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상징
김지숙(문학평론가)
희랍어인 ‘symballein’에 어원을 둔 상징(symbol)은 ‘짝맞추다’라는 뜻이며, 명사형은 symbolon으로 ‘신표’ ‘증표’ ‘표상’에 해당된다. 부신(符信)의 의미를 지닌 이 말은 영어로 symbol 그리스어로 symbolon으로 표기되며 고구려 시조 주몽과 유리왕자의 설화에서 부자가 간직하는 쪼개진 칼 등을 맞추어 보고 상대와 하나임을 확인하는 ‘증표’를 상징되었으며 후에 ‘기호’라는 뜻이 되었고 오늘날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즉, 어떤 것을 매개로 하여 다른 것을 알게 하는 상징은 그 대상의 대리가 아니고 대상에 대한 표상이 된다.
상징은 매개인 사물과 그 매개가 암시하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 점에서는 비유와 유사한 구조를 지니지만 무한하고 다양한 유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비유와 차이를 지닌다. 이는 가시적 세계에 연상이 가해져서 불가시적 세계를 표현하는 양식이다. 이는 두 사물이 상상으로 연결되고 결합되는 연상활동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
우리 현대시에서 상징이라는 용어는 1910년 백대진의 「20세기 초두 구주 제 대문학가를 추억함」에서 보들레르 모레아스와 같은 상징파 시인을 소개하면서 처음 시작되었다 후에 김억의 「요구와 회한」(신문계 1916) 「프랑스 시단」(태서문예신보1918 ) 등을 통해 베를렌 계열의 감상적 상징주의를 소개했다 김억은 상징주의를 곧 자유시로 인지하였으며 『오뇌의 무도』(1921)를 펴냈는데, 베를렌의 영향으로 상징주의의 본질인 내면의 섬세한 음영이나 외부세계와 자아와의 교감을 간과한, 감상으로만 상징주의를 이해한 점에서 오류를 드러낸다. 하지만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이르러서는 ‘황금의 꽃’과 같은 ‘빛나는’것을 포착낸 감각과 이를 ‘타락한’ 사상과 결합한 상징성을 띠기에 이른다. 김소월의 ‘개여울’(「개여울」)은 슬픈 여인의 마음을 드러나는가 하면 민족시인 윤동주의 ‘별’(「별헤는 밤」)은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를 상징하며 저항시인 이육사의 ‘강철’은 절망을 ‘무지개’는 희망을 상징한다(「절정」) 김춘수의 ‘구름’( 「구름」)은 ‘변형’을 상징하며 전봉건의 「어부」에서는 ‘티 없는 생선’을 ‘획득하기 어려운 보석’으로 존재론적 순수성을 표현한다. 김수영의 ‘벽’(「벽」)은 ‘제약’ ‘한계’를 상징한다. 문덕수의 ‘개미’(「개미」)는 허약하고 무력한 인간을 상징하고 최승호의 ‘변기’(「변기」)는 산업화된 삶 속의 비극성을 상징한다 또한 김규화의 「바람하늘지기」에서 ‘몸’ ‘물결’ ‘비밀’ 등은 어머니의 온기를 상징하며 심상운의 「물고기 그림」에서는 ‘물고기’를 통해 회상과 현실의 공간에서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며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이선의 「( )와 ( ) 사이에」에서 ‘()’는 기호에 해당되지만 시에서는 ()는 ‘닫힘’이라는 고정된 인식에서 벗어나 ‘인간’‘나무’ 등의 사물이 ()로 표현된다 심우기의 ‘실여울’(「실여울」)은 인생사에서 맞닥뜨리는 내면과 현상을 상징한다. 고훈실의 ‘정개밭’(「정개밭」)은 묵정밭으로 ‘버림받은 땅’을 상징한다. 김용오의 시「관세음보살에 대하여」에서 ‘관세음보살’은 ‘엄마의 젖꼭지 바람 젖은 향기’로 상징화된다 위상진의 「세탁기에 대한 변명」에서 ‘세탁기’는 ‘집시’ ‘여자’ ‘국경선’ ‘25시의 기항지’로 상징되며 이혜선의 시「새소리 택배」에서는 산골의 가을 수확물을 ‘새소리’로 상징화한다 간략한 한국시사 속에 드러난 시의 상징적 요소는 ‘무엇을 지시한다’는 점에서는 기호와 동일하지만 기호가 본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이 자의적으로 사용되며 사물과 관념 사이의 교차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구체적 심상과 추상적 관념이 결합되어 나타난다. 상징은 심상과 관념의 결합이며 동시에 심상이 관념을 암시적으로 환기한다는 점에서 시적 화자의 심리적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단서가 된다. 특정한 어휘나 이미지는 시작품 속에서 이질적 두 요소가 결합되고 문맥화되면서 상징의 기능을 지닌다.
