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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제 유럽 모임 순례기 1. 라트비아 리가에서.
박영훈 목사(오산 예수향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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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8일부터 2017년 1월 1일까지 라트비아 리가에서 열린 제39차 떼제 유럽 젊은이 모임에 참여 하고, 이후 리투아니아(빌뉴스, 카우나스)와 러시아(모스크바)를 기독교 신앙을 가진 청년들과 순례로 다녀왔습니다.
지면상 라트비아 유럽모임과 리투아니아 가톨릭교회, 러시아 정교회 순례를 두 차례 나누어 소개하려 합니다.
떠나기 전 가족과 아침식사를 함께 한다. 2주간의 여정, 감기로 고생하는 딸이 걱정이다. 열 살 아들에겐 “아빠 없는 동안 가족을 잘 돌봐라!” 당부하고, 아내와 다소 비장한 몇 마디를 서로 건낸다. 유럽에서 들려오는 몇몇 험한 소식에 마음 깊은 곳에 낮선 곳을 향하는 두려움이 내면에 커져 있음을 느낀다. “생명이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있습니다.” 원초적인 믿음의 고백을 드리며 마음을 다진다. 단촐 하게 꾸린 짐을 점검해 본다. 35리터 미만 가방 배낭 하나에 짐을 꾸리려 노력했다. 순례의 마음가짐을 보다 직접적으로 갖고자 한 것이 이유이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러시아 3개의 나라는 겨울기온이 –20이상으로도 내려가는 곳이라, 옷 부피로 인해 짐을 줄이기가 만만치는 않았다. 하지만 “덜어낼 것을 덜어내지 않고 하는 순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에 비교적 작은 배낭 하나에 모든 것을 담고 출발한다. 순례는 비움에서 시작하는 것 아니겠는가?
공항에서 만난 12명의 동반들, 각자 다른 신앙배경과 여러 문화적인 차이를 가졌지만, 떼제 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몇몇은 현지에서 합류하기로 했고 총 20여명의 규모이다. 출발 전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후 기념촬영을 하고,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에서 출발하여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라트비아 리가로 간다. 비행기에는 다른 유럽 도시로 가는 한국 청년들로 가득하다. 긴 비행 시간동안 주변 자리에 앉은 청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본다. 기대는 다르지만, 젊음들의 무모함이 부럽고 맘에 든다. 11시간 가까운 비행을 하며 이번 순례가 어떻게 시작 되었는가 되짚어 본다. 2016년 여름에 떼제 동아시아 모임이 홍콩에서 있었다. 떼제 공동체에서 시작된 이 ‘신뢰의 순례’가 유럽뿐만 아니라 다른 대륙으로 평화와 화해의 모임이 확장되어 가고 있는데, 아시아에서도 같은 열망을 가진 청년들이 있고 한국과 홍콩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번 유럽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한국에서는 한국샬렘영성훈련원의 김오성 목사님과 더불어 기독교내 다양한 청년들이 함께 준비하기 시작했고, 떼제 공동체 신한열 수사님께서 올해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모이는 유럽모임과 이후 리투아니아 빌뉴스, 카우나스,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순례 계획을 제안해 주셨다. 여러 경로로 모이게 된 20여명의 청년들과 두 차례 예비 모임을 가지며 각자의 순례에 대한 기대를 나누고 모으며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스도 교회 안의 다양성 아래 모인 이들과 앞으로의 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경험하게 될 것인가? 길 위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며, 평안으로 예비된 길 만나길 기도하며, 긴긴 비행을 마무리 한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모스크바에서 리가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데, 폭설에 따른 지연으로 놓치게 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일정에 없던 모스크바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계획한 되로 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순례가 아닌가? 이상하게 마음의 평안이 있었다. 이전에 프랑스 떼제를 방문했을 때에도 그랬지만, 더 좋은 길을 예비하셨으리라... 역시나 항공사에서 배정 해준 숙소는 여행자에겐 과분한 수준급 호텔 이였다. 시차적응을 위한 주님의 배려로 감사로 받아들인다.
