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강의(經史講義) 11 ○ 논어(論語) 4 갑진년(1784)에 이서구(李書九), 정동관(鄭東觀), 한치응(韓致應), 한상신(韓商新), 이형달(李亨達), 홍의호(洪義浩), 한흥유(韓興裕) 등의 대답을 뽑았다
위정(爲政)
주자가 북신(北辰)을 풀이하기를 “북신은 북극(北極)이니, 하늘의 추(樞)이다.”라고 하였는데, 후대의 학자들이 변론한 것이 많다. 혹 “북극의 다섯 번째 별이 천추(天樞)가 되니 통틀어 천추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북극과 북신은 본디 같지 아니한 것이다.”라고 하기도 하였고, 또 “온 하늘의 별이 없는 곳을 모두 신(辰)이라고 한다. 북신이라는 것은 북방(北方)의 신(辰)이다. 뭇별만 북신을 싸고 돌 뿐만 아니라, 극성(極星)도 어찌 일찍이 북신을 싸고 돌지 아니하겠는가.”라고 하기도 하였고, 또 “북극(北極)만이 아니기 때문에 북신(北辰)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대화(大火 심수(心宿)를 말함)를 신(辰)이라고 하고, 오성(五星) 가운데 수성(水星)을 신성(辰星)이라고 하고, 십이지(十二支)를 십이신(十二辰)이라고 하고, 해와 달과 별을 삼신(三辰)이라고 하고, 오행(五行)의 시(時)를 오신(五辰)이라고 하니, 신(辰)은 바로 별자리가 처음 운행하는 곳이요 한 해가 처음 출발하는 곳인데, 북신(北辰)은 제자리를 지켜 경성(經星)의 으뜸이 되고 수성(水星)은 가까이서 해를 보좌하여 행성(行星)의 으뜸이 되고 대화(大火)는 천제(天帝)의 자리여서 사성(舍星)의 으뜸이 된다. 그러므로 으뜸을 모두 신(辰)이라고 일컫는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그 학설인데, 모두 근거가 있지 아니한가?
[이서구가 대답하였다.]
주자도 일찍이 북극을 북신이라고 통칭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류》에 “하늘에 텅 비어 별이 없는 곳을 모두 신(辰)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이것을 갖다가 극(極)을 삼으려 함에 기준이 되는 것이 없어서는 안 되겠기에 그래서 옆에 가까이 있는 하나의 작은 별을 가지고 극(極)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집주》에서 북극(北極)이라고 한 것은 또한 대강(大綱)을 말한 것입니다.
‘학문에 뜻을 둠[志學]’의 학(學)은 곧 대학(大學)의 도(道)이고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넘지 않음[從心所欲 不踰矩]’도 또한 대학의 극치의 공효에 지나지 않으니, 15세에 뜻을 둔 것에는 70세에 도달할 바의 지위를 이미 포함하고 있는가? 그리고 공자 같은 큰 성인으로서도 70세에 이르러서야 바야흐로 스스로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넘지 않았다.”라고 하였으니, 70세가 되지 않은 사람은 비록 생지(生知)의 성인(聖人)이더라도 장차 이 경계(境界)를 말할 수 없는 것인가?
[이서구가 대답하였다.]
입지(立志)를 하는 처음에 바로 성인(聖人)을 자신의 목표로 해야 합니다. 부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둘 때에 참으로 이미 불유구(不踰矩)를 하고자 했는데, 이 장의 연수(年數)는 굳이 분명하게 구분을 지어서 국한하여 볼 것은 없을 듯합니다. 다만 성인의 마음이 여기에 이르러 스스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가령 생지(生知)의 성인이라면 70세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그 생각하지 않아도 알게 되고 힘쓰지 않아도 중도에 맞는 것에 또한 어찌 불유구의 의사가 없겠습니까.
귀는 들을 수 있고 눈은 볼 수 있고 입은 말할 수 있고 손은 잡을 수 있고 발은 걸을 수 있고 마음은 깨달을 수 있으니, 모두가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절로 알고 행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이다. 그런데 지금 모두 논하지 않고 유독 이순(耳順)만을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이서구가 대답하였다.]