말갈기 휘날리며 이 나무 저 나무 뛰어다녔지//
장마도 지나간 8월 늦여름-
뙤약볕
죽을 것 같은 더위
숨막히는 아스팔트//
목이 마르다//
이파리 말라가는 순간//
울다 울다//
눈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둘러보면
수북이 쌓인 옆구리 찔린 울음통//
텅 빈 악기만 바람 발길에 차인다
- 심우기 「말매미」전문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매미의 종류에는 말매미 참매미 유지매미 애매미 쓰름매미 등이 있는데, 말매미(Cryptotympana atrata)는 ‘왕매미’라고도 하여 한국에서 가장 큰 매미로 소리가 크며 그중 검은 색 개체는 금빛으로 덮여 있다 조선시대에는 ‘매미’를 ‘군자’로 상징했다 김인관의 『화훼초충조화권축』 중 「유선도」에서 매미는 고목의 새롭게 난 가지 끝에 앉아서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거처를 소박하게 자리 잡은 군자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세상의 일을 벗어나 있다 반면 정선의 「송림한선도」에서는 군자를 상징하는 솔가지를 대각선으로 대치하여 매미를 부각한 점에서 선비의 포부를 간직한 마음을 보여준다 이는 매미의 삶과 형태로부터 군자의 도를 읽어낸 선비들은 청고한 군자의 덕을 상징하여 ‘초선관(貂蟬冠)’이라 하였다
또 서양에서 매미는 빛과 어둠의 영(靈)을 상징하며 빛과 어둠의 순환주기를 상징한다. 그리스에서는 불사의 뜻을 지니는 아폴론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트로이왕 라오메돈과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의 딸 스트리모 사이에 난 아들 티토노스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준 영생을 얻지만 영원한 젊음을 얻는 청을 잊었기 때문에 늙고 쇠약해 결국 매미가 된다 매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학의 소재가 되며 두 편의 그림에서는 오랜 인내와 이에 비해 짧은 생애에 대한 허무감을 드러내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 시에서 박재삼의 ‘매미’( 「매미 울음 끝에」 )매미 울음소리를 소나기처럼 숨찬 사랑으로 매미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것을 원숙한 사랑으로 상징화 하였으며 안도현의 ‘매미의 울음’「여름」은 뜨거운 여름을 상징화한다
심우기의 시 「말매미」 에서 화자는 매미의 생을 스케치하듯 그려낸다. 8월 늦여름 말갈기를 휘날리며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운다 그러다 어느 틈엔가 이파리가 말라가는 때에 옆구리 터진 ‘울음통’이 된 채 지상에서 사라지는 생의 허무함을 ‘매미’를 통해 상징화된다. 이 시에서 원관념은 ‘말매미’이지만 ‘빈 악기’ ‘울음통’과 같은 두 개의 보조관념을 가지는데 이들은 모두 ‘죽은 말매미’로 표상되어 화려한 소리들도 한여름을 제압한 큰 소리들도 헛되고 헛되다는 의미를 담는다. 시에서 비가시적인 원관념 ‘매미’ 사라지고 보조관념만 드러나면서 더욱 상황을 처절하게 만들어버리는 가시적 표현법으로 상징이 사용된다. 이 ‘울음통’은 원관념인 말매미를 환기하지만 동시에 ‘텅 빈 악기’로 표현된다. 또한 보조관념은 원관념인 ‘말매미를 환기하는 요소로 결국 모든 것은 한철이며 때가 지나가면, 갈 곳은 잃어버리고 스스로 비어지고 버려지는 점을 강하게 인지하는 상징성을 띤다. 수북이 쌓인 것은 ‘빈 텅빈 악기’로 이는 매미의 탈피각이 아니라 초가을 바람이 차는 죽은 말매미의 몸통을 말한다.