(체육관에서의 저녁기도 라트비아, 영어, 독일어등 다양한 언어로 떼제의 노래가 불려진다)
다음날 리가로 이동한다. 1시간의 비행은 마치 인천에서 제주도 가는듯한 인상이다. 잠시 지난 가을 제주에서의 은총과 평화의 순례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4:14) 그때 받은 말씀이 여전히 순례 속 지향과 관계를 명확하게 한다. 구름 위 세상은 평온하다. 리가행 비행기속 몇 명은 이전에 떼제에서 만난듯한 인상이다. 아마도 같은 목적지로 향하지 않을까?... 입국 수속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일행 중 한 청년이 여권을 잃어버린 것이다. 영사관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곳이라, 큰 난관 이였다. 하지만, 이 또한 인도하심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지면상 결과를 이야기 하면, 라트비아 대통령실의 도움으로 임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떼제에 참석하는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유럽에서 떼제가 가진 신뢰의 위상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웰컴포인트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다. 신한열 수사님을 통해 모국어로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를 크게 안도하게 했다. 유럽모임은 모임이 열리는 도시의 교회들의 초청을 받는 행사이다. 에큐메니컬한 연대를 통해 초청하는 도시 그리스도 교회가 서로 연합하고 도시 전체의 교회와 신자들, 그리고 관공서, 대중교통 등 도시 전체가 손님을 맞이하는 인상이다. 참가하는 청년들은 먼저 개인으로 혹은 그룹으로 수없이 많은 지역교회 중 하나로 안내 받는다. 그곳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교회와 교인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이 기간에 숙소와 아침 식사 등을 제공받는다. 모든 것이 자발적이고, 무보수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떼제의 수사들과 청년들이 이 일이 가능해지도록 수개월 간 준비하고 독려한다. 신한열 수사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교회들에게 이렇게 권면 하신다. “유럽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집안에 나그네를 맞이하는 것은, 그 집에 하나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수개월동안 그 도시의 교회들을 찾아다니고, 설득하고, 마침내 참여하는 모두가 환영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이번 모임에서도 만 오천명 이상의 청년들이 모두 그렇게 지역교회와 교인 가정에서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속한 그룹은 지역 복음주의 루터교회에 배정 받았다. 라트비아는 루터교가 국교인 나라이다. 가톨릭과 정교회, 감리교회등도 있지만, 루터교회가 다수인 나라이다. 우리 그룹은 개신교인들이 대부분 이였기에, 이 교회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되었다. 안내지에 나오는 지도와 구글을 이용하여 방향을 잡고 처음 타보는 트램을 타고 교회로 찾아 갔다. 멀리서도 우릴 알아보고 손 흔들어 환영하는 교인들, 작고 아담하지만 무척이나 예전적인 공간을 가진 루터교회가 우릴 맞이했다. 한명 혹은 두 명씩 교인들 가정과 연결 되었고 나와 아직 여권문제로 공항에 머물고 있는 목사님은 그 교회의 목사인 아그니스 목사의 가정에 초청을 받았다. 서로 부족한 언어로 이야기를 이어가며 우리는 서로에게 경계 없음을 풀어내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적극적인 환대가 천사를 맞이한 아브라함의 환대를 연상케 한다.
(초대받은 루터교회)
그날 이들의 배려로 리가 도심 이곳저곳을 소개받았고 일정에 따라 모임 기간 동안 저녁식사와 다음날 점심 도시락을 나눠주는 배급소에 갔다. 먼저 도착한 나는 일행을 기다리기보다 혼자서 적응해 보려 호기롭게 식사를 배급하는 실내체육관 안으로 향했다. 만 명이 넘는 인원이 한자리에서 식사가 가능한 규모, 그곳엔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두 가지 이유로 크게 놀랐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가”와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동양인이 나 밖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 때문 이였다. 유럽 모임에서 동양인을 바라보는 신기함에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다소 난감함이 있었으나, 용기를 내 그럭저럭 이 분위에서 섞여 있었다. 프랑스 청년 둘과 함께 식사했는데, 둘은 나에게 한국에서 여기까지 비행시간이 몇 시간 걸렸는지 물었다. 10+1시간을 타고 왔다고 하니 놀라면서도 자기들은 33시간을 버스 운전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대단하다 느꼈지만, 이후로 만난 청년들 다수가 이렇게 모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중 다수는 매년 이렇게 다시 모인다.
