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사토비(狐死兔悲)
여우의 죽음에 토끼가 슬퍼한다는 뜻으로, 마음속으로는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슬픈 척한다 또는 같은 무리의 불행을 슬퍼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狐 : 여우 호(犭/5)
死 : 죽을 사(歹/2)
兔 : 토끼 토(儿/6)
悲 : 슬플 비(心/8)
(유의어)
동병상련(同病相憐)
토사호비(兔死狐悲)
호사토읍(狐死兔泣)
출전 : 송사(宋史) 이전전(李全傳)
여우가 죽자 토끼가 슬퍼한다는 뜻으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끼리 서로의 불행을 슬퍼하고 위로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혹은 마음속으로는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슬픈 척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금(金)나라의 공격을 받아 송(宋)나라의 수도 개봉(開封)이 함락되고 황제 흠종(欽宗)과 상황 휘종(徽宗)이 포로로 잡혀간 후, 1127년 휘종의 아홉째 아들 조구(趙構)가 제위(고종/高宗)에 올라 강남의 임안(臨安; 항주)을 수도로 정하고 송나라를 재건했는데, 이를 남송(南宋)이라 한다.
금나라가 차지한 중원에서는 백성들이 도처에서 궐기하여 금나라에 저항했다. 태항산(太行山)의 팔자군(八字軍)을 위시해서 중원 전역에 금나라에 저항하는 병력이 모두 100만 명에 달했다.
양안아(楊安兒)도 무리를 일으켜 금나라에 저항했는데 그가 금나라 군대와 싸우다가 죽자, 그의 여동생 양묘진(楊妙眞)이 무리를 이끌었다. 여기에 이전(李全)의 무리가 합류하였고, 이전과 양묘진은 부부가 되었다. 이전은 남송에 귀순하였는데, 남송에서는 이처럼 귀순한 북송의 봉기군을 북군(北軍)이라고 불렀다.
이전은 초주(楚州)로 진출하여 남송과 금나라와 몽골군 사이에서 항복과 배신을 반복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 남송의 회동제치사(淮東制置使) 유탁(劉琸)의 부하로, 본래 북군 출신이었던 하전(夏全)이 남송 군대를 이끌고 초주를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자 양묘진이 사람을 보내 하전을 설득했다. "장군은 산동에서 귀순한 사람이 아닙니까? 여우가 죽으면 토끼가 우는 법입니다. 이씨(이전)가 멸망하면 하씨(하전)라고 홀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장군께서 잘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楊氏使人行成於夏全曰, 將軍非山東歸附耶. 狐死兎泣. 李氏滅, 夏氏寧獨存. 願將軍垂盼)." 하전은 양묘진의 계책에 넘어가 유탁을 몰아냈다. 하지만 양묘진이 받아 주지 않자 금나라에 투항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송사(宋史) 이전전(李全傳)에 나온다. 양묘진(楊妙眞)이 하전(夏全)에게 한 이야기 중에 나오는 '호사토읍(狐死兎泣)'이란 말에서 '호사토비(狐死兔悲)'가 나왔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여우나 토끼 둘 다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피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처지이다. 그러므로 여우가 죽으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토끼도 이를 슬퍼하듯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끼리 서로의 불행을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팔자군(八字軍)이란 '붉은 마음(충성)으로 나라에 보답하며 금나라 도적을 죽일 것을 맹세한다(赤心報國, 誓殺金賊)' 혹은 '마음과 힘을 다할 것과 조왕의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誓竭心力, 不負趙王)'라는 여덟 글자를 얼굴에 자자(刺字)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호사토비(狐死兔悲)
교활한 이미지로 먼저 다가오는 여우는 백발이 될지 모르나 결코 선량해지지 않는다고 낙인이 찍혔다. 구미호(九尾狐)는 간사하고 요망한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 토끼는 정답고 친한 동물로 여겨진다. 게으름을 부려 거북에게 경주를 지지만, 자라를 속여 목숨을 건지는(鼈主簿傳/ 별주부전) 지혜가 있어 사랑스러운 분신의 대명사다.
그런데 이 둘은 사이가 좋을까? 달리기에서 월등하게 앞서는 토끼와 쫓아봐야 헛일인 것을 아는 여우는 그저 그런 사이다. 여우가 죽었을 때(狐死) 토끼가 슬피 운다(兎悲)는 이 성어는 같은 처지의 동류끼리 불행을 위로한다는 뜻도 있고, 마음속으로는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슬픈 척 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중국 원(元)나라 때 완성된 송사(宋史)의 이전전(李全傳)에서 이 말이 유래했다.
