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807호 운명은 만남으로부터다 (요1:40~41)
돌도 석수장이를 만나면 축대나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이 되고, 조각가를 만나면 아름다운 작품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나무도 목수를 만나면 작품이 되지만, 누군가의 손에 잡히면 땔감이 되고 맙니다.
종이 한 장도 어떤 자의 손에서는 낙서용지가 되지만, 화가의 손에 잡히면 몇 억짜리의 명화가 됩니다. 하물며 사람이 누굴 만나느냐는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지난 주 저를 만나러 멀리 미국에서 온 플레처 목사(Dr. Kingsley Fletcher)는 만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쓰는 종과의 만남을 기도해왔다고 했고, 그 응답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이 만남이 너무 귀하다며, 이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더 큰 뜻을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남은 운명을 좌우합니다. 여자 팔자를 뒤웅박 팔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남편을 잘 만나면 왕비로 살지만 잘못 만나면 하녀로 살기 때문입니다. 고아인 에스더가 남편을 잘 만나니 황후로 살고, 게달의 장막 같은 술람미 여인도 왕인 솔로몬으로 인해 팔자가 폈으며, 이방여인이며 일찍이 과부가 된 룻도 보아스를 만나 재벌의 반열에 오르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지 않았습니까? 남자도 마찬가지지요. 아내인 평강공주를 만나 장수가 된 온달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세벨을 만난 아합은 이세벨로 인하여 우상을 숭배하다 결국 그 피를 개들이 핥는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스승을 잘 만나 운명이 바뀐 사람 중 대표적인 사람이 3중고를 안고 태어난 헬렌 켈러입니다. 그녀가 스승인 설리반을 만나 사람 구실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가로, 문필가로 유명해지지 않았습니까? 윈스턴 처칠과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의 만남 역시 귀한 만남이었습니다.
제가 목회초기에 꾼 꿈입니다. 제가 당시 교계의 거목이신 어느 목사님과 함께 잠을 자는데 북풍한설이 몰려와 너무 추운 겁니다. 그래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어 꾼 꿈에서는 다른 어느 목사님과 함께 제가 잠을 자는데, 얼마나 포근하고 따뜻한지 단잠을 잤습니다.
잠을 깬 저는 전자(前者)의 목사님을 따라가면 목회가 힘들고 어려울 것이지만, 후자(後者)의 목사님을 따라가면 목회가 편안하리라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노선을 좇았습니다. 그 분처럼 귀신을 쫓고 능력을 행하는 길로 갔습니다. 그 길은 꿈처럼 편안한 길은 아니었지만, 그 분과의 만남을 지금까지 통해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사도행전의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를 바꾸는 방법은 내가 만나는 사람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인간관계가 바뀌고, 그 인간관계가 인간관계의 주체인 사람도 바꾸는 것입니다. 진정한 만남을 통해 변화가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만난 자들이 변화된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섯 남자를 데리고 살던 수가성 여인, 그래서 사람들을 피하여 아무도 만나지 않는 시간에 물을 길던 여인, 그는 우물가에서 예수를 만난 후에 변화하여 전도자가 되었습니다(요4:39).
뱃사람인 시몬은 예수를 만나 베드로라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했으나 주님 앞에 다시 회개하고 주님을 만남으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된 사울은 다메섹을 지날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를 만난 사울은 예수를 핍박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를 전하는 바울로 변화되었고, 이방인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축복된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행9).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0).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물질에 집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동족들에게 비난을 받으면서도 물질만이 그의 소망이었으며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그는 변합니다. 예수를 통해서 삭개오는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눅19:1~10).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고아의 아버지로 유명한 조지 뮐러도 예수를 만남으로 변화된 자입니다. 그는 16세 되던 해에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갔었고,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술, 여자, 노름 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세가 되던 어느 날, 그는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 후 180도 달라진 삶을 살게 됩니다. 기도의 사람으로 변화되었고, 버려진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다갔습니다.
당신은 예수를 만나셨습니까? 만나셨다면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당신은 그냥 교회 뜰만 밟고 다닐 뿐, 진정 예수를 만난 것이 아닙니다 (마7:21). 교회에 다니면서 여전히 음행하고, 우상 숭배하고, 간음하고, 탐색하고 남색한다면, 또한 도적질하고, 탐욕을 부리고, 술 취하고, 모욕하고, 속여 남의 것을 빼앗는다면 당신에게 예수와의 만남은 없었던 것입니다(고전6:9~10).
여전히 교만한 눈과 거짓말하는 혀와 죄 없는 자를 죽이는 손과 악한 계획을 세우는 마음과 악을 행하려고 빨리 달려가는 발과 거짓말을 토하는 거짓 증인과 형제 사이를 이간하고 있습니까(잠6:17~19)?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부활승천 하실 때 마가의 다락방에는 120문도 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진정한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자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말씀을 듣고 ‘대단하다’고 입으로만 칭송하던 자들이었고, 더는 무리에 휩싸여 따라만 다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변화되지 못하고 욕구를 충족시켜주기만 바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4~7).
여러분, 만남은 하나님이 주관해주십니다. 그러나 관계는 우리가 형성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제자로 삼아주셨지만, 예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맙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강도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라는 말로 예수님과의 관계를 이어가서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가는 축복을 받지 않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의 수제자로 자타가 공인하던 베드로조차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실의에 빠져있었지만, 부활 후 찾아오신 예수님께 세 번의 진정어린 사랑고백을 통해 다시 사도로서 거듭납니다.
지금 당신에게도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 진정어린 사랑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할렐루야!
신통하면 인통하고 인통하면 물통한다
인맥은 금맥이요 성공의 인프라다
♣ 삼손이 기생 들릴라 덫에 걸려 블레셋 사람이 잡아 눈을 빼고 발을 놋줄로 매고 옥중에서 연자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삿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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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자씨] ‘어처구니’가 있다. 삿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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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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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저부러~
사랑의종
능력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