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캡틴 마블>(Captain Marvel)의 음악은 피나 토프락(Pinar Toprak)이 작곡했으며, 영화가 전 세계 흥행수익 10억 달러 이상을 올리면서 여성 작곡가의 위상은 최고조에 달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작곡가 로라 카프만(Laura Karpman)은 TV 시리즈로 사랑받은 <미즈 마블>(Ms. Marvel)의 음악을 맡았고, 동시에 <더 마블스>(The Marvels)의 작곡까지 병행했다. 그녀는 이전 2002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공상과학 시리즈 <테이큰>(Taken)을 작곡했고, 2019년 다큐멘터리 시리즈 <디스커버리 스페셜:우리는 왜 증오하는가>(Why We Hate)로 에미상을 수상했으며, 2021년에는 HBO 판타지 시리즈 <러브크래프트 컨트리>(Lovecraft Country)”의 스코어로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프랑스 작곡가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 미국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윌리엄 볼컴(William Elden Bolcom), 미국 작곡가 겸 음악이론가 밀턴 배빗(Milton Byron Babbitt)과 같이 시대를 풍미한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들과 함께 수학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훌륭한 경험치를 쌓은 그녀가 그 잠재력과 재능을 영화와 TV 프로그램에서 펼쳐냈다는 것 자체로 기대 충만. 일례로 그녀는 <러브크래프트 컨트리>에서 대규모 판타지 오케스트라와 재즈, 블루스, 심지어 현대 R&B와 힙합에서 가져온 요소를 결합했고, <미즈 마블>에서는 여주인공 소녀 카말라의 문화유산을 표현하기 위해 발리우드와 남아시아 전통 클래식 음악의 요소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민족 음악과 월드뮤직 스타일을 스코어에 통합하는 방법을 매우 흥미롭게 투영해냈다. <더 마블스>에서는 전통적인 심포닉 슈퍼히어 사운드를 기반으로 음악을 썼지만, 예의 실험적인 면모 또한 유지했다.
카프만은 <더 마블스>를 세 여주인공을 위한 새로운 테마를 중심으로 펼쳐내는 악보 음악으로 완성했다. 영화의 막을 여는 ‘Higher, Further, Faster, Together’가 바로 그 핵심. 이 테마는 처음에 비올라 독주로 친근하게 시작해 활기찬 춤곡 같은 현악 리듬을 포함해 거대한 오케스트라와 합창으로 전개하고, 영웅적인 브라스를 편성해 강력한 인상을 주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이 지시 곡에서 흥미로운 점은 합창을 사용했다는 점. 합창을 강조한 것은 다 코스타 감독의 의중에 따른 것이지만, 카프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깊이를 더하기 위해 실험정신을 발휘했다. 베이스 남성 합창단과 인도 카르나틱 가수, 아프리카 가수 등 그 규모와 구성을 달리한 것. 이는 영화의 다양한 출연진의 음악적 전통을 인정하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었다고 카프만은 언급했다. 곡의 끝 무렵 합창단은 라틴어로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함께'를 부르기 시작하지만, 악보의 다른 부분에서 시인인 카프만의 조카 카이 릴리 카프만(Kai-Lilly Karpman)이 테마를 위해 쓴 언어를 가사로 노래한다.
반면 마블스의 숙적 '다르-벤(Dar-Benn)'의 테마는 다른 음악적 양식을 취했다. 카프만의 특징적 이력이라 할 수 있는 재즈에 중력을 실었다. 카프먼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술회했다. "다르-벤의 테마를 작곡할 때 등장 인물에게서 재즈적인 면모가 엿보였고, 그것에 몰두하고 싶었어요." 스튜디오에서 카프만은 플루트 독주가 나오는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노래를 듣다가 영감을 받았고, 다르-벤의 주제곡 악기로 플루트를 사용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결국 콘트라베이스 플루트부터 피콜로까지 목관악기 섹션에 7개의 플루트를 사용했고, 이를 합창단이 만들어내는 호흡 소리와 결합했다. 고향 행성에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부족하다는 점이 다르-벤의 행동 원동력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극적으로 적절한 선택이 된 셈. 삐걱거리는 타악의 질감과 다소 불협화음을 내는 현악과 하모니를 이룬 플루트 연주는 다르-벤의 테마에 독특하고 이질적이며 공격적인 느낌을 준다.