송나라 말기, 1127년 여진(女眞)이 세운 금(金)나라가 쳐들어와 왕을 포로로 잡아갔기 때문에 강남으로 쫓겨가 남송(南宋)이 건립되었다. 졸지에 나라를 빼앗긴 강북 지역의 한인들은 곳곳에 자위를 위한 집단을 이루었고, 옛 땅을 찾기 위한 의병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양묘진(楊妙眞)이란 여걸이 오라버니 양안아(楊安兒)가 의병을 이끌다 전투 중 죽음을 당해 무리를 이끌게 됐고 이전이란 사람도 합류했다. 이전과 양묘진은 부부가 되어 남송과 금 사이에서 교묘히 줄타기를 했다.
초주(楚州)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남송에선 하전(夏全)이 이끄는 군대가 쳐들어왔다. 하전이 남송에 귀순한 의병 출신인 것을 알고 양묘진이 사람을 보내 말을 전했다. "여우가 죽으면 토끼가 슬퍼서 우는 법인데 이 쪽이 죽으면 그쪽도 어찌 홀로 살 수 있겠습니까(狐死兎泣 李氏滅 夏氏寧獨存)?"
이 쪽은 물론 이전, 상대는 하전이다. 이 말을 들은 하전은 옳다고 여겨 공격을 멈췄으나 배반을 당해 나중 금나라에 투항했다. 여우 죽음을 슬퍼해 주려다 속아 넘어간 것이다.
호사토비(狐死兎悲)
여우가 죽으니 토끼가 슬퍼한다는 뜻으로, 동류(同類)의 불행을 슬퍼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남송(南宋) 시대의 양묘진(楊妙眞)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호사토읍(狐死兎泣) 또는 토사호비(兎死狐悲)라고도 한다.
송나라는 금(金)나라에 밀려 북쪽 지방을 빼앗기고 강남의 임안(臨安)으로 도읍을 옮기니, 이를 남송(南宋)이라 한다. 금나라가 차지한 강북 지역에서는 한인(漢人)들이 자위를 겸한 도적 집단을 이루었고, 이들은 나중에 금나라에 빼앗긴 북송의 땅을 회복하려는 의병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양안아(楊安兒)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양안아가 금나라 군대와 싸우다가 죽은 뒤에 그의 여동생 양묘진이 무리를 이끌었다. 여기에 이전(李全)의 무리가 합류하였고, 이전과 양묘진은 부부가 되었다.
이전은 남송에 귀순하였는데, 남송에서는 이처럼 귀순한 봉기군을 북군(北軍)이라고 불렀다. 이전은 초주(楚州)에 진출하여 남송과 금나라와 몽골을 상대로 항복과 배신을 반복하였다.
하전은 남송 회동제치사(淮東制置使) 유탁(劉琸)의 부하로, 본래 북군 출신이었다. 하전이 군사를 이끌고 초주를 공격하려 하자, 양묘진은 사람을 보내어 "여우가 죽으면 토끼가 우는 법이니, 이씨(이전을 가리킴)가 멸망하면 하씨(하전을 가리킴)라고 홀로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장군께서 잘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狐死兎泣, 李氏滅, 夏氏寧獨存. 愿將軍垂盼)"라는 말을 전하였다.
이는 하전을 안심시켜 속이기 위한 계책이었다. 하전은 이에 넘어가 유탁을 몰아낸 뒤 성으로 돌아왔으나 양묘진은 태도가 돌변하여 그를 성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나중에 하전은 금나라에 투항하였다. 이 고사는 송사(宋史)의 이전전(李全傳)에 실려 있다.
여우와 토끼는 그 힘의 강약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의 사냥감이 되기는 매한가지이다. 따라서 여우가 죽으면 그 다음 차례는 토끼일지도 모르고,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그 다음 차례일지도 모르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처지인 것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호사토비는 남의 처지를 보고 자기 신세를 헤아려 동류의 불행을 슬퍼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기쁨과 슬픔의 행복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이 있고,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는 말도 있다. 마음이 넉넉하고 기쁨과 슬픔을 진정 나눌 수 있는 사람과 나누어야 격려와 칭찬이 더해져 기쁨은 배가되고, 동정과 위로가 힘이 되어 슬픔은 반감이 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남의 기쁨에서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여 질투를 느끼고, 슬픔은 면전에서는 위로해 주지만 뒤돌아서서는 험담을 한다. 경제가 발전해서 삶이 풍족해지지만 마음이 황폐해져서 인간관계가 멀어진 탓인가?
