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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시가집 [만엽집]이 고대 한국어로 쓰여졌으리라는 것은 이젠 결코 놀랍거나 새삼스러운 주장이
될수 없다.
꽤 오래전 얘기지만, 일본에서 불전연구의 대가로 알려진 큐슈대학 명예교수인 다무라엔조씨가 일본 아사히
신문에 연재했던 <속 일본 고대사의 수수께끼>라는 글에서 <나라시대의 불전은 조선어로 읽히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이 말속에는 그것이 어디 불전 뿐인가 라는 묘한 뉘앙스를 함축하고 있는 듯이 느껴져 자못 흥미
로웠다.
그것이 고대 일본어는 사실상 고대 한국어였을 것이라는 가능성의 일단을 표현한 말에 불과한 것이었다해도,
그리고 어쩌면 이 가능성에 대한 조심스런 추측의 발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써 충분히 핵심을
건드린 말일 수도 있다.
예컨대, 십여 년 전 김사엽교수<전 동국대 부설 일본학 연구소장/현재 작고>에 의해서도 만엽집 연구서가 일본
에서 간행되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김교수는 한국어를 모르고서는 만엽집의 올바른 해석을 기대하기로 어렵다는 취지의 말을 했던 것
으로 필자는 기억한다.
그러나 김교수의 연구결과에서 주장된 바는 만엽집속에 한국적인 요소가 끼여 있다는 정도의 선언에 불과했다.
일본학자들 가운데 한국의 고대어가 소멸되었거나 미처 정리되지도 않은 상태임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로서 일본서기의 노래나 만엽가 내용을 고대 한국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박의 이유로 삼는다.
고대한국어란 다름아니라 오늘날엔 각 지방 방언이 돼버린 토속어가 바로 그것이다.
필자의 연구결과로는 한반도 남부 지방의 전형적인 방언들이 고대 일본어의 원류였음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일제강점시대에 한국말을 쓰면 모진 벌을 세웠다. 알고보면 실은 고대 일본어의 원류였을 그 한국어를 사용
했다는 죄목으로 매를 때린 일본인 선생들의 행위가 얼마나 엄청난 과오였던가를 일깨우는데 필자가 해석한
일본서기 속의 노래가 한 몫을 담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노래를 해독하기위해서 젊은 날의 밤동안의 시간들은 마치 아득히 먼 우주의 다른 행성에서 보내오는
외계인의 이상한 초음파를 수신하는 기분으로 천 수백년의 세월 저편에서 띄워 보내는 고대인의 낯선 메시지를
해독하기 위해 밤낮으로 그 암호문 같은 한자의 향찰식표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심정이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실로 느닷없이 번뜩이며 와 닿는 영감이나 계시가 없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20여년 동안 일본인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우리의 향가 격인 만엽가와 일본서기 노래들 해독에 천착해 왔었다.
그 결과물들도 인쇄 매체를 통해 책으로 나왔지만, 정작 본격적인 일본에서 책 발간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미 13년전에 일본 문단에 등단도 했지만, 작금 일본은 동북아 맹주로 꿈을 꾸고 있고, 우경화로 치닫고 있은
시대 정황으로 봐서,이미 800여 수 해석을 마친 만엽가를 비롯한 일본 천황의 한국말에 대한 원고가 출판사에
사장되어 당분간 출간되기 힘든 형편에 있을 것 같다. 이유는 우익들의 반대로 목숨 걸 일본 측 출판사가 선뜻
나올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정체성을 알릴 길은 바로 그 조상들이 남겨 놓은 기록물이 한국어로 되어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천황의 정체가 명백히 들어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한일 고대 역사 왜곡이란 단어가 부끄러움으로 다가 올
예감이 든다.
다음 소개하는 기사를 보면 얼마나 천황에 대해 비하하는 기사에 대해 우익들의 테러가 심할 수 있다는 것과
천황 비하 출판은 목숨을 건 일이라는 사례를 보여준다.(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日언론, 비난·풍자 등 금기시… 보수우익이 주도하는 여론 압력 탓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일본총리는 재임중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신의 나라”(2000년 5월 15일)라고
주장했다. 당시 엄청난 비판과 파문을 초래했지만, 천황에 대한 일본인의 실제적 정서를 함축한 표현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정신적 지주 이상의 존재인 천황에 대해 일본에서는 고금을 막론하고 금기가 많았다. 천황과 황실의 문장(紋章)
인 국화의 이름을 따 ‘기쿠(菊) 터부(Taboo)’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천황에 대한 부정론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
하려는 일종의 사회적 압력이다.
기쿠터부 중에는 특히 언론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금기가 많은데, 폭력과 테러를 앞세운 우익에 의해
주도돼 왔다. 또 일본 사회가 보수ㆍ우경화하면 할수록 기쿠터부와 관련된 사건이 빈발하는 등 일본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척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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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백재 향가 - 대진황자가 석천랑녀에게 바친노래
(원문) 만엽집권2의 107
足日木乃山之四付二妹待跡吾立所沾山之四附二(21자)
일본학자들이 해독한 것은 어차피 일본식으로 해독하여 엉터리이므로 이곳에서 다루지않겠다.