식사를 마치고 저녁기도 장소로 이동한다. 아침기도는 맞아준 지역교회에서, 점심기도는 도시의 9개의 큰 성당과 교회에서, 그리고 저녁기도는 이곳 리가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건물인 실내 체육관과 킵살라(Kipsala)라 부르는 거대한 돔 두 곳에서 진행된다. 우리 그룹은 먼저 큰 실내 체육관으로 안내되었는데, 그곳에서 알로이스 원장 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번에 홍콩과 한국에서 온 친구들에게 관심이 많다. 체육관은 이미 준비된 예배 장식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이전보다 더 다양한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떼제의 상징처럼 사용되던 오렌지색 천은 은은한 연두색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시작된 곳으로 알려진 이곳 라트비아답게 나무들이 연출하는 실루엣이 생명의 신비로움을 전하는 것 같은 분위기로 연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한 아이와 그의 부모와 예수가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고 있는 장면의 그림이 우리 모두를 환영하는 인상을 준다. 몇몇 이콘들과 더불어 떼제의 십자가가 놓여 있었고, 청년 봉사자들로 구성된 성가대와 연주자들이 기도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기도회는 종소리와 더불어 수사들의 입장으로 시작 되었고, 이곳 라트비아 말로 부르는 떼제의 기도 노래들이 이어졌다. 만 명 단위의 청년들이 모여 단순한 언어로 기도어린 노래를 함께 하는 광경은 글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지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런 단위의 기독교 청년 모임이 다양하게 있지만, 이곳의 노래는 특별하게 들리는데, 전자 악기가 우리 몸을 자극하지 않고, 모두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어 화음을 이루어, 그 노래의 포근함 속에 서로 기도 가운데 쉴 수 있도록 배려한다. 상상만 해온 젊은이 모임에서의 기도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기도노래, 말씀묵상, 침묵, 그리고 알로이스 수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 이야기 속에 한국과 홍콩에서 온 젊은이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있었다. 매 저녁 기도의 마지막은 십자가 주위에서의 기도인데, 떼제의 이콘 십자가를 모임 장소의 중심에 눕혀 놓고 모든 참여자가 그 앞으로 나아와서 순서에 따라 양손과 머리와 발 부분에 이마를 대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 기도의 의미를 이전에 수사님에게 들은 적이 있었는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생길의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는 간구라고 하셨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이런 기도가 가능할까?” 만명이 넘는 단위의 사람들이 십자가의 중심으로 모여들고, 질서정연하게 노래하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나에게 까지 차례가 왔다. 이마를 십자가에 대고 불려지는 노래를 따라 "내려놓습니다. 성령이여 오소서!" 기도 하는데, 그 울림이 계속 마음 가운데 머문다.
