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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
2026년 08월 02일(일요일)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입니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했다고 전해집니다. 1379년 많은 전각을 신축하고 중수했으며, 1382년 대장각 안에 이색과 나옹의 제자들이 발원해 만든 대장경을 봉안했습니다.
조선시대 때 억불정책으로 절이 위축되었으나 1469년 영릉의 원찰이 되었고, 1472년 절이 확장되고 다음 해에 보은사로 개칭되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671, 1792, 1858년에 각각 중수되었습니다.
현재 금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여주 신륵사 조사당(보물 제180호)·명부전·적묵당·노전·칠성각·종각·구룡루·시왕전 등이 있습니다. 또한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보물 제225호)·여주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제226호)·보제존자석종(보물 제228호) 등 많은 문화재들이 있습니다.
원호장군 전승비
일주문은 다포식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단청은 화려한 금문과 용, 학 등을 함께 계풍에 그려넣은 갖은 금단청으로 장엄합니다.
신륵사일주문
일주문 기둥 주련(柱聯)
三日修心千載寶 (삼릴수심천재보) 짧은 기간의 마음 수양이라도 천년의 보배요
百年貪欲一朝塵 (백년탐물일조진) 백년의 탐욕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로다.
신륵사 일주문
봉미산 신륵사(鳳尾山 神勒寺) 편액
일주문 뒤편
일주문 옆에 공덕비
신륵사 김병기송덕비
신륵사 김병기송덕비
판돈령김공병기송덕비(判敦寕金公炳冀頌德碑 )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조선 철종대(1849~1863)의 세도가인 김병기(1818~1875)가 신륵사에 시주하여 법당과 구룡루를 보수한 사실을 기록하였습니다.
건립연대는 1860년(철종 11)입니다.
규모는 총 높이 약 226.5㎝로, 비신 높이 136.5㎝, 폭 63㎝, 두께 14.5㎝이며, 개석(蓋石) 높이 42㎝, 폭 98㎝, 두께 63.5㎝이고, 방부 높이 48㎝, 폭 91㎝, 두께 63㎝입니다.
비신 앞면에 큰 해서로 “판돈령김공병기송덕비(判敦寧金公炳冀頌德碑)”라 적혀 있고, 그 옆에 작은 해서로 “간역 오위장 연안김지택(看役 五衛將 延安金智澤)”이라 되어 있습니다.
비신의 뒷면에 음기(陰記)가 13행의 단정한 해서로 새겨져 있으나, 비제(碑題)와 찬서자(撰書者)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여주신륵사사적비(驪州神勒寺事蹟碑), 인류화합공생기원비(人類和合共生祈願碑), 공적비(功績碑)
불이문(不二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였으며 삼문 형식의 건물입니다.
여주 신륵사는 천왕문과 금강문이 없고 불이문에 금강역사를 그려 넣어 금강문을 대신했습니다. 왼쪽 대문의 밀적금강은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으로 부처님의 비밀스런 사적을 들으며, 항상 입을 다물고 '훔'소리를 낸다고 하여 '훔금강역사'라고도 합니다. 오른쪽 대문의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로 코끼리 백만배의 힘을 갖고 있고, 항상입을 열고 '아'소리를 낸다 하여 '아금강역사'라고도 합니다.
불이문(不二門) 편액
왼쪽 대문의 밀적금강은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으로 부처님의 비밀스런 사적을 들으며, 항상 입을 다물고 '훔'소리를 낸다고 하여 '훔금강역사'라고도 합니다.
오른쪽 대문의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로 코끼리 백만배의 힘을 갖고 있고, 항상입을 열고 '아'소리를 낸다 하여 '아금강역사'라고도 합니다.
남한강변에 보제루(普濟樓)가 있습니다.
남한강 황포돛대
범종각
2층의 범종각이 있습니다. 내부에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 등 사물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신륵사 범종각은 남한강 변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로 유명한 ‘여주 8경’ 중 하나로 꼽히는 종각이라고 합니다.
범종각(梵鐘閣) 편액
임술사월 김어수(壬戌四月 金魚水) 관지가 보입니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불경번역사업에도 참여했던 시인 김어수(1909~1985)가 1985년 4월에 쓴 글씨입니다.
수각
청자정(靑磁亭) 편액
갑인중추(甲寅仲秋) 윤?술(尹? 述) 관지가 보입니다. 1974년 음력8월
세심정(洗心亭) 편액
용왕탱
감로수조(甘露水槽) 불기이오이십년 1976년(佛記二五二十年)
감로수조(甘露水槽)
삼층석탑과 강월헌(江月軒) 정자
현재 정자는 1974년에 복원된 형태로 남한강 절벽 위에 세워져,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강변 풍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명소로 목조 누각 형식의 개방된 구조로, 만들어진 정자는 강바람과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설계되였습니다.
