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최원현
nulsaem@hanmail.net
난 나의 길을 가고 싶었어 / 이젠 모두 보여줄게 내가 가진 것을 /이젠 모두/나는 어렸을 적에 굶주림 속에 살았네 /세상은 등을 돌리고 나는 스스로 날 지켜냈어/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위해 나는 달렸지 /손을 뻗친 한 사람, 그것이 내 시작/하고싶은 노래, 그 노래, 할 수 있어서/나의 꿈을 향해서 이젠 my way / 아무도 가지 않는 그 길을/
가수 비(본명 정지훈)의 5집 앨범 ‘레이니즘’ 수록곡인 ‘마이웨이(My Way)’의 가사다. ‘마이웨이’는 5집에 수록된 13곡 중 가장 애착을 갖고 공을 많이 들인 노래로 비가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자신의 27년 삶을 회고하는 성격의 노래라고 한다. 그래선지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가수의 꿈을 키우며 성공을 향해 달려온 그의 모습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비는 녹음 직전까지 이 ‘마이웨이’ 가사를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공을 들였다고 한다.
비는 이 노래의 배경을 설명하는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때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해드렸던 음식이 편의점에서 사온 인스턴트 미역국이었다”며 “그게 너무 후회되고 죄책감이 든다” 고 말하면서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서 어머니의 병을 못 고쳐드릴 때의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었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나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2006년에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어갔다는 보도를 보며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그런 어린 나이에 세계적 인물이 되었을까가 몹시 궁금했었다. 그런데 어떤 지면에서 그가 참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고 말할 수도 없는 고생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 큰 충격을 받았다. 고생이라곤 모르고 살았을 것 같은 20대의 젊은 청년이 그런 고생을 했으리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 관해 여러 자료들을 동원하여 알아보았다.
가수요 영화배우인 그의 이름은 정지훈, 1982년생이고 185cm의 키에 74kg의 체중을 가진 잘 생긴 청년이다. 그가 스무 살이던 2002년 1집 앨범 ‘n001’을 낸 후 2008년엔 제23회 골든 디스크 상 디스크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오디션에서도 무려 열여덟 번이나 떨어지고 열아홉 번째에야 합격했었단다. 그는 굶기를 밥 먹듯 한 아이였고,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와 병석에 누운 어머니와 함께 소년 지훈의 꿈은 ‘배고프지 않은 나날’일 만큼 비참한 삶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온몸이 붓고 곪아 썩어가는 데도 돌아가시기 보름 전까지 노점에서 장사를 해야만 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세상의 끝이 온 것 같았고 세상이 온통 그에게서 등을 돌려버린 것 같아 ‘나도 이런 세상엔 등을 돌리고 내 마음대로 살겠다’고 자포자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장례식을 마친 후 어머니 살림살이들을 부수고 태우며 집안을 정리하는데 낡은 침대 밑에서 어머니의 은행 통장과 편지를 발견하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단다.
그는 열여덟 번의 실패 후 열아홉 번째의 오디션을 박진영에게 보게 되었는데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나는 평생 후회 할 것 같다’는 직감과 절박감으로 오디션에 임했다고 한다. 그런데 박진영도 이런 비를 보았을 때 굶어죽기 직전의 호랑이 같았다고 했다. 만일 오디션에서 뽑아주지 않는다면 죽을 것 같았고 그의 눈빛은 열정을 넘어선 절박감이었다고 했다.
박진영은 그런 그에게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다섯 시간 틀어놓았고, 비는 그 다섯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춤을 추었는데 박진영은 그런 그를 보며 합격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오디션 합격 후로도 3년간을 연습만 하는 신세였고 데뷔도 못한 채 많은 가수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그때마다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고 오히려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선배들의 모진 비난을 견디면서도 오로지 그의 길만을 달려오면서 오늘에 이르도록 그토록 열심히 한 이유는 딱 두 가지란다. 하나는 다시는 배고프지 않기 위해서고, 또 하나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켜서 어떤 시련도 이겨내며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는 것이었단다.
그는 지금 월드 스타다. 영화 매트릭스의 감독 워쇼 스키 형제와 할리우드 ‘미다스의 손’ 조엘 실버가 공동 제작한 ‘닌자 어쌔신’에 캐스팅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시 한국인 최초로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힙 코리아 다큐멘터리에도 출연을 했다.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하나가 된 그의 저력은 무얼까. 그의 노래가 말하는 것처럼 세상이 그에게 등을 돌려도 스스로를 지켜내고 희망을 잃지 않고 오직 꿈을 위해 달렸던 그였기 때문일까. 이젠 하고 싶은 노래를 할 수 있고 꿈을 향한 자신의 길을 갈 수도 있고, 아무도 갈 수 없는 그만의 길을 가는 그의 아름다운 힘이 보여 질 차례다.
누구에게나 가야 할 길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숙명적이건 선택적이건 간에 사람들은 자신의 갈 길이라고 생각하는 길이라는 것을 택하게 되고 그 길을 싫던 좋던 가야만 한다. 때로는 너무 힘들고 어려워 그만 두거나 돌아가고 싶을 수도 있고, 더러는 평탄하고 넓은 길을 쉽게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그 길을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오늘의 비의 모습만 동경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런 오늘의 모습이 있기까지의 그의 아픔 슬픔 고통을 볼 수 없다면 비의 오늘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리라. 어둔 밤이 있기에 아침도 오는 법 저마다 주어진 자기의 길을 감사함으로 개척해 가고 극복해 가는 지혜로움만이 보다 아름다운 세계를 열 수 있음이리라.
지금 나는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 제대로 내 길을 가고 있기나 한 것인가. 설혹 잘 못 든 길이라도 능력껏 성실하게 그게 내 길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나아가다 보면 조금 늦거나 힘들기는 할지라도 제대로 가야 할 길로 들어설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이제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큰 부담이긴 하다. 그래서 내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가 필요 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가야 할 길에 나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개척자가 아닌가. 얼마 남지 않은 내 시간일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길을 가는 자의 자세요 사명이 아닐까.
나는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내 삶의 길이만큼 ‘시간의 청지기’직을 부여받고 있는 것, 사람에게서 그 시간의 청지기직으로부터 해임되는 순간이 죽음이 아니겠는가. 누구에게나 주어진 길 같지만 사실은 내게만 주어진 나의 길만 가는 것이 인생이다. 나의 길, 나는 지금 나의 길을 얼마나 성실하게 가고 있는 것일까.
건강과생명/2010. 4월호. 살며생각하며
최원현 http://essaykorea,net
수필가. 문학평론가. 사)한국학술문화정보협회 부이사장, 사0한국수필가협회 연수원장·공영이사, 한국수필작가회 회장(역임). 강남문인협회 부회장.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 수필분과회장. 수필세계․좋은문학․건강과생명 편집위원. 한국수필문학상. 동포문학상대상.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날마다 좋은 날> <살아있음은 눈부신 아름다움입니다> <오렌지색 모자를 쓴 도시> <숨어있는 향기> <서서 흐르는 강> <행복이 사는 곳> 등 1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