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9CbjvVumc8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성경에 많은 중요한 어휘들이 있는데 오늘은 그 어휘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한 어휘인 '셀롯인'에 대하여 연구하겠습니다. 110번째 연구, 셀롯인(영어로는 '젤롯'이라고 발음합니다)입니다.
이 말의 어원을 먼저 보면, 신약 성경에 나타나는 단어가 헬라어이기 때문에 '젤로테스(Zelotes)'라고 합니다. 이 뜻은 영어로 하면 경쟁자(Emulator), 열렬한 찬송자 또는 추종자(Zealot)를 뜻합니다. 자기의 백성을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열렬히 나가가지고 이방 민족에 대하여 항거하는 그런 사람들을 말하는 젤로테스인데, 이것은 헬라어 '젤로스(Zelos)'에서 나왔습니다. 젤로스라는 말은 '열심이다', '질투한다'는 뜻입니다. 영어의 'Zealous'나 'Jealous'와 아주 비슷하죠. 누구에게 열심이면서 동시에 질투가 생기는 것, 이것이 히브리어로는 '카나(Qana)'입니다. 복수형은 '카나임(Qanaim)'인데, 이는 동사 '카나'에서 왔습니다. 카나 역시 이 젤로스와 마찬가지로 '열심이다', '열렬하다', '질투하다'라는 뜻으로 의미가 똑같습니다. 헬라어로는 '젤로테스', 히브리어로는 '카나임'입니다.
이들은 AD 1세기에 유대에서 활동하던 정치적인 민족주의자들입니다. 이방인들의 지배에 강력히 항거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열렬한 분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AD 1세기에 있던 유대인들 사이의 4대 사상파 가운데 한 분파였습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셀롯파가 그것입니다. 우리 성경에서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리고 셀롯인(열심당원)으로 나옵니다.
이들이 어떻게 출발했는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이들은 제1세기 유대교에서 정치적 운동을 일삼던 열혈 단체입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가서 일하던 사람들입니다. 로마에 대항하여 AD 6년에 결성되었습니다. 시리아(수리아) 총독인 구레뇨가 유대의 인구 조사를 실시할 때, 이에 격분하여 "당신들이 뭔데 우리를 조사하느냐"라며 AD 6년에 결성되어 로마인들과 싸우다가, AD 73년에 마사다 요새에서 마지막으로 집단 자결을 합니다. 도저히 더 버틸 수가 없었던 AD 73년에 그 셀롯인들은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예루살렘의 쿰란이라고 하는 곳 인근에 본부를 두었다가 마사다에서 마지막 최종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이들은 급진적인 유대 민족주의자들이었습니다. 유대 속주, 즉 로마의 식민지 속주 유대 백성들이 로마에게 항거하도록 선동하고, 로마인들을 거룩한 땅(성지)에서 축출하고자 한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습니다. 특히 제1차 유대-로마 전쟁(AD 66년~70년) 때 맹렬히 활동한 사람들이 셀롯인입니다. 요세푸스는 말하기를, 제1세기 유대의 주요 네 분파(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와 함께) 중에서 네 번째 분파가 바로 셀롯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셀롯인을 맨 처음에 조직한 창시자는 바로 갈릴리의 유다(구체적으로 가말라의 유다)입니다. 유다가 창설하여 활동했는데, 유대가 로마의 속주가 된다고 선포되고 분봉왕 헤롯 아켈라오(헤롯 대왕의 아들)가 다스리게 된 후, 로마 제국에 인구 조사 명령이 내렸습니다. 그때는 텔레비전도 없고 라디오도 없었기 때문에 이 소식이 전해져 시리아와 유대에 실제로 적용될 때는 AD 6년쯤 되었습니다. 이 구레뇨의 인구 조사에 반발하여 셀롯인들이 일어났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셀롯인들은 다른 모든 교리적이고 율법적인 것에 대해서는 바리새인들과 의견을 같이했지만, 단 한 가지 점에서는 아주 강력하게 튀어 나왔습니다. 바로 '자유'입니다. "우리는 로마인의 노예가 아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통치자이신데 로마가 왜 우리를 지배하느냐, 물러가라!" 이것이 셀롯인의 독특한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세푸스는 그의 역사책에서 기록하기를, 당시 자유 투사 그룹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에 맨 먼저 활약한 그룹은 '시카리(Sicarii)'였고 셀롯인들은 나중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둘 다 열혈 분자들입니다. 로마에 대항해서 무제한적인 투쟁을 선언하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요세푸스가 기록한 '유대 전쟁사' 제7권에 이에 대해 나옵니다. 시카리라고 하는 그룹과 셀롯인은 별개의 그룹이었습니다.
