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여자 친구, 내 여자의 옛날 남자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어제 밤늦게까지 다른 여자와 있었다는 것을 알고도 속이 상하지 않는 여자는 아마 드물 것이며, 또한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로부터 과거에 사랑한 남자가 있었다는 고백을 듣고도 기분이 상하지 않는 남자 역시 많지 않을 것이다. 이때 그들의 마음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바로 질투심인데, 사랑하는 남녀에게 있어서 그것처럼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연애 중인 총각 처녀들은 자신이 질투심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결혼을 하고 나면 명실공히 내 남자, 내 여자인데 무슨 불안이 있겠느냐고 추측하면서.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 특히 신혼 시절에는 연애 때보다도 질투심으로 인한 문제가 더 자주 생긴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으로, 지나간 일인데 어떠냐고 상대방을 부추겨서 서로 묻고 털어놓기 시작한 각자의 과거 연애담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차츰 차츰 듣는 사람의 혈압을 상승시켜 급기야는 맹렬한 부부싸움이나 침묵을 지속하는 냉전을 초래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순진하게도 상대방의 꼬드김을 그대로 믿고, 있었던 일 없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던 사람은 어느 순간 상대방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보고서야 자신이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됐음을 깨닫게 되는데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이다. 이제 결혼도 했겠다, 화를 내지 않겠다는 상대방의 약속까지 있었으니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하는 생각에서 마치 애를 둘 낳은 선녀에게 그 동안 숨겨 두었던 날개옷을 꺼내 보이는 나뭇꾼의 심정으로 슬슬 털어놓았던 것이 의외로 크나큰 낭패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그 다음에는 믿을 사람 없다고 한탄해 보아야 소용없다. 사실 상대방의 고백을 듣고 화를 낸 사람도 처음부터 그럴 의도가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다 지나간 일이니만치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의연해야지 했던 것인데 듣다보니 기분이 그렇지 않은 걸 어쩌랴.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런 경우에 실제로 더 괴로운 사람은 고백을 했다가 닦달을 받게 된 쪽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게 된 쪽이다. 사실 정도만 심하지 않다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질투를 받는 것은 은근히 재미도 있고 왠지 가슴 뿌듯함까지 느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질투의 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하는 쪽이 받는 쪽보다 더 힘들기 마련이다. 분하고, 억울하고, 약 오르고, 불안하고, 비참하고, 자존심 상하고.....
질투심!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힘들게 하는가? 질투심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람 중에는 그것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것인지 정말 몰랐고, 더구나 자기가 그런 감정을 갖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대부분의 쌍들이 현재 질투로 인한 문제를 겪고 있거나 혹은 그런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남녀 관계에서는, 그것이 총각 처녀의 관계이든 부부의 관계이든 간에, 질투심이라는 불청객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요즘 사람들의 이성관계가 유난히 난잡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있다 해도 그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의 속성 때문이다. 사랑이란 것이 본래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오해를 낳기가 쉽고, 그 오해는 또 너무도 쉽게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실제 마음이나 행동과는 상관없이, 가끔씩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하는 일이 잘 안될 때나, 혹은 자기가 보더라도 자신이 매력이 없어 보이는 날 같이 왠지 자신감이 없을 때는 더욱 그렇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상대방의 질투심을 통해서 그 사람의 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자주 생기는 질투의 문제가 서로의 의도적인 조장에 의하여 더욱 빈번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상대방의 질투심을 유발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누군가가 또 나를 좋아해서 골치 아파 죽겠다’ 식의 허풍을 치기가 쉬운데, 사랑에 눈이 먼 상대방은 또 그 작전에 말려 들어가 혼자 질투심에 속을 끓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 하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것이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건, 상대방의 작전에 의한 것이건, 아니면 혼자만의 착각에 의한 것이건 간에, 질투심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의심과 자신에 대한 열패감으로 불안하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질투심이 특히 고약한 것은 그것을 느끼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모르게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따지고 해명을 요구하자니 상대방이 나를 속 좁고 유치한 사람으로 볼까봐 걱정이 되고, 또 그러는 자신이 왠지 초라한 것 같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혼자 삭히자니 잘 되지도 않고 불안은 계속되기만 한다.
이럴 때는 도대체 어쩌면 좋은가? 속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자존심도 있고, 또 이번 기회에 내가 얼마나 이해심이 많은지 보여주기도 할 겸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하건 그저 재미있다는 듯이 계속 미소를 보내 줘? 정말 그렇게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현명한 대처방식은 아니다. 내 마음이 그렇지 않은데 어찌 미소인들 자연스러울 수 있으랴? 자기는 여유 있게 웃는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이 볼 때는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이상한 표정일 뿐이다. 그러다가는 이해심이 많은 사람으로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정직하지 않은 사람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더 많은 것이다. 게다가 만약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나의 질투심을 유발시키려고 했던 경우라면, 내가 그의 뜻대로 질투를 해주지 않을 경우 괜히 심술이 나서 갈수록 나를 더 속상하게 하는 짓만 골라서 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니 어찌 그것이 현명한 대책일 수 있으랴?
그렇다면 나도 기분 내키는 대로 나의 화려했던 과거를 발설함으로써 맞불을 놔버려? 아서라, 홧김에 화냥질해서 잘되는 꼴 본 적 없다. 순간의 감정 때문에 아예 관계를 깨버리거나, 혹은 평생 약점 잡힐 짓을 저지르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신이 아닐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질투심이 생길 때는 질투를 하라. 속상한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함부로 해대거나 엉뚱한 일을 꼬투리 잡아 화풀이할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솔직하게 질투를 하라.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꾸 자기의 화려했던 과거를 들먹이거나, 혹은 다른 여자(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하면 이렇게 말하라.
“OO씨가 다른 여자(남자) 이야기를 할 때마다 속이 상해. OO씨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꾸 불안해지고. 내가 너무 바보 같지?”
어떤가? 낯이 간지럽고 자존심도 상한다고? 또 그러다가 괜히 속 좁은 사람으로 보이면 어쩌냐고?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다. 그렇다고 당신이 깔보이는 것은 절대로 아니니까. 한번 입장을 바꾸어서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다고 생각해 보라. 당신은 과연 상대방이 그런 말을 한다고 그를 깔볼 것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사람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질 것이고, 이렇게 좋은 사람을 공연히 괴롭힌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될 것이다.
사랑의 불청객, 질투심! 그러나, 그것을 제거하려 하거나, 마치 없는 것처럼 숨기려 하지 말자. 뜻대로 되지도 않을 테니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현명히 대처하여 우리의 사랑을 성숙시키는 기회로 삼자. 잘 조리하여 사랑의 맛을 더하게 하는 조미료로 삼자.
(경남대 김원중)
첫댓글 맞습니다....솔직한 자기 감정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