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집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김경애
제법 잘생긴 코발료프 소령은 자다가 일어나 갑자기 자기의 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그는 어떤 집 대문 앞에서 자신의 코가 커다란 깃을 세우고 금실로 수놓은 정복에 양가죽 바지를 입고, 허리에 대검을 찬 채 마부를 호령하며 떠나는 장면을 보고 더욱 놀랐다. ‘코 신사’(자기보다 높은 계급으로 보이는)를 따라가 당신이 바로 내 코라고 말해 보지만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코’는 그 자리를 떠나 절망에 빠지고 만다. 북쩍이는 넵스키 거리에서 코를 찾지도 못하고 지인들이 손을 흔들어 부르는 것도 외면한 채 경찰서장을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한다.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코발료프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는데 신문에 광고를 내어 한시바삐 코를 붙잡아 연행해 와야 한다는 것이다.
신문사에는 애완견을 찾거나, 중고 마차를 팔겠다거나 파출부 자리를 구한다거나 각양각색의 물건, 집 따위를 구하는 광고 등이 있었다. 그는 광고 글자 수에 맞게 차례차례 돈을 받으며 접수하던 관리에게 긴급을 요하는 광고라고 말을 하고 입을 연다. 자기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사기꾼을 잡아오는 사람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겠다고.
“그럼 달아난 놈은 댁의 하인입니까?”
“도망친 건 바로 내 코란 말입니다.”
얼굴에서 가장 중요한 코가 없어지는 바람에 예쁘게 생긴 부인들도 만날 수가 없으니 자기의 심정이 어떻겠냐며 찾아달라고 하자 관리는 신문의 평판이 나빠진다며 거부한다. 차라리 예술적 필력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 이 희한한 사건을 주제로 작품을 써 달라고 해보라 권하기도 하고 우울할 땐 코담배라도 피워보라고 권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신문사를 뛰쳐 나왔다. 이후 코발료프는 경찰서장을 찾아갔는데 그는 요즘 세상에는 제대로 자기 자리도 지킬 줄 모르면서 여기저기 무례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소령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불같은 성격의 코발료프는 모욕감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인이 자신의 집 소파에서 팔자 좋게 드러누워 천장에다 침을 뱉는 장면을 보고 더 화가 났다. 그는 팔도 아니고 다리도 아닌 코가, 돈 한 푼 못 받고 공짜로 코를 잃어버린 신세가 어처구니 없어 한탄을 했다. 결국 이 사건의 원인은 대령 부인 포드토치나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대령 부인이 자기 딸과 결혼해 달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자 그는 자신이 아직 젊으니까 5년 뒤 마흔두 살에 하고 싶다고 한 것에 대한 복수로 자기 코를 가져갔다고 의심을 한 것이다.
하지만 소설 첫 부분에 등장했던 경찰관이 여행을 막 떠나려는 놈을 체포했다면서 코발료프의 코를 가지고 나타나 그 앞에 대령했다. 이 사건의 공범은 술수정뱅이 이발사인데 유치장에 들어가 있다는 말과 함께. 그 댓가로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늘어놓는 경찰관에게 10루블을 쥐어 줘서 보낸다. 코를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이 코를 어떻게 완벽하게 붙일 수 있을지 고심하며 애를 써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궁리 끝에 같은 건물 2층의 의사에게 코를 붙여달라고 의뢰를 했는데 코가 있던 장소를 손가락으로 튕겨보고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았지만 안 되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은 훌륭한 사람들과 교제를 해야 하니 코를 붙여달라고 애원하지만 의사는 돈 때문에 의사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붙여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코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건강에는 지장이 없다, 코를 잘 보관하던지 아니면 자신이 괜찮은 값에 팔아주겠다는 등 어이없는 말을 남긴 채 나가 버렸다.
할 수 없이 그는 원래 의심을 하고 있었던 부인 포드토치나에게 만약에 코가 오늘 중으로 본래의 위치로 돌아오지 않을 경우 부득이 법에 호소하는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으나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오히려 그가 청혼을 한다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았다고 답장을 써서 보내 왔다.
어느새 이 기괴한 사건에 대한 소문이 부풀려져 장안의 화제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는데 특히 신난 사람들은 파티라면 빼놓지 않고 찾아다니는 사교계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코발료프는 어느 날 느닷없이 코를 원래대로 얻게 된다. 이발사에게 조심스럽게 면도를 하도록 지시하고 친구나 사교계의 부인들을 만나며 여전히 코가 건재함을 만끽한다. 그 후부터 코발료프 소령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떠한 장소에도 거리낌없이 나타났다. 언제나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하며 예쁜 여자에게 추파를 던졌으며 훈장을 받아본 적도 없으면서 훈장에 다는 리본을 샀다.
‘광대한 우리나라 북쪽 수도에서 일어난 이 사건의 전모는 대략 이상과 같다.’
소설에서 갓 튀어나온 것 같은 작가가 자신이 쓴 글의 내용을 변사처럼 구술하고 평가를 하고 있다. 왜 코발료프는 신문사에서 코에 대한 광고를 내지 못했는지, 구워낸 빵 속에 어떻게 코가 들어 있을 수 있는지 자문하고 있다. 또 이런 사건을 주제로 써 봐야 국가에 이로울 건 조금도 없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써 놓았다. 그러면서도 하나하나 따져보면 전체적으로 이 사건을 수긍할 수도 있다며 이 이야기 속에 분명히 무엇인가 내포되어 있다고 말하며 돌아서려는 독자를 다시 붙잡는다.
한 편의 우화 같은 글. 귀도 아니고 팔도 아니고 다리도 아닌, 하필 코발료프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코가 사라졌다 다시 돌아왔음에도 허황된 그의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고 더 강화되었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거리를 누비는 그가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