그런데 [아시히키노/足日木乃]라고 읽은 것은 일본말이 되지않기 때문에 뜻을 도저히 풀이하지 못한 일본학자
들은 이를 枕詞(*마쿠라고토마)라하여 바로 뒤에 나오는 [山]을 수식할뿐 별 다른 뜻이 없다고(즉 (의미 미상)
으로) 제쳐두었다.
한국인의 처지에서 보면 일본인이 도저히 해독하지 못하는 구절을 가리켜
[*마쿠라고토바]라고 일컫고 있다는 것쯤으로 이해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런 해독 불능의 마쿠라고토바가 <<만요오슈우(만엽집)>>속의 총 4천5백16수 중,무려 1278개소에 달한다.
어째서 이런 해독 불능의 현상이 생긴 것일까?
필자의 결론은 만요오슈가 고대 한국어의 소리값에 따른 이른바 향찰식 표기 방법으로 기록된 것임에도 불구
하고 이를 억지로 일본어로 읽으려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족일목내]가 일본어로는 아예 해독도 안 될 뿐아니라, 대충 해독해놓고 있는 나머지
구절도 틀렸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付]로, 또 하나는 [附]를 씀으로써 분명히 다른 글자로
구분했는가를 알지 못하고서는 결코 바른해독에 이르지 못한다.
모두 일본인은 같은 음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틀린것이다. 결국 한국어의 음.훈에 따라 읽으면 바로 그 글자
하나의 차이로 인해 이 두 구절이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을 일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신해독/필자의 해독>
足(묏기슭)日(해)木(남기)乃(내)
山(모)之(지)四(사)付(줄)二(이)
妹(아래누의)待(대)跡(자최)吾(오)立(곧)所(바)沾(저지)
山(모)之(지)四(사)附(갓가블)二(이)
직역
묏기슬게 남기네
모지(墓)사주리
아래누인대 자최
오고파져지
모지사 갓가오리
(현대어 통역)
묏기슭에 남기네 무덤 쌓아주리
(목숨)앗아 누인 곳 자취, 오고파지지
무덤 쌓아 가까우리
문자해독
足(뫼기슭(麓/(南史), 付(훈차 [줄:與]부]
附훈독 [갓가블/가까울/부]
立(훈차/[곧/卽]의 소리값)
沾(훈차[저지/적시다의 고어/첨]
所(의훈차 [바]의 소리값
妹(아래누의, 매)
이로서 大津황자가 石川郞女에게 지어준 이 노래는 한국어의 소리값에 의한 향찰식표기 방식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그 내용도 기존해석과는 달리 [죽어서도 서로 가까운 곳에 무덤 쌓아 상대방 곁으로 가고 싶다]는
뜻의 적절한 사랑을 호소한 것이다.
일본백제 향가 - 석천량녀가 대진황자에게 화답한 노래
만엽집 권2의 108에 있는 석천량녀가 대진황자에게 답으로 부른 노래이다.
<권 2의 107에 대한 >화답의 노래이다.
<기존 일본측 해석>
我레오待쯔도君가儒레케무 아시히키노 山노시쯔끄니 나라마시모노오
(나를 기다리는 님이 젖었겠지 足引의 山이슬에 成益物을)
아시히키노를 足引이라 해석하고 무슨 뜻인 줄 모르고 뒤에 나오는 山에 이어지는 수식어 정도로 보고 그 뜻은
애매모호해지고 끝 구절의 [나라마시....]는 일본어엔 사실상 없는 말이므로 해석이 매우 곤란하다.
그냥 成益物로 원문 그대로 해석해놓았다.
요컨데 일본의 전문 학자들에 의한 만엽가의 해독 수준이 겨우 이 정도의 차원에서 답답하게 맴돌며 속 시원한
풀이를 못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필자의 결론은 <만엽집/만요오슈우>가 순수 한국어로써만 바른 해독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한 채
그 동안 일본식 음.훈에 따라 억지 해독을 일삼아온 방법론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의 신해독
吾(나)乎(오흡다)待(기드릴)跡(적)君(그대)之(지)沾(저치)
計(헤아리)武(날라)
足(묏기슭)日(해)木(남기)能(는)
山(모)之(지)四(사)附(갓가블)二(이)
成(일우)益(더을)物(몬)乎(오흡다)
직역
나 없다 기드릴 적 그대 지(저절로) 젖지,
헤아릿나라, 묏기슭에 남기는
묘지 쌓아 가까오리
이뤄 더할 일(몬:고어) 없다.
현대어 통역
나 없이(홀로)기다릴 적 그대 저절로 젖지,(그렇게) 헤아렸노라
묏기슭에 남기는 무덤 쌓아 가까우면, (그 밖에) 더 이룰 일은 없다.
해설:
애정으로 맺으진 인간 관계에서도 사별은 불가항력의 숙명이다. 그렇기에 [설령 먼저 이승을 하직한 님께서
흔적만으로 홀로 버려진 채 내가 오기를 기다릴 적에 쓸쓸히 비에 젖겠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산기슭에 남기는 무덤 쌓아 가까우면 언제라도 찾아가 뵐 수 있으니 그 밖에 더 이룰 일은 없겠지요]
라는 뜻으로 풀이 된다.
대진왕자의 어가에 대해 화답하는 형식으로 불려진 석천량녀의 노래로서 漢詩(한시)의 對句(대구) 처럼 적절히
대응하는 내용이다.
참고자료:[전혀다른 향가 및 만엽가](우리문학사1993년발행 김문배외1]
(庭光散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