허물은 존재를 알리는 신호탄
소리보다 아프다//
저 방에서 빠져나간 매미는 이제 밖에서
거대한 합주로 한여름 숲을 적시며
작열하는 태양과 맞서고 있다
절창의 화음으로
서늘하게 계절을 녹이고 있다//
-며칠을 울기 위해
칠년의 어둠을 파먹고
한여름을 완성하였다.//
시간 안에 신방을 차리면
소리의 족적들은 깨끗이 지워지고
세상의 문 따위도
조용히 닫고 떠날 것이다
오늘도 대학로 지하 소극장에는
한 번의 연극 공연을 위해
몇 개월의 낮과 밤이 움직이고 있다
-이희국 「어떤 공연」전문
상징과 은유의 구별은 쉽지 않지만 상징은 유의를 제시하고 본의는 은폐되며, 은유는 본의와 유의가 다 제시된다는 차이점은 분명하다. 원관념이 생략된 가운데 보조 관념만이 제시되는 상징은 비유와 같이 감각화로 새로운 의미를 드러낸다. 그러나 비유가 두 관념 사이의 공통성과 유사성에 기반한 것과는 달리, 상징은 감각적 대상으로서의 보조관념이 비본래의 의미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유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진나라 육운(陸雲262-303)의 「한선부(寒蟬)賦)」의 서문에 따르면 매미는 오덕을 갖추었다. 관(冠)의 끈이 늘어진 형상이기에 글을 읽고 이슬을 먹기에 선비의 청렴(淸廉)을 지녔고 거처할 곳을 마련하지 않기에 검소(儉素)하고 때를 맞춰 죽기에 신의(信義)를 지닌 것으로 본다 당나라 백거이도 매미가 처음 우는 때 「聞新蟬贈劉二十八」를 지었는데 여기서 매미는 꿈을 이루지 못한 선비의 모습 삶의 순리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우리시에서 홍윤숙의 ‘매미 소리’(「마지막 공부: 놀이 9」)가 ‘곡성’으로 상징화되어 있고 도종환의 ‘매미’(매미 상찬)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상징한다.
이희국의 시 「어떤 공연」에서 매미는 육운의 매미와는 다른 이미지를 드러낸다. 시에서 매미의 존재는 대학로 지하 소극장에서의 연습생의 삶을 상징화하고 이들을 ㄴ나란히 병치시켜 놓았다 매미가 지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7년을 땅속에서 어둠을 먹고 지낸다는 점을 지하 소극장에서 작품을 올리기 위한 노력을 하는 연습생으로 상징화한다. ‘어둠’이라는 공간과 ‘노력’한다는 점의 유사성을 들어 나란히 와 고통을 표현한다 원관념인 ‘매미’는 생략된 채 ‘합주’와 ‘절창’ ‘소리의 족적’ 등이 ‘거대하고’ ‘화음’을 이루고 지우는 감각화 과정으로 나아간다. 말하자면 의도적인 아닌 우연적 유사성에 기인하여 다른 무엇을 대신해 주는 행위가 드러난다. ‘매미’라는 상징물은 골라 거기에 ‘어둠’ ‘노력’ ‘무대에 올리는 행위’ 등과 같은 유사한 정조를 끌어냄으로써 본의인 ‘매미’의 원관념은 은폐되고 암시되면서 노력에 따른 결과물들이 더욱 신비성을 지니는 상황으로 다가간다.
갈매기가 바다를 버렸다
사나운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상어 떼가 우글거리는 그 바다
안심할 곳 없는 그 바다를 버렸다//
도심의 빌딩 사이를 우아하게 한 바퀴 돌다가
맥도날드 쓰레기장이나 수퍼마켓 쓰레기장에 내려앉는다
먹을 것 질펀하게 쌓여 있는 도시가 좋아
까마귀 비둘기 친구하며 논다//
날개가 좀 더렵혀지면 어때
자존심이 좀 상하면 어때
변질자로 부르면 어때
이미 타락한 세상 한 바퀴 돌아보면 좀 어때//
하느님 의도야 그렇지 않겠지만
반칙이란 늘 있는 법
타락한 도심 번지수를 바꾸어 살고 있다.
-김호길 「갈매기」
상징(象徵)이라는 한자말에서 상(象)은 ‘하늘이나 우주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의미하고 징(徵)은 ‘아래서 위로 드러내 보이는 것’을 말한다. 눈에 보이거나 마음속에 느껴지는 어떤 특질을 암시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상징인데, 어떤 것을 대신하는 대상이나 행동을 생각할 때도 상징이라 한다. 여기서 두 대상 간의 동일시가 가능하다는 의미가 ‘대신’이라는 표현에 담긴다. 워스칼이 말하기를 모든 생명체는 ‘인지계통’과 ‘작용계통’의 협동과 평형으로 살아간다고 했고, 카시러는 여기에서 ‘상징계통’을 더 든다. 그에 따르면 상징계통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사고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새로운 차원 속에서의 삶도 가능하다. 상징은 언어 예술 신화 종교 역사 과학 등에서도 나타나며 이들은 상징적 우주를 이루는 구성요인이자 인간의 문화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 우리 시에서 유치환의 ‘갈매기’(「어느 갈매기」)는 세파에 어지럽힌 화자의 상한 마음을 상징하고, 박남수의 ‘갈매기’(「갈매기소묘」)는 월남 난민들의 소외되고 떠돌이가 되어 있는 비극적인 삶을 상징한다