그래서 송무백열(松茂柏悅), 혜분난비(蕙焚蘭悲), 토사호비(兎死狐悲), 행재불인(幸災不仁), 행재락화(幸災樂禍) 및 종과득과(種瓜得瓜), 종두득두(種豆得豆) 등의 성어를 인용해서 기쁠 때에는 행복이 배가 되고, 슬플 때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길을 소개하고자 한다.
송무백열(松茂柏悅), 혜분난비(蕙焚蘭悲), 토사호비(兎死狐悲)
진(晉)나라 육기(陸機)가 쓴 '탄서부(歎逝賦)'에 나오는 '신송무이백열(信松茂而柏悅), 차지분이혜탄(嗟芝焚而蕙歎)'은 "진실로 소나무가 무성해지면 잣나무가 기뻐하고 지초가 불에 타면 혜초가 한탄한다"는 뜻으로 여기서 '송무백열(松茂柏悅), 혜분난비(蕙焚蘭悲), 토사호비(兎死狐悲)'이라는 말이 나왔다.
송무백열(松茂柏悅)이란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옆에 있는 측백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친구나 주위 사람이 잘되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말이다. 백(柏)은 원래 측백나무를 가리키는 말인데 잣나무로 주로 쓰인다.
혜분난비(蕙焚蘭悲)는 지분혜탄(芝焚蕙歎)이라고도 하는데, 혜란(蕙蘭; 난초과의 풀)이 불에 타면 난초(蘭草)가 슬퍼한다는 뜻으로, 벗이나 주위 사람의 슬픔이나 불행을 같이 슬퍼하고 위로하니 슬픔과 불행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토사호비(兎死狐悲)는 토끼의 죽음을 여우가 슬퍼한다는 말로, 같은 무리의 불행을 슬퍼한다는 뜻으로 호사토비(狐死兔悲)와 호사토읍(狐死兔泣)도 같은 말이다.
행재불인(幸災不仁), 행재락화(幸災樂禍)
행재불인(幸災不仁)이란 '남의 재난(災難)을 즐기고 요행(僥倖)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하다'는 말이고, 행재락화(幸災樂禍)는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란 말처럼 남의 어려움을 보고 기쁨을 느낀다는 성어인데, 둘 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온다.
'송무백열, 혜분난비, 토사호비'에서 느낀 것처럼 사람이 아닌 동식물도 같이 기뻐하고 함께 슬퍼한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행재락화(幸災樂禍)하면 되겠습니까? 행재불인(幸災不仁)의 마음으로, 서로서로 기쁨을 나누어 두 배가 되게 하고 슬픔을 나누어 반감이 되게 합시다.
종과득과(種瓜得瓜), 종두득두(種豆得豆)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과 유사한 '종과득과(種瓜得瓜), 종두득두(種豆得豆)'는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6장 7절 후단에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칭찬과 격려와 행복 등을 심으면 칭찬과 격려 및 행복을 거두고, 비난과 불평과 불행 등을 심으면 비난과 불평 및 불행 등을 거두게 된다.
송무백열(松茂柏悅)
소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고 옆에 있는 측백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벗이 잘되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말이다. '백(柏)'을 잣나무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원래는 측백나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뒤에 잣나무와 혼동되면서 측백나무보다는 잣나무로 쓰는 경우가 많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상록교목으로 겨울이 되어도 푸른 빛을 잃지 않아 예부터 선비의 꼿꼿한 지조와 기상의 상징으로 함께 어울려 쓰였다. 송백지조(松柏之操; 송백의 푸른 빛처럼 변하지 않는 지조), 송백지무(松柏之茂; 언제나 푸른 송백처럼 오래도록 영화를 누림) 등이 그 예이다.
이처럼 소나무와 잣나무는 항상 푸르면서도 서로 비슷하게 생겨 흔히 가까운 벗을 일컫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송무백열이 대표적인 예로, 벗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는 일이야말로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시작이자 사람됨의 근본 도리이다.
이런 까닭으로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던 절친한 벗 종자기(種子期)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타지 않았다. 고사성어로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사람이 평생을 살아 가면서 진정한 벗 한 명을 얻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송무백열과 같은 뜻의 사자성어로는 혜분난비(蕙焚蘭悲)가 있다. 혜란이 불에 타니 난초가 슬퍼한다는 뜻으로, 벗의 불행을 슬퍼한다는 말이다. '혜(蕙)'는 난초의 한 종류이다.