시카리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헬라어로는 '시카리오이(Sikarioi, 복수형)'이고 단수형은 '시카리오스(Sikarios)'입니다. 시카리라는 말은 라틴어 '시카(Sica)'에서 왔는데, 시카는 우리말로 단검, 단도를 뜻합니다. 품속에 칼을 감추고 다니다가 기회가 되면 로마인이나 친로마파 인물을 찔러 죽이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을 일컬어 시카리단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자객단은 AD 50년대경에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로마인들을 처단하고 도륙했습니다. 이 시카리단보다 좀 더 먼저 형성되어 활동했던 이들이 셀롯인들입니다. 둘 다 대단히 난폭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민족주의자들이었습니다.
창시자인 갈릴리 유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야고보이고 하나는 시몬이었습니다. 이들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로마에 대항해 항거하다가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더라는 총독에게 잡혀서 처형당했습니다. 두 아들마저 처형당했으니 그 추종자들과 셀롯인들이 얼마나 분노했겠습니까? 그래서 셀롯인들을 우리 성경을 번역한 학자들은 '열심당'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열심당은 제1차 유대-로마 전쟁(AD 66년~70년)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통치를 강력히 반대했고 로마인들과 헬라라인들을 무차별 공격하였으며, 그들을 몰아내고자 했습니다.
이 전쟁 와중에 시카리단과 셀롯인 두 그룹이 연루되어 로마에 강력히 항거했습니다. 하지만 두 그룹은 성격이 조금 달랐습니다. 이들은 유대인 동포들을 선동하여 로마인들을 보면 죽였고, 로마인들과 결탁하거나 부역한 동족들도 발견하면 모두 처단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해 끝까지 싸우도록 강제했습니다. 자객단인 시카리는 외투 안에 단검을 차고 다니다가, 군중이 모인 공중 집회 장소에서 칼을 뽑아 로마인들과 동조자들을 순식간에 공격한 뒤, 군중 속으로 유유히 도망쳐 자신들의 신분을 은폐했습니다. 참으로 신출귀몰한 이들이었습니다.
역사가 하임 힐렐 벤 사손(Haim Hillel Ben-Sasson)에 의하면, 시카리 자객단은 갈릴리를 기반으로 하여 일종의 사회적 혁명을 위해 싸우며 무자비하게 폭력적인 방식을 썼던 반면, 예루살렘에 기반을 둔 셀롯인들은 로마인들에게 항거하긴 했지만 자객단만큼 사회적 전복을 꾀하는 일에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전쟁 당시 셀롯인들의 지도자는 기스할라의 요한(John of Gischala)이었습니다. 원래 창시자는 갈릴리의 유다였으나 세월이 흘러 전쟁 시기에는 기스할라의 요한이 이끌었습니다. 그는 갈릴리에서 로마군과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해지자 예루살렘 도성으로 도망쳐 왔습니다.
결국 로마군은 예루살렘 도성을 함락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인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하여, 마침내 도성과 성전을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AD 70년의 일입니다.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불태우고 완전히 없애버렸으며, 성전 안에 있는 성물과 기물들을 로마 군인들의 어깨에 메워 로마로 전부 탈취해 갔습니다. 참으로 슬프고 아픈 역사입니다.
