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자의 변명 / 백현
어렸을 때 ‘무랑 태수’로 불리곤 했다. 서둘러야 할 때도 느려터져 엄마 속을 태워서 그랬던 것 같다. 걱정 근심이 없는 사람으로 무슨 일 있어도 “어느 집 개가 짓는다느냐, 날 잡아 잡수시오.”하는 듯이 천하태평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옆집 승호는 ‘웬수’라고 불리곤 했는데, 그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도 그랬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여전했다. 시험 기간에도 특별히 더 열심히 하지 않아서 부모님의 걱정을 듣고도, “공부할 게 없어서 그렇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오히려 두 살 터울인 동생이 밤늦도록 책상에 앉아 있어서, “내일을 생각해서 얼른 자라.”는 말을 들었다. 동생과 비교를 할라치면 기가 죽기는커녕 동생이라도 열심히 해서 다행이라고 답했다.
사실 나는 진짜로 공부할 게 없었다. 교과서를 넘겨 보면 다 아는 것 같아서, 딱히 더 해야 할 것이 없었다.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니 당연했다. 반대로 동생은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오늘과 내일 사이에 정석 몇 장 풀고, 지학 시험 범위 끝내야 하고,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태수에서 학생이 되었다. 『수학의 정석』을 집중해서 풀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하니,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해하고 외우고 풀어야 할 게 많아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동생의 말을 뒤늦게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잠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깨어 있는 시간을 더 아껴 쓰고 집중해야 한다는 깨달음까지 얻었다. 제법 수험생의 자세를 갖추고 학력고사를 치렀으며 고등학교 3년을 마무리했다.
교사가 되어 예전의 나와 같은 학생을 많이 만났다. 중간고사 직전 자율학습 시간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그냥 대충 책을 뒤척거리다가 엎드리는 아이들. 너무나 낯익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가가 국어 공부는 어떻게 하면 좋고, 어떤 부분을 더 학습해서 이해해야 하는지 설명해도 별로 효과가 없다.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자신의 필요와 욕구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