친구가 잘되는 것은 나의 기쁨이다. 그런 우정을 말해주는 성어가 송무백열(松茂柏悅)이다. 소나무가 무성해지자 잣나무가 기뻐한다니 그 우정이 아름답다.
송무백열(松茂柏悅)은 중국 진(晉)나라 때 육기(陸機)가 쓴 '탄서부(歎逝賦)'에 나온다. 육기(陸機, 261년 ~ 303년)는 중국 서진의 관리이다. 자는 사형(士衡)이며, 오군(吳郡) 사람이다. 육손의 손자이며, 육항의 넷째 아들이다.
탄서부(歎逝賦) / 육기(陸機)
(죽음을 한탄하노라)
昔每聞長老追計平生同時親故, 或凋落已盡, 或僅有存者.
옛날에 나이든 사람들이 어릴 적에 친했던 이들을 손꼽으며, '아무개는 벌써 죽었고, 보이는 이는 얼마 안되는구나'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余年方四十, 而懿親戚屬, 亡多存寡; 昵交密友, 亦不半在.
내 나이가 이제 마흔인데, 그러나 훌륭한 친척들은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거의 살아 남아 있지 않다. 친한 친척들 중 죽은 이가 많고 살아있는 사람은 적다. 가까운 친구들 역시 절반도 안 남았구나.
或所曾共遊一塗, 同宴一室, 十年之外, 索然已盡.
일찍이 함께 놀던 무리들, 한방에서 함께 연회하던 이도 10년이 지나면 모두 죽을 것이다.
以是思哀, 哀可知矣. 乃作賦曰:
그래서 그것을 애도하노니 애도함은 자명한 일이다. 슬픈 생각이 들어 이 부(賦; 시)를 짓노라.
伊天地之運流, 紛升降而相襲.
하늘과 땅의 운행과 흐름의 작용은 상호작용으로 인해, 서로를 들어 올리기도 하고 끌어내리기도 한다.
日望空以駿驅, 節循虛而警立.
허공 중의 해와 달의 흐름을 보면 준마(骏马)가 내달리듯 하여, 시간과 절후는 허공의 순환으로 놀랍도록 바뀐다.
嗟人生之短期, 孰長年之能執.
아, 인생의 짧음이여! 뉘라서 장수(長壽)를 누릴 수 있나?
時飄忽其不再, 老晼晚其將及.
시간은 질풍처럼 지나가 다시 오지 않건만, 늙음(老化)은 더딘 듯하나 오게 마련이다.
懟瓊橤之無徵, 恨朝霞之難挹.
꽃봉오리 따낼 것 없고, 아침 노을은 떠낼 일 없어 아쉽네.
望湯谷以企予, 惜此景之屢戢.
해 돋는 탕곡(湯谷)을 바라보며 세운 뜻, 거듭 이루지 못하여 아쉽기 짝이 없네.
悲夫.
슬프도다!
川閱水以成川, 水滔滔而日度.
물은 냇물을 이뤄 날마다 도도히 흐르건만
世閱人而為世, 人冉冉而行暮.
인간들은 세상을 이뤄 나날이 저물어 가네.
人何世而弗新, 世何人之能故.
인간은 어느 세상에서나 젊어질 수 없는데, 세상에 뉘라서 젊어질 수 있나?
野每春其必華, 草無朝而遺露.
들판엔 봄마다 꽃을 피우고, 풀들은 아침마다 이슬이 맺히건만 남은 이슬 없네.
經終古而常然, 率品物其如素.
예로부터 만물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건 이치일 뿐.
譬日及之在條, 恒雖盡而弗寤.
비유컨대 해가 나무가지에 걸려 있지만, 언제나 사라지지만 깨닫지 못해.
雖不寤其可悲, 心惆焉而自傷.
그 슬픔 깨닫지 못해도, 마음은 슬퍼하여 아프기만 해.
亮造化之若茲, 吾安取夫久長.
밝은 조화 이와 같으니, 내 어찌 장구함을 취하랴.
痛靈根之夙隕, 怨具爾之多喪.
부모 형제 이른 죽음이 마음 아프고, 이웃 사람들의 잦은 상이 원망스럽네.
悼堂搆之隤瘁, 慜城闕之丘荒.
집과 담장 허물어지니 슬프고, 성과 둔덕 황폐해지니 걱정이네.
親彌懿其已逝, 交何戚而不忘.
만남과 사귐의 아름다움을 어찌 잊을손가
咨余今之方殆, 何視天之芒芒.
닥칠 위험을 알고, 어찌 넓은 하늘을 이고 살겠는가?
傷懷悽其多念, 戚貌瘁而尠歡.