달을 감상하는 강가의 정자라는 의미로 달맞이 하기에 좋은 장소인가 봅니다.
강월헌(江月軒) 편액
신륵사 삼층석탑(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3호)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 위에 있는 신륵사 삼층석탑(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3호)은 화강암을 깍아 만든 삼층탑으로, 신륵사 다층전탑 근처 강변의 암반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불교에서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무덤 양식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탑을 지탱하고 있는 기단부는 넓적한 한 장의 돌로 만들어져 있고, 그 위에는 사각형의 상대중석(면석)과 갑석을 올려 놓았습니다.
면석(面石)의 각 면에는 우주(隅柱-모서리 기둥)와 탱주(撐柱-가운데 기둥)를 새겼고, 그 위를 덮고 있는 갑석(甲石)에는 연꽃무늬가 아래로 향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고려 말 나옹 화상을 화장한 장소에 이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탑은 조각이 부드럽고 탑신부의 짜임새가 간결하여 고려 후기 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입니다.
신륵사 보호수
보호수 은행나무
나무나이 : 600년(1982년 기준), 나무높이 22m, 나무둘레 3m, 3.5m
보호수 참나무
나무나이 : 600년, 나무높이 32m, 나무둘레 4.1m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제226호)
아래로 한강이 굽어보이고 강 건너 멀리 평야를 마주하고 있는 경치 좋은 바위 위에 이 전탑(塼塔)이 세워져 있습니다.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제226호)
이 전탑은 신륵사 경내의 동남편 강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래로 한강이 보이고 멀리 평야를 마주하고 있는 바위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기단부(基壇部)는 화강암을 이용하여 무질서한 7단의 층단형으로 구축하고, 윗면에는 낮은 탑신받침을 마련하였습니다.
탑신부(塔身部)는 흙벽돌로 6층까지 쌓아 올렸는데, 그 위에 몸돌 하나가올라가 있어 7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전탑의 북쪽에는 수리할 때 세운 수리비가 전해 오는데, 그 비에 1726년(영조 2)에 고쳐 지었다고 적혀 있어 원래의 모습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신륵사 대장각기비(神勒寺大藏閣記碑) (보물 제230호)
신륵사 대장각기비(神勒寺大藏閣記碑)는 극락보전 서쪽 언덕에 있던 대장각(大藏閣-장경각)의 조성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을 적고 있습니다.
대장각기비각 앞에 비가 하나 있는데 구룡루 중수비입니다.
조선 영조대(1724~1776)에 신륵사 구룡루를 중수하고 그 내력을 기록한 비석으로 현재 대장각기비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건립연대는 1751년(영조 27)입니다. 규모는 총 높이 193.5cm로 비신(碑身) 높이 140.5cm, 폭 60.5cm, 두께 18.5cm이며, 방부(方趺) 높이 53cm, 폭 96.5cm, 두께 62cm입니다.
비제(碑題)는 여주봉미산신륵사구룡루중수비(驪州鳳尾山神勒寺九龍樓重修碑)이며,통훈대부전행사간원헌납(通訓大夫前行司諫院獻納) 권신(權賮)이 글을 짓고 진산후인(晉山後人) 강주팔(姜柱八)이 썼습니다. 비문은 비신의 전후면과 우측에만 각자(刻字)하였습니다.
대장각기비각(大藏閣記碑閣) 편액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는 고려 말 신륵사에 대장각을 만든 후 그 내력을 새긴 것입니다.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제자들과 함께 발원하여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을 인쇄하고, 이를 보관하기 위해 이곳에 2층의 대장각을 지었습니다.
비문은 예문관 대제학이었던 이숭인이 짓고, 글씨는 진현관 제학이었던 권주가 썼습니다.
뒷면에는 대장경 인쇄와 대장각 건립에 참여했던 승려와 신도들의 명단이 적혀 있습니다.
대장각기비의 비신(碑身)은 대리석으로 된 비문을 보호하기 위해 둘레에 돌기둥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이숭인(李崇仁)이 지은 비문은 당시 직제학 권주(權鑄)가 쓴 자경 2cm의 해서체로 탑신에 깨어진 부분이 많아 판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비를 세운 연대 역시 탈락이 되어 그 시기를 정확히 밝힐 수는 없으나 대체로 보제존자석종비 제작 4년 후인 홍무16년(1383)으로 추정됩니다.