김호길의 시 「갈매기」는 원래의 살 곳인 바다를 버린 갈매기의 이야기를 담았다 갈매기는 인간의 인지 작용에 의해 명명된 생명체이며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바닷가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다고 대체로 인지되어 왔지만 시에서 ‘갈매기’는 도심의 쓰레기장에서 먹거리를 구하고 비둘기와 까마귀를 친구하며 타락한 세상을 날며 더럽히고 타락하며 새로운 터전에서 살고 있다 물론 시에서 갈매기라는 상징적 생명체를 택해 인간이 본연의 삶의 터전을 버린 결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장소에서 구차하게 살아가는 삶의 정황을 표현한다. 시적 화자가 설정한 의미대로 본다면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고 그것을 스스로 합리화하는 모습을 변해버린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측은한 갈매기의 삶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내가 숲속의 한그루 나무가 되어//
생각은 뿌리가 되고
뿌리가 깊을수록 싱그러운 인격으로 가지를 거느리는
한그루 나무가 되어//
오늘 하루도 스스로 짓는 소욕의 죄를
하늘의 파란 바람으로 씻는
성령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가지를 거느리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눈부신 빛 속에서
숲속의 한그루 해맑은 나무가 되어//
말씀의 울림으로
세상 끝까지 성령의 씨를 뿌리는 나무가 되어
-정순영 「눈부신 빛 속에서」
카시러에 따르면 상징은 정신적 의미가 함축된 일체의 감각현상이다(상징형식의 철학 1권) 정신적 의미의 내용은 상징형식이나 상징형태를 통해 구체적 감각 기호와 연결된다. 상징은 의식에 주어진 경험 내용을 조작하여 의미를 만들어내는 구성적인 종합행위이다 따라서 모든 상징은 인간행위의 산물이자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관점을 형성한다. 상징은 한 개의 보조관념이 한 개의 원관념을 환기하는가 하면 본래의 뜻은 숨기고 다른 이야기를 내세워 본래의 의미를 암시하는 점에서, 또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하여 눈에 보이는 사물로 표현하는데 주로 사용한다.
나무는 일반적으로 조화 성장 생성 재생의 과정 불멸을 상징하며 세계-축이라는 의미 그리고 성장과 반전 끊임없는 ‘생명 과정’을 의미한다. 기독교에서는 서로 상이한 세계를 연결하는 축으로 상징된다. 그것은 불멸을 상징하는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이며 ‘우주의 중심’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또한 나무는 ‘현실적 상황의 유추’ ‘심리적 이미지 투사’의 병치방식을 통해 상징을 드러내기도 한다(이승훈 1995) 마야의 문화에서는 대지의 중앙에 사이바라는 생명수가 사는데 그 뿌리를 지하계에 내리고 둥치와 가지는 열 개의 층을 지닌다 선조는 뿌리를 통해 현세에 이르고 사자(死者)는 둥치와 가지를 통해 천상계에 이른다.(진쿠퍼1997) 우리 시에서 유치환의 「나무」에서 ‘나무’는 뿌리의 근원을 세계의 중심에 둔다는 점과 박두진의 「전율의 수목」에서 ‘나뭇잎’은 영혼을 상징한다.
반면 정순영의 시 「눈부신 빛 속에서」에서 화자를 상징하는 ‘나무’는 ‘하늘의 파란 바람으로 씻는 성령으로’라고 하여 하늘의 세계를 지향한다. 또한 ‘씨를 뿌리는 나무’라 하여 생명의 순환성을 지닌다. 화자의 생각은 뿌리로 그것은 깊이가 더해질수록 인격이 더해지며 깊이 있는 인격으로 상징된다. 화자는 ‘다양한 ‘상황’이나 ‘사물’로 상징되는 가지를 거느리는 나무가 되리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또한 그 모든 것은 ‘성령’이라는 주체를 지닌 존재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리라는 의지를 담아낸다. 또한 ‘세상 끝까지 성령의 씨를 뿌리는 나무가 되어’라고 한 점에서나 목표를 ‘숲 속의 해맑은 나무’라고 하여 화자의 존재를 숲이 지니는 완전한 낙원상태 혹은 피난처를 상징하는 숲에 존재하거나 또는 ‘성령의 씨 뿌리는 나무’라 하여 천상에 두는 삶의 목적성을 표상하는 나무에 둔다
나이는 마음이다
스물이라 생각하면
풀잎의 휘파람 소리가 나다가도
일흔이라 생각하면
은행잎 노람 가을이 내려앉는다//
일흔이라도
스물처럼 살자
언제나 봄의 빛깔로 살아가자
-엄기창 「나이의 빛깔」
휠라이트는 언어의 긴장감의 정도에 따라 상징을 협의의 상징과 장력상징으로 나눈다 협의로서의 상징은 관습적 상징을 또 다른 말로 칭한 것으로 사회나 조직 내에서 불리는 의미가 한정되어 있는 상징을 말한다면, 장력상징은 필연적으로 의미가 만들어지므로 다소 애매한 점을 특징으로 들며 이는 개인에 의해 탄생되므로 반드시 개인의 내적 특성이 가미되어 의미가 조작되는 점을 필수 요소로 작용 하는데 이에는 개인만의 깊은 상상력과 연상력이 관련된다.