수심 많아 슬프고, 기쁜 일 없으니 얼굴이 수척해지네.
幽情發而成緒, 滯思叩而興端.
아득한 마음 피어나고, 답답한 생각 끝이 없다네.
慘此世之無樂, 詠在昔而為言.
아무 즐거움 없이 잠깐인 세상, 옛 일이나 읊조리고 말한다네.
居充堂而衍宇, 行連駕而比軒.
많은 사람들이 집과 방에 가득 차고, 말과 가마 타고 다니네.
彌年時其詎幾, 夫何往而不殘.
한 해 한 해 몇 해인가? 어디 가고 남은 해는 없는고?
或冥邈而既盡, 或寥廓而僅半.
누군 이미 어두운 모습이니 이미 목숨 다해 뵈지 않고, 누군 반쯤 남은 몰골이네.
信松茂而柏悅, 嗟芝焚而蕙歎.
참으로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하고, 아! 지초가 불에 타면 혜초가 한탄하네.
苟性命之弗殊, 豈同波而異瀾.
생명에 차이가 없다면, 어찌 같은 세상 또다른 세상을 살 수 있나
瞻前軌之既覆, 知此路之良難.
앞 수례가 엎어진 걸 보면, 이 길이 참으로 험난한 걸 안다네.
啟四體而深悼, 懼茲形之將然.
손발을 내밀어 깊은 애도를 보내며, 또한 이 몸도 그리될까 두려워하네.
毒娛情而寡方, 怨感目之多顏.
즐길 마음과 방법이 부족해 안타깝고, 원망하는 낯빛만 눈에 어른거리네.
諒多顏之感目, 神何適而獲怡.
죽음이 눈 앞에 선한데, 어느 정신에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리
尋平生於響像, 覽前物而懷之.
평생 만남과 사귐의 목소리와 모습을 찾고, 옛일을 찾아 보고 그리워하네
步寒林以悽惻, 翫春翹而有思.
쓸쓸한 겨울숲을 거닐며 애처로이, 봄을 생각하며 그리워하네
觸萬類以生悲, 歎同節而異時.
스쳐가는 모든 게 쓸쓸해지고, 계절은 같아도 시절은 같지 않네.
年彌往而念廣, 塗薄暮而意迮.
나이가 들수록 생각은 넓어지고, 늙어갈수록 뜻은 옹색해지네.
親落落而日稀, 友靡靡而愈索.
친척은 해가 갈수록 적어지고, 친구는 점점 찾기 힘들어지네.
顧舊要於遺存, 得十一於千百.
남아 있는 친구를 찾는 것은, 아는 이 천 명에 하나나 있을런지.
樂隤心其如忘, 哀緣情而來宅.
마음에 남은 기쁨 잊혀진 듯한데, 슬픔은 정에 끌려 되살아나네.
託末契於後生, 余將老而為客.
마지막 인연을 자손에게 의탁하면, 나는 늙어지면 나그네 된다네.
然後弭節安懷, 妙思天造.
안주하려는 마음 버리고, 하늘의 뜻을 곰곰히 생각하네.
精浮神淪, 忽在世表.
정신이 오락가락하더니, 갑자기 세상 밖에 나가 있는 듯.
寤大暮之同寐, 何矜晚以怨早.
아주 오랜만에 잠들었는데, 늦었다고 원망할 일인가?
指彼日之方除, 豈茲情之足攪.
죽을 날이 다가오는데, 어찌 내 마음이 흔들릴까?
感秋華於衰木, 瘁零露於豐草.
고목나무 위 가을꽃 애닯고, 무성한 풀 위엔 마른 이슬지네.
在殷憂而弗違, 夫何云乎識道.
깊은 시름 벗어나지 못했는데, 어찌 가는 길을 안다 할까?
將頤天地之大德, 遺聖人之洪寶.
하늘과 땅의 덕을 기리고, 성인됨의 큰 보물 남기고.
解心累於末跡, 聊優遊以娛老.
쌓인 소소한 일들 풀어나가고, 늙어서 유유자적 놀다 가려네.