홈스테이에서의 다음날 아침, 시가지에 위치한 이곳 오래된 아파트는 초대해준 루터교 아그리스 목사부부의 사택이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그 집에 머물며 라트비아식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계란찜, 장조림, 생선절임등의 요리는 희안하게 우리나라의 비슷한 재료 요리들과 풍미가 비슷하다. 이들의 환대와 함께 나누는 식탁교제는 머무는 기간 내내 정겹고 편안했다. 식사를 마치고 지역 루터교회에 다시 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아침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화목난로와 수많은 촛불로 따뜻함이 전해지는 교회건물이다. 자세히 보니 제대 장식이 아주 고귀해 보인다. 단순하지만 정성어린 손길이 묻어난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도 독특해 보였는데, 진짜 나무를 잘라서 실내에 들였고, 전기 장식이 아닌 수십개의 초를 걸어서 불을 밝힌다.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백년 전 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방식이라고 한다. 오르간 연주자가 떼제 기도를 인도하는데, 이해가 좀 부족해서 여러 차례 실수가 있었지만, 기도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도 후 보통 그날의 묵상 말씀을 가지고 소그룹 미팅을 하는데, 우리 조는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 청년들과 함께한다. 서로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영어권 청년들이 아니라, 이 분위기가 더 정겹고 적응할 만하다. 언어에는 비록 제약이 있지만, 비슷한 고민, 비슷한 연약함 등을 서로 나누다 보니 마음을 교감하는 것에 언어는 사실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며칠간 이렇게 정들었던 친구들은 여전히 SNS를 통하여 서로에 대한 연대를 이어간다.
점심기도 장소는 9개의 큰 성당 혹은 교회이고, 매번 새로운 교회로 인도 받는다. 각자가 받게 되는 핸드북에 그날 점심기도, 워크샵 위치가 표시되어 있고, 시간 내 지도와 대중교통 무료권을 가지로 찾아가는 방식이다. 이 기간 내 라트비아 전체의 대중교통은 무료이다. 떼제를 유럽에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체감하는 부분이다. 반대로 아시아권에서 이런 모임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낮 기도를 마치고 각자가 신청한 워크샵에 참석하는데, 언어제약도 있고, 평소의 관심을 따라 예술분과의 워크샵들을 선택했다. 세계적인 수준의 라트비아 합창단의 공연과 국립 미술관을 관람을 선택했는데, 이 모임의 풍성함에 매료되는 경험이였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나면 호스트집에서 쉬게 되는데, 그 환대가 어찌보면 이곳 유럽모임의 중심인 것 같이 느껴진다. 서로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해도 누군가 먼저 연 가슴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이렇게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이 가진 신비는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다. 떼제의 알로이스 원장 수사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환대하기를 선택할 때 세상은 다른 차원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기도와 소그룹으로 이어지는 일정에 다소간의 산만함이 끼어든다. 대화의 주제가 조금 무거워졌더니, 언어의 한계와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교감되지 않는 메마름이 머문다. 나만 그렇게 느끼나 싶었을 때, 누군가 이야기하길 그치고, 허그를 제안한다. 잠시 말없이 가슴으로 서로를 개방한 순간 세상에 없는 평화가 찾아옴을 느낀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지향할 때, 난관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쉬운 길을 찾을 수 있음을 느끼며 하루를 이어간다. 내가 순례중임을 좀 더 느끼고 싶었던가? 점심 기도회 장소까지 제법 먼 길을 걸어가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도착한 점심기도 장소, 그곳에서 부른 노래 "주님의 손길 날 이끄시니 나 주님만 의지 하리, 주님께 기쁨 참 기쁨 있네" 이 노래의 가사가 쌀쌀하고 추운 날씨 가운데, 하루 종일 따뜻한 마음을 품게 한다. 저녁 기도회 중에 알로이스 원장 수사가 내년도 떼제 유럽미팅의 장소를 발표하였다. 스위스 바젤에서 열기로 발표하는 순간, 여기저기서 환호의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벌써부터 다음 모임과 이어서 스위스에서 프랑스 떼제까지의 순례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는 나를 발견하며 나도 이 모임에 어지간히 매료되었음을 알았다.