상징은 어떤 내적 상상력에 힘입어 이미지가 창작되는지 살펴보는 과정에서 필요하며 이는 구체적인 실체가 없지만 이들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어떤 것이 어떤 실체로 드러나는 지의 모습을 찾는 것으로 상징의 완성도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상징은 개인이 시에서 각각 다른 의미를 부여하므로 언제나 새롭게 탄생되며 그 대상은 늘 새로운 창조물이 되는 특성을 띤다. 물론 시인이 의도한 관념이나 비가시적인 이념을 암시하기도 하고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대상이 상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에 비가시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고 이를 암시하는 구체적인 상징만이 드러난다. 공자는 은행나무 아래 단을 만들어 제자를 가르쳤기에 공자의 말씀을 가르치는 곳을 ‘행단’이라 하고 은행나무는 교육과 청렴의 상징으로 1억5천만년전부터 지구에 살아왔으며 빙하기에도 살아남은 살아있는 화석이라 칭하는 것도 은행나무가 지닌 상징성에 기인된다. 김수영의 「풀」에서 ‘풀’은 인간을 상징하며 박성룡의 「풀잎」에서 ‘풀’은 선한 자연의 힘을 표상한다.
엄기창의 시 「나이의 빛깔」에서 ‘은행나무’는 ‘풀’과 대조를 이루는 사물로 표상된다. 화자는 사람의 나이를 젊고 힘 있을 때의 사물은 ‘풀’로, 푸릇한 휘파람 소리를 내는 ‘풀잎’으로 표상되고 나이든 때의 모습은 가을이 내려앉은 노란 ‘은행나무’에 견준다. 시에 나타나는 ‘풀’은 젊음의 힘 유연성 승리 등을 상징하며, ‘은행잎’(나이의 빛깔)은 퇴각의 의미를 지닌다. 노란색은 시각적 특성으로 보면 두 분류로 나뉜다. 그것은 ‘명랑’ ‘힘참’ ‘전진’ ‘행운’ 등을 의미한다. 또한 황금색으로 보면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 ‘부귀와 영화’‘역동성’ ‘즐거움’ ‘생동감’ 등을 뜻한다. 반면 차갑고 퇴각하는 의미와 연상되는 참회자로서의 성직자를 상징하는 색의 의미를 지닌다. 시에서 ‘은행나무’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기 보다는 푸릇한 ‘풀’의 나이로 살아가고픈 화자의 심정을 감안할 때에 후자의 의미를 더 강하게 내포한다.
6월 아침나절
주택가 쓰레기통에선
깨진 꽃병의 파편이 반짝이고//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반짝이고
길가 아카시아 나무 꽃 핀 가지가 반짝이고
흙 묻은 내 바지가 환한 빛 속에서 반짝인다//
나는 그늘진 골목길에 서서
누군가가 보내는 신호에 날개 반짝이며
무한 허공 햇빛 속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본다
-심상운 「6월 아침」
그리이스 신화에서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으로 땅을 의미하며, ‘시후아코아틀’은 아스텍이 숭상한 대지와 탄생의 여신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죽은 자들은 삼키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신이다 ‘데메테르’는 수확 곡물 씨를 뿌리고 밭을 가구는 법을 알려주는 풍요의 여신이다. 성서에 보면 창조주가 처음 사람을 만들 때 ‘흙’을 사용하고(창 2:7; 고첫 15:47, 48) 아담이 벌 받을 때 ‘너는 ...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 한다.(창 3:19) 그밖에도 뱀에게 ‘네가 사는 모든 날 동안 ‘흙’을 먹을 것이다”라고(창 3:14)하여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가 하면 완전성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흙’은 약함을 나타내기도 하고 자비를 보일 때의 ’흙‘(시 103:13, 14; 창 18:27)과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여 ‘흙’의 멸성을 상징(시 104:29; 전 3:19, 20; 12:1, 7)하기도 한다.
낮은 상태를 의미한 ‘흙’은 대개 여성성 수동성을 의미하며, 아메리카 인디언에 의하면 흙은 땅을 상징하며 땅은 태모(太母)를 상징한다. 또한 양육자 공급 무진장 창조력 물질을 나타내는가하면 무의식 속의 대지는 생명을 주는 자궁을 의미한다. 반면 질서를 유지하려는 무의식이 위협받는 상황이거나 질서에 위험이 도래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온전성에 대한 위협으로 땅이 지닌 영민함에서 몸이 지닌 지혜를 보완해야 완전성에 이른다는 의미도 표상한다. 우리시에서 김광림의 시 「꽃의 문화사초」에서 ‘꽃’은 생성의 아픔을 거느린 영혼을 상징하고 김춘수의 「꽃의 소묘」에서 ‘꽃’은 태양 영혼의 세계를 상징한다.