▶️ 狐(여우 호)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 개)部와 음을 나타내는 瓜(과, 호)가 합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狐(호)는 ①여우(갯과의 포유류) ②여우털 옷 ③부엉이(올빼밋과의 새) ④의심(疑心)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암내로 겨드랑이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호취(狐臭), 여우와 삵으로 도량이 좁고 간사한 사람 즉 소인배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호리(狐狸), 여우 귀신을 호귀(狐鬼), 궤의 밑바닥에 대는 말굽같이 생긴 쇳조각을 호번(狐蹯), 여색을 좋아하여 밝히는 일을 호수(狐綏), 여우의 굴을 호혈(狐穴), 여우의 넋을 호정(狐精), 여우의 겨드랑이 밑에 있는 흰 털로 만든 갖옷을 호구(狐裘), 여우를 잡기 위하여 치는 그물을 호망(狐網), 호기롭고 열쌤 또는 호탕하고 영매함을 호매(狐邁), 한쪽 불알이 아프고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병을 호산(狐疝), 여우의 눈썹이라는 뜻으로 알씬거리어 아양을 떨고 아첨함을 호미(狐媚), 여우가 의심이 많다는 뜻으로 매사에 지나치게 의심함을 이르는 말을 호의(狐擬), 임금 곁에 있는 소인을 비유하는 말을 성호(城狐), 승냥이와 여우를 시호(豺狐), 늙은 여우를 노호(老狐), 흰 여우를 백호(白狐), 작은 새끼 여우를 소호(小狐),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이 있는 부분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호백구(狐白裘), 암내로 겨드랑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일컫는 말을 호조기(狐臊氣), 여우와 쥐새끼 같은 무리라는 뜻으로 간사하고 못된 무리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호서배(狐鼠輩),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를 일컫는 말을 구미호(九尾狐),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으로 남의 세력을 빌어 위세를 부림을 일컫는 말을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는 죽을 때가 되면 제가 살던 굴 있는 언덕으로 머리를 돌린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호사수구(狐死首丘), 여우의 죽음에 토끼가 운다는 뜻으로 동류의 불행을 슬퍼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호사토읍(狐死兔泣), 여우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하여 의심이 많아 결행하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호의불결(狐疑不決), 여우는 수놈 두 마리가 함께 살지 않는다는 뜻으로 두 영웅이 병립할 수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호불이웅(狐不二雄), 위엄을 빌린 여우 곧 권력자에게 빌붙어 날뛰는 소인을 일컫는 말을 가위지호(假威之狐), 범의 탈을 쓴 여우 곧 권세를 부리는 간사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가호지호(假虎之狐), 동호의 곧은 붓이란 말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바르게 기록한다는 말을 동호직필(董狐直筆), 두 다리의 여우라는 뜻으로 마음이 음흉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양각야호(兩脚野狐), 여우하고 여우의 모피를 벗길 모의를 한다는 뜻으로 이해가 상충하는 사람하고 의논하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호모피(與狐謀皮) 등에 쓰인다.
▶️ 死(죽을 사)는 ❶회의문자로 죽을사변(歹=歺; 뼈, 죽음)部는 뼈가 산산이 흩어지는 일을 나타낸다. 즉 사람이 죽어 영혼과 육체의 생명력이 흩어져 목숨이 다하여 앙상한 뼈만 남은 상태로 변하니(匕) 죽음을 뜻한다. 死(사)의 오른쪽을 본디는 人(인)이라 썼는데 나중에 匕(비)라 쓴 것은 化(화)는 변하다로 뼈로 변화하다란 기분을 나타내기 위하여서다. ❷회의문자로 死자는 ‘죽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死자는 歹(뼈 알)자와 匕(비수 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匕자는 손을 모으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死자를 보면 人(사람 인)자와 歹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시신 앞에서 애도하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해서에서부터 人자가 匕자로 바뀌기는 했지만 死자는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모습에서 ‘죽음’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死(사)는 죽는 일 또는 죽음의 뜻으로 ①죽다 ②생기(生氣)가 없다 ③활동력(活動力)이 없다 ④죽이다 ⑤다하다 ⑥목숨을 걸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망할 망(亡)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살 활(活), 있을 유(有), 날 생(生)이다. 용례로는 죽음을 사망(死亡), 활용하지 않고 쓸모없이 넣어 둠 또는 묵혀 둠을 사장(死藏), 죽음의 원인을 사인(死因), 죽는 것과 사는 것을 사활(死活), 사람이나 그밖의 동물의 죽은 몸뚱이를 사체(死體), 죽음을 무릅쓰고 지킴을 사수(死守), 죽어 멸망함이나 없어짐을 사멸(死滅), 죽어서 이별함을 사별(死別), 죽기를 무릅쓰고 쓰는 힘을 사력(死力),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서로 저버리지 않을 만큼 절친한 벗을 사우(死友), 죽을 힘을 다하여 싸우거나 목숨을 내어 걸고 싸움 또는 그 싸움을 사투(死鬪), 죽음과 부상을 사상(死傷), 수형자의 생명을 끊는 형벌을 사형(死刑), 태어남과 죽음이나 삶과 죽음을 생사(生死), 뜻밖의 재앙에 걸리어 죽음을 횡사(橫死), 참혹하게 죽음을 참사(慘事), 쓰러져 죽음을 폐사(斃死), 굶어 죽음을 아사(餓死), 물에 빠져 죽음을 익사(溺死), 나무나 풀이 시들어 죽음을 고사(枯死), 죽지 아니함을 불사(不死), 병으로 인한 죽음 병사(病死), 죽어도 한이 없다는 사무여한(死無餘恨), 죽을 때에도 눈을 감지 못한다는 사부전목(死不顚目), 죽을 고비에서 살길을 찾는다는 사중구활(死中求活), 죽는 한이 있어도 피할 수가 없다는 사차불피(死且不避), 죽더라도 썩지 않는다는 사차불후(死且不朽),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이라는 사생지지(死生之地), 다 탄 재가 다시 불이 붙었다는 사회부연(死灰復燃), 이미 때가 지난 후에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죽고 사는 것을 가리지 않고 끝장을 내려고 덤벼든다는 사생결단(死生決斷), 죽어서나 살아서나 늘 함께 있다는 사생동거(死生同居), 죽어야 그친다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사이후이(死而後已) 등에 쓰인다.