본래 신륵사에는 경, 률, 논 삼장을 인출하여 이를 수장하던 대장각이 극락보전 서쪽, 지급의 명부전 근처에 있었다고 전하나 아쉽게도 현재는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고 다층전탑 위쪽으로 이 비만 남아있습니다.
신륵사 대장각기
구룡루(九龍樓)
1858년 김병기에 의해 중창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건물입니다.
범종각옆 극락보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구룡루가 있는데 여주 신륵사 구룡루(九龍樓)는 극락보전 맞은편에 위치한 2층 누각으로, 남한강 절벽 위에서 뛰어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입니다. ‘아홉 마리 용의 누각 이라는 이름처럼 창건 설화와 불교적 상징이 깃든 건물로, 조선 철종 9년(1858)에 중창되었습니다.
구룡루(九龍樓) 편액
구룡루(九龍樓) 뒷편
봉미산 신륵사(鳳尾山神勒神) 편액
봉미산 신륵산 편액은 여주출신 동창 원충희(東滄 元忠喜 1912~1976)의 글씨로 오세창의 제자입니다.
구룡루 안에는 김병기의 「신륵사중수기(神勒寺重修記)」를 비롯하여, 1919년 용주사 주지 강대련(姜大蓮)과 1932년 봉은사 주지 나청호(羅晴湖)의 제영시, 이천 부발면 매곡 하일당 이회명(李會明)의 「등청심루우시(登淸心樓偶詩)」, 그리고 1954년 원주 문막 김택영(金澤榮)의 제영시가 걸려 있습니다. 이회명의 시판(詩板)은 청심루가 소실될 때 옮겨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친일승려로 악명 높았다는 용주사 강대련 주지가 3.1독립운동 나던 기미년 1919년에 구룡루에 와서 남긴 제명시가 보입니다.(좌측)
봉은사 주지 나청호가 1932년 남긴 제명시 입니다.
신흥사 극락보전 일대 전각 배치는 마당을 중심으로 극락보전과 구룡루가 마주 보고있고, 좌우(左, 右)에 심검당과 적묵당이 자리하는 사동중정형(四棟中庭形)구조로 왼쪽에 위치하는 심검당은 승려들의 생활 및 종무소 공간이고, 오른쪽 적묵당은 선승들의 정진과 휴식 공간입니다.
심검당(尋劍堂)
극락보전(極樂寶殿) 왼쪽에 위치한 정면 5칸의 건물로 1987년 증.개축되었으며 예전에는 경학을 공부하던 강원(講院) 건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요사채 및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가람배치는 금당 앞에 누각을 세우고 좌우로 선원과 강원을 배치하는 것이 정형인데, 심검당은 강원에 해당합니다. 심검당은 '지혜의 칼을 찾아 마음속 무명(無明)의 풀을 벤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곳인데, 현재는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심검당(尋劍堂) 편액은 차우 김찬균(此愚 金瓚均, 1910-?)의 글씨이며, 좌측 낙관 위의 한반도 지도와 그 속의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는 김찬균이 쓴 편액의 상징입니다.
적묵당
극락보전(極樂寶殿) 오른쪽에 위치한 전면 6칸의 건물로, 조선 후기에 처음 건축되었고, 몇 차례 중수하였습니다. 극락보전 앞 좌우에 심검당(尋劍堂)과 마주보고 서서 극락보전, 구룡루와 함께 중심마당을 이룹니다.
적묵당(寂黙堂) 편액은 차우 김찬균(此愚 金瓚均, 1910-?)의 글씨이며, 그는 주자서체(朱子書體)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새긴 조그만 한반도(韓半島) 지형(地形)의 두인(頭印)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적묵당
조선시대의 가람 배치에서 선원(禪院)에 해당하는 건물로, 북쪽 벽면에 부서진 기와로 둥글게 쌓은 굴뚝이 있습니다.
신륵사 다층석탑 (보물 제225호)
신륵사 다층석탑 (보물 제225호)
신륵사 다층석탑(神勒寺多層石塔)은 백대리석(白大理石)을 재료로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위로 여러 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려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의 일반적인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통일 신라나 고려의 양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기단부에서 탑신부까지 전부 돌을 한 장씩 쌓는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탑신부의 각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얇은 한 단이며,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추켜 올라가 있습니다.
8층 몸돌 위에 지붕돌 하나와 몸돌 일부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층수가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8층 탑신의 아래까지만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각 부분 아래에 굄을 둔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 일부 드러나지만, 세부적으로는 그러한 특징을 벗어난 표현도 나타납니다.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돌의 재질, 조각 기법이 비슷합니다.