연계하는 지시 곡들도 주목할 만하다. ‘Arrival on Tarnax’는 타악 리듬과 현악으로 시작해 호른 팡파르와 합창과 함께 융기하며 마블스가 스크럴의 성역 행성 타르낙스에 당도했음을 고한다. 임박한 다르-벤의 공격으로부터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세 명의 여전사가 왔음을 나타낸다. ‘Entangled’는 금속성 타악기 악상이 다양한 불규칙 리듬으로 연주되어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Reunion’은 돈 데이비스(Don Davis)의 <매트릭스>(The Matrix) 테마를 떠올리게 하는 지시 곡. 음량의 증감, 상반된 음의 파동을 통해 상징적 불협화음을 전하는 브라스 반주가 압도적이다. 언급한 ‘Free fall’은 당혹과 혼란을 불러내면서도 화려하게 폭발하는 오케스트라가 위력적이다. ‘Evacuation’은 비극적인 장면의 전개에 영적이면서 애절하게 애도를 표하는 합창의 하모니가 공감을 불러내고, ‘Hala’는 재즈와 이질적인 타악의 반복 재연이 위기에 처한 외계인들의 문명을 대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캐럴, 모니카, 카말라가 알라드나 행성을 방문하는 장면, 과거 어느 시점에 캐롤이 외교적 합의의 일환으로 왕자 얀(박서준 분)과 결혼하기로 동의했던 곳에서 음악은 의사소통의 전적인 수단으로 작동한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지시 곡 'Voices of Aladna'는 알라드나 마을 사람들이 유사 브로드웨이와 부족의 월드뮤직을 혼합한 스타일로 부른 노래로 영웅들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것을 예고하는 신호탄. 다소 의외지만, 독특하다.
후반부 액션 활극이 절정에 달할수록 음악 또한 더욱 강렬하게 장면을 보강한다. 전반적으로 액션 장면을 지원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이 환상적이라는 점. 카프만과 수석 오케스트레이터 제프 크리카(Jeff Kryka)는 연주자들의 기량에 더해 편성한 악기들의 조합, 그리고 악기군 간의 기발한 상호작용을 변화무쌍하게 만들어냈다. 전체적으로 풍부하고 깊이 있는 대규모 교향악을 들려주며, 여러 악기가 제각기 두드러지면서 조화롭다. 카프만이 때론 부조화, 거친 불협화음, 실험적인 오케스트라 질료를 사용해 과시한 열정도 뛰어난 대목. 동일 성부를 반복해 연주하는 현악 오스티나토의 진부함을 초월한다.
액션 음악에 덧붙여 타악기 연주를 위해 카프만은 저명한 스코틀랜드 청각 장애인 타악기 연주자 에블린 글레니(Evelyn Glennie)의 손을 빌렸다. 에블린을 통해 귀가 감지할 수 있는 소리 이외의 방식으로 '공간의 소리'를 전달하려고 한 것. 청각 장애인 글레니가 몸을 통해 소리를 '느끼는' 방식 덕분에 전혀 다른 차원의 음악이 만들어졌다고 카프만은 설명했다. 둘은 또한 소리의 진가를 더 높이기 위해 위성에서 떨어져 나온 잔해를 수거해 만든 티타늄 디스크를 두드려 악보에 나오는 금속성 소리의 대부분을 성취해냈다.
‘Evacuation’을 포함해 역동적 액션을 보강하는 강렬한 지시 곡, ‘Forces arrive’, ‘War preparations’, ‘Power’, ‘O Captain! My Captain’과 연주곡들이 격렬한 알라드나 전투 장면을 강조하고 관객들에게 승리의 기운에 공감하도록 이끈다. ‘다르-벤’의 테마는 오케스트라와 보컬/호흡 부문 모두 여러 지시 곡들에 얽혀 잔인한 연주를 들려주며 ‘마블스 테마’가 반격에 나서며 웅장하고 영웅적인 후렴구로 상응하기도 한다. 각 지시 곡에서 대규모의 응집력 있는 오케스트라와 합창으로 구성된 명연주가 위력적이며, 일례로 'Forces arrive'에서는 라틴어 가창이 탁월하다.
‘On fire’에는 제임스 호너(James Horner)의 위험을 암시하는 4음계 모티프가 금관악으로 나타나고, ‘Final fight’와 ‘Dar-Benn’s destiny’는 어두운 음조의 합창과 타악기 리듬, 거칠고 도전적인 관현악 협주가 ‘마블스의 테마’와 ‘다르-벤의 테마’의 상반된 연주를 들려주며 둘 사이에 오가는 대결의 힘을 전해준다. ‘Greater purpose’는 어두운 조의 관악 삼중주로 끝나는 ‘다르-벤의 테마’와 결합해 ‘카말라의 테마’에서 ‘마블스의 테마’로 전환되는 악상의 전개가 압권이다.
'Restoration'과 'Captain Rambeau'에는 관현악 협주에 따른 따뜻한 음감과 합창의 하모니가 ‘마블스 테마’를 보강하고, 비올라 독주로 더 웅장한 곡조를 들려주기도 한다. ‘Home’은 ‘마블스 테마’를 화려한 피아노 독주와 함께 포근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종영인물자막과 함께 대미를 장식하는 ‘The Marvels’는 메인 테마를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심포닉 사운드로 반주해 수미상관을 이룬다.
‘더 마블스’의 음악은 영화에 쏟아지는 비난과 흥행 참패의 현실과 모순되게 흥미진진하다. 작곡가의 음악적 깊이와 소리의 질감, 음역의 정교한 조율, 특히 관현악편곡의 다양성, 단호한 불협화음, 복잡한 주제적 변주, 모든 것이 충분히 실험적이면서 교향악 중심의 할리우드 영화음악 전통을 따랐다. 좌와 우,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을 확고히 잡고 정체성을 표현해낸 여류 작곡가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이유, <더 마블스>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