심상운의 시 「6월 아침」에서 아카시아 나무가지에 핀 ‘꽃’은 아름답지만 흔들리는 가지 끝에 피어 있어 일시성을 상징한다. 화자는 ‘꽃병’ ‘나무’ ‘바지’ ‘새’와 같은 어휘들은 형태의 유무를 떠나서 ‘반짝’임을 동반한다. ‘꽃병’은 원래를 의미를 상실한 채 ‘쓰레기통’에 버려져서는 ‘깨진’ ‘파편’ 등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이는 ‘반짝’이고 있어 본래의 역할을 찾아가는 긍정성을 회복한다. ‘나무’는 흔들거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만 ‘꽃핀’ 상태로 가지들이 ‘반짝’이면서 희망의 긍정상태로 전환된다. 화자가 입은 ‘바지’는 흙이 묻어 있고 이 ‘흙’이 지닌 두 의미 중 하나는 대지의 여신이 지닌 긍정성이나 창조주가 돌아갈 곳을 의미하는 ‘흙’인데, 시에서 이 ‘흙’이 아니라 두 번째 의미로 온전성을 깨뜨리는 부정성을 띠지만 몸이 지닌 지혜로 이를 극복하는 ‘땅’으로서의 이는 ‘흙’이 나타난다. ‘흙’이 묻은 바지의 내면이 반짝인다는 점에서 확인 가능하며 그늘진 골목에 서 있는 화자는 무한 허공을 날아가는 ‘새’를 지켜보고 있다 결국 시에 드러나는 ‘파편’ ‘그늘’ ‘허공’ 등과 같은 비가시적인 사물이 제시하는 부정적인 많은 상황 속에서 ‘꽃병’ ‘나무’ ‘바지’ ‘새’와 같은 가시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사물은 긍정적 상징성을 확보한다.
소금에 절여져서 혼이 된 그 물고기는
우주의 심해 속을 헤엄치고 있다고 한다//
그 물고기는 무의식 속의 유영이
어디에서 무엇인가로 다시 태어날 것인지//
나도 우주의 심해를 헤엄치는 혼이었다가
겨울날 지구의 한구석에서 태어난 거 같다//
여름밤 하늘엔 우주 공간을 유영하다가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별들의 혼이 찬란하다
-박이도 「별들의 혼」
Brooks & Warren에 따르면 상징은 어떤 구체적 사물이 다른 대상을 표시하거나, 다른 영역의 의미를 암시 또는 환기한다. 이를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에서 보면, 원관념은 배제되고 보조관념이 독립되어 함축적 의미와 암시적 기능을 갖는다. 따라서 상징은 보조관념만 노출되고 원관념은 아예 숨어버린 은유(1960)에 해당된다 이는 시의 경우에서 보면 형이상학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때로는 지나친 ‘초월’로 판단되기도 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물은 ‘탄생’ ‘비옥성’을 상징한다. 반면 바슐라르에 따르면 물이 보여주는 유용성의 변용과 관련해서 볼 때에 ‘집단이나 개인의 무의식’을 표상한다. 물은 전환성이 가장 빠른 원소이자 증발하여 삶과 죽음의 매개자로 인식되며 정신적 깊이를 만드는 잠재적인 활력의 의미를 지닌다. 소금이 지니는 상징성은 성결과 거룩함을 상징하며 하늘과 연결하는 존재인 동시에 충실성의 의미를 지닌 영원한 계약을 상징하며 생명활동의 근원이 된다. 우리 시에서 윤동주의 ‘별’(「서시」 ) 미래의 삶을 상징하고 김광섭의 ‘별’(「저녁에」)은 밝음을 상징하며 정한모의 ‘물고기’(「해양의 시초」)는 고향을 상징하며 박재삼의 ‘물고기’(「밤나무 그늘에서」)는 풍요로운 삶을 상징한다.
박이도의 시 「별들의 혼」에 나타나는 ‘별’은 우주의 심해를 유영하는 절여진 ‘물고기’이다. 우주공간을 헤엄치다 지상으로 떨어진 ‘별’은 물고기로 환생되는 순환성을 지닌다. 물고기는 생명의 재생과 유지 생명의 원천과 생명을 담고 있는 바다나 강의 힘 원소로써 물을 나타내며 생명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제자를 상징하며 부활의 희망을 나타낸다. 슈나이더에 따르면 물고기는 ‘고래’ ‘새’ 때로는 ‘신비로운 배’로 인식된다. 물고기는 두 가지 특성을 지니는데, 목관악기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지하에 살고 있는 새와 동일시되며 천상과 지상의 연결을 상징한다. 다른 하나는 알을 많이 낳는다는 점에서 정신적 의미를 동반하는 삶의 풍요를 상징한다. 시에서 ‘물고기’ 역시 ‘심해’를 헤엄치는 혼이 되었다가 우주공간을 유영하다가 지상으로 떨어지면 찬란한 ‘별’이 된다. 이는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생명의 순환성을 상징한다.