사람이 외물과 접촉할 때에 오직 들음[聽]만이 가장 힘을 덜 들여도 되는 일입니다. 무릇 소리로 나오는 것들은 저절로 귀에 들어오기 때문에 굳이 이순(耳順)으로 그 불사이득(不思而得)을 형용한 것입니다.
여기 ‘백세(百世)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주(周) 나라의 문(文)을 이은 것이 한(漢) 나라이니 한 나라는 참으로 충(忠)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한 나라를 이은 당(唐) 나라를 또한 질(質)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당 나라를 이은 송(宋) 나라를 또한 문(文)이라고 할 수 있는가? 송 나라는 인후(仁厚)함으로 나라를 세웠으니 충(忠)에 가깝지 문(文)에 가깝지가 아니하였다. 그리고 그 쇠퇴한 때에는 또 문(文)이 치성한 폐단이 많았다. 한 왕대(王代)의 처음과 나중인데도 충(忠)과 문(文)이 이와 같이 번갈아 변한 것은 어째서인가?
[한흥유가 대답하였다.]
한(漢) 나라는 관대(寬大)함으로 다스렸으니 참으로 충(忠)이라고 하겠으나, 당(唐) 나라의 사화(詞華)는 문(文)에 가까운 듯하고 송(宋) 나라의 인후(仁厚)는 질(質)에 가까운 듯하니, 충(忠), 질(質), 문(文)의 이음이 반드시 질서 정연한 차례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문(文)이 극도에 이르면 반드시 질(質)이 되고 질이 극도에 이르면 반드시 문이 되는 것은 바로 이치와 형세가 그리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같은 왕대의 처음과 나중인데도 문과 질이 같지 않게 되는 경우는, 이것은 말세(末世)의 폐단에 기인한 것이지 나라를 세우는 근본은 아니니, 어찌 충, 질, 문 세 가지에 함께 거론할 수가 있겠습니까.
위는 위정편(爲政篇)이다.
[爲政]
朱子之訓北辰曰北辰。北極天之樞也。而後來諸儒辨論多端。或曰北極第五星爲天樞。不可統謂之天樞。且北極與北辰。本自不同。又曰周天無星處。皆謂之辰。北辰者北方之辰也。不特衆星拱北辰。卽極星何嘗不拱北辰乎。又曰不特北極。故名北辰。大火謂之辰。五星中之水星謂之辰星。十二支謂之十二辰。日月星謂之三辰。五行之時謂之五辰。辰乃星躔之始歲紀之始。而北辰居所。爲經星之長。水星近輔乎日。爲行星之長。大火天帝之座。爲舍星之長。故長者 皆稱辰焉。此其說。不皆有據乎。書九對。朱子亦未嘗以北極通謂之北辰。故語類云天之空無星處皆謂之辰。緣人要取此爲極。不可無箇記認。所以取其旁近一小星謂之極。則集註之以爲北極。亦就大綱說。志學之學。卽大學之道。而從心所欲不踰矩。亦不過大學之極功。則十五所志者。已包七十所到之地位耶。且以孔子之大聖。至七十時。方自謂從欲不踰。人之不能七十者。雖生知之聖。將不得語此境界耶。書九對。立志之初。便當以聖人自期。夫子之於十 五志學時。固已要做不踰矩。而至於此章年數。恐不必截然局定看。特聖人之心。至此自信。藉使生知之聖。未及七十。其不思而得不勉而中。亦豈無不踰矩之意思耶。耳能聽目能視口能言手能持足能行心能覺。皆人所以日用動靜。能知而能行者也。今皆不論。而獨以耳順爲言者何也。書九對。人與物接之時。惟聽最不著力。凡發於聲者。自然入耳。故必以耳順。形容其不思而得也。此云百世可知。承周之文者漢則漢固可謂忠。繼漢而唐。亦可謂之質。繼唐而宋。亦可謂之文耶。宋以仁厚立國。則近於忠而不近於文。且其衰也。又多文勝之弊。一代之始終。而忠文似此嬗變何也。興裕對。漢以寬大而治。固可謂忠。而唐之詞華似近於文。宋之仁厚。似近於質。則忠質文之相承。未必秩然有序。只是文極必質。質極必文。卽理勢之所不得不然也。至若一代之終始而文質不同。此因末世之失。而非其立國之本。何足與論於忠質文三者耶。以上爲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