모임 3일째, 올해의 마지막 날, 아침기도와 그룹모임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 같은 친근함과 편안함이 있다. 떼제의 여러 모임에 참석해 왔었는데, 항상 이 지점이 제일 좋다. 서로 서로 낮선 이들이 모여,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임을 인식하고, 함께 은총을 경험하고, 그렇게 서로를 맞아들이기 시작할 때, 느끼는 친밀감은 이후 천국에서의 삶을 기대하게 한다. 오늘은 특별히 각 대륙별 모임이 있는 날이다. 예배를 마치고 시청으로 이동, 유럽 안에서의 아시안 모임을 하였다. 수사님의 배려로 우리는 리가 시청의 컨퍼런스홀에서 모일 수 있었다. 우리로 치면 서울시 의회장소이다. 이것에 모인 60여명의 아시아 청년들, 한국, 일본, 홍콩, 중국, 동남아시아 청년들과 인도를 포함하여 유럽에서 느끼는 독특한, 또 다른 지점에서의 일치와 화해의 모임 이였다.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고 그 생각 안에 이미 희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사님께선 준비 여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 문을 열고 맞이한 역사가 라트비아역사에도 없는 일이다. 불가능해 보였지만, 떼제 모임은 그것을 가능케 했고, 역사는 희망으로 새롭게 쓰여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 또 다른 저녁기도 장소인 킵살라 센터)
이어진 저녁기도회에는 또 다른 집회 장소인 킵살라 센터로 이동해 드려진다. 오늘 기도회에는 특별한 자리가 하나 마련되었는데, 중앙에 떼제 수사들 곁에 아시아 청년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 된 것이다. 유럽에서 먼 곳으로부터 온 아시아 청년들에 대한 기대와 감사를 담은 배려받은 장소에서 떼제 유럽모임 마지막 저녁기도회를 드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날 저녁 그 자리에서 깜작 발표가 있었는데, 멀리 아시아에서 온 특별히 홍콩과 한국 청년들에 대한 모두의 환호와 박수를 받는 환영과 함께 2018년 8월 홍콩에서 아시아 젊은이 모임이 개최된다는 깜짝 소식이 발표된 것이다. 이제 떼제에서 시작된 화해와 신뢰의 청년 모임이 유럽을 넘어 대륙으로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평화와 교회의 연대를 향한 사명 같은 것이 전해져 오는 순간 이고 우리 모두의 기쁨이 커지는 순간 이였다. 그간 몇년간 함께 아시아의 역사와 현실의 아픔을 서로 품고 화해하기 위해 떼제 모임을 계속하며 노력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1940년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 떼제에서 스위스 출신의 로제 수사로부터 시작한 화해와 신뢰의 순례는 이렇게 아시아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마지막 기도 또한 십자가 주위의 기도로 이어졌다. 우리는 유럽 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십자가를 둘러서 기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로이스 원장 수사로부터 축복의 십자가를 이마에 받았다. “희망을 가지고 떠나라” 말씀하시는 마음속 주님의 음성이 들린다.
그렇게 밤 깊도록 기도회를 마치고 이제 새해를 맞이한다. 송년 비질(Vigil)과 새해맞이 행사를 위해 다시 지역교회로 이동한다. 화해와 신뢰의 충만함으로 새로운 희망을 품고, 마지막 축제를 하러 다시 초청받은 마을 교회로 향하는 것이다. 겨울비가 부슬거리는 밤거리를 지나 우리를 초청한 루터교회에 도착한다. 가족애가 충만한 이 교회에 어느새 가족이 된 느낌 이였다. 이제껏 함께 불렀던 떼제노래를 기도 가운데 다시 부르고, 이어진 새해 행사에서 유럽 각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축제를 시작했다. 각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우리는 아리랑을 불렀고, 딱지치기를 소개했다. 즉석에서 딱지를 접은 딱지는 각 나라별 대회로 이어졌는데, 작은 올림픽 축제 같은 열기였다. 깊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질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떼제 유럽 모임의 마지막 축제를 즐겼고, 바깥에서는 우리의 화합을 축하하듯 신년을 축복하는 수많은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잠시 이 순례의 처음 마음이 떠올랐다. 혐오와 배타로의 소식으로 얼룩져가는 유럽, 두려움으로 시작된 마음의 여행이 희망의 순례로 바뀌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게 우리는 희망 없어 보이는 세상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이 글은 당당뉴스에서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