▶️ 兔(토끼 토)는 상형문자로 兎(토)의 본자(本字)이다. 본래 긴 귀와 짧은 꼬리를 가진 토끼의 모양을 본떠 그것이 지금의 자형(字形)으로 변했다. 그래서 兔(토)는 ①토끼 ②달(달 속에 토끼가 있다는 뜻에서 달의 별칭이 됨)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토끼털을 토모(兔毛), 달의 딴 이름을 토월(兔月), 토끼 가죽을 토피(兔皮), 날쌘 토끼를 교토(狡兔), 집토끼를 가토(家兔), 야생하는 토끼를 야토(野兔), 달 속에 있다는 금두꺼비와 옥토끼 곧 달의 별칭을 섬토(蟾兔), 부엉이를 목토(木兔), 산토끼를 산토(山兔), 달아나는 토끼로 몹시 빨리 달아남을 일컫는 말을 탈토(脫兔), 털빛이 흰 토끼를 백토(白兔), 병이 든 토끼나 앓는 토끼를 병토(病兔), 다 자란 토끼를 성토(成兔), 토끼를 기름 또 그 토끼를 양토(養兔), 옥토끼로 달을 달리 이르는 말을 옥토(玉兔), 달의 미칭으로 달 속의 흰토끼를 은토(銀兔), 씨를 받으려고 기르는 토끼를 종토(種兔), 사냥하러 가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게 되어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 먹고 쓸모가 없어지면 가혹하게 버린다는 뜻 또는 일이 있을 때는 실컷 부려먹다가 일이 끝나면 돌보지 않고 헌신짝처럼 버리는 세정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토사구팽(兔死狗烹), 토끼의 죽음을 여우가 슬퍼한다는 뜻으로 같은 무리의 불행을 슬퍼한다는 말을 토사호비(兔死狐悲), 토끼는 숨을 수 있는 굴을 세 개는 마련해 놓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미리 몇 가지 술책을 마련함을 비유하는 말을 토영삼굴(兔營三窟),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이른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토각귀모(兔角龜毛), 토끼 그물에 꿩이 걸린다는 뜻으로 소인은 계교로 좌에서 벗어나고 군자가 도리어 화를 입음을 이르는 말을 토라치리(兔羅雉罹), 토끼가 달리고 까마귀가 난다는 뜻으로 세월의 빠름을 이르는 말을 토주오비(兔走烏飛),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함을 일컫는 말을 수주대토(守株待兔), 개와 토끼의 다툼이라는 뜻으로 양자의 싸움에서 제3자가 이익을 봄을 이르는 말을 견토지쟁(犬兔之爭), 여우의 죽음에 토끼가 운다는 뜻으로 동류의 불행을 슬퍼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호사토읍(狐死兔泣), 우리를 빠져 도망하는 토끼의 기세라는 뜻으로 매우 신속하고 민첩함을 이르는 말을 탈토지세(脫兔之勢),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 놓는다는 뜻으로 사람이 교묘하게 잘 숨어 재난을 피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교토삼굴(狡兔三窟), 금까마귀와 옥토끼란 뜻으로 금오는 태양을 옥토는 달을 가리키는 말을 금오옥토(金烏玉兔), 오는 해이고 토는 달을 뜻하는 데에서 세월이 빨리 흘러감을 이르는 말을 오비토주(烏飛兔走), 토끼를 발견한 후에 사냥개를 놓아서 잡게 하여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사태의 진전을 관망한 후에 응하여도 좋다는 말을 견토방구(見兔放狗), 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이라는 뜻으로 있을 수 없거나 아주 없음을 이르는 말을 귀모토각(龜毛兔角), 솔개의 눈에 토끼의 귀라는 뜻으로 잘 보이는 눈과 잘 들리는 귀를 일컫는 말을 연목토이(鳶目兔耳), 노루를 쫓는 데 생각지도 않은 토끼가 걸렸다는 뜻으로 뜻밖의 이익을 얻음을 이르는 말을 주장낙토(走獐落兔) 등에 쓰인다.