로마 군인들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장악하자,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 버틸 수 없게 된 셀롯인들은 엘르아살 벤 야이르(Eleazar ben Jair)라는 지도자의 인솔 아래 천혜의 요새인 '마사다(Masada)'로 피신했습니다. 그때 함께 간 사람이 여자와 아이들을 합쳐 총 960명이었습니다. 마사다는 사해 서쪽 해안에 우뚝 솟은 거대한 절벽 요새입니다. 예루살렘이 망했으니 그곳에 들어가 최후의 항전을 치르며 살게 된 것입니다.
이들을 함락하기 위해 로마의 플라비우스 실바(Flavius Silva) 장군이 제10군단과 수많은 예비병을 이끌고 와서 마사다 요새 아래에 진을 치고 3년 동안 포위했습니다. 3년 동안 포위되어 물과 음식이 말라가자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결국 AD 73년 5월, 로마군이 성벽을 뚫고 들어오기 직전 모든 셀롯인들은 집단 자결을 함으로써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참으로 비장하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 전날 밤, 지도자 엘르아살 벤 야이르는 "내일이면 로마군이 쳐들어와 우리를 노예로 삼고 우리 아내와 자식들을 유린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우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유인으로서 명예롭게 이 세상을 떠나자"라며 아주 감동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을 요세푸스가 그의 역사책에 생생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전리품을 챙겨 로마로 돌아가자, 로마에는 그를 기념하는 거대한 개선문이 세워졌습니다. 바로 '티투스 개선문'입니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서 있습니다. 저는 로마에 가면 꼭 여기에 가봅니다. 우리 성경 역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성전 파괴의 현장을 증언하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이 개선문 안쪽 벽면을 보면 놀라운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한 일곱 갈래 등대(메노라)를 어깨에 메고 행진하는 모습입니다. 가지가 일곱 개가 있고 그 위에 등잔이 얹혀 있는 이 모양이, 바로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당시에 성전 내부에 세워져 있던 진짜 등대의 모양입니다. 그들이 탈취해 가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조각해 놓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아주 정확한 고증 자료입니다.
성전 안에 있던 등대는 이처럼 일곱 가지가 있는 메노라입니다. 가지가 아홉 개 있는 등대는 수전절(하누카) 때 쓰는 등대이고, 성전 안의 등대는 일곱 가지입니다. 티투스 개선문에 조각된 이 등대의 모습을 보며 당시 로마인들이 얼마나 기고만장했겠습니까? 로마에 가시면 콜로세움 바로 옆에 있으니 꼭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세푸스가 기록해 둔 엘르아살 벤 야이르의 마지막 연설문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나의 충성스러운 동지 여러분, 우리는 오래전부터 로마인을 포함해 그 어느 누구도 섬기지 않고, 오직 진실하시고 의로우신 우리 주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의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그 각오를 실천에 옮길 때가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결코 노예가 되도록 굴복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노예가 되는 길을 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산 채로 로마군의 손에 들어가면 노예가 될 것이며, 이는 모든 것의 비참한 끝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혁명을 일으킨 선봉이며 마지막까지 투쟁한 사람들입니다. 뜻하지 않게 패배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우리는 명예롭게 자유인으로서 죽을 수 있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이 특권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하루만 지나면 내일 로마군이 올라와 우리의 저항이 끝날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명예로운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산 채로 잡으려고 기를 쓴다 할지라도 우리의 자유를 방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아내들이 욕을 당하지 않은 채 죽게 하고, 우리의 자녀들이 노예가 되는 굴욕을 겪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도록 합시다. 그리고 서로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지막 자비를 베풉시다(즉, 서로를 죽여주어 자결을 돕자는 뜻입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의 요새와 전리품을 불태웁시다. 로마군은 전리품이라고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오직 우리의 시신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우리의 음식 창고만은 불태우지 말고 남겨 둡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결한 것이 식량이 부족해서 굶어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 결심한 바와 같이 노예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열망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합시다. 산 채로 잡힌 청년들이 계속되는 고문으로 숨지 못하고 고통받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나이 많은 노인들이 무참히 다루어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자신의 아내가 노예로 유린당하고 자녀들이 손이 묶여 '아빠' 하고 소리 지르며 끌려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의 손이 자유로워 칼을 들 수 있을 때, 그 손으로 명예로운 마지막 봉사를 합시다. 노예가 되는 것보다 죽음을 택합시다. 우리의 아내와 자식과 함께 이 세상을 자유인으로 떠납시다."
