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청소년 인성교육(충효교실) 개강 프랑카~드도~~~
ㅇ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도 담고~~~
***현대자동차의 역사***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故 정주영 회장이 일제강점기인 1940년 3월에 인수하여
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동에서 운영했던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공장을
그 근원으로 볼 수 있다. 정주영 회장은 빨리, 완벽하게 고치고 수리비는 많이
받는 방침으로 사업 성공의 토대를 닦았다.
ㅇ
1940~1942년 당시에는 자동차 보급률이 지극히 낮은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를 빨리 수리하는 것은 고객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였다.
다른 수리공장에서는 수리비를 더 받기 위하여 시간을 끄는 것이 일쑤였으나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가 고장나면, 차주인이 발이 묶여 고통을 받게 되므로 빨리
고쳐 주는 것이 고객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여 보통 밤 12시까지 작업을 하면서
수리시한을 단축시켰다.
ㅇ
이와 같이 "빨리 빨리"와 "신속, 정확, 납기 준수" 노력의 결과, 경영은 순조로워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3][4] 그러나 이후 공장이 전소되고 전쟁까지 일어나는
등의 악재가 겹쳐 사업에 위기를 겪었고, 결국 일제의 기업통제정책의 일환으로
‘기업정비령’이 실시되어 아도서비스는 종로 5가에 있는 '일진공작회'에 흡수·
합병되었으며 정 회장은 자동차 수리업에서 손을 떼었다.
ㅇ
이후 아도서비스를 정리한 자금으로 트럭을 구입하여 탄광의 석탄운반업을
하였으며, 해방 이후 아도서비스를 반환받아 1946년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한다.
설립 직후에는 미군 병기창의 하청을 주로 받았으나 점점 수요가 늘게 되었고,
이 회사는 현대토건사에 흡수되어 현대건설의 모태가 된다.
ㅇ
현대자동차의 공식적인 역사는 1967년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들면서부터
시작한다. 1967년 12월 정주영의 동생 정세영이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하여
당시 자동차 최선진국 미국의 자동차 업체인 포드 자동차와 기술계약을 맺고
기술을 도입, 초기에 포드 코티나를 조립, 생산하면서 자동차 생산 기술을 배웠다.
ㅇ
포드의 모델을 국내에 조립생산방식으로 들여와서 판매하던 중,
1973년 포드와 결별하고, 이후 독자적인 모델을 생산하기 위해
자체개발을 시작하였다. 한때 세계 최고의 자동차 산업을 가졌었으나,
영국병과 잦은 노사 불화로 몰락해버린 당시 영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부사장이었던 '조지 턴불'을 영입하여[7][8], 엔진,
엑셀러레이터, 트랜스미션 등 주요 부품 제작 기술 계약을 체결하였다.
ㅇ
1976년 한국 최초의 자동차 고유모델인 포니를 시작으로 독자모델 생산을 시작,
소나타를 기점으로 한국 최대 자동차 기업으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아시아에서
2번째로, 독자 자동차 모델 생산국이 되었다.
ㅇ
당시 미국 정부는 주한 미국 대사를 통해 정주영 회장으로 하여금 자동차 독자 개발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하였다. 1977년 당시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 미국 대사가 정
전명예회장을 만나 “현대가 포니자동차 독자 개발을 포기하면 모든 힘을 다해 현대를
지원하겠다
ㅇ
중동 건설에서도 현대를 도와주겠다”고도 하였으나 정회장은 이를 거절하였다.
관련기사 아무래도 한국이 먼 훗날 미국 자동차 산업을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한 듯.
남미 에콰도르에 포니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국산차의 해외수출 역시 처음 시작하였으며,
1980년대 말 엑셀의 북미지역 수출을 시작으로 북미지역 진출을 시작, 현재는 전 세계로
자동차를 수출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ㅇ
1998년 10월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하였고,
2000년 9월 현대그룹의 다른 계열사 9개사와 함께 계열분리하여
현대자동차그룹을 형성하였다.