▶️ 悲(슬플 비)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非(비)로 이루어지며, 마음(心)이 좋지 않아 슬프다를 뜻한다. 非(비)는 새의 날개, 여기에서는 어기는 일, 扉(비; 문짝)나 排(배; 밀치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억눌렸던 것이 배출구를 찾아 초조해지는 기분을 나타낸다. 마음대로 안되어 마음에 치밀어 오르는 괴로운 기분, 슬픔, 슬퍼하는 일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悲자는 ‘슬프다’나 ‘서럽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悲자는 心(마음 심)자와 非(아닐 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非자는 새의 양쪽 날개를 그린 것으로 ‘아니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悲자는 이렇게 ‘아니다’라는 뜻을 가진 非자에 心자를 결합한 것으로 ‘마음(心)이 영 아니다(非)’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마음이 영 아니라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悲자는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悲(비)는 ①슬프다, 서럽다 ②슬퍼하다, 마음을 아파하다 ③슬픔, 비애 ④동정(同情), 가엾이 여기는 마음, 가엾게 여겨 은혜(恩惠)를 베푸는 일 ⑤가엾게 여겨 은혜(恩惠)를 베푸는 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슬플 애(哀), 슬플 오(嗚), 슬퍼할 도(悼), 슬퍼할 처(悽), 슬퍼할 개(慨), 슬퍼할 측(惻), 슬플 창(愴), 슬플 강(慷),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기쁠 희(喜), 즐길 락(樂), 기쁠 환(歡), 달 감(甘)이다. 용례로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비참한 사건을 비극(悲劇), 갑작스러운 위험이나 두려움 때문에 지르는 외마디 소리를 비명(悲鳴), 인생을 슬프게 보거나 세상을 어둡고 쓸쓸하게 생각함을 비관(悲觀), 슬퍼하고 서러워함을 비애(悲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슬프고 끔찍함을 비참(悲慘), 슬픈 가락의 노래를 비가(悲歌), 슬퍼하며 탄식함을 비탄(悲歎), 슬프면서도 마음을 억눌러 씩씩함을 비장(悲壯), 비장한 결심으로 이루려는 소원을 비원(悲願), 슬픈 운수 또는 슬픈 운명을 비운(悲運), 마음이 슬프고 쓰라림을 비상(悲傷), 마음이 아프도록 몹시 슬퍼함을 비통(悲痛), 자비심이 많은 어머니를 비모(悲母), 슬픈 기별을 비보(悲報), 애절한 그리움을 비련(悲戀), 슬픈 느낌을 비감(悲感), 슬픈 곡조를 비곡(悲曲), 슬픈 근심을 비수(悲愁), 슬프게 읊음을 비음(悲吟), 슬픈 이야기를 비화(悲話), 사랑하고 불쌍히 여김을 자비(慈悲), 기쁨과 슬픔을 희비(喜悲), 괴로움과 슬픔을 고비(苦悲), 통탄하고 슬퍼함을 상비(傷悲), 슬프면서도 마음을 억눌러 씩씩함을 장비(壯悲), 근심과 슬픔을 우비(憂悲), 근심스럽고 슬픔을 척비(慽悲), 슬픈 일과 기쁜 일이 엇갈린다는 뜻으로 슬픔과 기쁨을 번갈아 맛봄을 이르는 말을 비희교지(悲喜交至), 슬프고 분한 느낌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음을 비분강개(悲憤慷慨), 슬픈 바람과 처참한 비라는 뜻으로 비참한 처지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비풍참우(悲風慘雨), 슬픔과 기쁨을 우울함과 즐거움을 비희우락(悲喜憂樂), 즐거운 일이 지나가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뜻으로 세상일이 순환됨을 가리키는 말을 흥진비래(興盡悲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