이것이 엘르아살 벤 야이르가 마사다에서 외쳤던 불꽃 같은 사자후 연설이었습니다. 마사다는 사해 해수면에서부터 약 400미터 위에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절벽 요새입니다. 굉장히 높습니다. 요즘은 케이블카를 타고 가지만 옛날에는 구불구불한 뱀길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요새 정상은 남북이 600미터, 동서가 3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성채입니다. 로마의 실바 장군은 이 요새를 함락하기 위해 3년 동안 거대한 경사로(램프)를 흙으로 쌓아 올렸습니다. 오늘날 요새 옆에 남아 있는 경사로가 바로 그때 로마군이 쌓은 것입니다. 성벽 높이까지 흙길이 다 쌓여 내일이면 로마군이 공성망치로 성벽을 깨고 쳐들어올 것이 명백해지자, 이들은 노예가 되느니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960명의 주민 중 제비뽑기를 통해 뽑힌 남자들이 가족들을 먼저 죽이고, 마지막 남은 자들이 서로를 죽인 뒤 최종 한 명이 요새에 불을 지르고 자결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군인들은 이곳 마사다 요새에 올라와 "마사다는 다시는 무너지지 않는다(Masada shall not fall again)"라는 선서를 하며 민족의 생존과 수호 의지를 다집니다. 그것이 바로 이 마사다 유적지입니다.
반면 유대 랍비들의 문헌인 탈무드에서 셀롯인은 다소 비종교적이고 극단적인 폭력 그룹으로 묘사됩니다. 이들은 종교적 지도자라기보다는 군사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 조직이었기에 당대의 온건파 종교 지도자들과 갈등이 심했습니다. 탈무드에서 이들의 별명은 '바리요님(Baryonim)'입니다. '야비하다', '난폭하다', '조폭 같다'는 뜻을 가진 별명입니다. 하도 폭력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을 때 어떻게든 로마와 협상하여 동포들을 살리려 했던 온건파 랍비들의 타협 노선을 모두 반역으로 규정하고 방해했습니다. 로마에 협력하거나 투항하려는 동족들을 가차 없이 처단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이들의 타협 없는 극단적 항전이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이 완전히 초토화되는 비극을 앞당겼다는 역사적 비난도 받습니다. 방대한 양의 '바벨론 탈무드' 기록에 의하면, 이 열혈 단체(바리요님)는 유대인들이 로마군과 끝까지 결사 항전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포위된 예루살렘 도성 안에 비축되어 있던 수십 년 분량의 곡식 창고와 화목(땔감)을 스스로 불태워버렸습니다. 배수진을 쳐서 도망갈 길과 버틸 수단을 없애고 무조건 나가서 싸우게 만든 것입니다.
이 혼란의 와중에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Yohanan ben Zakkai)는 시체로 위장하여 예루살렘 성을 탈출한 뒤,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과 타협하여 유대 학문을 보존할 수 있는 '야브네(Jamnia)' 학술원을 세울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전쟁 속에서도 유대교의 명맥과 율법 해석을 이어갈 학문적 기지를 세운 것입니다. 그렇게 집대성된 유대 랍비들의 구전 율법 해석서가 바로 '미슈나'입니다.