ㅇ
정몽구가 그룹의 회장에 취임했으며,
현재 현대차 그룹은 현대 그룹과 분리된 별개의 기업 집단이다.
연간차량총생산량 기준으로 기아자동차를 합치면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 기업이며(2008년 기준 350만대) 현대차 별도로만 보면 생산량 기준 세계 8위이다.
ㅇ
그런데 이것은 중국과 합작 법인 생산량이 포함된 것이며,
중국과 합작 법인 생산을 자사 생산량에 포함하지 않는 토요타와는
집계 방법이 다르다.(왜냐하면 중국은, 외산 자동차 기업이 합작을 하지
않으면 자국내 생산이 사실상 불가하며, 합작 기업은 중국측이 51%의 지분을
갖는 사실상 별개의 회사다) 그러므로 실제적으로 아직 도요타와 생산량 기준
격차가 상당히 있다고 보면 된다.
ㅇ
영상실도 담고~~~
취준생(취업준비생)들에게는 꿈의 기업.
현대자동차 그룹 내에서도 기아자동차와 함께 완성차
분야라서 갑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 구직자들에게 큰 장점.
연봉에서는 삼성그룹의 어지간한 계열사들보다도 더 높다고 한다.
ㅇ
우리를 환영하는 자막도 나오고~~~
ㅇ
문회관 건물이 엄청 크다~~~
ㅇ
우측부분을~~~
ㅇ
좌측부분을~~~
ㅇ
***제3 코~스 장생포고래박물관 관람하다***
있는곳 ; 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고래로244
(매암동139-29)
***장생포고래박물관은***
장생포는 과거 우리나라 고래잡이의 전진기지였다.
이에 울산시는 장생포의 고래잡이를 울산의 문화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다. 예컨대 시의 캐릭터인 ‘해울이’는
고래를 의인화한 형태이고, 울산시 남구청은 장생포 해양공원에서 매년 5~6월경
<울산고래축제>를 개최한다.
ㅇ
2005년 5월 제57차 국제포경위원회 연례회의가 울산에서 열렸는데,
장생포 고래 박물관은 바로 이 회의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됐다. 2004년 1월
공사에 들어가 2005년 5월 31일 장생포 해양공원 내에 대지 6946m²,
건물 면적 2623m²(지상 4층) 규모로 개관했다.
ㅇ
1986년 포경이 금지된 이래 사라져가는 포경유물을 수집, 보존,
전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국내 유일의 이 고래 박물관은 고래잡이
역사와 관련한 다양한 자료와 함께 포경선 모형, 고래 뼈 등을 전시하고 있다.
ㅇ
고래 박물관의 1층에는 어린이체험관, 자료열람실,
수유실/유아놀이방이 있고, 2층은 포경역사관으로 꾸며졌다.
ㅇ
1, 2층에서 각종 고래에 대한 상식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 포경의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3층은 귀신고래관, 고래해체장 복원관이 마련됐다. 4층은
전망대이고, 야외 전시물로 포경선이 있다.
ㅇ
본관인 고래 박물관과는 별도로 고래 생태체험관과 고래 바다여행선을
운영하고 있다. 입장료는 기본적으로 고래 박물관, 고래 생태체험관, 4D영상관,
바다여행선을 따로 지불해야 하고, 패키지 요금제도 있으니 관람을 원할 경우 사전에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ㅇ
관람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1월 1일과 설, 추석 당일, 그리고 매주 월요일에 문을 닫는다.
ㅇ
학생들과 인솔자가 함께 오르고~~~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ㅇ
영상관에는 입체안경을 쓰고 관람하고~~~
ㅇ
물속의 고래도~~~
ㅇ
ㅇ
ㅇ
어른들은 피곤한가봐~~~
ㅇ
여기도~~~
ㅇ
즐거운 표정으로 휴식을~~~
ㅇ
들어가는 마당의 분위기를 다시 담고~~~
ㅇ
ㅇ
꽃이 예쁘기에~~~
ㅇ
건천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여행의 마무리를 하다~~~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