극락보전(極樂寶殿)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신륵사 극락보전(極樂寶殿)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시는 법당으로 절안의 중심부에 자리해 있습니다.
극락보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지붕은 팔작 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사이에도 있는 다포(多包) 형식입니다.
극락보전 주련(柱聯)
阿彌陀佛在何方(아미타불재하방) : 아미타불 계신 곳이 그 어디일까
着得心頭切莫忘(착득심두절막망) : 잊지않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라
念到念窮無念處(염도염궁무념처) :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무념한 곳에 이르면
六門常放紫金光(육문상방자금광) : 온몸에서 항상 자색광명이 나오리라
극락보전(極樂寶殿) 편액
극락보전 정면의 가운데 문 안쪽 바로 위에는 ‘千秋萬歲(천추만세)’라고 쓴 편액이 있는데, 이 편액은 나옹화상의 친필이라 합니다.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木造阿彌陀如來三尊像) (보물 제 1791호)
극락보전에는 중앙에 극락정토에 머물며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왕생의 길로 인도한다는 아미타불이, 협시로 왼쪽에는관세음보살과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이 봉안 되있습니다. 아미타불의 육계*가 유난히 높고, 이국적인 얼굴, 옷 주름 표현의 독창성 등이 다른 불상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성이 있습니다. 가운데 여래는 앉아 있고, 양 옆의 보살은 서 있는데, 이 것은 중생이 필요로 할 때 당장이라도 달려갈 수 있는 의미를 표현한 것입니다. 본존의 높이는 1.5m, 협시보살상은 2m로 1977년에 개금했다고 합니다.
*육계 : 부처님의 머리 위에 살이나 뼈가 올라온 것으로 지혜를 상징합니다.
아미타여래삼존상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가운데의 여래는 앉아 있고, 여래 양쪽의 보살은 서 있는데, 유난히 높은 육계(肉髻), 이국적인 얼굴, 옷 주름 표현의 독창성 등의 조형적 특징은 다른 불상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특징입니다.
불상 내부에서 복장 원문이 발견되어 1610년(광해2)에 승려와 일반 백성 백여명이 마음을 모아 삼존상을 만든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특히 인일이라는 새로운 조각승의 이름이 확인되어 17세기 초기 조선 시대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입니다.
불교 종파에 따라 다른 종파와 차별화하기 위해 탄생한 보살인 듯, 크기는 관음보살과 같으며 원광(圓光)을 지닌 채 온 세상을 폭넓게 비춘다고 합니다. 관음이 관발(冠髮)에 화불(化佛)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대세지보살은 보배병을 얹고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곳 신륵사에는 친절하게도 보살 아래에 설명을 붙여 놓았습니다.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신중탱화
1900년에 조성된 후불탱화·신중탱화 ·감로탱화
삼장탱
불화로는 1900년에 조성된 후불탱화·신중탱화·감로탱화이 함께 봉안되어 있습니다.
닫집
법당의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불단 위에는 정교하게 짜여진 닫집이 있고 불단을 받치는 수미단의 단청은 안상 형식의 창속에 학, 연꽃, 코끼리 등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내부 바닥은 모두 우물마루입니다.
극락보전 측면
꽃문살
삼성각(三聖閣)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의 건물입니다.
삼성각에는 칠성도을 비롯하여 독성탱,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삼성각(三聖閣) 편액
삼성각의 가운데 칸에는 칠성탱화(七星幀畫)가 그려져 있습니다.
칠성탱화는 민간 신앙인 칠성을 불교의 호법선신으로 수용하고 이를 의인화하여 묘사한 불화(佛畵)입니다.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머리에 쓴 보관에 해와 달을 표시하기도 하고, 손에 해와 달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표현됩니다.
치성광여래(칠성여래)
가운데에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칠성여래)를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 해와 달을 상징하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협시불로 배치했습니다. 중앙에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두고 좌우보처로서 일광보살(日光菩薩) · 월광보살(月光菩薩) 그리고 상단 좌우에 칠여래, 하단 좌우에 칠원성군을 도설하는 구도를 보입니다. 토속신앙과의 교화로 아기를 낳아달라고 빌거나 소원을 기원할 때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독성탱
산신도
범종각 뒷편
관음전(觀音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관음전이 있습니다.
관음전(觀音殿) 편액
관음보살
대자대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고, 후면벽에는 관세음보살도가 있습니다.
관음전 내부에는 가운데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그리고 남순동자(南巡童子)와 행상용왕을 협시로 모시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신중탱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