 것으로써 극복할 줄 아는 건강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원문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위버멘쉬가 대지의 뜻이다. 그대들의 의지가 말하도록 하라. 위버멘쉬가 대지의 뜻이라고!
내 형제들이여, 그대들에게 간곡히 바라노니 대지에 충실하라. 그대들에게 초지상적인 희망을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독을 섞는 자들이다.
저들은 삶을 경멸하는 자들이고 말라 죽어가는 자들이며 스스로 중독된 자들로, 대지는 저들에게 지쳐 있다. 이런 자들이니 저쪽으로 떠나가는 것을 좋아할지도!
지난날에는 신에 대한 불경이 가장 큰 불경이었다. 그런데 신은 죽었고 신에게 대해 불경했던 자들도 함께 죽었다. 이제 가장 끔찍한 일은 대지에 불경을 저지르는 것 그리고 저 규명되지 않은 뱃속을 이 대지의 뜻보다 더 높이 존중하는 것이다!
지난날에는 영혼이 육체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는 이 경멸이 최고였지. 영혼은 육체가 야위고, 몰골이 말이 아니기를, 굶주리기를 바랐다. 그렇게 영혼은 육체와 대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오, 바로 그런 영혼 자신이 야위었었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며 굶주렸었다. 그러니 그 영혼이 누린 쾌락은 잔인함이었던 거지!
그대 내 형제들이여, 내게 말해다오. 그대들의 육체가 그대들의 영혼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고 있는가? 그대들의 영혼 자체가 궁핍하고, 때묻었고, 가여운 안일에 젖어 있다고 하지는 않는가?
진정 인간은 더러운 강물이다. 더렵혀지지 않으면서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이려면 인간은 먼저 바다이어야 한다.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위버멘쉬가 바로 그 바다다. 그대들의 커다란 경멸이 그 속에 가라앉을 수 있는 바다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즉, 위버멘쉬는 종교나 도덕에서 말하는 초지상적인 희망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덕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 그래서 자신이 세운 목표와 사명에 따라 살아가며, 그로 인한 자신의 몰락마저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이에 반해 위버멘쉬의 반대말인 '인간말종'은 안락과 평온만을 원하기 때문에 단지 오래 살기를 바랄 뿐이며, 고통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변화, 즉 창조와 동경의 마음은 되도록 멀리하려고 한다.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을 한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너무나 성가시기 때문이다. 이들은 변화를 유발시킬지도 모르는 한 개인의 고유한 행복 추구를 무시하려고 하고 딱 남들 만큼만 행복해지길 바라며, 이런 점에서 모두가 평범하고 동등한 행복만을 가지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