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가지 매력, 코코넛_아락
어젯밤, 외출나온 아이와 남편과 코코넛으로 만든 스리랑카 술 아락을 마시며 한달만에 온 가족이 모인 기쁨을 나누었다. 꼴랑 셋뿐인 식구들 중 아이는 군대에, 마누라는 남쪽 섬나라에 가서 한달을 탱자탱자 노는 동안, 노모와 함께 북풍한설 몰아치는 집을 지키며 따스하게 맞아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였다.
네팔 사람처럼 시커멓게 그을린 마누라를 보고 남편은 '완전 촌년이 다 됐다'고 평했고, 아이는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지 오년은 늙어보인다'는 말로 환영의 말을 대신했다.(비행기 옆좌석 아줌마가 우리들이 네팔 사람인줄 알았다고 했다.)
도대체 그 코딱지만한 섬에 뭐 볼 것이 있다고 한달을 떠돌았는지 남편도 아이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다. 두 발을 통해 가슴으로 느낀 스리랑카 이야기를 백날 떠들어봐야 소용없는 일. <백문이 불여일견> 가서 직접 보고 온 몸으로 느끼시라,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부처님이 설법했던 사원돌과 치아사리를 모신 불치사, 흰옷을 입은 사람들의 신실함, 드넓은 고원에 펼쳐진 차밭, 아라비아해의 에머랄드빛 바다, 황홀한 일몰...
많고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코코넛꽃 수술을 발효시켜 만든 술 아락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스리랑카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코코넛으로 만든 술 아락을 마셔봤나, 혹은 말만하면 나무에 올라가 따주는 오렌지색 코코넛 먹어봤어>하는 자랑질과 염장이다.
파란 하늘까지 쭉쭉 뻗은 코코넛 줄기에 오렌지색 코코넛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풍경 사이로 다고바(탑)가 흰빛을 발하고, 백로가 나는 푸른 들판이 펼쳐지며, 에머랄드빛 바다가 펼쳐지는 풍경은 아라비안 나이트를 보며 상상했던 바로 그 남국의 풍경. 눈만 뜨면 바다와 차밭과 파란 하늘 사이의 코코넛 열매를 입에 물고 다녔으니 코코넛과 함께 한 스리랑카라 표현해도 과한 말은 아닐듯싶다.
음식 재료로는 물론 공예품(국자,수저와 포크)과 생필품(비누, 샴푸, 헤어오일), 지붕과 벽의 재료, 땔감으로 쓰이는 코코넛은 어디 하나 버릴것 없는 알토란같은 스리랑카의 보물이다.
심지어는 코끼리의 성찬으로도 코코넛 줄기가 쓰인다. 몇 번의 동남아 여행에서 목이 마를때마다 코코넛에 빨대를 꽂고 마시며 갈증을 달랬지만 잎부터 줄기, 열매, 어느 하나 버릴것 없이 이용되는 코코넛의 지혜는 스리랑카에서 확인한 셈이다.
이슬람처럼 강한 금기의 술에 대한 규정은 없었지만 종교적 분위기 탓에 술을 사거나 음주를 즐기기에는 그리 녹록치 않은 분위기였다. 허가받은 와인하우스 말고는 술을 살 수가 없었지만, 우리들이 누구냐. 자갈밭에서도 사금을 줍는 적응의 여왕들. 다 해결해 마시고 사는 수가 있다.
처음 아락을 마셨을 때는 페루의 슈가케인(사탕수수로 만든술)처럼 강한 향 때문에 반도 못 마시고 버렸는데, 콜라에 칵테일해서 마시는 비법을 전수받은 밤 이후로 완전 아락 예찬론자로 바뀌었다.
생전 안하는 마스크팩도 하고, 여행의 묘미
날 위해 따로 수영복을 챙겨온 막내가 부른다. 언니~~~ 바다에 들어와봐, 별거 아냐. 아직도 난 바다는 몸으로 경험하는 곳이 아닌 그냥 보는 곳
옷가지로 돌돌 말아 배낭 속에 넣어 가족의 성찬에 동참하게 된 아락. 야자수꽃의 수술에서 나오는 수액을 항아리에 자연 발효시키면 막걸리같은 달큼시큼 털털한 맛의 술이 나오고, 그것을 증류하여 만든 술이 바로 아락이다.
스트레이트로 마시거나 얼음, 콜라와 칵테일해서 마시면 죽음이다. 아락 마시느라 정신이 팔려 술병 사진 찍어 놓는걸 잊었다.
하루종일 아라비아해를 바라보며 찰랑 찰랑 컵 가득 담긴 아락에 취하고, 바람에 취하고, 바다에 취하고, 스리랑카에 취해 넋을 잃고 우나와투나에서 닷새를 보냈다. 테이블 위에는 구겨진 라이온 맥주 캔이 뒹굴고 있다. 막내는 바다에서 놀고 나는 저 자세로 아락을 마시며 더불어숲 두권과 숫타니파타를 다 읽었다.
첫댓글 스리랑카 서쪽 해안 인가봐요?
해변도 넓고 특히 인도와 다른 점은
바닷가에 코코넛 나무들이 많이 있어서 울창한 숲과
시원한 바다가 조화롭게 보이네요
저 해변 위에 자리잡은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mindfulness 하는 호사를
저도 한번 경험해 보고 싶네요 ^^
남촉 갈레 근처 우나와투나예요. 몰디브에 잠깐 다녀올 예정이었는데 스리랑카만으로 차고 넘쳐 포기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