이제 성경으로 돌아와서 이 셀롯인들이 신약 성경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겠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열두 사도 명단 중에 이 셀롯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15절을 보면 "셀롯이라는 시몬"이 나옵니다. 개역한글판에는 "셀롯이라는 시몬", 공동번역에는 "열심당원이라고 불리던 시몬", 새번역에는 "열심당원 시몬"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셀롯은 바로 그 음을 딴 것이고, 열심당은 그 뜻을 번역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시몬이 바로 이 열혈 단체 셀롯인 출신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3절의 사도 명단에도 "셀롯인 시몬"이 등장합니다. 그는 원래 로마를 향해 칼을 품고 다니던 불 같은 열혈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0장 4절을 보면 이 시몬을 가리켜 "가나안인 시몬"이라고 기록해 두었습니다. 개역한글판에는 "가나안인 시몬", 개역개정판에는 "가나나인 시몬"으로 되어 있습니다. 공동번역이나 쉬운성경 등에서도 '가나안인' 혹은 '가나나인'으로 번역했는데, 이 '가나나인(Kananaios)'은 지명인 가나안(Canaan)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아람어로 '열심'을 뜻하는 '카나냐(Qananaya)'에서 온 말로, 결국 헬라어 '셀롯(열심당원)'과 똑같은 뜻입니다. 즉 아람어식 명칭을 그대로 음역하여 '가나나인'이라고 쓴 것인데, 이를 지명인 가나안 사람으로 오해하여 '가나안인 시몬'이라고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나인 시몬'은 '열심당원 시몬'과 완전히 동일한 의미입니다. 마가복음 3장 18절에 나오는 "가나나인 시몬" 역시 마찬가지로 아람어 어원에서 유래한 열심당원이라는 뜻입니다.
한편, 어떤 학자들은 사도 바울 역시 원래 셀롯인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22장 3절에서 바울이 간증할 때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열심이 있는 자'가 헬라어로 '젤로테스(Zelotes)'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바울이 정치적 열심당(셀롯인) 소속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율법과 하나님을 향한 종교적 열정이 대단했다는 개인적 성향을 나타내는 표현일 뿐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4절에서도 바울은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성이 있었으나"라고 고백하는데, 이때 '열성(젤로테스)' 역시 셀롯파 단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철저히 고수하려 했던 그의 뜨거운 종교적 열심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내용을 요약하겠습니다. AD 6년 갈릴리 유다가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AD 73년 마사다 요새에서 960명의 집단 자결로 최후를 맞이한 유대의 극단적 정치적 열혈 단체가 바로 셀롯인(열심당)입니다. 이들은 로마의 압제와 지배에 정면으로 반발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시라는 기치 아래 자유를 부르짖었습니다. 자객단인 시카리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민족주의 투사 그룹으로 활동했으며,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때 결사 항전을 선도하다 결국 패하여 마사다 요새로 피신했습니다. 그리고 마사다 요새가 함락되기 직전 비장한 자결로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시몬'이 바로 이 셀롯인 출신이었으며, 칼을 품고 다니던 이 열혈 청년이 예수님을 만나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상으로 셀롯인이 어떤 존재였으며 역사 속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110번째 셀롯인 강의를 여기서 마치고,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성경의 어휘로 찾아뵙겠습니다. 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깊이 이해할 때 우리의 영성과 믿음이 더욱 깊어질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정리
본 강연은 신약 시대 유대의 4대 사상파 중 하나였던 셀롯인(열심당원, Zealots)의 기원과 어원, 역사적 최후(마사다 요새), 그리고 성경 속 인물들과의 연관성을 다룹니다.
1. 셀롯인의 어원과 정의
2. 역사적 기원과 활동
3. 유대-로마 전쟁과 마사다의 비극
4. 탈무드에서의 평가
5. 성경 및 신약 인물과의 연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