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 이야기8
치유 정선, 수신의 용틀임으로 발견한 화암약수
<유둣날 50리 길을 걸어가 찾은 약수>
“여보, 빨리 나와요. 서둘러야 해.”
어머니는 부엌에서 도시락을 싸서 주루막에 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마당에서 어서 서두르라고 소리쳤지요. 이날은 정선군 임계면 문래리 사람들이 화암약수터로 치유(治癒) 소풍을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벌써 신작로 거리에는 동네 사람 몇이 나와 있었습니다. 평소에 아끼던 옷을 챙겨 입고, 등에는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을 짊어졌습니다. 어디를 봐도 소풍을 떠난다는 모습임에 틀림이 없었지요. 얼굴에는 다들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화암약수까지는 거리가 50리는 족했습니다. 걸어서 산길을 가야 하니, 네다섯 시간은 족히 걸렸습니다. 아침 일찍 떠나야 저녁 해지기 전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지요.
이날은 어느 정도 바쁜 농사일을 끝내고, 겨를을 낼 수 있는 유둣날이었습니다. 음력 6월 15일이니,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습니다. 삼복(三伏)이 들 때이므로 물맞이 소풍을 떠난다는 흥겨움이 더했습니다.
화암약수는 예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화암약수가 동쪽으로 향하여 물길이 터졌기 때문이라 합니다. 해 뜨는 방향으로 흐르므로 양기(陽氣)를 가진 물이라 하지요.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유둣날의 풍속과 딱 맞습니다. 이를 한자로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라 합니다. 양기를 가진 물이기에 모든 재액(災厄)을 막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화암약수가 치유의 약수로서 효능을 더 갖는 내력입니다.
문래리 사람들은 50리 길을 걸어 약수를 마시고, 약수를 떠서 개울로 와 머리를 감았습니다. 주루막에 짊어지고 간 도시락은 그야말로 꿀맛이었지요. 이제 약수를 마시고 머리도 감았으니, 일년내내 몸이 안 아프고, 액운도 물길에 사라졌다고 믿습니다.
<수신의 용틀임으로 현몽>
“유세차 … 신께서는 흠향하시기 바랍니다.”
2024년 4월 26일 제32회 화암약수제의 축문입니다. 화암약수제는 1993년부터 시작했습니다. 화암약수가 잘 솟고 화암면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면민 축제입니다. 아무래도 화암면은 약수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건강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바람이 반영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화암면의 축제를 화암약수제라 명명했습니다.
그런데 화암약수제가 생기고, 화암약수가 더욱 유명해진 사연은 다음과 같은 전설 때문입니다.
1913년 어느 날입니다. 화암약수가 있는 구슬동(九瑟洞)에는 문명무(文命武)라는 노인이 살았습니다. 노인은 여느 날과 같이 밤이 되자 깊은 잠을 잡니다. 그런데 꿈에 구슬봉의 동자바위 아래에서 청룡과 황룡이 갑자기 나타납니다. 두 마리 용은 얽히고설키며 꿈틀대더니 상서로운 빛을 비추며 하늘로 올라갑니다. 노인은 생전 처음 꾸는 꿈이라 예사롭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꿈이 깨어도 마치 생시처럼 그 장면이 또렷이 남아 있었지요. 노인은 아침 일찍 날이 밝자마자 꿈에서 본 장소로 향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장소에는 상서로운 물안개가 서리어 있었지요.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낙엽을 걷어내고 손으로 땅을 팠습니다. 그러자 뽀글뽀글 물이 솟아올랐지요. 노인은 그 물을 손으로 떠서 마셔보았습니다. 물맛이 톡 쏘며 혀끝을 자극하고 뱃속이 시원해짐을 느꼈습니다. 노인은 정말 기뻤습니다. 아픈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약물이 발견되었던 것이지요. 노인은 하늘을 향해 절을 하며 고맙다고 소리쳤지요.
용과 물은 나눌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용의 옛말이 ‘미르’인데, 이 말은 물을 뜻합니다. 용은 수신(水神)으로 물을 다스리지요. 또 물은 <바리데기> 설화에서 보듯 생명과 치유를 상징합니다. 이런 연유를 보면 화암약수의 발견 설화가 갖는 상징은 이미 전설이면서 신화(神話)적 성격도 함유하고 있습니다. 제의(祭儀)를 동반한 신앙(信仰)이 될 수 있는 바탕이 이루어졌지요. 그래서 약수 설화에는 초자연적인 신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선의 화암약수제가 생긴 바탕입니다.
<어질고 착한 사람에게 준 선물>
“약물이 나와요. 여기 구슬동에 약물이 나와요.”
문명무 노인은 마을에 내려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사람들은 노인의 소리를 듣고 너도나도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침 일찍 노인의 외침을 들었던 터라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뭔 물이 나온다고요?”
“약물이 나와요. 우리 병을 고칠 약물이 나온다고요.”
마을 사람들은 노인을 따라 계곡으로 올라갔지요. 노인은 약수가 나오는 장소로 가서 물을 떠 마시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마셔보라고 했습니다. 정말 뱃속을 짜릿하게 하는 약물이었습니다. 약물을 맛본 마을 사람들은 너나없이 노인을 칭찬했습니다.
“문 씨가 평소에 마음이 착하고 어질더니 하늘이 약물을 내려 주었어요. 비록 가난하여 사람들에게 재물로는 도움을 못 주지만, 약수를 알려주어 사람들에게 병을 고치는 은덕을 베풀게 했군요.”
사람들은 문 씨가 약수를 발견한 데 대해, 마음이 착하고 어질어서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약수를 신성시하며, 주변을 잘 가꾸었습니다.
어느 날 부정한 일을 본 어떤 사람이 약수를 마시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약수 속에서 큰 구렁이가 보이고 약물이 흐려지는 게 아니겠어요. 그 사람은 약수를 마시지 못하고 내려왔는데요. 훗날 정성을 다해 몸을 깨끗하게 하고 갔더니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약수의 신성성(神聖性)이 가미된 이야기지요. 약수가 가진 치유성을 극대화하려는 금기 이야기가 첨부되었습니다. 이 또한 신화(神話)에 따라다니는 화소 중 하나입니다.
<그림 같은 마을, 화암의 절경>
화암약수는 아픈 사람을 낫게 하고 죽을 사람을 살리는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전국의 사람들이 병을 치료하고자 화암약수를 찾았지요. 또 그들 때문에 화암약수의 효험이 증명되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주변에서 머물며 속병을 치료하고 피부병을 치료하였습니다. 그런 사연 때문일까요. 이제는 화암약수 옆에 현대판 치유센터 야영장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화암약수터로 가는 길은 어쩌면 모두 치유의 현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경관이 좋으면 마을 전체를 ‘그림바위’라 했을까요. 인위적으로 그림을 그려 놓은 듯 절경이라는 말입니다. 눈에 띄는 모든 장면이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정말 승경(勝景), 절경(絶景) 등처럼 경관을 표현하는 어떤 단어도 ‘그림바위’를 대체할 수 없지요. 화암8경을 모두 돌아보면, 그 어떤 세상의 병도 낫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화암약수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