뼈대를 덮은 근육을 포개고 높게 쌓으며
올려다보는 눈초리 하늘쯤에서 어지럽다
어디까지 쌓아 올려야 닿을지
손에 쥐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오를수록
멀기만 하다
당당하게 꿈틀거리는 근육은 눈부신 조명 아래
어깨를 조이며 새긴 왕
부적처럼 주렁주렁 고 번쩍이다가
갈 곳 없는 삐에로
스스로 하늘이 되기로 한 속마음
멈출줄 모르고 바벨의 탑을 올린다
줄지어 서서 숲을 이루며
매일을 숨차게 오르는 산이 되어
골바람을 일으키고
돌풍에 휩싸여 흔들리는 사다리 위
오늘도 더 높이 더 위로
뾰족탑을 딛고 오른다
-이경제 「보디빌딩」
틴(W.Y.Tindall)이나 프롬(Fromm)의 경우, 상징이 지시하는 것이 반드시 형이상학적이거나 초월적 실제가 아니라 작품에 따라서는 대상에 대한 복합적인 정서나 태도와 관련된다고 하였다.(Tindall, 1974 : 5, Fromm, 1988 : 174) 휠라이트에 따르면 상징은 시인의 상상력과 실제의 생활에 대하여 지속적인 활기를 불어넣고 타당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시에서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수시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상징은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며 일상적인 사물이나 사건조차 압축적인 단어나 이미지를 통해 수많은 의미들을 마련한다. 특히 인간의 인체는 다양한 상징성을 띤다. 오른쪽이 의식 왼쪽은 무의식을 상징하는 외에도 돌출이냐 함몰이냐에 따라서 음양을 표하기도 하고 신체의 낮은 부분은 지상을 뜻하며 ‘손’은 ‘권위’ ‘권력’ ‘지탱이나 힘’을 상징하며 ‘드러냄’ ‘신중함’ ‘내적 존재’ 등을 표상한다. 우리 시에서 박남수의 ‘손’(「손」)은 소통과 방어의 두 의미를 지니며 박성룡의 ‘손’(「손」)은 심리적 태도와 힘 권위를 상징한다.
이경제의 시 「보디빌딩」에서는 인간의 몸을 시적 소재로 택한다. 보디빌더가 되기 위해 끝없이 인내해야 하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그에 상응하는 결과와 그 뒤의 오는 허탈감으로 이어지는 노력, 올라갈수록 더욱 더 힘든 상황이 되어가는 현실에 대해 언급한다 시에서 ‘탑’은 탑은 불침번의 상징으로 사다리와 동일한 상징성을 지닌다. 보디빌더의 삶은 ‘불침범’과 같은 힘든 육체적 상황을 동반한다는 의미를 표상한다. 그의 육체는 주체적으로 다듬어지고 능동적이고 무의식적인 힘을 통해 주어진 세계에게 요구되는 인체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으로 조화를 추구한다. 시에서 화자가 보디빌딩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자기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며 화자는 이러한 기준에서 점점 높아지는 욕망에 다가서려는 변화를 꿈꾼다. 여유는 없고 더 높은 세상에 오르기 위해 강박적 상황에 이르며 이는 ‘손’을 쥐기 위한 것으로 ‘뾰족한 탑’으로 힘이나 자리 권위를 표상된다.
아기 주먹만한 사탕을 빨던 혀가
불그스름한 귓불을 햝더니
기다란 혓바닥을 낼름거린다
귀마개로 틀어막아도 간교하개 들락거리면서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흑장미를 바치며
콤한 혀로 홀딱 반하게 해 놓고
비자나무 위에 올려놓은 채 비루하게
사다리를 치워버려 밤새 찬서리를 맞았다
흐린 창문을 닦고 파란 하늘을 읽으며
비바람에 누운 풀잎이 부서질 듯 써놓은
문장을 주저 않고 받아 읽어야
향기로운 말을 들려줄 수 있을테지-
꿀을 빨 땐, 나르시즘에 빠져들지만
독주를 마신 후에야 춘몽에서 깨어나
근원적인 생의 본질을 알 수 있다
혀는 붉은 주단이 깔린 욕망의 계단을 질주하며
지향점을 잃은 미혹의 시간 속에서
침을 꿀꺽 삼키고 비겁하게 돌아 섰으며
날을 세워 난도질 했었지
미아가 되어버린 말이 슬픔을 전송한다
-이양덕 「자라나는 혀」
화이트에 따르면 상징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며 그 사람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 사물은 비로소 상징화 된다 따라서 상징은 물리적 형태를 갖추어야 인간의 경험 속으로 들어 올 수 있으며 다양한 상징화는 인간 문화를 구성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시를 통해 세계와의 관계를 맺고 이해하는 시인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상징은 의식을 초월한 어떤 내용의 이미지이고 비합법적이며 무의식적 면을 공존한다. 인체 중 ‘귀’는 공간의 방향을 뜻하며 ‘입’은 불의 원리를 상징한다 입은 말하는 능력 창조력의 발산을 의미한다.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가 만나는 지점인 입은 지상과 하늘에 맞물려 있다 우리시에서 권천학의 ‘혀’(「혀」)에서는 성숙해나가는 인성을 말을 부리는 혀로 상징화하고 있으며 천양희의 ‘혀’(「참좋은 말」)는 잎으로 비유되고 있으며 혀로 만들어 낸 듣기 좋은 말을 상징한다
이양덕의 시 「자라나는 혀」에서 ‘혀’가 상징하는 것은 일반적인 육체의 일부인 혀가 아니다 이 시에 말하는 ‘혀’ 상징은 기존의 ‘혀’가 아니라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변화하는 삶의 모습을 ‘혀’로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처음 화자의 ‘혀’가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가 만나는 매개는 ‘사탕’이다 그러나 단순히 ‘사탕’을 빨던 혀는 타인의 세계로 확장되어 남의 ‘귓볼’을 빤다 그리고 또 다른 확장된 세계를 의미하는 사물인 ‘흑장미’를 타인에게 바치며 홀딱 반하고, 외적 세계에 해당되는 ‘독주’를 내면으로 들인다 독주를 마신 ‘혀’는 급기야 춘몽에서 깨어나서 생의 본질을 깨닫는다. 처음 외적 세계로 내디딘 ‘혀’를 욕망의 계단을 질주하던 ‘혀’로 표상하여 결국은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지향점을 설정한다. 그동안 스스로 나아간 변화하는 삶이라는 외부세계의 미혹 속에서, 상실한 자아들이 비겁하게 돌아서서 미아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뒤늦게 파악하고 반성하는 점을 ‘혀’를 통해 상징화한다.
지금까지 상징을 통해 12월호에 실린 시들을 살펴 본 결과, 여전히 상징은 함축적적으로 사용되고 추상적인 관념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심우기의 ‘말매미’에서는 ‘울음통’ ‘빈악기’로 표현되어 모든 화려한 것은 한 때이고 이 때를 잃고 나면 헛되이 사라진다는 점을 상징한다. 이희국의 ‘어떤 공연’에서는 매미의 탄생에 이르기까지의 고난과 지하 연습생의 삶을 상징적으로 이끌어내는 한편, 고통과 노력의 유사성을 표현하고 있다 김호길의 ‘갈매기’에서는 본래의 삶의 질과 장소를 상실한 갈매기를 상징적으로 내세워 삶의 방식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정순영의 시「눈부신 빛 속에서」에서의 화자는 성경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삶을 담은 내용이 ‘세상 끝까지 성령의 씨를 뿌리는 나무’의 상징화를 통해 스스로 그 나무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엄기창의 「나이의 빛깔」에서는 ‘풀’과 ‘나무’를 스물의 나이와 일흔의 나이에 놓인 사람으로 상징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심상운의 「6월의 아침」에서는 긍정적인 것들의 ‘파편’에서 비치는 부정성을 ‘반짝’이는 사물‘꽃병’ 등으로 표현하는 한편, 온전성에 대한 파멸도 몸으로 극복하는 긍정적 의미를 다양한 상징물로 표현한다. 이경제의 「보디빌딩」에서 화자는 그의 육체를 주체적으로 다듬고 능동적이고 무의식적인 힘을 통해 주어진 세계에게 요구되는 인체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으로 조화를 추구하는 점을 ‘손’을 쥐는 일을 탑 쌓는 일이라는 일에 견주어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양덕의 「자라나는 혀」에서는 인생을 ‘혀’를 통해 탐미하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무심했던 ‘혀’의 활동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이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상징이란 보편적인 인간의 관념을 구체적 사물로 드러내어 언어로 표기하는 작업이다 또한 상징은 언어의 의미를 지적하는 기호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보조관념에 의해 원관념의 의미를 확정하는 것이 기본 원리이며 굳어진 의미로 존재하기보다는 기본 의미를 바탕으로 확장된다. 뿐만 아니라 허버트의 지적처럼 상징적 요소는 심리학적 해석을 요구하는 모든 예술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문명의 뿌리에는 상징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인간만이 상징의 세계 속에 살 수 있으며 상징을 만들어 낸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현대시에 가장 보편적이고 중요한 의장이 ‘상징’인 이유는 바로 이런 점에 기인된 때문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